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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뮬레이션-384화 (363/379)

384화. 태극을 만나다 (3)

다시 한번 대의전으로 향하는 진무관주의 마음은 복잡했다.

사박사박. 흠칫!

“어…… 어…….”

도담길을 지나던 젊은 도인들이, 그와 마주치자 어버버 하며 얼어버린 것이다.

“야, 야. 쉿. 어서 가.”

“어? 음, 그래…….”

후다다닥.

보름 전, 그날의 일이 있기 전만 해도 멀리서 보자마자 달려와 재깍재깍 인사하던 이들. 동문의 사질, 사손들. 그랬던 그들의 눈에는.

“…….”

두려움, 아니면 거북함이 잔뜩 깃들어 있었다. 진무관주는 오늘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꺾일 지경이다.

스윽. 슥.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흔들리지 말자. 이제 와서 이름을 탐하는가.’

남아로 세상에 태어나 죽을 자리 찾기도 힘든 법.

진무관주는 오롯이 그의 사문인 무당파의 부흥에 모든 것을 던지기로 했다.

그 대가로 자신의 이름에 어떤 오물이 묻든 상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대의전에서 원로들을 뒤집어엎은 그날.

그는 제3의 힘으로 혜진 도장을 압도하는 모습을, 무당의 모두들 앞에서 드러내 보였다. 모든 것은 그때 결정된 것이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저벅저벅. 수군수군.

“저기 저…… 진무관주 아니셔?”

“으음. 그, 손에서 번개가 나왔다던……?”

“혜진 도장을 고작 5초 만에 제압했다던데?”

“…….”

벽 너머에서 머리만 빼꼼히 내놓은 젊은 도사들.

대부분은 거북한, 꺼림칙한 눈빛이었지만 개중에는 묘한 눈으로, 오히려 선망하는 얼굴로 진무관주를 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 수는 적었지만 엄연히 존재했고, 진무관주는 그들의 눈빛을 받을 때마다 반가움과 처참한 기분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무당파에 존재하는 외문의 힘.

그게 얼마나 두렵고 강한지를 다들 알게 되었다.

자칫 오늘의 대계가 어그러질 경우, 그들의 존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터였다. 그러면 본의와 다르게 무당이 제3의 힘에 잡아먹히게 될지도…….

‘아니지, 아니야. 어느 쪽이든 결과는 나오게 될 터.’

진무관주는 우울해지는 마음을 털어 버렸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먼저 사람이 최선을 다한 후에, 하늘의 결정을 기다린다 했던가.

그 말처럼 그는 이제까지 할 수 있는 바를 모두 다 했다.

운명이 어느 쪽으로 향하든, 지금처럼 지지부진하여 이도 저도 아닌 모습은 이제 끝이다. 더는 무당이 발목 잡히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의 내 발걸음으로, 무당이 더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게 되는 경적이 울릴 것이다.”

현 강호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무당과의 경쟁 도문 중 하나인 화산의 위상은 날로 성장하고 있었다.

힘없는 민생들을 겁박하는 마인들을 처단하고, 중소문파를 도우며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이제껏 무당산에 안주하여 선대의 이름만 빨아먹고 있는 무당파와 달리, 그들은 중원 모든 곳에서 활약하며 강호인 양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희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미 천하제일도문은 화산이 아니냐는 말도 나올 정도였다.

“후우우…….”

사박. 사박.

고심 많은 발걸음은 곧 대의전을 앞에 두었다. 성문처럼 거대한 대문 중앙에는, 커다란 원이 흑백으로 갈라진 태극의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태극…….’

어릴 적, 자신을 바른길로 인도하며 성장시켜줬고, 길을 헤맬 때마다 옆에서 붙들어준 수많은 사형과 스승님들.

때론 다정하게, 때론 냉철하고 냉정하게 가야 할 길을 알려준 무당의 저력.

그것이 오늘 어떤 판결을 내릴지, 가슴이 떨려왔다.

한때 태극을 저버리고 다른 길을 선택한 자신의 결정을 꾸짖을 것인가.

아니면 그 또한 현실이라고 생각한 자신의 마음을 지지해 줄 것인가.

아마도 그 결과는 직접 싸워봐야 나타날 터였다.

“오셨습니까.”

차악.

진무관주가 문 앞까지 다가서자 검문관으로 보이는 도인이 예를 표했다.

진무관주는 간단한 묵례를 한 후 말했다.

“들어가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그그그긍.

그가 문을 열어주자, 눈앞에 거대한 공간이 펼쳐졌다.

자소궁 뒤에 별도로 지어진 대의전.

명자배 이상만 출입할 수 있는 곳으로, 장로와 장문인이 주로 사용하고, 때론 원로원들이 참관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굳이 예상하지 않아도 수많은 호통과 때론 비난이 쏟아질 이 공간으로, 그는 담담히 한 걸음씩 움직였다.

솨아아아---

자소궁 뒤뜰에 지어진 대의전에는 많은 도사와 도인들이 몰려 있었다.

혜자배는 최소한의 관리 인원만 빼놓고 다들 참석한 듯했고, 그 위 서열인 옥자배도 드문드문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무당의 미래를 결정하는 날이 될지도 모르니,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적은 수로 계단 아래에 같은 항렬의 명자배 도인들도 보였지만, 진무관주는 그쪽으로 눈도 돌리지 않았다.

괜히 아는 척했다가는 서로 피곤해질 뿐이다.

“왔느냐.”

“……?”

일부러 누구에게도 아는 척하지 않는 진무관주에게, 한 노인이 말을 걸었다.

혜자 진인. 자소궁 도관주이며 무당에서도 손에 꼽는 노고수.

그를 본 진무관주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아…….’

알아챈 것이다.

그 역시 제3의 힘을 익히고 있었다.

‘이미 물들었구나.’

근래에 들어서 그는, 상대가 제3의 힘을 익혔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게 되었다.

정확히 어떤 원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제3의 힘이 풍겨내는 특유의 기류. 그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 것이다.

‘내 생각보다 더 심각했구나.’

도명으로 명유. 이제는 진무관주로 더 많이 불리는 그는 가슴이 아려왔다.

자신만이 아니었다. 무당의 공부가 너무 어려워, 외문의 배움을 익힌 이들은 사숙들 사이에도 있었다.

그건 자신만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도 주었지만, 동시에 먹먹한 슬픔도 주었다.

어쩌다가 무당의 무공보다 제3의 힘을 더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변해버리고 만 것인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하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잠시 서 있거라. 좌중에 간단히 상황을 설명한 뒤, 네 대련 상대를 불러주마.”

“……대련 상대 말씀이옵니까?”

진무관주는 혜자 진인의 말에 잠시 갸웃했다.

혜진 도장을 압도적으로 쓰러트린 그날, 분명히 장문인과의 대련이 약속되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정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참관한 장문인이 있는데도 말이다.

“자. 다들 아시다시피 오늘은, 외문 무공을 익혀 무당에 도전하는 진무관주와 그 힘을 제압하려는 무당의 싸움입니다.”

우우웅.

심오한 내공이 실린 목소리. 혜자 진인은 진무관주의 생각과 전혀 다른 주제로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 진무관주가 상대할 자는, 무당의 검진을 펼칠 수 있는 고수들입니다. 그럼 무대로 올라오시오.”

‘……검진?’

약속과 달라진 상황. 갑작스레 검진이라는 말이 나오자 미간이 좁혀진 진무관주.

탁. 타다닥!

그 순간 공중을 돌며 접근하는 인물들이 있었다.

딱히 비무대라는 건 없었지만, 중앙에 그어진 선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어딘가 낯이 익었다.

‘사제들? 거기다 저건 삼재진?’

삼재진은 천, 지, 인을 본 딴 가장 기본적인 진.

무당을 대표하는 검진 중 하나로, 개개인보다 월등히 강한 고수를 상대로 싸우는 합벽검진이었다.

진무관주는 굳은 얼굴로 혜진에게 말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

삼재진이 훌륭한 검진인 건 안다.

무당검수 셋이서 톱니가 맞물리듯 쉴 새 없이 돌아가며 공격을 퍼부어, 적을 제압하는 방식이라는 것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자신에겐 털끝만치의 상처도 입힐 수 없다. 제3의 힘 때문이 아니라, 본래도 그랬다.

이미 이른 나이부터 화경에 오른, 그야말로 절대고수. 진무관주 명유다. 삼재진 정도는 손쉽게 파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걸 모르는 이가 없을 텐데.

굳이 이렇게까지, 흡사 무당의 사람이 아닌 취급을 받으며 싸워야 하는 현실이 구슬퍼진 것이다.

“절차대로 진행하고 싶다고 하네. 이쪽도 후회 없는 싸움이 되기 위해서라나.”

“……알겠습니다.”

의미를 잠깐 헤아리던 진무관주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무당파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악역이 되는 건 이미 감수하고 왔다.

자신으로 인해 위대한 무당의 앞길이 밝혀진다면 악역이 무언가, 악귀도 될 수 있음이거늘.

투욱. 투. 툭.

삼각의 대형으로 선 이들.

다들 명자배 중에서도 사제들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 중에는 제3의 힘을 가진 자들이 없었다.

‘이 정도로는…….’

나름 수련을 많이 쌓았는지 검진의 형태, 그리고 조화가 아주 단단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뿐이다. 진무관주는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가볍게 손가락을 꼽았다.

‘이 초.’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혜자의 말과 함께 도인들이 서로 ‘잘 부탁드립니다.’로 예의를 갖췄다.

차자작. 착.

그리고 곧장 전투에 들어갔다.

다른 기수식 자세를 취하며, 힘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삼재진. 나름 훌륭한 검진이지. 허나…….’

진무관주는 그 약점을 알고 있었다.

제각각 힘의 크기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대형. 물레방아가 내려가는 것처럼 순차적으로 흘러가며 위력이 강해진다.

일부러 허술한 부분을 보여, 공격을 유도. 빠르게 역습을 가할 의도겠지만, 그게 오히려 약점이다.

첫 선수를 날린 자를 제압하면, 삼재진은 그대로 무너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압!”

진무관주는 일순 도약하며 달려오는 명자배 사제의 얼굴을 슬쩍 보고, 반 박자 빨리 발을 내디뎠다.

후욱!

동시에 함께 질러버린 정권.

기습적이고 빨랐다. 아니, 너무도 빨랐다.

“으……?!”

퍼어어억!

명자배 중년인은 뒤로 퇴로를 밟을 시간도 없이 그대로 맞고 떨어져 나갔다.

쿠당탕!

그리고 주춤하는 나머지 두 사람.

본래 한 명이 위기에 처하면, 다른 두 명이 막아서며 대열로 돌아가는 것이 삼재진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런 검진의 운용조차 무의미했다.

방어 자체를 무너뜨리는 진무관주의 공격.

그에 물처럼 흘러나와야 할 연환은 깨어졌다.

“일 초였군.”

“…….”

“…….”

뜻 모를 진무관주의 말에, 장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압도적이었다.

첫 공수도 제대로 주고받지 못하고 그대로 붕괴되어버린 삼재진. 이를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다, 다음 올라오시오.”

목소리의 떨림이 가려지지 못한 혜자가 다음 이들을 호명했다.

툭. 타다닥. 우르르르.

기다렸다는 듯 다섯이 올라왔다. 그 모습을 보던 진무관주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만하시지요. 의미 없는 대련입니다.”

“그래도 절차를 따라주게. 이 모든 건 어찌 보면 다음을 위한 일이야.”

“…….”

진무관주는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삼재진 다음으로 나온, 다섯이 펼치는 검진.

당연히 오행검진(五行劍陳). 다섯 명이 다섯 방위를 점한 뒤, 적을 무너트리는 진법이다. 삼재진보다 훨씬 강력할 뿐만 아니라, 무당을 대표하는 검진이라 할 수 있었다.

‘후우.’

진무관주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지금 나선 이들은 사숙뻘인 해자배의 어르신들. 당연히 앞서 나선 명자배의 이들보다 월등한 능력을 보여줄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승리를 자신했다.

그저 화경에 막 들어선 단계라면, 이 정도의 능력으로도 막상막하의 승부를 볼 만했다.

허나, 자신은 화경의 끝에 다다른 인물.

오행검진의 변화에 개입해서, 흐름을 바꾸기만 해도 힘의 위력이 줄어들고.

이형환위를 통한 궁극의 경공술로 제압하면 오행검진 정도는 파훼해 낼 수 있었다.

장년인 다섯 중 한 명이 나서서 ‘가르침을 내려주시겠습니까.’라며 예를 표했고, ‘가르침을 받겠습니다.’라고 말하며 그렇게 인사말을 맺었다.

“시작합니다!”

채채채채챙.

일사불란하게 다섯 방위를 점하는 이들.

앞선 이들과 달리 검을 꺼내고 대형을 가다듬으며 진무관주를 포위했다.

‘그렇게 원한다면…….’

진무관주는 앞서 삼재진처럼 오래 끌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시간이 흘러봐야 부상자만 나올 것.

차라리 단번에 끝내 인정받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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