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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뮬레이션-382화 (361/379)

382화. 태극을 만나다 (1)

“제3의 힘? 그게 뭔가?”

대의전에서 이야기가 나오자, 원로들은 생뚱맞은 얼굴을 했다.

진무관주는 설휘와의 약속대로, 사전에 준비한 것을 진행할 뿐이었다.

하지만 몇 년 만에 대의전에 모인 원로들의 입장에서, 제3의 힘은 너무도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외문의 공부를 익히고 있었다고?”

“그것도 출처가 불분명한? 이보게, 진무관주!”

그리고 차차 이해가 되자, 그들은 발칵 뒤집어졌다. 다른 곳도 아닌 유서 깊은 무당에서 감히 이런 시도를 하다니.

“자네의 본분을 잊어버린 것인가? 당장 무당의 가르침도 소화하지 못하면서!”

“제정신인가! 제 자식도 간수 못하는 자가 어찌 남의 집 자식이 뛰어나니 어떠니 하는 것이야!”

원로들의 날 선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 진무관주는 무덤덤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러는 사숙, 사백께서는 얼마나 무당의 배움을 깨달으셨습니까? 제게 가르침을 주실 분이 여기 얼마나 계십니까?”

“……!”

“……?!”

그 말에 모두가 소름이 돋았다.

배분은 명자배이지만, 무당파에서 공식 서열 4위인 진무관주. 태도가 불경하다고 해서, 무위까지 우습게 볼 수 있는 이는 아니었다.

무예로 젊은 시절부터 무당의 천봉(天峰)이라고 불리던 이가 바로 진무관주였다.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 가운데, 무예로 진무관주를 단죄할 수 있는 이는 셋도 되지 않았다.

“무인이 강해지기 위해서, 다른 분야의 무리를 탐구하는 것이 잘못입니까? 끝까지 무당의 무예만 고집하다가, 결국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늙고 병드는 것이 정말로 바른 일입니까?”

오히려 진무관주, 그가 하는 말이기에 호소력이 짙었다.

평생을 무당의 무예만 들여다 판 비운의 천재.

전례가 없는 젊은 나이에 화경에 올랐으나, 그 이후 벽에 부딪힌 채, 진전이라 할 만한 것도 얻지 못하고 십수 년을 보낸 모습을 무당의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울컥.

그리고 진무관주는 그런 선대의 어른들을 보며, 그간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부었다. 시작은 설휘와의 약속인 공개 대련을 위한 밑밥 깔기였으나, 말을 하다 보니 그간 켜켜이 쌓인 설움이 우르르 북받쳐 올라온 것이다.

“왜 아무도 말씀을 하지 않으십니까?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사백조 사숙조께서는, 벽에 가로막힌 무당의 제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까?”

“저, 저……!”

“이놈! 무엄하다!”

원로들은 새파랗게 질려 고성을 내질렀다.

진무관주의 말도 분명 일리는 있지만, 맞는 말도 과하면 노기를 부르는 법.

“강함만을 추구하겠다고 도리도 법도도 무시하느냐?”

“그건 사도다! 입에 담기도 참람한! 힘에 미친 마교 놈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냐!”

진무관주는 반박했다.

“도리와 법도가 우선이란 말씀입니까? 그럼 제가 되묻겠습니다. 무당은 무문(武門)입니까, 아니면 도문입니까?”

“이놈! 진무관주!”

와글와글!

또 한 번 뒤집혔다.

진무관주가 꺼낸 말은 정곡을 찔렀다. 도리와 이치를 따르고 연구한다는 점에서, 무당은 분명히 도문(道門)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구파일방은 정도문파. 중원을 쥐락펴락하는 권세를 지니게 된 것은, 무당이 가지고 있었던 힘 때문이기도 했다.

그저 힘이 세니까 이런 호화를 누린다는 말은, 체면과 위상을 부숴버린다.

그리고 그 체면과 명분은 나이 많은 원로들이 가진 마지막 재산이기도 했다.

차라리 목에 칼이 들어올지언정,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말. 진실이지만, 동시에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말이기도 했다.

“그만!”

창노한 음성이 울렸다.

소란을 사그라들게 만드는 쩌렁쩌렁한 내공.

“……요 근래 무당에 이상한 바람이 불고 있다는 건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진무관주, 그대까지 그 준동에 끼어들어 있을 줄은 몰랐구나.”

장문인 혜우 선인이 직접 입을 열었다.

그는 끼어들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을 짐작했다. 무위가 드높은 진무관주에게, 원로들이 배분과 예의를 들이대며 따져봐야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말뿐인데, 그 말을 들어 먹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말이 아니라 주먹이 나가면?

터무니없다. 싸웠다가 깨지기라도 하면, 그 본인만의 망신이 아니라, 문파 전체의 위계와 전통까지 박살 날 수 있었다.

“좋다. 그래서 그 외문의 공부를 한 이가 무당에 몇이나 되느냐?”

장문인이 진지하게 묻자, 진무관주도 그에게만은 예의를 차렸다.

“외람되오나…… 정확히 몇이나 되는지는 저 역시 알지 못합니다. 그간의 갈증이 너무 깊었기에.”

“허…….”

장문인은 그에 이마를 짚었다.

본문의 공부가 아닌, 외문의 공부에 눈을 돌리는 것.

역사가 오랜 거대문파에서는 드물지만, 신흥 문파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젊을수록 힘을 원한다. 자신만은 비뚤어지지 않을 거라고 당연히 믿는다. 나이가 들어서야 그게 오만이고 착각임을 깨닫는다.

거기에는 일정 부분 포기와 굴복이 들어있기도 했다. 세상이, 인생이 자기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쓴맛을 보아야 알 수 있는 법. 이는 말로, 도리로, 이치로 설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으면 알아서 깨닫는 법이다. 그런데 이놈이 갑자기…….

‘아.’

혜우 선인은 진무관주의 사부가 누구인지를 떠올렸다.

혜선 진인. 별처럼 빛났던 무당의 자랑.

그가 무당의 산문 앞에서 떨어졌을 때, 혜우 선인 또한 울었다. 식음을 전폐하고 며칠을 폐인처럼 지냈을 정도였다.

그렇게 혜우 선인이 사형을 잃었을 때, 진무관주는 아버지 같은 사부를 잃었다.

어린놈이 사부의 죽음을 보고 대체 무슨 생각을 가졌을까? 심지어 살수가 다른 곳도 아닌, 마교의 살마임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런 징치를 하지 못했다.

“허어어…….”

무당이 불편해서 외면해 온 진실이었다. 결국은 강호에서 통용되는 법칙은 힘. 힘이 없으면 드높은 무당의 이름도 꺾이고 만다.

그걸 겪고 평생을 피눈물 흘리며 정진했던 놈. 그리고 그 노력이 결실을 얻지 못했을 때.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얼마나 원망했을까.

“……참으로 유감이구나……. 미안하다, 유야.”

새파랗게 독이 오른 진무관주의 눈이 흔들렸다. 그 표정에서 장문인은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간 외면했던 많은 이들의 고통을.

무문임에도 무예에 대한 성취를 얻지 못한, 수많은 날들의 고뇌를.

‘감사합니다. 장문인.’

진무관주의 마음에 작은 동요가 퍼져 나갔다. 하지만 내심과 달리 그의 말은 딱딱했다.

“너무 늦으셨습니다. 장문인.”

이미 던져진 판을 되돌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네 이놈!”

벌컥!

원로 하나가 일어나 삿대질을 했다.

장문인과 진무관주, 두 사람은 눈빛만으로 많은 말이 통하고 있었지만,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이에게는 그저 기사멸조의 현장일 뿐이었다.

“참으로 참람하도다! 네놈이 지금 감히 무당의 장문인에게 대드느냐!”

“…….”

스윽.

진무관주의 서슬 퍼런 눈빛이 원로에게로 돌아갔다.

“정고일척이고 마고일장! 바른 일이 한 척에 불과할 때, 사마외도가 그 열 배로 자라는 것은 익히 겪는 일이다. 허나! 결국은 사필귀정! 조잡한 서 푼의 힘으로 어찌 뿌리 깊은 정통을 대신할 것 같으냐!”

“그래서 사숙께서.”

진무관주의 눈에서 예기가 흘러나왔다.

그 또한 무당의 원류를, 정통의 고귀함을 알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만큼 노력했다.

그렇기에 자신만큼 고행을 겪지 못한 이의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제가 익힌 힘이 서 푼짜리인지 아닌지 직접 재어 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뭐, 뭐라? 지금 네놈이…….”

원로가 말을 더듬었다.

말만 하지 말고 실력을 보여라, 못마땅하면 계급 떼고 한판 붙자는 말. 그 흉험한 기세에 콱 하고 숨이 막혀왔다.

“그만! 내 앞에서 뭣들 하는 것이냐!”

혜우 선인이 다시 고함쳤다.

그는 안색이 하얗게 질린 원로를 자리에 앉으라 손짓했다. 이야기가 더 감정적으로 갔다가는 아무래도 길보다 흉이 많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 좋다. 갑작스레 이런 이야기를 꺼낸 까닭이 있으렷다?”

장문인은 다시 진무관주를 향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볼 때, 그의 사질은 곡절이 있다 하여 허투루 난장판을 일으킬 사람은 아니었다. 일단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듣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여겼다.

발언할 기회가 주어지자, 진무관주는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조사야이신 현현자께서 이 땅에 배움을 퍼뜨리신 이래, 무당은 구파일방의 맞이로서 자리해 왔습니다. 태극은 분명, 천하에 다시없을 큰 가르침이며 근본입니다. 허나 너무도 그 길이 난해합니다. 평생을 바쳐 수련한들, 그 성취가 미미한 경우가 많음을 여러 사숙, 사백께서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음…….”

“크음.”

대의전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태극권과 태극검.

강호의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초극의 절예.

하지만 개개인의 자질에 따라 그 깊은 오의에 이르는 자도 있었고, 이르지 못하는 자도 있었다. 정확히는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무당이 독점적으로 비전을 묶어두지 않고, 태극권과 태극검을 강호에 두루두루 널리 퍼뜨린 까닭에는 이런 사정도 있었다.

너무도 어렵기에 비전이 딱히 비전일 필요가 없다는 것.

지양하는 뜻이 너무도 깊고 난해했기에, 유출된다고 한들 평생 태극만 파는 무당의 정식 기문제자만큼 깨닫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외방에 태극의 도를 퍼뜨려, 개중 깨달은 이가 무당으로 찾아와 기문제자에 입적하는 일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당장 얼마 전 무당에 입문한 진휘 도사의 경우 또한 그러하지 않습니까?”

진무관주는 거기서 은근슬쩍 진휘-설휘를 언급했다. 이 자리에는 아직 그의 존재도 모르는 원로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인께서 주신 가르침이 드높고 가치 있어도, 옳은 공부가 너무 어려워 따르지 못하면, 그것이 과연 무문에 어찌 도움이 되오리까? 그러니…….”

“그러니?”

“정식으로 교지를 내리시고 천하에 선포하소서. 무당이 새로운 힘을 얻었고, 그것이 무당만의 것이라고. 제3의 힘을 정식으로 등재하여 주십시오.”

“……!”

술렁.

격한 충격이 소리 없이 퍼져나갔다.

외문의 공부를 본문의 공부에 포함시킨다? 그리고 그걸 정식으로 선포한다? 정통과 정당성에 목을 매는 이들은 뒤집어질 소리였다.

“이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수백 년 역사를 가진 무당의 절예에! 근본도 없는 사도의 힘을 넣자고?!”

“근본이 있는지 없는지보다, 얼마나 강하고 익힐 만한 무예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합니다.”

원로들의 노성에 진무관주는 한마디도 지지 않고 나섰다.

압도적인 반대 여론. 단 한 명이서 수십 명을 상대하는 꼴이었으나 이는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오히려 이 정도로 시끄러운 분위기가 있어야, 더 큰 전환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랬기에 준비하고 준비했다.

이는 비록 외문의 힘에 손을 대었지만, 진무관주의 무당을 위하는 마음만큼은 진실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도인지 아닌지는 아직 판단을 내릴 근거가 없습니다. 오늘 처음 나온 말이고, 시험도 검증도 겪어보지 못한 기예를, 어찌 무조건 사도라고 치부하십니까?”

“하! 실로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좋다! 어디 한번 나에게 보여 봐라. 네 재주가 얼마나 익었는지! 직접 증명해라!”

와당탕!

그리고 이제껏 시뻘겋게 얼굴을 붉히고 있던 원로, 무당 제일(第一)의 도관주라 불리는 혜진 도장이 의자를 박차고 걸어 나왔다.

기어코 일이 터졌다. 장문인 혜우가 기겁해서 그를 불렀다.

“이보게, 혜진 사제!”

“장문 사형.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허나 사제는 이 꼴을 더는 볼 수가 없습니다.”

부들부들.

주먹을 말아 쥔 혜진 도장이 덜컥 대의전의 문을 열어젖히자 널디너른 뒤뜰이 보였다.

혜진 도장이 웅후한 중저음으로 노갈을 터뜨렸다.

“명유(진무관주) 이놈! 나와라! 네가 뭘 잘못 처먹고 간이 부었는지, 내가 직접 확인해야겠다!”

혜진 도장.

태현자소궁, 대성남암궁 등 네 도관을 총괄하는 이로, 그 무공 수준은 화경.

본문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수다.

거꾸로 무당의 멈춘 분위기를 수면으로 올리기에 충분한, 상대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고수였다.

“그러지요. 지금 이 자리에서 사숙과 겨뤄 진다면, 더는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퇴장하겠습니다.”

진무관주는 웃으며 기꺼이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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