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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뮬레이션-368화 (347/379)

368화. 주동자 (1)

설휘가 장문인으로 있던 시절.

그는 청성파의 입지를 이용하여 무당파의 여러 가지 사정을 조사했다.

그중에 특히 그의 이목을 크게 끌었던 것은 바로 오십삼도인 사건.

신진고수들.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유망한 도사, 도인들이 집단으로 실종되어 버린 일이었다.

워낙에 소문이 크게 퍼진 일이라 청성 외에 다른 문파에서도 관심을 두기도 했고, 알아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무당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청성 장문인 시절, 어렵게 만날 수 있었던 진구도 동량들의 죽음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무당파는 그 이후로 강호 활동에 대해서 극히 폐쇄적으로 굴기 시작했다.

‘혜우 선인이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게 된 계기는 이때부터였을지 모르지.’

여기서 설휘는 몇 가지 이유로 추정될 만한 것을 떠올렸다.

우선은 건강에 대한 평소의 인식. 중원인들이 그런 부분에서 조금 소홀하다는 것.

잘 씻지 않고, 잘 갈아입지 않는다.

특히 젊은 남자들이 많이 모이는 군부대 같은 곳은 파견 나갔다가 물갈이, 흔히 풍토병으로 부르는 괴질로 수십 명이 전멸하는 예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보급이 열악한 몇몇 부대에서나 있을 만한 일.

강호의 다른 문파도 아니고, 무당이 가려 뽑은 인재들이 그렇게 떼죽음을 당한다? 그건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누가 음식에 살포하여 집단이 전부 독살당했다는 게 오히려 가능성이 있지.’

둘째는 바로 대규모 독살.

하지만 여기서 드는 의문점은, 무당파가 이 사건을 더는 입에 담지 않고 은폐시켰다는 것이다.

대체 왜일까?

혈육이나 다름없는 제자들. 어린 무당의 도인들이 수십이 떼죽임당했는데, 이걸 공론화하지 않고 쉬쉬하며 묻어버리다니?

설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이 사건에 깊숙이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무당의 뛰어난 고수들을 만나, 그들의 생각과 경험을 듣고 더 높은 경지에 오르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일단 사건을 알게 된 후, 도무지 보고 쉽게 넘어갈 수 없게 하는 것이 있었다.

‘절대자. 마신.’

강호에서 탈마-현경급의 고수가 나오기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문파가 어디일까?

당연히 유서 깊은 구파일방. 그중에서도 특히 무당과 소림이다.

만에 하나, 오십삼도인 사건이 놈의 수작이라면.

정파의 태두인 무당파에서 현경에 오를 대단한 무인이 나타났고, 그래서 그 단서를 없애버리고 관련자들을 죽인 것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나뭇잎을 숨기려면 숲에 숨기는 것이 제일이니까.’

누군가 하나를 콕 집는 것이 아니라,

한 대를 이어갈 도인들을 뭉텅이로 죽이는 것. 그리고 그건 어쩌면 무당파에 대한 경고일 수도 있었다.

감히 이 이상 넘어서지 말라는 의미.

설휘는 이 모든 것이 그저 추측이고, 자신만의 편집증적인 망상임을 알고 있었다.

허나 분명한 것은.

무당파가 그 일 이후로 봉문에 가깝게 스스로 폐쇄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건 지금의 젊은 도인들을 키우는 활기와는 전혀 방향이 다른 쪽이었다.

‘결국은 직접 알아볼 수밖에 없어. 내부에서부터.’

전생에 청성파 장문의 지위를 통해서도 알 수 없었던 비밀.

그러니 그가 직접 무당에 뛰어들게 된 것이기도 했다.

“다들 집중! 집중해라!”

한동안 글공부를 시킨 후 다시 시작된 체력단련.

이번 시간은 무예의 가장 기초며 기본이 되는 하체. 그를 키우기 위한 마보(馬步) 자세였다.

“끄응.”

“흡.”

흔히 말을 타는 자세라 하여 마보라 불리는 자세.

무공을 익힌 이들이라면 빼놓지 않는 훈련이지만, 아무리 단련해도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는 동작이다.

나름 신체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청년도, 마보로 일각 정도를 버티면 이마에 땀이 흥건하게 배고 다리가 제멋대로 후들거린다.

이 각이 지나면 서서히 온몸을 떨면서 앓는 소리를 흘리는 이가 사분지 일을 넘어선다.

이 정도만 해도 끝나고 나면 허벅지고 종아리고 알이 배어 근육통으로 하루를 꼬박 고생한다.

그러니 보통은 거기서 멈추는 게 일반적이건만, 오늘 수업을 맡은 훈육 담당관은 단단히 작심하고 온 모양이었다.

“엄살 피우지 마라! 그간 감독관 눈을 피해 요령 피웠던 녀석들을 이참에 추려낼 예정이니까. 혹여 도중에 포기하는 녀석들은 낙제점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그 말에 다들 사색이 된 얼굴이었다.

낙제는 곧 추방의 다른 말이고, 그건 더 이상 이 수업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

무당의 새 동량으로서 자랑과 기대가 한 몸에 서렸던 이들에게, 그건 죽어도 못 할 일이었다.

으으윽. 으아악.

“다음은, 독립보(獨立步) 자세.”

막 이 각이 지났을 때, 그는 또 다른 자세를 요구했다.

독립보. 한 발을 들어 올리며, 무릎을 수평으로 유지해야 하는 자세. 몸은 바르게 서서 곧게 유지해야 하고 머리는 좌우로 움직이면 안 된다.

가뜩이나 마보 자세로 혹사된 하체에, 전보다 몇 배는 더 고통스러운 부하가 주어졌다.

“으으윽.”

“그만…….”

“아.”

청년들의 신음이 이전보다 몇 배는 더 커졌다. 이제는 누구라 할 것이 없이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흐음.’

이번 수업에서 감독관 역할을 맡게 된 명감 도장.

그는 수업에 참여하는 어린 도사들을 한 명씩 눈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오던 서류를 들고 뭔가를 기록하는 이가 있었는데, 바로 보조 훈육관이었다.

명숙이 데리고 있던 다섯의 훈육관이 바로 이들이었다. 감독관은 수업에 따라 바뀌지만, 이들은 계속 업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녀석인가…….’

연무장을 이리저리 돌던 그의 눈에, 한 젊은이가 담겼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 반듯한 눈빛. 이번에 들어온 진휘라는 청년이었다.

‘초원무사라.’

그 역시 들은 적이 있었다. 당시 갑작스레 닥쳐온 마인들을 상대로, 장로급 고수 서너 명을 한순간에 제압하고 진무각주마저 놀라게 했다던가.

솔직히 믿기 힘든 이야기다. 장로급이라면, 자신과 같은 수준이거나 그에 준하는 실력자라는 건데, 이 나이에 그런 고수가 있었던가?

그리고 그 정도면 후기지수가 아니라, 왕성하게 활동하는 원로 수준에 가깝다는 말이 된다.

당연히, 호승심과 궁금함. 그리고 기대가 일어났다.

‘이제 실력을 한번 볼까?’

사실, 여기 모인 모든 이들에게 기초적인 수련을 시키는 것은 바로 이 청년 때문이었다.

같은 동년배끼리 하는 수련 중에서. 고통을 함께 분담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기회를 주어, 본인의 실력을 직접 보고 싶어 했던 것이다.

“자. 모두 수련하고 있는 자세에서 감독관을 본다.”

명감은 청년 도인들에게 소리치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모두가 보이는 지점에서 멈췄다.

“지금부터 본 책임관은 너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할까 한다. 내 옆에 훈육관 한 명이 보일 것이다.”

그 말에 아이들은 웅성거렸다.

수련을 갑자기 멈추고 뭘 하려는가 싶어서.

“연배로는 너희들의 사숙이지? 그를 상대로 한 명씩 나와 태극권을 시연한다. 누구라도, 어떤 거라도 좋다. 훈육관을 만족시키면, 여기서 수업을 끝내주마.”

“오오오!”

“와!”

도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독립보 자세를 반 시진 이상 한다는 건 지옥과도 같았다. 그런 데다 이각 뒤 취할 자세는 그보다 더 힘든 동작일 것이 뻔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현 도사들 중 종합평가 1위 진구가 나섰다.

대부분의 도인들이 환호했고, 진숙 역시 이번엔 불평하지 않았다.

그도 최대한 빨리 이 불편한 자세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역력했으니까.

“자. 그럼 훈육관 앞에서 태극권을 시연해 보거라.”

훈육관들은 다들 명자배. 이곳에서 배움을 얻는 진자배 청년들에게는 사숙이다.

하나하나가 태극권에 대해서는 십수 년을 이미 익힌 이들. 그들의 눈에 들려면 훌륭한 실력을 보여야 했다.

“시작하겠습니다.”

진구가 빠르게 예를 표하며, 곧장 자세를 잡았다.

처억.

궁보충권(弓步冲拳).

몸의 중심을 뒤로 하고, 왼쪽 다리는 좌궁보(왼쪽 무릎을 굽힌다)를 이룬 뒤,

진보반란추(進步搬攔捶).

처억.

전진(進步)하면서 상대의 공격을 원을 그리며(搬) 손을 세워 적의 공격을 막고(攔), 주먹으로 내지르는(捶) 동작이 펼쳐졌다.

우우우웅.

둔탁한 진동이 바닥을 울릴 정도로 퍼져 나갔다.

진구가 한 것은 태극권의 기본 동작 중 가장 화려하면서도 독립적이라는 동작.

지켜보던 청년들은 죄다 탄성을 내뱉었을 만큼 흠잡을 때 없는 동작. 그리고 호흡의 분배였다.

“부족해.”

“예?”

그런데 훈육관은 따분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딴에는 최선의 한 수를 보였던 진구가 억울한 얼굴이 될 때.

“다음.”

책임관은 더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자리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청년들을 흘겨보았다.

“제가 하겠습니다!”

진숙. 종합평가 2위인 그가 나섰다.

눈으로 잠시 불만 가득한 진구를 보며 피식 웃고는, 바로 그가 있던 자리에 섰다.

“준비됐나?”

진숙의 눈엔 동년배 도사들의 간곡한 눈빛이 보였다.

기회였다. 모두에게 신임받을 기회. 그래서 그는 말했다.

“태극권 시연만 하면 괜찮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 말에 명감 도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럼 제 태극권 실력을 평가할 훈육관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호오?”

발상이 꽤나 신선하다.

강호에서 가르침을 준다. 받는다는 이야기는, 한 번 손을 섞어 본다는 의미.

사숙 격인 이와 대무라? 단순한 시연회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도 볼만한 듯했다.

아무리 도인이라 한들, 아직 청년인 그들에게 혈기와 호승심은 빼놓을 수 없는 것.

“훈육관. 혹시…….”

“괜찮습니다. 저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더니, 훈육관은 단숨에 승낙했다. 그 역시 아직 혈기가 한창인 모양이었다.

“으으윽.”

“제발 좀 빨리…….”

신음하는 청년들의 아우성 속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꿀꺽.

진숙은 눈앞의 훈육관이 제압하기 힘든 상대란 걸 알고 있었다. 다만, 방심을 통한 약간의 충격 정도는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방심은 어떻게 만들까?

바로 접근전이다. 단순한 접근이 아닌 밀착에 의한 방식.

‘바로 이런 식이지.’

파앗.

기수식조차 취하지 않고 순식간에 달려들자, 훈육관은 일순 당황했다.

어찌 보면 방어를 도외시한 공격처럼 보였던 것. 그러자 앞서 나왔던, 자연스럽게 방어하며 틈을 보는 태극권의 진보반란추를 펼쳤고.

탁! 투욱. 팍!

팔꿈치를 막고 곧장 공격했지만, 단단히 작정한 진숙은 그걸 역으로 받아넘기려 했다.

‘이 녀석이.’

훈육관은 코웃음을 쳤다.

그는 몸이 맞닿은 상태에서 바로 우찰각(右擦脚). 두 손으로 막은 뒤, 곧장 다리를 뻗어 상대의 얼굴을 공격했지만,

휘릭.

곧 진숙은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두 손을 휘두르며 자세를 잡았다.

“해볼 만…….”

“여기까지.”

“……예?”

진숙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기습을 통한 밀착. 그로 인한 체중 흔들기. 이제 본격적으로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그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었다.

“먼저, 네 손목을 보거라.”

당연히 불만으로 입이 튀어나왔지만, 명감이 지적했다. 진숙이 그에 손을 들어 올리자, 뒤늦게 찌릿한 통증이 왼 손목에서 울려왔다.

“대체 어느 틈에…….”

“진보란반추로 방어할 때.”

진숙의 중얼거림에 훈육관이 대답했다.

“방어하면서 공격을 한 것이란 말입니까?”

“발경(發勁)을 실었지. 내가 힘 조절을 하지 않았다면 너의 팔은 부러졌을 것이다.”

“아…….”

진숙의 표정은 굳어졌다.

잠깐 잊고 있었다.

태극권뿐만 아니라 내가공부의 고수. 눈앞에 있는 이가 누구인지를.

“졌습니다.”

진숙의 예의를 차리자, 도사들의 입에서 거품이 묻어 나왔다.

“아아아.”

“포기하지 말라고!”

2전 2패. 그럼에도 불평이 계속되자, 기다렸단 듯 명감이 나섰다.

“이번엔 하세독립(下勢獨立) 자세를 취한다.”

“아!”

“으아!”

사방에 도사들의 신음 소리가 퍼졌다.

독립보 자세에서 하세. 자세를 낮춰 무릎을 들라는 얘기가 아닌가.

이제는 진땀은 기본이다. 아예 눈이 돌아갈 정도로 끙끙대는 이들이 생겨났다.

“흠.”

터벅. 터벅.

그런 와중에 명감은 청년 도사들의 자세를 점검하기 위해 앞으로 나왔고, 이런저런 아이들을 둘러보다가, 한 지점에 섰다.

초원무사 진휘. 이달 초에 입문한 도인의 앞이었다.

“너는 어째 나올 생각이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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