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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뮬레이션-370화 (349/379)

370화. 주동자 (3)

“흘흘흘……. 사람 오가는 곳에 다치는 사람이 없을 수가 없지. 발병 난 사람 고치려면, 그가 어디서 왔는지 묻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무당산은 높은 산이다.

길이 닦여 있는 곳보다 닦여 있지 않은 험한 곳이 훨씬 많았고, 지대가 높아 오르는 사람들이 지쳐 기진하기도 한다.

산에 오르다 미끄러져 다친 이들. 혹은 갑자기 높은 곳에 오르는 바람에 훗날 고산병이라 부르는 이상한 피로 등, 산에 익숙하지 않으면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 잔병들이 많았던 것이다.

“찾아오는 사람이 그렇게 많습니까?”

“이놈아. 예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게야? 무당이야, 무당. 한 해에 찾는 이들이 만은 안 되어도 천은 너끈히 넘어.”

흔히 구파일방, 정도 문파의 대부분은 절 아니면 도관을 끼고 있다. 개방이라는 집도 절도 없는 걸개들이 만든 방파를 제외하면, 전부라고 봐도 된다.

높은 산에 자리 잡은 신령한 사찰. 그런 명승고적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든다.

뭔가 거래할 거리를 찾는 상인,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강호인.

인사를 하러 온 지역유지, 관리 등. 하다못해 좋은 기운을 받기 바라는 향화객이나,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서생들까지.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이 향을 피우며 가져오는 작은 성의가 무당파 한 해 수입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무당은 그런 이들을 빠짐없이 확인하고, 따로 방문객으로 기록해 두었다.

강호의 일이든 민간의 일이든, 은원 관계를 확실히 정리하는 것은 대문파의 기본이기에.

그리고 그 기록에 대한 정보는 의원에게도 심심치 않게 공유되곤 했다.

“다만, 난 듣기만 했지. 따로 명부 같은 건 본 적이 없어.”

그런 환자들은 당연히 무당에 상주하는 의원이 맡아야 했고, 그게 바로 혜공의 역할이었다.

의원으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듣게 된 인물들.

중요 인사들이 방문하는 날에는, 만약을 대비해 미리 그에게 일러두기도 했다고.

“하면, 무당파에서 작성해둔 기록은 없는 겁니까?”

“있기야 하겠지.”

“그럼 어디로 가야 그것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알려주면, 찾아올 수는 있고?”

짐짓 포기하라는 말로 은연중에 돌리는 그의 태도에, 설휘는 더욱 확신했다.

“걸려봤자 태형(笞刑) 이상의 형벌을 내리기야 하겠습니까?”

그에 의원이란 노인은 재밌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자소궁의 지하 내부로 들어가면 무당의 방문 기록들이 있다고 알고 있다. 다만 쉽지 않을 게다. 거기엔 묵묵무문(嘿嘿無聞).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고수들이 있어.”

“그저 방문 기록인데 말입니까? 무당의 비급이나, 보물이 있는 곳도 아닌데.”

빛을 보지 않고 살아가는, 무당에 종속된 이들이 있다.

하지만 고장 방문객의 명부 같은 것에, 그런 이들을 두다니?

“거기가 무당의 비급 장소다. 자소궁 지하에 있는 걸 보면 모르겠느냐.”

“아!”

설휘는 그제야 깨달았다.

무당의 산속에 지은 3개의 거대 전각.

무당산의 꼭대기, 산봉우리에 있는 금전(금으로 만들었다고 붙은 이름). 천주봉 정상부에 아슬아슬하게 터를 잡은 태화궁. 그리고 그 아래 있는 것이 자소궁이다.

“그렇군요. 생각해 보니, 아무리 실력자라도 함부로 들어갈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 알겠느냐. 헛소리 말고 몸 치료에 전념하거라.”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가 떠난 자리에 앉아 있던 설휘. 그의 표정에는 알 수 없는 미소만 가득했다.

***

시간이 흘러 밤이 깊었다.

진무관주를 비롯한 몇 명의 장로들이 다녀간 이후로 방 안은 조용했다.

침상에 누워있던 설휘는 조용히 눈을 감고 한참을 기다리고 있다가, 빠르게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이미 몸의 회복은 끝난 이후였다.

한때 초절정에 도달했던 설휘는 환골탈태를 통한 또 한 번의 경지 상승을 이루었다.

물론 진무관주와 만날 당시에는 초절정 수준에 머물렀다. 그래야 처음 계획했던 오십삼도인의 수련에도 참여할 수 있을 테니까.

또한, 혹여나 있을 무당의 절대고수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도 이 수준을 유지하는 게 맞았다.

화경에 오른 이는, 분명 화경에 오른 이를 알아볼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의원 혜공의 말대로라면 자소궁, 무당의 비급이 있는 장소로 가기 위해선 분명 대단한 고수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힘을 숨기면서 상대하기엔 버거운. 매우 위험한 시도가 될 것이다.

어쨌든 여기까지는 그래도, 설휘가 사전에 세웠던 계획대로였다.

‘저긴가?’

구름이 흘러가는 무당의 천주봉.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다 보면, 대궐처럼 커다란 전각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무당의 자소궁이며, 손에 손잡듯 산줄기를 따라 자리 잡은 크고 작은 대궐의 이어짐이 날 밝을 때 보면 또 다른 멋을 보이는 장관.

자소궁은 자그마치 방이 이천 개나 있는 사원이다.

그리고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너른 평지가 부족했기에, 봉우리 곳곳에 수많은 문(門)과 정(亭), 대(臺) 등을 짓고 수백 개의 계단을 이어놓았다.

사악.

설휘는 빠르게 벽을 넘어서, 자소궁의 계단을 이동했다. 워낙에 은밀한 경신법이라, 보초를 서는 이도 그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투웅.

그렇게 석대 위에 건축된 자소궁의 대전(大殿)이 눈에 들어오자, 설휘는 급히 동작을 멈췄다.

“……!”

사박. 자박.

푸르고 녹색을 띤 도복. 두 명의 도인이 눈을 부릅뜬 채,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가깝다. 제압해야겠어.’

파앗.

설휘는 계단을 밟으며 도약했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형체를 뒤늦게 발견한 한 이가 공중을 가리켰고.

“어?”

“저거…….”

뒤늦게 다른 도인도 발견했지만 이미 늦었다.

투툭. 툭.

가벼운 소리. 간단히 턱을 후려갈기자, 그들은 자연스럽게 바닥에 널브러졌고.

설휘는 빠르게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내부는 확실히 넓었다.

두 개의 처마를 가진 목조 건물답게, 앞뒤 좌우에 다섯 개의 방이 들어차 있었다.

바닥은 잿빛으로 된 벽돌이었고, 정면의 벽감은 푸른색 계열. 저 뒤로는 옥황상제로 여겨지는 동상이 보였다.

그리고 몇몇의 도사가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지하가 어느 쪽이지?’

설휘는 기둥에 몸을 감춘 채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복잡하다. 도가 특유의 팔괘에 맞춘 설계인가? 눈대중으로는 찾기 힘듦을 느끼자, 그는 손끝에 기류를 흘려보냈다.

휘르륵.

진법을 찾아내는 방법으로, 마교에서 배운 수법 중 하나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나무판으로 조각된 곳이 나타났고.

‘음.’

사람들 눈을 피해 은밀하게 접근한 설휘는, 그걸 손끝으로 들어 보았다.

끼이이익.

벽과 나무판이 긁히는 소리에, 다른 이들이 순간 동작을 멈췄다. 하지만 그들은 설휘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

“음……. 뭐야?”

“아무것도 없네. 바람이었나?”

잠깐의 틈만 있어도,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잠형투체술. 그걸 펼친 설휘는 이미 안으로 들어가 있었기에.

턱. 턱. 턱. 턱. 턱.

짙은 어둠 속에서 계단을 내려갔다. 앞을 분간하기 힘들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와 길이 평평해지자, 그제야 설휘는 두 손을 들어 보였다.

화르르륵.

극양의 힘으로 불꽃을 일으킨 설휘. 그는 벽에 걸린 등잔을 발견했다. 싸리가 엮인 심지에 기름도 약간 담겨 있다.

스르륵.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만지자 순식간에 불이 붙었고, 등잔의 빛에 동혈 내부가 환하게 드러났다.

“이제 잘 보이는군.”

설휘는 길이 나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어둠이 찾아왔을 때는 또다시 벽에 불을 붙였고, 그렇게 가던 중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철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허, 뭐 이런 게…….”

문을 살펴본 설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을 내뱉었다.

딱 봐도 높이가 삼 장에 육박하는 거대한 철문이, 위엄을 자랑하며 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 두께는 무려 반 자나 되었고. 재질도 그냥 철문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쏘아내기 용이한 구조인 듯,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이거…… 위험해.’

잠깐 잠영투체술로 들어가려고 했던 설휘는, 곧 생각을 바꿔 먹었다.

저 문 너머에서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살기. 그게 보통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화경. 그것도 두 명이다.’

뜻밖의 난감한 상황이었다.

어떤 존재인지 모르나, 문 앞에 서 있는 자신에게 정제된 살기를 보내고 있는 인물들.

내공이 갈무리된 수준을 보아하니, 스스로 기운의 수발이 자연스럽게 가능한 것이 이미 초절정은 한참 전에 넘은 고수들이었다.

다만 그 느낌이 꺼림칙했다. 은거기인이라 하기에도 기괴한 것이, 무당파의 사람으로는 절대 느껴지지 않는 음침함이 있었다.

‘이거, 지금 수준으로는 불가능해.’

막 화경에 도달해 있는 설휘는 직감했다.

이 문을 강기로 잘라내는 순간, 놈들이 덮칠 것이라고.

유독 기감에 예민해진 자신이 아니었다면 확인하지 못했을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은폐를 하고 있는 놈들이다.

아마도 살수? 그렇다면 놈들이 불시에 해 올 습격은 매우 강력할 터.

스윽. 스으윽.

몇 발짝 물러선 설휘는 가부좌를 틀었다.

기색으로 보아, 어차피 놈들은 철문을 넘어오지 않을 테니. 여기서 승부를 낼 준비를 해야 했다.

고오오오오-

의상점(意想點).

보통의 무인은 중심이 되는 하단전에 의상점을 두지만, 설휘는 상단전에 생성했다.

단번에 현 경지를 화경의 극으로 올리는, 오래전에 설휘가 고안해낸 방식이었다.

근원은 청성의 청풍.

사방에 있던 바람의 기운이 설휘를 향해 몰려들었다.

“…….”

“…….”

철문 뒤에 있던 놈들이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듯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하지는 않았다.

약간의 망설임. 그 틈을 타서 전력으로 행공을 한 설휘의 주변으로 거대한 바람이 파고들었고.

스윽.

얼마 있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기류가 몸속에 흐르고 있었다.

“이제 시작해 볼까?”

스윽.

이 안으로 오면서 자소궁의 도인에게서 빼앗은 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청풍의 기류를 가득 담기 시작했다.

그르륵. 그륵.

기류가 팽배해지며, 동혈 안이 거북할 정도로 층층이 바람의 결이 모여지던 그때.

솨아아악.

달려듦과 함께 휘두른 설휘의 검 끝에서 광채가 일어나 굳게 닫힌 철문 중앙을 날려버리고, 그 옆은 종이처럼 잘라버렸다.

그때였다.

패애애액---!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기류들.

하나는 핏빛을 연상시키는 적색이었고, 또 하나는 꿉꿉하고 역겨운 기류, 독공(毒功)이었다.

솨아아아-

나름 회심의 일격이었을 터.

허나, 그들은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다. 거짓말처럼 눈앞의 설휘는 환영처럼 사라졌고, 그들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꺼허!”

화경의 고수답게 놈들은 연거푸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시도했지만, 그 역시 환영.

그리고 세 번째로 이어 나타난 설휘. 위치는 그들의 옆이었다.

“여기가 진짜다.”

청성의 초상승 경신술인 환환미종보를 선보이며 그는 사방으로 검풍을 발현시켰다.

쿠쿠쿠쿵!

벽에 칼자국을 내는 예리한 검풍이 놈들에게로 날아갔지만, 그다지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다.

공간이 너무 좁아 위력이 다 실리지 않은 탓이다.

그럼에도 형체 없이 숨어 있던 놈들의 발을 묶었고.

눈만 내놓고 완벽하게 천으로 감싼 그들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거…….”

설휘는 황당했다.

한 명은 피를 머금은 사파의 무공을 쓰는 자, 또 하나는 악랄한 독공을 쓰는 자.

무당의 금지를 지키는 호법이라고는 절대 여길 수 없는 이들이었다. 당장 모습부터 흉물스러웠다.

하나는 꼽추처럼 굽은 자세로 두 손과 두 발을 땅에 대고 있었고, 또 하나는 삐쩍 마른 몸으로 벽에 붙은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놈…… 누구냐!”

“무당파에 들어온 이가 어찌 청성의 무공을 쓰는 게야!”

둘의 노기등등한 목소리에, 설휘는 그들을 보며 무표정하게 말을 이었다.

“그건 너희부터 밝히는 게 맞지. 사파 놈들이 왜 무당파의 금지에 들어와 있는지 말이야.”

그리고 확신했다.

이들이 아마 절대자가 심어둔 안배. 오십삼인의 무당 도인들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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