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화. 제3의 힘 (1)
“하앗!”
선공은 우측에 있는 이였다.
우웅.
묵직한 힘이 실린 일초. 확실히 삼재진보다 훨씬 더 빠른 동작으로 일순 위협을 가했다.
스윽.
진무관주는 진력이 담긴 검기의 근원이 태극기공(太極氣功)임을 쉽게 알아챘다. 그는 상체를 뒤로 눕히는 이어타정으로 쉽게 피해냈다.
타앗!
회피와 함께 무방비한 모습이 드러나자, 이번엔 좌측에서 달려들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았던 진무관주가, 용수철처럼 허리힘으로 일어섰다.
휘리릭. 퍽!
그는 공격을 피하기는커녕 앞으로 파고들어, 상대가 손을 뻗기도 전에 어깨로 들이박은 뒤.
쿵!
땅을 내리치며 기류의 흐름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기자.
“어?!”
“어!”
주르르륵!
대형에 있던 남은 이들이 일제히 빨려 들어오는 기현상을 보였다.
그리고.
쩌어엉!
진무관주 앞에서 다시 튕겨나가는 장면이 이어졌다.
그 모습에 누군가 외쳤다.
“격공섭물!”
“저건 십단공이 아닌가!”
좌중의 경악한 목소리와 함께 상황은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엄청난 무위에 잠시 당황한 혜자가 바라보자.
“손속에 사정을 두어 감사합니다.”
진무관주는 예를 표하며 오히려 상대가 봐주었다는 투로 대답했다.
“…….”
“…….”
좌중에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쓰러졌던 이들은 주섬주섬 몸을 일으켜,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다가 돌아갔다.
힘의 차이는 누가 봐도 명백했다. 더는 사람들이 언급하기 힘들 정도로.
혜자는 입에 침을 묻히며, 다시금 말했다.
“그다음은…….”
“그만하시오.”
그리고 이번에 그의 입을 막은 건, 진무관주가 아닌 장문인 혜우 선인이었다.
“장문인…….”
“그쯤 했으면 되었소. 더는 진무관주에게 예의가 아닌바.”
그는 자리에서 담담히 일어서며 말했다. 그리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왔다.
“허나, 장문인…….”
“그만. 아직 모르겠소? 이 이상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장문인은 턱짓으로 주변을 가리켰다. 그에 혜자는 더는 입에 담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그 자리에서 빠져주었다.
그러자, 대의전 중앙엔 진무관주와 장문인만 남게 되었다.
“난처한 상황을 막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진무관주가 포권을 취하자 혜우 선인이 손사래를 쳤다.
“아니다. 나 역시 사과하마.”
그는 장문인. 무당파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위치였다. 그리고 짐이 무겁다고 피하는 성정의 사람 또한 아니었다.
“직접 개입하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몰랐다고 할 수는 없는 일. 모든 것은 미리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내 부족함 때문이다.”
“…….”
진무관주는 살짝 가슴이 울컥했다.
그랬다. 이런 장문인이었기에 그간 불만을 말하지 못했다.
장문인의 인덕 때문에, 어떻게든 참고 참으며 버티다가 결국에는 무너져서 쉬운 길로 향한 것이다.
자신들만의 간절함을 알아달라고 하기엔, 혜우 선인이 가진 짐이 너무도 무거웠다.
문파의 가풍을 지켜야 하고, 외문의 무공에 대한 두려움이 이런 형태로 보일 수밖에 없던 제자들의 마음 역시도 헤아려야 했으니까.
“여러 사백과 사숙 어른, 그리고 나의 사형제들. 또한 일대제자까지 모두 들으시오.”
장문인이 주변을 돌아보며 외쳤다.
내공이 담긴 저음의 목소리는 청아하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울림이 있었다.
“나와 진무관주의 대련은 오직 승패를 가늠하기 위해서만 있는 게 아니오. 오늘날 무당에는 출처가 불분명한 외문의 힘을 얻게 된 이들이 있소. 어디까지, 얼마나 뻗어있는지 알 수 없는 실정에 처해있지.”
그는 자연스럽게 군중의 여기저기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흠칫흠칫 어깨를 움츠리는 이들을 보고도 그는 모르는 척해 주었다.
“나는 무당을 대표하는 장문인으로서, 외문의 무공을 익힌 이들에게 꼭 해줄 말이 있어서 온 것이오.”
할 말이 있다. 그 말이 널리 널리 퍼져 나갔다. 무당의 장문인은 잠깐 뜸을 들였다.
“이번 일에 불미스러운 것이 있다면, 그건 모두 이 혜우의 잘못이오. 불초가 무당을 대표하는 장문인의 자리에 올라, 과연 무당을 잘 이끌었던가. 나는 어리석은 자라, 무당의 앞날을 더 어둡게 만들었소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장문인!”
혜우가 자신의 책임을 말하자, 좌중 여기저기에서 아니라는 외침이 있었다.
“들으시오! 지금 불초는 무당의 장문인으로서 말하는 바!”
쩌렁쩌렁.
자신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오히려 눌러 버린 후, 혜우 선인은 말을 이었다.
“한 문파를 이끄는 장문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오?”
“…….”
“…….”
잠시 좌중에 침묵이 감돌았다.
장문인이 할 일? 그건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도 많은 방향이 있었다.
문파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
제자들을 가르치고 키워 고수로 만드는 것.
잊히거나 실전된 절기를 다시 복원하는 것.
정도문파이자 유서 깊은 문파로서, 강호의 중요한 본이 되는 것 등.
어떤 이는 성공하고, 어떤 이는 실패한다.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불초는 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 못했소. 직함을 가지고 해야 할 일들에 실패했소.”
“…….”
“…….”
그렇기에 어렵다. 그렇기에 도인들의 마음을 울렸다.
혜우 선인은 무당파의 모든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권위를 드높이지 않고 오히려 내려놓았다.
이로 인해 령은 서지 않을지 모르나, 심정적으로는 모든 이들의 지지가 모이게 되었다.
“그저 재주 있는 이를 뽑아 요행에 맡긴 것.”
“문파의 절기를 해석하고, 여러 선열들의 의도와 오의를 연구하고 심혈을 기울여야 하나, 그러지 못한 것.”
“수많은 무당의 제자들이 어려움과 막막함을 호소할 때, 그저 개개인의 역량으로 극복하라고 책임을 떠밀어 버린 것.”
“무당에 외문의 힘을 얻으려 하는 이들이 생겼음에도, 그걸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은 어리석음.”
“결국 불초의 잘못이오. 내가 부족하여 무당이 오늘 이런 일까지 겪게 되었소. 지금 이 자리에서 무당의 장문령부를 걸고 말하거늘!”
실로 참담하도록, 모든 일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는 말을 하고, 마지막으로 쩌렁쩌렁하게 목소리를 끌어올린 무당의 장문인.
“탓하지 마시오. 모두 내 잘못이오. 조금이라도 본문에 보탬이 되고자, 오물임을 알면서도 거기에 손을 넣어 무언가 건지려 한 동문의 제자에게, 결코 비난을 보내지 마시오.”
“…….”
“그들 또한 여러분과 똑같은 무당의 사람들. 그저 잘못된 때에 잘못된 실수를 했을 뿐이니까.”
뒤이어 다정한 할아버지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좌중 여기저기서.
“허.”
“으읍.”
갑자기 입을 틀어막는 이.
눈시울을 붉히며 오열하는 이.
이유 없이 기침을 하며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는 이들이 나타나 어깨를 들썩였다.
그 모습은 당연히 주위의 시선을 끌었고, 고스란히 드러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모두의 앞에서 제3의 힘에 손을 뻗은 이가 얼마나 되는지 확연하게 보였다.
“진무관주가 있어서 다행이오.”
웅성웅성…….
좌중이 술렁였다. 어찌 보면 기존의 체제에 반기를 든, 외문의 힘을 꺼내든 그를 향해 장문인은 오히려 칭찬을 했다.
“그 또한 심려가 있었을 것이요. 걱정도 많았을 것이오. 자랑스런 무당의 제자가, 구정물일지도 모르는 외문의 힘에 손을 뻗게 되기까지는 보통의 고민이 아니었을 거요.”
“고작 서른이란 젊은 나이에 화경에 오른, 미래가 창창했던 무당의 별. 그도 비난받을 것을 뻔히 알았을 거요.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면, 그저 침묵하는 쉬운 길을 택할 수 있었겠지.”
끄덕.
끄덕끄덕.
좌중이 모두 동조했다. 기실 현 무당 장문인인 혜우 선인이 물러나고 나면, 그 뒤를 이을 가장 유력한 후보가 다름 아닌 진무관주.
그냥 가만히 몸만 사려도, 언제고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는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그는 스스로 자신의 부덕을 보이고, 모두에게 심판받을 수 있는 길을 용기 있게 걸었소.”
읍. 크윽!
진무관주가 괴로운 기침과 함께 몸을 떨었다.
“겉으로 단단해 보이는 무당의 그늘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힘겨움이 있는지를. 그가 솔선하여 나선 덕분에 이 귀 막힌 장문인 놈도 알게 되었소. 이 놀라운 용기에, 나는 장문인으로서 그에게 경의를 표하오.”
척. 스윽.
혜우 선인은 말을 멈추고 두 손을 모아 포권의 예를 갖추어 보였다.
진무관주 명유는 그에 허둥지둥 답례하며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게 아닌데…….’
자칫 자신의 외문 무공이 태극을 이긴다면, 그는 무당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고 선포하는 이가 된다. 때문에 진무관주는 악인이어야 했다.
하지만 혜우 선인, 장문인은 오히려 그를 크게 높이 세우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이대로 흘러가는 게 맞는지 그가 고민할 때.
“허나 그렇기에 나는 내 사질, 자랑스러운 화경의 고수를 꺾을 것이오. 이 자리에서.”
“…….”
말이 떨어져 내렸다. 진무관주는 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웅성웅성. 수군수군.
그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무당파의 제자가 전율을 느꼈다.
장문인은 반기를 든 진무관주를 높이고, 제3의 힘을 익힌 이들을 탓하지 말라고 모두에게 말을 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내비치며, 분란 대신 화합에 힘쓰라고, 부드럽게 사람들을 휘감은 뒤.
“비록 사람을 이끎에는 부족함이 있을지 모르나, 무당의 태극도사로서 이 혜우보다 뛰어난 자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기에. 무당의 진신절예를 배움에 있어서는 나 또한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자부하는 바.”
그는 힘주어 목소리를 높였다.
“제3의 힘. 그게 어떤 능력이든, 무당의 뿌리 깊은 역사를 제칠 정도의 힘은 아니라는 것을, 이 자리에서 보이겠소. 그러니.”
그러고는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명유 사질. 아니, 진무관주. 덤벼보시게. 와서 자네의 모든 기량을 보이게.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노부가 보여줄 테니까.”
“…….”
모든 이가 보는 앞에 선언했다.
무당은, 결코 제3의 힘 같은 것에 흔들릴 얄팍한 나무가 아니라고.
짜릿!
전신의 솜털이 일어나는 것을 느낀 건, 진무관주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였다.
우우우우…… 와아아아!
함성이 터져 나왔다. 도인이라는 신분을 잊고, 지금 무당파의 모든 이들은 두 무인의 대결에 열광했다.
“하…… 이것 참.”
턱. 턱. 턱.
천천히 중앙으로 걸어오는 장문인. 진무관주가 보기에 그의 눈은, 어느새 촉촉이 젖어 있었다.
“과연 장문인이십니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피해를 각오하고, 오명을 뒤집어쓸 생각으로 준비했다. 하지만 장문인 혜우는 이놈이 어딜? 하는 투로 몽땅 들어 자신이 집어삼킨 것이다.
이 대결에서 이기든 지든, 사질인 진무관주가 겪을 피해와 여파를 모두.
자신의 몫으로 미리 돌려 버렸다.
“이 짓도 못 해먹으면 어쩌겠냐? 명색이 장문인인데.”
“하여간…… 이렇게 장담해 놓고 지면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혜우 사숙.”
“얼씨구? 이놈 보게. 네가 뭘 그리 자신만만해하는 건지, 지난번에 뇌격을 보긴 했다만.”
스르륵. 휘우웅.
호기를 잔뜩 부리며 혜우 장문인, 무당파 최고의 태극권 고수가 한 손을 빙글 돌려 자세를 취해 보였다.
그와 함께 천천히 일어나는 뚜렷한 태극의 문양.
“태극만 들입다 판 게 오십 년이다. 낭패 안 보려면 명유. 너도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어야 할 게야.”
“……정말이지, 말씀만은 천하제일이십니다.”
휙. 스륵.
진무관주 또한 두 손을 모으며 연장자에 대한 기수식을 펼쳐 보였다.
휘르륵.
외문의 힘이 담겨있기는 하나, 그 역시 겉으로 펼치는 것은 태극이었다.
무당 대 무당.
최강을 가리는 싸움이다.
“클클클. 늙으면 입만 사는 게지. 나는 말이지. 물에 빠지면 죽지도 않을 게야. 입이 동동 떠올라서…….”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부디 건투를!”
화악!
흐물흐물하게 농지거리를 흘리던 장문인. 혜우 선인의 기세가 삽시간에 변했다. 본격적인 대무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지릿지릿.
“음.”
답답한 위압감. 태풍처럼 무거운 기세가 몰려들었다. 진무관주는 침음을 토하며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자세를 취했다.
두 도인의 거리는 삼 장.
스륵. 스륵.
서로가 노려보는 가운데 느릿하게 손이 움직였다.
삭. 사삭. 삭.
진무관주가 여러 번 손을 휘저으며 자세를 바꾸었다. 별 의미는 없었다. 그의 본신 무예는 이미 태극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으니까.
‘느리다.’
뇌전이라는 극쾌의 심공을 얻은 지금, 그에게 보이는 혜우 선인의 태극권은 한없이 느리고 느슨해 보였다.
‘허나…… 가늠할 수 없다.’
그럼에도, 섣불리 먼저 들어갈 수가 없었다. 권역에 들어서는 순간, 태풍 속의 나비처럼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휘말릴 것이 직감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서로의 시선이 허공에 얽혀들어 갈 때쯤.
“안 오는 게냐?”
“…….”
“그럼 이 몸이 먼저 가지.”
스스슥.
장문인이 먼저 움직였다.
쿠웅!
느림이 순식간에 태풍으로 덮쳐왔다.
독사출동. 굴에 숨은 뱀이 돌격하듯이 눈 깜짝할 사이 들이박듯 매섭게 찔러 나오는 정권. 민첩을 위주로 펼치는 구궁장공(九宮壯功)의 요결이었다.
“흡!”
타닥. 팍!
그런데, 그걸 진무관주가 한 발짝 뒤로 움직이는 것으로 아슬아슬하게 막았다. 자연스럽게 서로 팔끼리 맞닿게 되자, 보는 이들은 생각했다.
첨연점수.
서로 한 점으로 가볍게 맞붙은 상태를 말하는 것인데, 지금은 보통의 무인 수준이 아닌 무당파의 절대고수들 간의 점연추수였다.
“……허면, 이번에는 제가 풀어보겠습니다.”
엉킨 상태에서 공격을 시작한 것은 진무관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