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화. 절대자의 의도 (2)
설휘의 말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두 화경 고수는 처음에 사파의 무공을 펼쳤다. 그러다 싸움 중에 무당파 본류의 무공으로 변환했다.
설휘는 이것이 심상치 않다고 여겼고.
좀 더 자세히, 그들이 쓰는 힘의 근원을 알기 위해 극마로 변신했다.
그리고 알아냈다.
절대자의 손이 거쳐 갔다는 것을.
사기? 마기? 변질된 정종의 기? 모두 아니었다.
저들이 품고 있는 건, 애초에 자연의 기 따위가 아니었다.
그래서 정확히 답을 내릴 수 있었다.
현세에 존재하지 않는, 제3의 기운이라는 걸.
‘큰일이 벌어지고 있었구나.’
과거 설휘가 전생에서 보았던, 절대반열에 오른 이들이 펼쳤던 힘.
마교 교주 천마. 그의 제자들이 갖은 노력 끝에 일구어낸 힘과는 성질이 다르다.
선택받은 이들만이 펼쳐냈던 힘.
더욱이 곤마가 죽기 전, 마지막.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껴두다 사용했던 힘 또한 제3의 힘이 아니던가.
그만큼 절대적인 힘을 저들이 가지고 있었다.
‘지금 내 능력으로도 쉽지 않다.’
본래 화경에 오른 고수들에게, 제3의 기운은 어떤 작용을 할지 몰랐다.
확실한 건 최소 극마 이상, 또는 초월하는 힘을 발휘하게 해주리라는 것.
놈들은 마치 현경에 도달한 기분일 터.
‘지금 당장은 탈마로 변하긴 힘든 상황이니.’
그게 설휘의 고심이었다.
극마와 달리 탈마는 신체적인 조건 역시 충족해야 한다. 적어도 일각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지금 당장 쓰긴 어려웠다.
하여 설휘는 우선 녀석들의 기운을 냉철히 분석해 보았다.
‘한 명은 피의 무공, 파멸의 무공이라는 혈마공(血魔功)보다 한 차원 높은 힘을 사용할 것이고. 또 하나는 독의 무공, 현 최고의 독공이라 알려진 독살공(毒殺功)보다 치명적이고 섬뜩할 것이다.’
그렇게 설휘가 생각하느라 한동안 입을 닫자, 그들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놈이라니, 아까부터 누굴 말하는 것이냐?”
“흘. 노골적으로 마기를 흘리는 걸 보니 마교 쪽 사람이구나. 한데 어찌 청성의 무공을 쓴 거지?”
그들 역시 혼란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꼽추는 짜증을 냈고, 말라깽이 노인은 설휘의 변화를 궁금해했다.
잠시 눈을 좁히던 설휘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렇게 된 거, 서로 궁금증을 풀어주기로 하는 게 어떨까?”
“하! 뭐 하러?!”
꼽추는 비웃고 있었다. 괜히 상대의 계획에 엮이는 상황을 싫어하는 것이었다.
반면 옆에 있는 말라깽이 노인의 태도는 달랐다.
“거슬리지만 흥미로운 녀석이기도 하군. 좋다. 내 친히 자비를 베풀겠다. 네가 누군지 순순히 불면, 고통스럽게 죽이지는 않으마.”
“…….”
저게 나름의 사정을 둔 발언인가? 하며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대답은 해야 했다.
“정말인가? 좋아, 솔직히 답하지. 다만, 그전에 나도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나?”
갑작스런 변화에 그들은 서로 눈을 한 번 맞췄다.
굳이 말할 필요가 있는지를.그런데 넘치는 자신감 때문일까. 그들은 쉽게 동의를 해버렸다.
절대적 힘을 가졌기에, 어차피 눈앞의 상대는 죽이면 그만인 인물 정도로 여긴 것일 터.
“말해라.”
설휘는 딱 하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
“너희와 함께하는 무당파 고수가 더 있는가?”
“…….”
침묵이다. 그들을 보던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대답이 쉽게는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두 명이다.”
“……?”
정말로 날아왔다. 상세한 답변으로
“한 명은 혜자 진인. 자소궁을 관리하는 분이지.”
“……또 한 명은?”
급히 묻자, 이번엔 조금 머뭇거리는 듯 보였다. 그러다 이내 말라깽이 노인이 코웃음으로 대답해 주었다.
“진무각주.”
“뭐?”
“진무각주라고.”
설휘는 듣고서도 쉽게 믿기지가 않았다.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인물이 진무각주가 아닌가.
무당파를 대표하는 엄청난 인물 두 명이 엮여 있었단 말인가.
하긴 이 정도쯤 되는 일이니, 그런 혈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나름 듣고 보니 납득이 가는 것도 있었다.
“자, 이제 말해라. 네가 누군지.”
자연스럽게 화제가 전환되자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조사를 해보면 어느 정도 연루가 되었는지 나올 터.
“나는 몇 주 전에 무당에 입관한 자로, 강호에서는 초원무사로 물렸지. 본래 전생에선 청성에 몸을 던져 그곳의 장문인까지 했고.”
“……?”
“또 그전에는, 마교주를 죽이고 마신을 상대했던 놈이다. 어때? 과거가 화려하지?”
빠득.
“이 새끼가.”
딴에는 솔직히 말해주었건만, 그들은 눈빛이 독하게 변했다.
그럼에도 설휘는 담담히 대화를 이어갔다.
“어, 믿지 못할 테니 직접 부딪치는 게 빠를 거야. 적어도 그놈이 네놈들에게 전수한 제3의 힘은…….”
설휘의 손끝에서 희미하게 빙정이 모이고 있었다.
소신수마공.
시간의 멈춤까지 일어나는 절대기공의 힘이 모이고 있었던 것이다.
“몇 번 경험해 봤거든.”
놈들이 뛰어드는 순간, 자연스럽게 연기가 휩싸였다.
빙공의 궁극.
시간의 정지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
‘변수가 많다. 일격에 바로 없앤다.’
설휘는 단번에 모든 힘을 쓰려고 마음먹었다.
이미 예상외의 일에 너무 많이 엮였다.
저들을 생포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자칫 시간을 끌면 오히려 본인이 위험해진다는 걸 잘 알았다.
그런 게 제3의 힘이었다.
전생에서도 대부분 생소한 성격의 힘. 심지어 독공과 결합된 저 힘은 설휘도 처음 경험해 보지 않은가.
후욱!
그래서 그의 첫 타는 꼽추가 아닌, 말라깽이 노인에게로 향했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느릿하게 움직이는 설휘의 손.
빠지직!
그리고 그와 함께 시전된 뇌전.
과르르릉.
벼락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현상이다.
시간의 정지 속에서도 어마어마하게 빠른 전격이, 말라깽이 노인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즉각, 그의 목과 가슴 어림에서 뇌전이 그대로 폭발하듯 발출되었고.
쩌저저정!
말라깽이의 온몸에 뇌전이 흘렀을 때, 설휘는 상대를 바꿔 꼽추에게 절대극마공의 기운을 쏘아냈다.
쿠와아아앙! 구구구궁!
뇌전의 힘이 강한 힘을 생성하고, 다음으로 화기가 폭발하듯 일어났다.
자연에서도 벼락을 맞은 나무는 산산이 터지며 불길에 휩싸인다.
거대한 충격이 일자 동굴에 쩍쩍 금이 갔고, 천장의 일부는 그대로 내려앉으며 무거운 암반을 떨어뜨렸다.
“후!”
타닥!
설휘는 내려앉는 천장의 바위를 피해 뒤로 빠르게 이동했고, 그러다 안쪽에 있던 상당히 커다란 공간을 발견했다.
쿠쿠쿵!
그사이 동굴이 완벽하게 무너져 내렸다. 끔찍한 흙먼지를 뒤집어쓴 설휘는 거칠게 머리를 흔들어 털어냈다.
“어?”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자, 완전히 인공적인 손길로 만들어진 작은 석옥에 들어와 있었다.
“여긴, 이곳이 바로 무당비고…….”
석벽에는 도교의 신인 태상노군의 석상이 있었고, 그 옆으로 엄청난 높이의 책장에 서책이 가득 들어찬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압도적인 서책의 양과 책장의 크기는 첫눈에도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감상할 시간은 잠시뿐.
“이거…… 큰일 났는데.”
드드드등.
설휘는 상황이 심각해짐을 느꼈다.
저 너머 무너진 동혈 속에서 강력한 기류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놈들이 살아 있다는 신호가 아닌가.
스으으읍.
설휘는 검 끝에 힘을 모으는 대신에, 기류의 변화를 다시 시도했다.
자신의 기억상, 극마 단계로는 제3의 힘을 맞상대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저 힘을 흘리고, 오히려 역이용하는 게 맞았고. 그러려면 마도가 아닌 정도의 힘을 사용해야 했다.
솨아아아--
다시금 주변의 기류가 급변하는 가운데, 맑고 서늘한 기류가 희미하게 주변을 덮었다.
이제는 익숙한 청풍의 기운.
과드드득!
때마침 앞에 굳건히 막혔던 벽이 부서지며, 두 노인이 기괴한 표정으로 달려들었다.
“크르르르!”
두 노인은 역시나 제3의 기운을 발산했고, 그건 실로 두려울 정도의 파괴력을 품고 있었다.
촤라라라라락.
격자무늬 형태로 사방에 내리깔리는 핏빛 기운.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안개처럼 퍼져 나오는 독공.
‘핏빛에 스치면 그대로 잘려나가고, 안개에 닿으면 피부가 그대로 괴사할 터.’
한눈에 기운의 공능을 알아차린 설휘는 급히 자세를 고쳐잡았다.
후웅! 휘르르르!
바람이 일어났다. 시리고 서슬 퍼런 칼날에서 불어닥치는 듯한 강렬한 바람이 있었다.
스르르륵.
무럭무럭 사위를 감싸던 독 연기는 더 이상 접근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설휘의 검에서 일어난 바람에 의해 독기가 역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후우우웅.
심지어 그 바람은 격자형의 핏빛 섬광도 비스듬히 흘려내고 있었다. 그 현상을 보고 노인들은 경악했다.
“어떻게 태극의 정수를…….”
“마교 놈이…… 대체 어찌!”
청성의 청풍. 거기에 접목된 태극의 묘.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설휘는 엄연히 정파의 탈을 쓴 마교인이었다.
그런데 좀 전까지 악취처럼 느껴지던 마기가, 갑자기 청아한 정도의 기운으로 변해 자신들의 공격을 제압하니.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번엔 좀 다를 것이다.”
가능할 것 같다. 설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새 그의 검에서 뻗어나간 기류는 거대한 백강(白罡)으로 변하고 있었다.
“태극천루다!”
“어억!”
두 노인이 비명을 질렀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태극혜검의 절초. 그것이 눈앞의 설휘에게서 펼쳐지는 것이다.
모르는 이가 보았다면, 누가 무당파의 사람이고 누가 마교의 잡것인지 헷갈릴 지경.
“이것도 한번 막아보시지.”
설휘의 검이 내리그어지자, 사방을 얽매고 있던 상대의 기운이 순식간에 뚫렸다.
눈을 실명시킬 듯한 백강은, 주변을 찢다시피 하며 노인들을 향해 날아갔다.
쏴아아---악!
그리고 제3의 힘 중심으로 가자 잠깐은 흔들렸다.
모든 적대적인 기운을 봉쇄하기 벅찬 것일까.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백강은 모든 기운을 상쇄시키며 파동까지 생성했다.
그리고 놈들에게 그대로 일격을 먹였다.
쿠우우우…….
설휘가 쏘아낼 수 있는 최강의 무공.
허나, 그들은 자신만의 힘으로 버텨냈다.
설휘도 느끼고 있었다. 이번에 힘이 제대로 써지지 않은 것을.
오히려.
뚝뚝.
코끝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망할, 완벽하게 변환이 이뤄지지 않았구나.”
극마에서 다시 화경으로 변환될 때 기운이 모두 자리를 잡지 않은 탓인가.
그저 무공의 일부라면 상관없지만, 태극혜검처럼 정파의 정수를 사용하려다 보니 몸에 제법 타격이 들어온 듯 보였다.
여기까지만 해도 위태로운데.
“크으으으…….”
“이놈…… 이놈이……!”
설상가상 몸 상태가 온전치 않은 가운데.
노인들은 여전히 건재했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해진 듯 보였다.
드르륵. 우드드득.
제3의 힘. 표독스런 핏빛이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왔고, 괴이한 독공 역시 그러했으니까.
‘죽는 건가.’
쿨럭쿨럭.
짧은 시간에, 피를 너무 많이 쏟아낸 걸까.
눈앞이 흐려졌다.
시스템을 벗어난 상황에서 화경과 극마 간의 갑작스런 기류 변화는, 득보다 실이 훨씬 큰 듯했다.
저들의 힘은 분명 화경을 넘어서고 있다. 지금 자신으로선 제압할 수가 없었다.
그런 그의 눈앞에 흘러가는 기류.
피이이잉…….
보통은 청풍의 기운이 눈앞에 흘러가지만, 뭔가 거무튀튀했다. 어두운 것도 아니고 밝은 것도 아닌 잿빛에 가까운 기류.
“…….”
처음엔 정공과 마공이 섞여서 일어난, 단순한 부작용이라고 생각했다.
몸도 기혈이 역류하여 피를 쏟아내는 중이니까.
그러다가 그 기류가 어딘가 낯익은 느낌을 준다는 걸 알았을 때, 설휘는 지금 생각과는 뭔가 다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저건…….’
팍.
그건 마치 착각처럼, 감지하기 무섭게 찰나 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설휘는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 느꼈다.
살면서 딱 한 번밖에 본 적 없는.
하지만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광경.
“맙소사…….”
설휘의 눈이 부릅떠졌다. 잠깐 떠올랐다 사라진 그것은 제3의 기운이었다.
그리고 그건 제3의 기운 중, 가장 정점에 오른 자가 썼던 기운.
“곤마…….”
어둠과 빛. 그 이전의 혼돈의 기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