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화. 조사 (1)
짹짹.
이른 아침. 혜공 의원은 새의 지저귐을 들으며 약방문을 열었다.
간촐하게 지어진 의약당. 향내가 피어오르는 건물 내부에는 총 열두 개의 방이 있었다.
혜공은 의약당 안을 한 바퀴 빙 둘러본 뒤, 구석진 곳의 가림막을 스윽 치웠다.
그러고는 눈에 이채를 띠었다.
“호, 벌써 일어났느냐?”
“예. 의원님.”
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던 설휘. 그가 몸을 일으켜 예의를 차리려 하자 혜공은 손사래를 쳤다.
“인사는 됐다. 몸은 좀 어떠냐?”
“많이 좋아졌습니다.”
“고작 하루 만에?”
“예.”
“누워 보거라.”
혜공은 설휘를 침상에 눕히고는 빠르게 진맥했다.
“음.”
그러다 약간 의아한 표정을 보였고, 가슴 아래와 복부, 단전에 천천히 손을 대며 침묵하던 그는.
“너,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예? 무슨 일이라면…….”
“왜 이렇게 회복이 빠르냔 말이다. 혈맥에 역류를 일으키던 기운들이 사라지고, 단전도 이전처럼 멀쩡하게 돌아와 있다. 적게 잡아도 육 개월은 요양이 필요할 부상이었거늘.”
“아, 그게…….”
설휘는 당황해서 급히 시선을 내렸다.
생각해 보니, 지난밤에 큰 힘을 끌어내기 위해 급히 내상을 완치시켰다.
그건 설휘 자신이 이미 내가기공의 대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그를 단순한 신입 도인으로 알고 있는 혜공 입장에서는 낮도깨비라도 본 기분일 터였다. 크게 부상을 입어 장기간 요양이 필요했던 상처가, 다음 날 아침에 말끔히 나아 있는 모습이니.
‘어쩐다. 일부러 엄살을 피운 거라고 말해볼까?’
설휘가 이걸 어떻게 변명해야 좋을지 고민하던 사이. 흠, 하고 혜공이 자문자답을 하기 시작했다.
“역시. 내 약이 잘 들었나 보구만!”
“……?”
“그래, 그럴 수밖에 없지. 최근에 연구했던 직전내성보구탕(直傳內成甫求湯)은 이런 환자를 위한 것이니까. 어떠냐, 몸 안에서 열기가 느껴지더냐?”
“아, 아…… 예. 맞습니다. 아랫배가 후끈후끈하던 것이, 생각해 보니 어제 먹었던 의원님의 약이 크게 효과를 낸 모양입니다.”
“허허허. 역시…… 이 몸의 실력은.”
엉뚱하게도 혜공 의원은 자화자찬하며 더 이상 묻지 않았고, 설휘는 맞장구 몇마디 치는 것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흐음. 탕약이 이 정도의 차도를 보였다면 내 진즉 설파했을 터. 이제부터는 처방에 아낌이 없을 것이다. 내 의학을 무당파에 크게 펼칠 것이니라.”
그렇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혜공 의원은 곧 자리에서 물러나 주었다. 설휘는 그런 모습을 보며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괜찮겠지? 생각해 보니 조금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설마하니 약 하나로 효험을 보았다고 뭔 사달을 일으키기야 하겠는가.
“후우…….”
주변이 조용해지자, 다시금 창가를 바라보며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을 상기했다.
‘정말 큰일날 뻔했다.’
무당의 금지. 비고를 지키는 두 노인을 처리하는 데까지 어찌어찌 성공했다. 하지만 문제는 탈출이었다.
입구였던 문이 무너진 바위로 막혀서, 사실상 모두 박살 내지 않고선 빠져나가기가 힘들었다.
출구로 보이는 곳을 찾았지만, 열리지 않았다.
문 옆에는 어떤 기관인지, 알 수 없는 글자와 도형이 있어 그걸 풀어야 나갈 수 있는 구조였는데, 그걸 처음 본 설휘는 쉽게 해석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다시 출구를 찾던 설휘.
다행히 신이 도왔는지 태상노군의 석상, 그 머리 위에 채광창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좀 허탈한 일이었는데, 낮의 볕이 있는 동안 석실의 태상노군의 머리에 빛이 닿아 은은한 광채를 뿌리도록 건물이 설계되어 있었던 것이다.
설휘가 잠입한 시기는 마침 밤이라서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던 것이고.
어쨌든 사람이 빠져나가기엔 작은 구멍이었지만, 잠형투체술을 가진 설휘에겐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는 그 길로 자소궁을 빠져나와, 겨우 의약당에 도착해서 전신의 소모된 진력을 채우던 중이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힘이었어…….’
간밤을 돌아보고, 설휘는 다음부터 좀 더 신중을 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저 화경에 극에 오른 것만으로는, 무당의 초고수를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은 깨어졌다.
제3의 힘은 그만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당장 어제만 해도, 한 가닥 연이 있었던 혼돈의 힘.
그걸 발견하지 못했다면, 정말로 죽었을지도 몰랐다.
“심지어 그조차도 불완전한 것이었어.”
설휘가 제3의 힘을 더욱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또 있었다.
저들이 쓰는 힘은 아직 미완성이다. 저기에 특정한 수련을 거치면, 더욱더 제3의 힘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곤마가 썼던 힘은 몇 배나 강했지.’
딱 한 번이지만, 당시 곤마가 펼쳤던 혼돈의 힘. 거기엔 자신이 갖추지 못했던 파동, 그리고 기의 밀림까지 있었다.
만약 그 힘이 절대자에게 뿌려졌다면, 그 역시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반증이, 절대자란 존재가 그 힘이 무서워서 시스템이란 절대적 환경 아래에서, 곤마라는 존재를 제어했었으니까.
“아마도…… 현경에 도달하면 되겠지.”
다른 제3의 힘은 몰라도, 혼돈의 힘은 그런 식일 것이다.
태초의 근원으로 만들어지고, 소멸시키는 절대적인 힘. 화경과 탈마. 두 단계에 동시에 오를 수 있다면 그 미지의 힘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두 명.’
먼저 진무관주.
과거 이 시기에 그의 역할이 어땠는지 살펴본다면, 충분히 그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구파의 장로들을 만나고, 그들의 철학을 접해본 상황이다. 무당의 나아갈 길의 방향에 따라, 제3의 힘을 이용할 터.
‘또 한 명은 자소궁의 혜자 진인.’
이자의 능력은 감을 잡을 수 없다.
혹자는 화경이란 얘기도 있고, 혹자는 아니라는 얘기도 있으니.
‘만약 동굴의 두 명보다 더 강한 상대라면 어찌해야 하지?’
화경에서도 상당히 높은 경지라면. 제3의 힘에 손을 댔을 땐, 단번에 제압할 수 있을까?
설휘는 고개를 저었다.
알 수 없다. 아직 이 힘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우선, 제3의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수련해야 했다.
“지금부터는 몰래 수련해야겠구나.”
설휘는 슬쩍 가림막 사이로 주변을 살폈다. 그러고는 창가를 뛰어나가 순식간에 내달렸다.
일단 제 몸을 건사하려면, 수련부터 매진해야 했다.
***
뚝. 뚝.
낮에 잠시 소나기가 왔던 것일까. 물을 잔뜩 머금은 나무가 이슬을 떨어뜨렸다.
“후우…….”
명상에 잠긴 채 무당산을 주유하다 보니, 설휘는 자연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참 안개구름 속을 거닐다가, 거처로 돌아와 침상에 앉았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크흠! 크흠! 거기 계시는가?”
차악.
장지문을 열자, 거기엔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신가.”
“호오. 무명소졸.”
진숙과 그를 따르는 아이들 셋. 진명, 진삼, 진무의 무리였다.
설휘는 그들을 한 명씩 일별하다, 진숙을 보며 말했다.
“여기서 보니, 또 반갑군.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은? 그냥 같은 도우의 상처가 걱정돼서 왔지.”
“그럼. 걱정했지.”
“대련 때 보여 준 실력은 정말 굉장했지!”
“평소 수련은 어떻게 하는 거야?”
한마디를 했더니 네 마디가 돌아왔다. 괜히 휘말리겠다 싶어, 설휘는 그들의 대장인 진숙만 보고 물었다.
“그냥 문병만 온 거라고? 다른 생각 없이? 그 말. 진심으로 믿어도 되는가?”
“…….”
잠깐 뜸을 들인 진숙. 생각을 정리할 요량인 듯 창가로 고개를 돌리고 있던 그는 천천히 말을 걸었다.
“좋아. 본론부터 말하지. 우리 선교단(仙交團)으로 와라.”
“……?”
설휘가 돌아보며 의아함을 표하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마치 자기 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그러다가 이내 옆에 있던 청년을 응시했다. 눈길을 받은 진명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너는 신입이라 잘 모를 거야. 우리 오십삼도인. 이제 오십사도인이겠지? 어쨌든 이 반에는 많은 조직이 존재해. 대표적인 게 진구를 필두로 모이는 선교자들. 진강으로 이루어진 선교자지. 그리고 우리는 저기 진숙으로 이루어진 선교자들이야.”
“…….”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이건 우리 무당파의 교관들이 권장하는 사항이야. 개개인의 경쟁으로는 뒤처지는 사람이 많이 생기니까, 조직을 만들어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서로가 보완해 주는 거지.”
교관의 일률적 지시에 따르기보다는, 제자들이 서로의 조직들을 만들어, 합심하고. 또 조직들끼리 경쟁한다.
이건 적극성이 떨어지는 이들이 스스로 진취적으로 움직이게 유도하는 경합의 성격을 띤다.
고작해야 다섯 명이 조를 짜는 정도이지만, 때로는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는 법.
평소에는 소극적이고 게으름 피우던 인물이라도, 자신이 조장이 되게 되면, 아무래도 창피 당하지 않으려고 진지하게 전력을 다한다고.
또한 소수 합공을 하는 데에도 효율적이라고, 진명이 재미있는 말솜씨로 대화를 풀어나갔다.
“우리 선교단은 전체적인 성적도 상위권이며, 무공 교류도 가장 활발하지.”
“진구가 일등이라던데?”
“아, 그건…….”
설휘의 말에 그가 머뭇거리며 눈치를 봤다.
그러자 진숙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대답했다.
“지금 일등이라고 해서 계속 일등일 수는 없는 법. 선인이 되는 길은, 당장 눈앞의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멀리보며 수행을 실천해나가는 사람이어야 해.”
“호오…….”
설휘는 이번엔 좀 놀랐다.
물론 여전히 고집스런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지금 발언은 충분히 유연하고 그러면서도 강단을 가진 이가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잠깐 고민하던 설휘는 다시금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음. 말 해. 우리도 확실한 게 좋으니까.”
“내가 입문을 최근에 했기 때문에, 경계하는 자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만약 너희들의 선교단에 들어가게 된다면, 모든 걸 개방할 수 있나. 알고 있는 전부를.”
“…….”
“…….”
설휘의 말에 잠깐 침묵이 감돌았다.
말을 잘못 해석하면, 너희들의 밑천을 받아 가겠다는 도발로 느껴질 수 있었다.
그런데.
“물론. 모든 걸. 알려줄 거야. 단. 너도 모든 걸 밝히겠다고 약속해라.”
‘어라. 이놈?’
거기서 설휘는 생각 외의 모습을 발견했다.
뭔가 강인하고도 솔직한, 사내의 배포랄까. 마치 전생에서 만났던 마태룡.
그와 같은 담담함과 호쾌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약속하마.”
턱, 꾸욱.
그렇게 눈빛을 교환하고 악수를 나눈 설휘와 진숙.
입꼬리가 올라간 다른 도인들은 서로 손을 내밀며 어깨를 두드리는 등. 친숙한 행동을 취했다.
그렇게 다들 손을 마주 잡은 설휘는 이내 물었다.
“처음으로 질문 하나 해도 되겠나.”
그 말에 진숙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지.”
“혹시 들은 적 있는지 모르겠어. ‘제3의 능력’이라는 말을 알고 있나?”
“……!”
그리고 그때.
순식간에 진숙의 표정이 굳는 걸 느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도인들도 똑같았다.
아니, 더욱 노골적이었다. 아예 얼어붙은 아이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반응을 보던 설휘도 속으로 당황했다.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싶어서.
“……왜 그게 궁금하지?”
뭔가 꺼림칙한 일이 있던 건지 진숙의 대답이 뭔가 묘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설휘가 이곳에 온 이유. 절대자의 개입이 일어난, 그 시작점이 맞았다는 걸 알게 되어서.
“진무관주가 사용하는 것 같아서.”
“……!”
또다시 경악한 표정.
하지만 설휘는 여기서 더 말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들이 원하는 바를 얘기하기까지 차분히 시간을 주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침묵 후, 진숙이 말했다.
“암암리에 전해지고 있다는 얘길 들었다. 나도.”
“……?”
이번엔 설휘의 눈이 커졌다.
이게 뭔가. 제3의 능력. 그 존재를 이들도 알고 있다는 말인가?
“솔직히 말하지.”
진숙이 고개를 돌렸다.
이후, 설휘를 마주 보며 말을 이었다.
“그 능력. 찾는 중이다.”
“…….”
이로써 설휘는 깨닫게 되었다.
오십 삼인의 도인들의 죽음. 거기에는 제3의 능력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