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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뮬레이션-375화 (354/379)

375화. 조사 (2)

“그게 말이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

이야기가 묘한 곳으로 흘러가기에, 우선 진숙은 다른 청년들을 돌려보냈다.

“제3의 힘?”

“그게 뭔데?”

도우들은 그것이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에.

투욱.

설휘가 의자를 가져와 자리를 권하자, 환자가 무슨 손님 대접을 하냐며 한참을 웃어재낀 진숙.

설휘는 묘하게도 심성이 밝아 보이는 그를 앉혀두고서 물었다.

“10년 전이라고? 확실해?”

“음. 그 전날이 마침 생일이었으니까…… 기억이 틀릴 수가 없어. 너무 선명하고.”

진숙은 잠시 과거를 반추해 본 후,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진숙이 아직 도명을 받지 못한 소년이었을 때를.

그 시기에 무당에 큰 사건이 터졌다.

오래도록 폐관 수련을 하던 도인 하나가 심신이 미쳐 광마가 되었다는 것.

광마.

주화입마나 급격한 심경의 변화로 인해 피를 탐하거나 살육에 미쳐버리게 된 자로, 강호 공적 1순위다.

발견되면 즉각 처분하고, 선조치 후보고를 해도 무림맹이 인정해 주는, 강호 공식 위험인물이다.

“다른 곳도 아닌 무당파에서 광마라니…….”

“아니, 광마가 아니었어.”

혀를 차는 설휘의 말에, 진숙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당시에는 어려서 몰랐다.

고작해야 열 살이었다.

무당의 높은 어르신분들이 다들 그리 이야기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여겼다.

하지만 올해 스물이 된 진숙은, 그때를 돌아보면 알 수 있었다.

“그 할아버지, 멀쩡하게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고. 피를 탐하지도, 살육에 미치지도 않았어.”

“어떻게 그리 확신해?”

“그 전날, 그 할아버지가 곶감을 주셨으니까. 생일날만큼은 단 거 좀 먹으라고.”

“……!”

설휘의 눈이 커지자, 진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증거고 증인이야. 그 노야(할아버지)께서 정말 광마였다면…… 내가 살아서 여기 있을 수가 없지. 안 그래?”

“하루 차이가 있기는 하잖아.”

설휘가 조심스레 짚자, 진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있긴 하지. 하지만 광마라니. 그렇게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는데, 사전에 아무런 징조나 조짐이 없다는 것도 가능성이 희박하지. 아냐?”

“……계속해 봐.”

광마를 일으키는 주화입마는, 분명 정종무공에선 드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폐관수련. 무인이 모든 것을 잊고 무예에만 몰두하여, 다른 외부 생활을 일절 차단하고 스스로를 감금시키는 극도의 수련법.

남과 말 한마디 섞을 것 없이, 오로지 자기 자신을 파고들어 스스로와 마주하는 수련법.

세간에는 폐관수련 10년이니 20년이니 해서, 강호에 절대고수가 나타난다는 그럴듯한 소문이 퍼져 있지만.

“정말로 그런 걸 했다간 사람이 죽어. 열에 열은 다 거의 미치거나 죽는다고.”

‘그 정도는 아닌데…….’

정작 폐관수련으로 성취를 얻었던 설휘는 그 말에 동의하지 못했지만, 그걸 굳이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사실, 10년은 고사하고 1년도 버티기 전에 수행자를 자살하게 만드는 게 폐관수련이라는 말은 그도 들은 적이 있었다.

“사실 폐관한다고 동굴 밖으로 아예 못 나오는 건 아니거든. 가끔은 머리 식히러 밖으로 나와서 새도 보고 숲도 보고 그래. 그래야 살지. 그렇게 그 할아버지가 나오셨을 때, 나하고 마주치신 거였어.”

“음…….”

고작해야 며칠이었지만.

진숙은 그때를 똑똑히 기억했다. 곧 생일이라고 선풍도골의 노인에게 자랑한 것. 몸이 부쩍 자라고 있다고 앙상한 팔뚝을 모아 힘을 줘 보인 것 등.

그 도인은 흘흘 웃으며, 진숙의 생일날에 말린 곶감 몇 알을 주어 작은 축하 선물을 했다.

이야기가 거기까지만이라면 이렇게 그의 기억에 깊이 새겨지지도, 깊은 상처로 남지도 않았을 것이다.

“진짜 무당파의 제자들은 그때 처음 봤지.”

도관을 쓰고, 태극건을 이마에 두른, 위풍당당하고 삼엄하기 짝이 없는 어른들.

그분들은 민가에 사마외도가 침입했다며, 징을 치고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그때 열 살 먹었던 어린애는 오들오들 떨면서, 마을 뒷산에서 일어나는 혈투를 얼핏 보았다.

“……말을 했어. 아니라고, 오해라고. 그런데 그냥 무당파 도사들이 날아들었고, 곧 꺾여버리고 말았지.”

“의사소통이 충분히 가능했다는 말이지?”

설휘가 살며시 눈을 좁혔다.

광마는 정신이 완전히 미쳐서 의사소통이나 협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화가 통한다면 그건 광마가 아니다.

그런데도 무당파는 결국 그를 죽임으로써, 사건을 매듭지었다는 것.

“무당파답지 않은 이상한 일이네. 대체 왜?”

“중요한 건, 그 사건이 다가 아니라는 거야.”

그리고 5년 뒤, 진숙이 무당파에 입문한 해에 또 다른 이상한 일이 생겼다.

바로 북암묘(北岩廟) 사건이다.

무당산에 있는 도교 사원의 대부분이 무당파라고 불리지만, 그 무당파 도사들이 전부 무공을 배우는 무인인 것만은 아니다.

애초에 도교는 노장사상 이후에 수많은 도인들과 민간신앙, 주역과 팔괘의 융합이 있었다.

무예보다 선대의 말씀을 공부하거나, 혹자는 음악을 배우기도 하고, 혹자는 향화객을 맞으며 허허롭게 삶을 사는 이들도 있다.

72암묘 중 북암묘를 관리하던 도인도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평소에 남는 시간을 틈틈이 빼내 선도(仙道)를 수련하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큰 깨달음으로 얻고 자소궁의 대전에 나가게 된다.

거기서 그의 성취를 본 많은 도인이 놀라워했고, 그러다 보니 다들 실력을 한번 보고 싶어 했다.

처음에는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 속에 시작되었던 시연이, 어찌하다 보니 장문인에게까지 뻗게 되었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대련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장문인이 승리하였지만, 그는 북암묘를 관리하던 도인을 향해 크게 노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사건은 끝나는 듯했지만, 뒷말은 무성했다.

어찌 고작 암묘를 관리하는 도인이 어떻게 그리 강해졌으며, 또 장문인과 대결하는 수준까지 오르게 되었는지.

혹여 우리가 알고 있는 수련과 다른 게 아닌지.

당시 대련을 본 이는 많지 않아서 자세한 건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끔 술에 취하시면 그런 이야기를 하시곤 했어. 암묘를 관리하는 도인, 그가 뭔가 특별한 힘을 깨달은 거라고. 거기서 제3의 힘 어쩌고 하는 말씀이 흘렀고.”

“흠…….”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숙이 아는 제3의 힘과 자신이 아는 제3의 힘이 같은 종류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비슷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당파의 정통 공부가 아닌, 다른 분야에도 흥미나 유혹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그런 중요한 사실을 내게 털어놓은 거지?”

“……응?”

“솔직히, 우리는 처음 만난 사이나 다름없지. 어제 처음으로 얼굴 보았고. 그런데 나한테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냐고.”

설휘는 그게 찜찜했다.

제3의 힘이건 뭐건, 무당파에서 무당파 정통심법이 아닌 다른 종류의 힘이 존재한다는 건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이야기였다.

그런데 왜.

진숙은 자신의 뭘 믿고 여기까지 이야기하는 것인가. 설휘로서는 그게 의문이었다.

“뭐, 네 말처럼 이번에 처음 만난 사이니까.”

하지만 묘하게도, 진숙은 어깨만 으쓱해 보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무당에서 서로 아는 사이라면 이런 이야기는 못 하거든. 했다간 바로 어느 분 귀에 들어가서 치도곤을 맞을 테니까.”

“……그럼 나는?”

“너야 뭐, 첫날부터 명자배 어른에게 들이받은 놈이잖아? 항렬도 사실 명자배 쪽이기도 하고. 설마 모두 발설할까. 그리고 정말 그리되면 난 그런 소리 한 적 없다고 오리발 내밀면 그만이고.”

“…….”

설휘는 잠시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그리고 왠지 그럴듯함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얘길 그의 입을 통해 듣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를 더 지냈다.

의원실에 있는 게 조금 눈치가 보일 때쯤, 설휘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자신을 무당파에 입관시켜준 인물이기도 했다.

“잘 지냈느냐?”

“진무관주님을 뵙습니다.”

“그래. 들어보니, 첫날부터 조금 의욕이 과했던 모양이더구나.”

웃는 듯 화내는 듯, 진무관주의 콧등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아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훈육관 녀석도 손속이 과했더구나. 평시에도 호승심이 강한 녀석이니. 이번이 정신 좀 차리는 기회가 될 수 있겠지.”

“그래도 제가 괜히 소란을 일으킨 건 사실입니다. 이제 겨우 약관이 된 이들의 수련에 참가하게 해달라고 한 것도 저였으니까요.”

설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입관한 지 채 보름도 되지 않아, 이대제자들과 함께 수업을 받겠다고 강하게 부탁한 건 자신이었다.

사실상 항렬을 보면 어불성설. 명목상 설휘의 사부는 자그마치 혜자배의 어른이다. 무당의 장문인, 장로들과 같은 항렬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명자배. 일대제자들과 함께 어울려야 할 상황에 더 밑으로 들어갔으니, 불협화음이 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 어차피 일대제자들은 너를 사제로 여기기엔 시간이 좀 걸릴 거다. 다들 제가 무당파라고 콧대가 높은 녀석들이니 말이지.”

진무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스윽 설휘를 위아래로 훑어본 다음 고개를 까닥했다.

“꾀병 부리는 것 뭐라 하지 않을 테니 잠깐 나가자. 내 술 상대나 좀 해 다오.”

“……예? 저는 환자입니다만…….”

“이놈아. 나한테까지 숨길 수 있을 줄 알았냐? 이미 기혈이 제자리를 잡았고 혈색이 온전해진 것이, 단전까지 회복된 게 확실하거늘. 이보게, 여기---”

“따르겠습니다!”

진무관주가 갑자기 산통을 깰 태세라, 설휘는 급히 부복했다.

***

자소궁 바로 아래에 지어진 평도관. 그 옆에 임시로 지어진 막사 하나가 있었다.

본래 귀빈을 맞이한 후 간단한 요깃거리를 위해 들르는 곳. 무당파에서도 단 두 개밖에 없는 간이 식당이다.

진무관주는 설휘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그리고 탁자에 간단한 음식과 술 한 병을 가지고 왔다.

쭈우욱-! 크으-!

그러고는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병나발을 불고는 긴 트림을 했다.

“…….”

“왜 자리가 불편한가? 도사라는 놈이 낮부터 주책이구나 싶어?”

설휘가 뚱한 표정을 짓자, 진무관주가 악동 같은 얼굴로 물었다.

“그럴 리가요. 경전에 장생불사의 환약을 선단(仙丹)이라 하지요. 스스로 도(道)를 지킬 수 있다면, 그것이 술이든 선단이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하하하! 우문현답이로다! 그래.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면 그게 술이든 뭐든 무슨 상관이랴!”

진무관주가 가가대소하며 다시 한번 술병을 쭈욱 들이켰다. 잔조차 두지 않는 시정 낭인들 같은 주도였다.

“…….”

“…….”

꼴꼴꼴. 끄으윽.

술 상대를 해 달라며 끌고 온 진무각관는, 말 한마디 없이 그냥 술만 마셨다.

말이라도 설휘에게 한잔 받겠느냐느니, 안주라도 좀 먹으라느니 하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꼴꼴꼴. 끄르륵!

그렇게, 지옥의 침묵이 이어졌다.

“…….”

“…….”

자그마치 한 시진 동안. 나름 인내심에는 자신이 있었던 설휘도 슬슬 버티기 어렵다고 생각할 때쯤.

“궁금한 게 몇 가지 있는데…….”

무겁기 짝이 없던 진무관주의 입이 열렸다.

아마도 술기운으로 마음의 담을 내려놓을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뭐든 하문하십시오.”

“굳이 오십삼도인에 들어간 이유가 무어냐?”

침묵이 길었던 만큼, 그는 바로 찌르고 들어왔다.

처음엔 명자배 눈을 피해 이대제자로 가는 걸 보고 괜한 부스럼을 없애는 처세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왠지 지금에서는 그런 게 아닌 것으로 보였다.

“말씀에 답을 하기 전에, 저도 궁금한 것이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응? 그래. 말해 보거라.”

“제3의 힘이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는데…… 거기에 대해 알고 계신 게 있습니까?”

“……!”

달그락.

술병이 떨어져 굴렀다.

진무관주는 눈을 부릅떴다.

갑작스럽기도 하지만, 충격적이기도 했다. 최근에 입문했다곤 하지만, 아직은 어색한 동량. 정확히는 얼마 전까지 외인이었던 이의 질문이었다.

허나, 설휘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질문이기도 했다.

무당의 금지에서 들었던, 그들이 지목한 자가 진무관주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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