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뮬레이션-376화 (355/379)

376화. 조사 (3)

“…….”

진무관주의 침묵은 길었다.

실은 이상한 일이 있더라, 하고 쉽게 입을 연 진숙과는 다른 입장이다. 그가 입을 허투루 열었다간, 무당파에 일어날 파장까지 생각해야 했기에 그만큼 신중해졌다.

“돌아가신 사부가 그리 말씀하셨느냐?”

오랜 침묵 뒤에 진무관주는 오히려 되물었다.

부담과 걱정이 스며 있다는 방증. 그는 ‘제3의 힘’을 거론한 출처를 먼저 알고 싶어 했다.

설휘는 여기서 대답을 아주 잘해야 한다고 느꼈다.

다행히도 그에게는 오랜 경험이 있었고, 그래서 이런 질문에 대처할 만한 방법도 준비해 둔 터였다.

“비단 사부님의 뜻만이 아닙니다. 부족하지만…… 저는 그분께 천문을 보는 법도 배웠습니다.”

“천문?!”

갑작스런 발언에, 진무관주의 얼굴에 당황이 드러났다. 무당파의 일을 말하는 와중에 뜬금없이 별이나 보는 이야기라니?

설휘는 말을 계속 이었다.

“제가 틀린 것이 있다면 말씀하시지요. 먼저 진무관주께서는 곤의 괘에 머물러 계시니 아마도 진퇴양난에 처해 계실 것입니다. 또한 예성. 바르고 명성을 탐하는 별이 머물러 있으니, 상대는 아마도 구파의 다른 장로들이겠지요.”

“……음?”

그는 일부러 손끝을 모아보고 마디를 짚으며, 마치 점복사인 양 말을 흘렸다.

“각주께서는 수성. 무당의 미래를 고민하고 그에 나아가려 하지만, 그 길을 싸움 좋아하는 화성이 막습니다. 아마 화산파이겠지요? 헌데 화성이 사도성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화산파는 사특한 세력, 어쩌면 마교와 손을 잡고 협잡질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너, 너……!”

벌떡!

이번에는 정말 당황했는지 진무관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이 벌벌 떨리는 것이, 이미 불혹을 넘은 처지에서도 그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설휘는 그 모습에 살짝 눈을 좁혔다.

‘다행이다. 전생의 삶이 도움이 되는구나.’

예언가.

어찌 보면 전생을 기억할 수 있는 설휘가 가장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였다.

‘앞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말로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자리. 여러 번의 전생을 통해, 설휘의 정보력은 최상이라 말할 수 있었다.

‘수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그 실패 또한 경험.’

지난번 삶에서, 설휘는 청성의 장문인으로 있으면서 마교와 구대문파의 이후 행적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설휘는 차근차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계절이 바뀌면서 무당의 기운은 쇠락하고 있습니다. 예성은 다른 별들의 방해로 인해, 스스로 고립을 자처. 아마 장문인께서는 앞으로 폐쇄적인 정책을 펴시게 될 것입니다. 허나 구름이 짙으니, 무당파는 위협이 내부의 배신자 때문인지, 혹은 전혀 상관없는 대외의 살성 때문인지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

“사부께서 제게 천문을 가르치신 것도, 또 무당의 무예를 가르치신 것도, 다 뜻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게 무당의 오랜 병폐를 제거하고, 온전히 선도의 길로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도와주십시오.”

“허…….”

진무관주는 여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눈앞의 진휘, 난데없이 낮도깨비같이 튀어나온 무당의 새 제자.

그가 별을 운운하며 거론하는 것들에는, 다른 이들뿐만 아니라 자신도 해당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이것 하나는 확실했다.

더 이상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의 문제보다, 이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판단을 내려야 했다. 애초에 그것이 오래전부터 이어진 무당의 숙제 아닌가?

꿀꺽.

그는 술을 한 모금 크게 들이켰다.

쉽게 판단이 서질 않아, 조금 더 내면을 정리하고 다질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너에게 다 털어놓을 수 없는 상황이구나.”

끄덕.

“이해합니다. 아직 저에 대한 믿음이 없으시리라는걸. 허나 한편으로 저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설휘는 거기서 짐짓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단순히 나에 대한 믿음 때문일까. 아님 진무관주께서 숨겨야 할, 본인의 어떤 말 못 할 꺼림칙한 부분이 있기 때문일까. 하고요”

“……말조심하게.”

진무관주의 눈이 예리해졌다. 설휘의 말투가 그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린 것이다.

여기서 설휘는 부드럽게 말을 받았다.

“실례했습니다. 허나 저는 그만큼 솔직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예의를 차리는 척하며 관주님을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허나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솔직하고, 솔직함은 곧 진실됨이 아니겠습니까?”

“흐음.”

“우선 앞서 물으신 것에 대해, 저부터 답을 해드리지요. 오십삼도인에 들어온 이유가 무어냐 하셨습니까?”

그리고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 실상 중요한 점이 이런 부분이란 것을 말하며.

“반년 전부터 삼태성이 예성에게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계절의 변화 때문에 일시적으로 이끌린 것이 아닌가 하고 조심스레 살폈습니다. 허나 얼마 전에 저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뜬구름 잡는 것도 아니고, 별 잡는 이야기인가. 좀 쉽게 풀어서 말해주게. 그게 무슨 말인가?”

“예성은 무당파를. 삼태성은 지혜, 지식, 총명을 뜻하는 세 별입니다. 커다란 깨달음을 불러오는 별이니, 앞으로 한 달 안에 오십삼도인 중 한 명이 예기치 않게 제3의 능력을 얻게 됩니다.”

“……!”

순간, 진무관주의 눈빛이 달라졌다.

아무리 정신 나간 점복사의 헛소리라 해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발언이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별자리에 빗대며 미래를 예지. 그러면서 현재 무당파가 가진 비밀을 자연스레 입에 담는 인물이니, 하는 말이 진짜 예언이든 아니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대담하고 해괴하기 짝이 없는 확신이로군. 자네는 지금 하는 말에 대해 언제고 책임을 져야 할 것이야.”

진무관주는 은근히 설휘에게 책임이라는 말을 덮어씌워, 더는 입을 열지 말라고 은유적으로 경고했다.

물론, 설휘가 그 경고를 받아들일 턱이 없었다.

“저 한 몸이 질 수 있는 책임이라면 기꺼이 달게 받을 것입니다. 문제는 안타깝게도 그 정도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어허, 이 녀석이…….”

“삼태성은 강태공이 세상을 떠나기 전 보았다는 별입니다. 큰 깨달음을 주지만, 그 대가로 목숨을 받아 가기도 하는 위험한 별. 가만히 두면 큰 사달이 일어나게 됩니다. 만약 개입할 시기를 놓치게 되면…….”

“……?”

진무관주가 뚫어져라 쳐다보자, 설휘가 대답했다.

“대부분이 죽게 될 겁니다. 오십삼도인이.”

그 말에 진무관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게 하는 말이었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느냐.”

“직접 보시게 될 겁니다. 당장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아니, 당장 내일 벌어지더라도 이상하지가 않습니다.”

설휘는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본파의 정보에 대해 신중하신 것. 이해합니다. 말하기 힘드시다면, 그때 가서 하셔도 됩니다. 저는 당장 벌어질 일을 막기 위해 온 것이니까요.”

“…….”

지나칠 정도로 당당한 자신감의 표현.

그에 진무관주는 혼란스러웠다. 대체 이 아이는 누구인지, 그리고 무당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우선은 한번 지켜보시지요, 사백. 저에 대한 믿음이 생기시면, 그때 가서 다시 말씀을 나눴으면 합니다.”

설휘는 그에게 약간의 여지를 남겼다.

진무관주의 고심은 깊어졌고, 그날의 이야기는 그로써 끝이 났다.

***

설휘가 수업에 복귀한 건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단전이 깨진 녀석이?”

“이렇게 벌써 와도 되는 거야?”

상상을 뛰어넘는 빠른 회복에, 젊은 도인들은 저마다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당시 설휘를 상대했던 훈육관은 믿지 않아서인지, 어서 빨리 치료하러 가라고 소리칠 정도였다.

“정말 괜찮으냐?”

수업의 총괄 책임관인 명강이 나섰고, 괜찮다는 설휘의 말을 듣고도 직접 손목에 대고 진맥을 한 후에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경천동지할 일이군.”

결국 그의 승낙을 받은 설휘는 특별수업에 참관할 수 있었다.

수업은 큰 문제 없이 흘러갔다.

첫 수업 이후 두 번째 수업은 이전처럼 체력단련으로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았다.

자연히 큰 갈등이나 사고가 없었고, 그러다 보니 식사 시간이 되었다.

식사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었다.

도관 인근에서 채취한 산나물-풀떼기들을 먹고 나서, 설휘는 나무 아래에서 한숨 돌리고 있었다.

“어디 들어갈 곳이 없어서 그딴 녀석의 선교단에 들다니. 실망스럽군.”

누군가 말을 걸어와 고개를 들어보니, 낯익은 얼굴인 진구였다.

그는 처음 자신을 대하던 표정과 달리, 불만스러움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흠.”

설휘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서로 말 한마디 없이 일각 가까이 시간을 보냈다. 결국 그가 지나가고 잠시 있자, 진숙 무리가 나타났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저놈이 말을 건 거야?”

“뭐라 한 거야?”

진명, 진삼, 진무가 차례대로 물어보자, 설휘는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실망했다던데?”

“미친놈이군.”

진숙이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역시나 1등인 진구에 대한 반발심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적개심에 크게 악의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진구를 그리 만든 건, 진숙이 아닐지도 몰라.’

이십 대. 딱 그 시기에 있을 법한 경쟁심이다.

여기서 괜히 악의적인 감정으로 찌들지 않는다면, 본인을 더욱 성장시키는 발판이 될 터다.

언제고 세월이 지나면 허허 웃으며 술잔을 나누는, 그런 사이가 될 수도 있었다.

“저놈 또 저러네.”

와글와글.

잠깐 생각을 정리하던 사이, 누군가 시비가 붙은 듯했다.

거기엔 무리들이 꽤 모여 있었는데, 그중 한 도인이 다른 이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지금 날 민 거냐?”

“흥, 네가 먼저 시비를 걸었잖아.”

“이 자식이…….”

연유는 옆의 도우가 설명해 줘서 대충 알 것 같았다.

식후에 서로 이동하다가 부딪쳐서 어깨를 쳤고, 한 녀석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 녀석은 일어나서 곧장 밀었고, 그러다 싸움이 시작된 것 같았다.

“쟤, 누구지?”

설휘가 묻자, 진무가 대답했다.

“진강.”

“싸움 잘해?”

“여기서 세 손가락 안에 들지. 힘도 세고, 의지력도 강하지. 근데 성격이 불같은 면이 있어서, 저렇게 지나가다가 조금 스치기만 해도 노골적으로 시비를 건다니까.”

진숙이 끼어들며 말했다.

“제풀에 스스로 지치기 마련이야. 힘을 쓰려고 해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된단 말이지.”

“흠.”

보아하니 성질머리가 안 좋은 놈은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우와아! 와아!

“어? 진짜 싸우는데?”

“아.”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사이, 결국 사달이 났다.

일순, 몇 번의 초식을 주고받던 둘 중 결국 진강이 더 빠르게 주먹을 날린 것이다.

당하는 쪽의 도인은 입술이 터지며 다시 쓰러졌다.

“덤벼봐! 완전히 죽여줄 테니.”

진강이 으름장을 놓고, 그에 고개 숙이는 진성.

하지만 그 얼굴에는 굴복이 아니라 독기가 가득했다. 설휘의 무심한 시선이 그 감정을 읽어냈다.

“자, 우린 미리 이러지 말고 일조산 쪽으로 가보지 않을래?”

싸움은 어쨌든 거기서 끝이 났다.

“거긴 왜?”

진명의 제안에 진삼이 의문을 표하자, 그가 답했다.

“거기 소요노인(逍遙老人)이 있잖아. 예전에 한번 뵀는데, 다음에 만나면 봉술을 가르쳐 준다고 하셨어.”

“어? 그분, 은거하신 분 아니야?”

무당파 내에서도 이름이 꽤 알려져 있는 분인 듯 보였다.

소요노인을 언급하자, 진숙의 표정도 밝아졌으니.

“미안한데, 나는 좀 빠질게.”

그때 설휘가 말했다.

그들이 이유를 물어보자,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잠시 갈 곳이 있어서. 금방 돌아올게.”

설휘는 어제부터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결정을 내렸다.

“설마, 너…….”

뭔가 미묘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진숙이 바라보자, 설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직접 보려고.”

북암묘.

제3의 힘을 가졌던 인물이 있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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