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뮬레이션-377화 (356/379)

377화. 조사 (4)

암묘.

커다란 바위를 파고 들어가 만든 무덤을 말한다.

일종의 바위 동굴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연의 힘이 수백 년 이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몇 년 정도로 만든 것이기에 안이 작고 그리 넓지 않았다.

북암묘는 북쪽에 있는 그런 암묘들 수십수백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무당산은 풍경이 수려하여, 세속과 연을 끊고 암묘 안에서 생활하며 도를 닦는 이들이 있었으니까.

가끔 그런 이들 가운데 소란을 일으키는 이도 있어, 무당파에서는 사람을 보내 이따금 관리하기도 했다.

‘여긴가?’

북암묘에 도착한 설휘는 근처를 둘러보았다.

한산한 낮이라 그런지 도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설휘는 천천히, 문제의 북암묘에 다가가 주변을 살폈다.

진숙의 말대로라면 몇 년 전 이곳을 담당했던 인물이 제3의 힘을 받았을  터이니까.

그런데 조금 둘러봐도 특별한 건 없었다.

“하긴……. 그런 게 있었으면 지웠거나 따로 옮겨놓았을 테니.”

설휘는 암자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혹여나 흔적을 찾지 못했을 때를 대비해, 나름 따로 준비해 둔 수가 있었던 것이다.

스으으으--

기운을 일으키자, 서서히 일어나던 기류가 바람으로 변했다.

동굴 안, 공기의 변동이 거의 없는 곳.

처음에는 바람 한 점 없던 암묘 내부에서 청풍이 일어나 사방을 헤집기 시작했다. 청풍의 기로 주변의 흔적을 찾는 것이다.

만약 이 광경을 청성의 도사가 보았다면 놀랐을 것이다.

청풍은 인위적이지만 그래도 바람. 자연의 힘이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

특히,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구역과 인위적으로 건드린 구역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스으으윽.

개수가 너무 많아 한 번에 돌아보기 힘들었던 것을, 하나하나 감지하며 지워나갔다.

그러기를 한참,

무언가를 떠올리던 설휘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흐름이 불규칙한 것을 감지했고.

벌떡.

그는 그걸 느끼자마자 일어나, 그곳으로 달려갔다.

휘이이잉.

불규칙한 기류는 글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분명히 자연적인 게 아니라 인공적인, 누군가의 손을 탄 흔적이 있는 기류였다.

‘이건…….’

설휘는 보자마자 바로 직감했다.

이건 바로 북암묘에서 제3의 힘을 받았던 노인이 기록한 것이라고.

다만 글로 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줄 의도가 아닌, 정밀하게 벽에 조각을 내어 기류를 만드는, 일종의 자격이 있는 이들에게만 볼 수 있게 한 것이었다.

“예상이 맞았어.”

설휘는 어젯밤 내내 생각하면서 무조건 이런 흔적들이 이곳에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북암묘의 도인은 선택받은 자가 아니니까.’

그것이 바로 이런 흔적을 남게 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무당의 장로쯤 되면, 자신의 머릿속에 기록한 것만으로도 충분했겠지만. 그런 인물이 아니었기에.

또한, 입지로 인해 훗날 자신이 했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억울함 때문이든, 기예가 소중해서든. 분명 이런 기록을 남겼을 거라고 보았다.

“이건…… 원소를 말하는 건가?”

기록된 것은 지, 수, 화, 풍.

흔히 세상을 구성하는 4가지 요소들이다.

그 옆에 쓰인 몇 가지 기록들. 무지개 같은 색상에 그려진 독특한 흔적들도 있었다.

혈(血), 광(光), 독(毒), 마(魔), 천(天), 해(海). 뇌(雷).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둥근 원을 그린 다음, 자연계(自然界)라고 써져 있었다.

“현세에 존재하지 않지만, 자연의 영역으로 들이는 힘을 말하는 거겠지? 암연의 빙공, 지옥불 같은…….”

만약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제3의 힘이라 생각한다면, 이해가 가능하다.

설휘가 과거에 마주친 적도 있었고, 탈마에 올라 불러들일 수 있었던 ‘멸화’의 힘 또한 있었으니까.

바람의 흐름에 따라 설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이동했다.

“음.”

여기엔 몇 가지 글이 더 있었다. 사대원소니 자연계니 하는 것들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것들이.

“염력(念力)……. 정신(精神), 사술(詐術), 위장(僞裝), 혼돈(混沌)…….”

이상하고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 글귀들이다.

염력은 초능력이라 짐작은 해도 정신과 사술, 이런 것들이 제3의 힘에 있었던가? 심지어 위장이라니.

그리고 마지막에 쓰인 글이 묘하게 설휘의 시선을 끌었다. 바로 혼돈이었다.

“이건, 곤마가 사용하던 힘을 말하는 건가? 하아. 보고도 다 믿기가 힘들구나.”

제3의 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설휘는 그 폭넓음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당파에서, 아니 어떠한 구파에서도 이러한 힘들이 뿌리내리지는 못할 거라고 판단했다.

염력, 정신, 사술 같은 건 무공과 그다지 관계가 없었으니까.

바람의 흐름에 따라 설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이동했다.

“음.”

여기엔 몇 가지 글이 더 있었다. 사대원소니 자연계니 하는 것들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것들이.

“염력(念力)……. 정신(精神), 사술(詐術), 위장(僞裝), 혼돈(混沌)…….”

이상하고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 글귀들이다.

염력은 초능력이라 짐작은 해도 정신과 사술, 이런 것들이 제3의 힘에 있었던가? 심지어 위장이라니.

그리고 마지막에 쓰인 글이 묘하게 설휘의 시선을 끌었다. 바로 혼돈이었다.

“이건, 곤마가 사용하던 힘을 말하는 건가? 하아. 보고도 다 믿기가 힘들구나.”

제3의 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설휘는 그 폭넓음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당파에서, 아니 어떠한 구파에서도 이러한 힘들이 뿌리내리지는 못할 거라고 판단했다.

염력, 정신, 사술 같은 건 무공과 그다지 관계가 없었으니까.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제3의 힘을 다루는 것은 적어도 화경, 극마 같은 절대영역에 오른 자만이 가능했다.

그리고 화경이나 극마에 오른 자들이 추구하는 건, 물질적인 힘. 나아가 무지개 색상같이 명시된, 여러 가지로 변형된 자연계를 닮은 무공이 우선될 것이 뻔했다.

“하긴, 자소궁 무당비고를 지켰던 노인들도 그 힘을 사용했으니.”

거기서 이전의 기억들을 떠올려 보았다.

두 노인 중 한 명은 핏빛의 기운을, 다른 한 명은 독공을 썼다.

조금 추측해 보자면…… 아마도 적색과 녹색이 거기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 보니 자신의 예상대로 무당에서 제3의 힘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 대부분은, 저기 쓰여 있는 힘을 기준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생각됐다.

“이렇게 보니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하는구나.”

과거의 도인이 남겨놓은 유산이라는 전제 아래, 어렴풋하지만 제3의 힘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것 같기도 했다.

“큼. 음.”

“……!”

때마침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설휘는 빠르게 몸을 뺐다. 더는 이곳에 머물 이유를 찾지 못했으니까.

***

휘익! 휘익!

설휘는 전력으로 내달려 아슬아슬하게 세 번째 수업에 참가할 수 있었다.

“후우.”

논검의 기초, 이론 수업이지만 상당히 머리를 써야 하는 수업이기도 했다.

설휘는 이 수업에 꽤나 흥미를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논검에 임하는 이들의 수준은 많이 낮았다. 쓰이는 초식명과 자세, 그리고 본인의 초식과 상대방 초식을 연상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본래 논검은 서로 무공과 초식을 대며, 각각 반추해 보는 것.

초식에서 허점이나 시의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점도 필요하며, 상대의 무공에 대한 깊은 이해도 따라와야 했다.

그렇다곤 해도.

‘경험이 부족한 이대제자로서는,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도 대성하기에 시간이 꽤 걸리겠는데.’

논검을 직접 해본 설휘는 그렇게 판단했다.

다음 시간인 명상 수업은 꽤 좋은 시간이었다.

상념을 하다 보면, 그 안의 똑같은 상념에 사로잡히게 되는 법을 배웠고.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운기에 도움이 되는 상념을.

면경에 마주한 자신에 대한 탐구 같은 명상법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오식이 되었다.

“와.”

“아직 관리자님이 없는데.”

대련장으로 선택된 거대한 도관은, 사람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수업 교재로 쓰일 것 같은 수많은 무기.

검과 봉이 대부분이었지만, 한쪽에는 다양한 경험을 위해서인지 채찍, 산, 삭, 유성추 등 여러 기병들 또한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선을 잡는 건, 중앙에 놓인 거대한 구조물.

길이가 무려 삼 장. 그리고 사람 네다섯을 일렬로 세워놓은 것에 달하는 높이의 마룻대였다.

‘저것이었나.’

들어오는 내내 뭔가 불안했던 것.

주변에 짚신, 싸리들이 넉넉히 놓여 있어 떨어져도 크게 부상을 입을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멀리 떨어진다면?

낙상(落傷)을 당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아, 저 마룻대. 넌 처음 보지?”

진숙은 설휘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설명을 이어갔다.

“저기는 그야말로 모든 기예를 펼치는 곳이지. 발바닥의 면이 저 마룻대에 정확히 일치할 정도로 짧은 지면. 옆에 있는 짚들이 떨어질 때 몸을 보호해 준다지만, 그렇다고 과격하게 넘어지거나 예상보다 더 멀리 튕겨나가면 매우 위험해.”

그 말에 설휘가 물었다.

“매번 이런 훈련을 하는 거야?”

“아니, 많아도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설휘가 고개를 끄덕일 때쯤.

곧 수업이 시작되었다.

추수(推手)는 투로를 숙련한 두 사람이, 손과 발을 맞대고 실력을 검증하는 태극권 특유의 방식이다.

설휘는 이것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마룻대 위의 추수라고 이해했다.

마룻대는 좁다. 그러니 발을 앞뒤, 직선으로밖에 움직일 수 없는 제한된 공간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상체를 옆으로 돌리면, 앞뒤의 자세가 좌우로 벌린 자세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 흐름을 잘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떤 불확실한 지면이라고 해도 흔들림이 없다.

때문에 마룻대는 태극권의 체(體)를 숙련시키는 중요한 기물인 것이다.

설휘는 마룻대의 설명을 듣고, 몇 가지 동작을 배웠다.

이미 알고 있다고 해도, 다시 상기하고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체의 중심을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방법 또한 제법 재미가 있었다.

“오늘은 태극의 근접전이라는 첨연점수를 배울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손을 맞댄 상황에서 사기종인(舍己從人-자신을 버리고 남을 따른다)해야 한다.”

그런 뒤에, 책임관은 도인들에게 제안했다.

“자, 오늘 배웠던 흐름을 저 마룻대에 올라 펼칠 도인이 있느냐?”

그 말에 도인들은 잠잠했다.

다름 아닌 이 수업의 책임관은 바로 명철 진인.

조금만 실수하거나, 딴짓해도 가차 없이 감점을 주는 사람이다. 어설프게 괜히 나섰다가 점수만 얻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제가 해보겠습니다.”

손을 번쩍 들어 보이는 청년.

설휘는 그를 바로 알아보았다. 바로 몇 시간 전에 싸우던 두 명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도 하겠습니다.”

눈여겨보던 이도 손을 들었다.

진강, 진구, 진숙 다음으로 점수가 높은 도인.

체격은 조금 작지만, 성질머리는 제일 강해 보이는 이였다.

“좋다. 둘이 오르거라.”

명철 진인은 낮에 있었던 사건을 모르는지, 딱히 제지하지 않고 위로 올려 보냈다.

하지만 아까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젊은 도인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속삭이기 시작했다.

“저러다 큰일 나는 거 아냐?”

“이참에 제대로 서열을 확인하려는 거겠지.”

“저기 진강하고 대련하는 친구. 결코 만만치 않다고 하던데. 성적도 상위권이고.”

도인들의 얘길 듣던 설휘가 잠깐 시선을 진숙에게 돌리자, 그도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어찌 될 것 같아?”

“글쎄.”

설휘는 곰곰이 고민하다 말했다.

“뭔가 저 아이 눈빛이 이상한데…….”

“아, 그거. 근시라서 그래. 인상을 쓰지. 그래서 괜한 오해도 받고…….”

“음.”

다툼의 시작도 그게 원인인 듯 보였다.

“난 저 인상 쓴 친구, 진성이 이길 거라고 봐.”

“왜? 진강의 성적이 이곳에서 삼 등이라던데?”

“성적이야 이론 수업도 껴 있으니까 그렇지. 하지만 진강? 저 녀석 태극권의 중심 잡는 실력은 수준급이야. 땅에서 붙으면 진강이 이기겠지만, 저긴 마룻대. 더욱이 첨연점수 같이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자리에선, 다혈질인 녀석들에게 불리해.”

“오.”

진숙은 설휘의 논리에 일리가 있다고 보았다.

그렇게 묘한 기류가 흐르는 두 사람이, 아슬하게 마룻대에 올라가자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꽤나 높은 곳이고, 또 무리하게 움직이다 보면 부상이 나올 수 있었으니까.

“조심해라~! 방심하지 말고!”

물론 다른 훈육관들이 안전에 대비하고 있었다. 짚이 없는 공간의 좌우 앞뒤에 서 있어서 무슨 일이 생겨도 바로 잡아챌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군.”

설휘의 말에 이번엔 진숙이 물어왔다.

“왜?”

“훈육관들이 저리 지키고 있으니, 낙상 사고가 일어날 수 없는 조건이라서 말이지.”

“낙상? 누가 저기서 잘못 떨어지기라도 한대?”

“왠지 그럴 것 같아서.”

설휘가 피식 웃었다.

굳이 이곳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얘길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자 진숙도 같이 웃어 보였다. 그런데 막 대련이 이어질 때쯤.

“가능은 하지.”

진숙의 말에 설휘가 반응했다. 무슨 뜻으로 한 말인가 눈짓으로 묻는 것이다.

“떨어지기 전에 이미 허리를 다친다면.”

“……?”

“첨연점수가 그거잖아. 딱 붙어서, 떨어지기 전에 때려버리는 식이라면…… 안 될 거야 없지.”

진숙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무려면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까 하는 투로.

하지만 그걸 들은 설휘는 달랐다.

그렇다면.

오늘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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