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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뮬레이션-383화 (362/379)

383화. 태극을 만나다 (2)

한편, 그즈음 설휘는 다시 폐관에 접어들었다.

옥진과의 대화 중에서, 무언가 묘한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했던 태극은 흔히 일컬어지는 태극과 달랐다.

‘눈을 감아야 볼 수 있는 것이라니…….’

생경한 시각이었지만, 그래서 새로웠다.

도리도 세상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의 시각.

그렇기에 딱히 기본도 없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도 쉽게 배울 수 있는 것.

어찌 보면 그것이 도(道)가 아닐까.

도가와 관련된 유명한 인물이 이런 말을 했다.

무위자연이라, 사람의 안에 도리가 있다고.

굳이 욕망에 휘말리지 말고, 법으로 금제하지 말며, 사람을 억누르는 것을 그만둘 때.

그때 비로소 완전한 자연의 도가 살아난다고.

‘선입견 없이, 억지로 일부러 노력하는 것 없이. 한없이 편안한 자유로움의 이치…….’

어떻게 보면 이것이 도이고 이것이 태극이 아닐까.

사람이 깨어 움직이면 양이고, 잠들면 음이다.

호흡을 들이마시는 것은 양, 내쉬는 것은 음. 살아 있는 것은 양이고,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음.

이 또한 태극의 이치에 수렴한다.

‘그렇게 가르면 세상 만물이 모두 그렇구나.’

이치를 아는 것에서 나아가, 몸소 체득할 수 있는 수련법.

모두가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것.

몸으로, 마음으로. 원한다면 언제든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설휘도 시도해 보았다.

눈을 감고 태극을 만나보기로.

‘과연 나도 만날 수 있을지 어떨지…….’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첫날은…… 실패했다.

그동안 해온 명상과 운기행공의 방식 때문인지, 쉽게 태극을 볼 수가 없었다.

행공은 기경팔맥, 소주천과 대주천, 세맥 타통을 이어가기에 고도의 집중을 필요로 했다.

생각의 움직임으로 보자면 양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반면 일반적인 명상은 머리를 비우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다. 고요하고 수동적이니, 음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태극의 이치는 음양의 조화다.

이지러지고 둥글어지는 세상 만물의 만변이자 불변.

‘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바쁘게 사고를 움직이는 행공과 고요히 몸이 떠내려가다 잠기는 느낌의 명상. 둘 다 아니면서 둘이 동시에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가벼우면서 무겁고, 고요하면서 동시에 시끄러운 것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냥, 되는대로 가만히 두는 것.

어떤 목적이나 갈구하는 바가 없이 마음속에서 편안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

하지만, 이게 쉽지 않았다. 걸음걸이나 호흡과도 같았다.

생각 없이 걷거나 숨을 쉬는 데는 딱히 별 노력이 필요하지 않지만, 정확히 걸으려고 시도하거나 바르게 숨을 쉬려고 의식하면 대단히 어려워지는 것처럼.

차라리 아무 생각도 없었다면 모르되, 이미 태극이라는 개념을 의식하고 있는 이상,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오히려 더욱 휘청거리는 발걸음과도 같았다.

“이거, 더는 못하겠구나.”

그런 노력 끝에, 첫날은 극도의 피로감에 뻗어서 잠이 들고 말았다.

고작해야 한 시진이나 될까 말까 한 정도였다.

둘째 날, 셋째 날…….

반발 의식이라는 것이 있다.

누군가 ‘앞으로 숫자 열을 셀 동안 늑대를 절대 떠올리지 마시오.’라고 하면, 그 시간 내내 계속해서 그 늑대의 생각이 떠오르는 것처럼.

시도하면 할수록 더욱 흔들리고 어지러워졌다.

아무런 생각 없이 편안하게 마음을 가지려 해도, 어느 순간에 집중력이 깨졌다. 배고픔도 있었고, 불편한 자세도 있었다.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아…….”

다섯째 날도 실패했다.

명상하는 시간이 길어지긴 했다. 그럼에도 세 시진 이상 지속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힘든 건, 그런 노력을 하며 명상을 해도 태극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단 점이다.

설휘는 거기서 명상을 중단하고 다시 숙고에 들어갔다.

‘방법이 없을까.’

스윽. 슥.

고뇌에 잠긴 채로, 그의 손은 어느새 바닥에 태극의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중심. 그 좌우로 오목한 원을 그렸고, 끝에는 완전한 원으로 마무리했다.

하나, 또 하나.

나뭇조각으로 바닥을 그리던 설휘는 왜 자신이 이런 걸 그리고 있는지를 잠깐 잊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있던 중에 설휘는 멈칫했다.

“원, 곡선…….”

왜 태극은 원으로 그려야 할까.

왜 곡선이 들어가야 할까.

그러다가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꼭 완벽한 모양으로 그려야 하는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

잠깐 태극권에 관한 생각을 더듬던 중, 머리를 스쳐 가는 것이 있었다. 천일관에서 보았던 한 글귀였다.

-대성약결(大成若缺) : 완전한 것은 모자란 듯하다.

제목이 쓰여 있지 않은 책이라 출처는 알 수 없었다. 대신 그 의미가 독특해 기억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대직약굴(大直若屈) : 크게 곧은 것은 마치 굽은 것과 같은 것이다.

거기엔 이런 것도 쓰여 있었다.

완전한 것은 오히려 모자라다는 뜻.

“음…….”

예전에는 그것이 완벽하다고 느끼는 건 오히려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뜻의 의미라 생각했지만, 지금 보기에는 해석을 잘못했던 것 같았다.

“조금 모자라야 오히려 더 완벽에 가까워진다.”

크게 곧은 것은 마치 굽은 것과 같다는 것도 그랬다.

태극의 굽은 것은 어찌 보면 곧은 것이라는 뜻이 아닌가.

순간, 설휘의 눈이 커졌다.

“설마……!”

의식적으로 완벽하려고 했던 생각, 그 의념(意念)부터가 틀렸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라는 것이 태극의 시작이다.

곧은 것도 보는 것에 따라 굽게 보이며, 서툰 것이 때론 답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설휘는 다시 가부좌를 틀었다.

이번엔 이전처럼 완벽한 태극을 그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명상에 들어갔다.

“…….”

고요. 그 흐름 속에서 일정 시간 불안정한 생각들이 침투했다.

정확히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 부정적인 기운이 생각을 만들려 하고 있었다.

후우우.

예전에는 이런 때에 억지로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이번 상황에서는 흔들리는 마음을 그대로 놔두었다.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놔두자.’

혹은 고요해지면 고요해지는 대로다.

완벽하게 물리치려 했던 과거와 달리, 중심을 잡은 채 그대로 놓아두었다.

스르륵.

그렇게 어느 순간, 생각이 멎었다.

모든 것을 잊었고, 태극에 대한 것도 잊었다.

고요하고 편안했다. 그러다 갑자기 격하게 피로해지기도 했다.

스스슥. 스스스슥.

수많은 미지의 기운들이, 나비가 일으킨 태풍처럼 정신을 흔들었다. 뿐만 아니라 도저히 가늠이 안 되는 파도들까지 밀려왔다.

“으윽…… 윽…….”

전생, 죽음, 번뇌, 성취, 평안, 만족.

희로애락과 오욕칠정이 미친 듯이 들끓다가, 삽시간에 사라져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일으키는 조수간만의 차는 더욱 심해졌다.

사람은 애초에 동물이다. 움직이는 존재다. 그런 주제에 한없이 고요해지려고 하니, 본능적인 움직임이 평온함을 유지하려는 명상을 방해하려고 한 것이다.

꿈틀. 꿈틀. 꿈틀.

격정이 몰려들고,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그저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인데 지독한 단련을 하는 것처럼 땀이 비 오듯 쏟아 내렸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설휘는 그 자세로 계속 명상에 잠겨 있었다. 태극에 닿고자 하는 생각조차 이미 잊었다.

그저 계속 외부에서 몰아치는 불안정한 기운에 흔들렸고, 때론 편안하게 지냈고, 또 알 수 없는 감정들에 혼란스러워했다.

명상하는 것만으로도 수명이 10년은 단축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흔들리고 물에 빠질 것 같은 불안감이 들던 때에, 생각지도 못한 벽을 만났다.

찌지직.

그 힘은 이전과 달랐다.

해일을 몰고 오는 거대한 소용돌이는 자신이 만든 원을 부수고 들어왔다. 그러자 오목했던 원들도 지탱하지 못하고 일그러지거나 굳어버렸다.

꿈틀.

순간적으로 이미 의식의 갈피를 놓아버린 설휘.

저 강한 기운에 더는 항거할 수 없음을 느꼈다.

몸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미미한 경련을 일으킨 것도 그 때문이었다.

퐁당.

그런 와중에 기묘한 변이가 일어났다.

중심이었던 점.

원의 균형을 이루고 있던 그 보잘것없는 것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안에서 다시 태극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태풍이 하늘을 덮을 힘으로 변하며 흔들었다.

무시무시한 와류가 용틀임처럼 압박해간 것이다.

후우우우웅!

도저히 받아낼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서, 설휘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심상 세계에서 태풍이 일어나는 가운데, 또다시 작은 점이 태극처럼 커지며 중심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설휘는 명상을 통해 태풍의 핵.

즉, 태극의 중심에 들어선 것이다.

파아아아---

또 시간이 하염없이 흘렀다. 때때로 부정적인 상념이 생성해 내는 기운에 파동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허나, 그래도 태극의 형상은 유지하고 있었다.

스으읍…… 후우…….

설휘는 그 흐름에 천천히 익숙해졌다.

어느새부턴가 그는 스스로 그 흐름을 흔들어보기도 했다.

휘오오오.

와류가 크게 출렁이다 잠잠하게 그의 몸을 휘감아 돌았다.

예전이면 곧장 무너질 균형이 지금은 부드럽게 흔들리며 다시 잡혔다.

중심이 견고하니, 어떠한 흐름도 설휘에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

어느 순간, 설휘는 조용히 눈을 떴다.

‘돌고 돌아 태극.’

그 의미를 다시금 깨달았다.

아무리 외부에서 흔들어대도 태극은 흔들리지 않는다. 애초에 상대를 완벽하게 제압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흐름대로 흘러갈 뿐.설휘는 그 흐름에 빠졌다. 그리고 어느새 그 중심이 자신이라는 것도 잊어버렸다.

“이봐.”

깜빡 잠이 들었다. 시간도 침식도 잊은 설휘를 깨운 것은 누군가의 음성이었다.

“정신 차리게! 이봐!”

“으윽…….”

정신 차리라는 소리가 마치 천둥벼락과도 같아, 설휘는 오히려 그대로 정신을 잃을 뻔했다.

“오, 오셨습니까.”

희뿌예진 눈을 들어 보니, 진무관주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너, 며칠 동안 이렇게 있었던 것이냐.”

“며칠…… 지난 겁니까?”

“오늘이 그날이다. 이놈아. 자그마치 보름이 지났는데…….”

진무관주가 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눈에 비친 설휘는 깡마른 해골처럼, 마치 다 죽어가는 행색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운공을 대체 며칠이나 한 것이냐?”

퍼뜩.

문득 그가 무언가 떠오른 얼굴로 다시 물었다.

“그게…….”

설휘는 잠깐 셈을 해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포기했다.

대충 십여 일 정도 된 것 같은데…… 식사는 고사하고 물 마시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시간을 보냈다. 그걸 말한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 며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충 얼버무렸다.

“그래……. 뭐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나?”

진무관주는 급히 주변을 둘러보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후 다시 나타난 그의 손에는 묽게 쑨 미음과, 그러고도 물이 한 주발이나 들려 있었다.

꿀꺽……. 꿀꺽. 꿀꺽!

설휘는 먹고 마셨다. 몸이 원했다. 맑고 차가운 물과 따스하고 부드러운 미음은, 천상의 감로처럼 달기 그지없었다.

“일단…… 잠시 쉬어 체력을 보충한 뒤 자소궁으로 오너라. 거기 검문관들이 막아설 테지만, 내가 불렀다고 하면 될 거다.”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푸드드드.

설휘가 끄덕이며 손을 모아들었는데, 그 끝에서 무언가 하얀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내렸다.

“……? 이게 무슨…….”

눈살을 찌푸리며 바닥을 보던 진무관주. 그의 눈이 우뚝 멈추더니 커다랗게 변했다.

때……라고 할까.

마치 잠자리의 얇은 날개처럼.

설휘의 손끝에서 허물이 벗겨져 흘러내리고 있었다. 잘게 조각난 피부 조각이었다.

“…….”

스윽.

진무관주는 다시 설휘의 얼굴을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여전히 골골거리는 것이, 생으로 보름을 굶은 듯한 설휘의 모습.

바사삭. 바사삭.

그의 얼굴 쪽 또한, 허물이 벗겨져서 흩날리고 있었다. 수많은 인피의 조각.

진무관주는 그 아래에서 드러나는 복숭아꽃 같은 연한 새 살에, 잠시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태극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전에, 먼저 몸을 한번 씻고 오도록 하고.”

수많은 복잡한 생각과 울컥거리는 마음을 누르고, 그는 애써 무덤덤하게 일렀다.

“냄새가…… 많이 납니까? 하긴…….”

설휘가 머리를 긁적였다. 보름이 넘게 먹지도 자지도 못했으니, 씻는 것 또한 당연히 하지 못한 것이다.

“잘 부탁한다.”

투둑.

진무관주는 그런 설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떠나갔다.

부스스스.

그런 가벼운 손길에도 설휘의 인피 조각은 모래처럼 흘러내렸다.

“내가 잘못 이해한 게 아니라면……. 우그극!”

진무관주가 사라진 뒤 설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십여 일을 넘게 제자리에 있어서 그런지 뼈마디가 고통을 호소했다.

“쉽게 지지는 않을 것 같구나.”

설휘는 고개를 들었다.

아무런 구름 없는 청명한 하늘.

오늘따라 이렇게 하늘을 보니 왠지 저 안에 태극이 보이는 것 같았다.

“돌고 돌아…… 태극이니라.”

설휘는 느꼈다.

자신의 단전을 타고 흐르는 기류. 그것은 이전의 청풍의 기가 아니었다.

그저 무색무취의 평범한 흐름이지만, 그 중심에는 기류가 원형을 그리고 있었다.

그랬다.

그것이 태극의 흐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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