367화. 더 높은 가치를 향해 (3)
설휘가 청성파 장문인으로 있던 시절.
‘무당파 입문이 꽤 까다롭구나.’
그는 몇 가지 조사를 해본 후 고민에 잠겼다.
우선 무당은 한 세대에 일정 수 이상의 제자들을 모집하지 않았다.
딱 정해진 수만 받아들였다.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고, 제자를 많이 돌보다 보면 사부 될 이들의 부담이 컸다. 그래서 감당할 수 있을 정도만 선별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청성도 마찬가지였지만, 지원자의 수에서 크게 차이가 났다.
‘청성에 입문을 원하는 자가 한 해에 백 명이라면, 무당파는 자그마치 2천은 되는구나. 이런 것이 천하제일문에 가깝다는 이름값인가.’
이러니 무당은 많은 지원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질을 가진, 골격과 무재가 좋은 이들만 고르고 골라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애초에 좋은 소질을 가진 이만 가르치니, 더더욱 무당의 인물들은 이름이 높을 수밖에.
두 번째로 무당은, 다른 문파와 연관이 있는 이들을 가급적 배제했다.
나이는 반드시 열 살 이하.
그리고 아이 부모의 평소 행실을 확인하는 과정까지 거쳤다. 어릴 때 가치관이 삐딱하게 자리 잡거나, 천품이 고약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꽤나 곤란하겠는데…….’
확실히 나이가 걸렸다.
과거 자신이 약관을 넘는 나이로도 청허의 눈에 들어 입문한 청성파와 이곳은 다르다.
소년처럼 어릴 때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장 ‘다시 하기’가 스물을 넘어서 시작하니까.
그렇다면 약관을 넘어선 나이로 무당의 직전제자가 될 방법이 없는가?
아니다. 어렵지만, 방법은 분명 존재한다.
바로 장문인이나 이관팔궁의 관주와 도장들에게 추천을 받으면 입문이 가능했다.
‘즉, 무당파 서열 11위 안의 인물들에게 능력과 성품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설휘는 청성파 장문인의 삶을 끝낼 때까지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상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무당파의 중요 인물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을 기다리는 것.
기회는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바로 곤마가 제안한 비밀무사 시험.
흑마전주는 구파일방 중 장로급 인사 목을 가져오면 곤마를 따르겠다고 말한다. 마침 그때 나왔던 선택지가 셋이었다.
하나는 무당파, 또 하나는 소림사 장로. 마지막으로 화산파의 구종명이었다.
당시에 설휘는 화산파를 선택했기에, 이번에는 무당파로 향하기가 쉬웠다.
화산파가 지키는 구역의 반대쪽으로 향했을 때, 설휘는 천라지망을 형성한 구파의 일대제자들을 볼 수 있었다.
‘이젠 시기를 잡아서…….’
마침 적당히 칠사자급의 무인 몇을 설휘는 섭외해 두었다.
그가 다른 마인들과 함께 구파의 제자들을 도륙할 때, 설휘는 시기적절하게 그 뒤를 쳤고.
막 목숨이 왔다 갔다 하던 구파의 제자들은 목숨을 건졌다.
“귀, 귀하는 누구시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러 온 무당파의 진무관주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칠사자급 무인이면, 아직 화경은 아니지만 초월급의 무예를 갖춘 이다. 그런 이들의 손에서 제자들이 살아남았으니.
당연히 그들을 물리친 강호 초출인 설휘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무엇보다, 마인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보였던 설휘의 무공이 태극권이었다지 않은가.
“과거 어릴 적 몸이 약할 때, 지나가던 무당의 도사께서 태극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뒤로 건강을 위해 꾸준히 연마하다, 운 좋게 기혈이 타통되었습니다.”
“허어, 그 무당의 도사께서는 도명이 무어라 하시던가?”
“혜윤이라 하셨습니다.”
“혜윤 진인……!”
설휘는 청성파 장문인의 권한으로 조사했던 은거고수의 이름을 댔다.
예전에 마교에서 조사했던 이는 혜명이었는데, 그도 은거기인이긴 했지만 성품이 워낙 고약해서 무당에 들어가자마자 곤욕을 치렀던 기억이 났다.
혜윤은 혜명처럼 모난 성격이 아니었고, 그런 만큼 대단한 무명을 얻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점에서 심히 적절했으니.
바로 시기상 작년, 혹은 그 전년쯤에 이미 외롭게 작고한 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확실히 죽은 사람이니, 더 뒤를 캐일 염려가 없어 좋았다.
“오오. 은거했던 사숙께서 큰 씨앗을 뿌리고 작고하셨구나……. 살아 계셨다면 크게 기뻐하셨을 것을.”
진무관주는 크게 감동하여 설휘가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제안을 해왔다.
“그대는 혹 무당파에 올 생각이 있는가?”
“감히 청하지는 못했사오나, 손을 뻗어주신다면 어찌 거절을 하겠습니까.”
진무관주는 자그마치 무당의 서열 4위.
몸의 마기를 충분히 통제하고 태극의 기상까지 보인 설휘는, 그를 통해 무당파에 입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대의 무당파 신진고수 육성계획. 오십삼도사와 같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아. 그래서 이분이…… 혜원의 초원에서 활약했다는 초원무사(草原武士)십니까?”
“그렇소.”
“오!”
“아!”
진무관주의 소개에, 지켜보던 도사들이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당황한 듯 서로 보면서 속닥이는 이들도 있었다.
‘초원무사라고?’
설휘는 고개를 갸웃했다.
본인으로서는 처음 듣는 괴상한 별호였다.
-초원에서 홀로 나타나, 마인들을 단번에 제압했는 무사.
이는 구파일방 제자들의 입소문을 탄 것이고, 그로부터 고작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으니 본인으로서는 그런 이름이 붙은 줄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이 이 수업에 직접 참관하는 겁니까?”
명숙은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는 나름 자신의 수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이였다. 그러니 특별한 조항으로 무당으로 입문한 이가 과연 이곳에 올 자격이 있냐고 딱딱하게 물었다.
“그렇소. 결격 사항이 없다는 걸 내가 이미 꼼꼼히 점검했고, 장로들께서도 혼자 수련하여 이 정도 성취라면 그 앞날이 대단히 기대된다 하셨소.”
“……딱히 사부가 안 계시다는 말이군요. 실력이 되지 않으면 수업에 참여할 수 없다는 걸 진무관주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명숙은 오히려 불쾌하다는 투였다.
전적으로 감독관이자 책임관인 그의 허락도 맡지 않고 밀어붙였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자 진무관주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명숙 도장. 나도 원칙은 분명히 알고 있소. 허나 그렇기에 더더욱 부탁하는 거요. 그대도 혜윤 선사가 무당에서 어떤 입장이었는지 아시지 않소?”
“으음.”
”인품도 천품도 모두 고운 분이셨으나, 본인의 무재가 부족함을 항시 안타까워하시던 분. 그러다가 청출어람 청어람이라. 부족하나마 그분의 진전을 이은 아이가 이렇게 운명에 이끌렸소.”
스윽.
진무관주는 말을 하며 설휘를 가리켰다.
“그러니 부디 시험할 기회만이라도 주시길 바라오. 그 후의 일은 내 아무것도 묻지 않겠으니.”
“끄응…….”
진무관주가 이렇게까지 나오자, 명숙도 더는 거절하기 힘들었다.
“확실히 해 둡시다. 나중에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쫓아낼 수 있습니다?”
“어찌 말리겠소. 그럼 받아주어 고맙소.”
진무각주는 이로서 마음에 진 빚을 더는 것이었다.
“좋습니다. 안으로 들이십시오.”
“앞으로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명숙 도장의 허락이 떨어졌고, 설휘는 예를 표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신을 벗고 도관 안으로 들어섰다. 계획했던 삶의 첫 마침표. 여기까지는 성공적이었다.
주변의 시선은 한동안 설휘에게로 쏟아졌다.
한동안 잠잠하던 강호에 초원무사로 이름을 올린 인물.
소문은 달리는 말보다 빠르다 하던가, 여기 있는 자들 중 설휘의 존재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반갑네, 신참 도우.”
설휘가 앉은 자리 옆에 있던 도사가 인사를 했다. 설휘도 가볍게 인사를 받았고, 이내 명숙이 물었다.
“도명은 뭘로 받았는가?”
“……작고하신 선사께서는, 혹여 무당에 들게 되면 진휘라 말하라 하셨습니다.”
“진휘 도인…….”
명숙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마침 내가 도사들에게 질문을 하고 있던 참인데, 너도 한번 들어보겠느냐?”
“예.”
바로 하대를 하며 명숙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태극권으로 활용하는 기氣)와 선도의 기공에 쓰이는 기(氣)는 무엇이 다른가? 또한 어떻게 다른가라고.
당연하게도 이는 설휘가 알겠거니 하여 물어본 게 아니다. 오히려 골탕을 먹일 의도였다.
이는 태극권을 연마해본 게 아닌, 수많은 선도에 대한 수업을 들은 자만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슬쩍 고개를 돌아본 설휘.
주변의 도사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설휘는 대충 명숙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태극권으로 활용하는 기라는 것은 선천의 기운을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연의 기로 말할 수 있으며 이것을 받아들이니 낭비가 없습니다. 정기신이 자유롭게 움직이니, 깨달음에 따라 방대한 힘을 이용할 수 있게 되지요.”
설휘는 잠시 한숨을 쉬고, 거듭 말을 이었다.
“반면에 선도의 기공에 쓰이는 기는, 마치 건축의 기초 공사와 같습니다. 바닥부터 단단히 지어서 차곡차곡 위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정기신이 자유롭지 않고, 단계적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기의 흐름도 거기에 맞춰야 합니다.”
“…….”
잠깐의 침묵이 일었다.
태극권이야 여기 있는 도사, 도인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선도의 기는 뜻밖이었다.
너무도 일목요원하고 쉬워서, 뭔가 이상한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의 대답이었으니까.
그때, 명숙이 또다시 질문했다.
“요약하면 태극은 정기신의 합일. 꾸준한 수련을 통한 한순간의 깨달음이고, 선도 수련은 단전으로부터 차근차근 올라가는 집짓기라는 뜻이냐?”
“그렇습니다.”
“좋은 견해다. 그럼 둘 중에서, 우린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이냐?”
“태극을 중심으로 두되, 필요에 따라 선도의 수련도 병행하면 됩니다. 어차피 넓은 의미로서는 정기신을 움직이는 것이라…… 화경에 올라 내려다보면 둘의 다름이 크게 없습니다.”
“허, 화경……?”
무인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자, 명숙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무당이라면 당연히 화경에 오른다는 말투도 그렇지만, 차이가 없다는 의미까지.
일개 도사로서는 감히 흉내 내기 힘든 발언이다.
“으음…….”
그의 난감한 표정에도, 동년배들의 당황에도 설휘는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사실 질문의 답을 그들이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대체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보다 설휘는 이 반에 모인 도사, 도인들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청성파 장문인 때 해 본 조사에 의하면…….
여기 있는 도사들은 대부분은 죽는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대체 무슨 연유로 그런 끔찍한 사건을 겪었는지.
이제부터 천천히 알아봐야 했다.
‘어쩌면 무당파 장문인 혜우 선인의 삐뚤어짐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니까.’
무당에서의 삶은 배움이 아닌, 배후의 실체부터 푸는 게 우선이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