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화. 제3의 힘 (2)
탁. 타타탁.
빛살처럼 손들이 오갔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진무관주.
빙글. 탁!
손을 내림과 함께 상대의 팔을 자신 쪽으로 잡아끌었고, 또한 원으로 회전시켰다.
뿌리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탁. 타닥.
그러자 장문인은 상대의 팔목을 잡아 올리며, 상대 역시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동시에 다시 힘을 주면서 잡아끄는 동작과 함께.
슈슉!
상대의 턱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팟!
진무관주가 잡았던 상대의 손목을 놓으며 피해냈고, 오히려 반격을 시도했다.
장문인은 예상이나 한 듯 두 손으로 방어했고. 그의 손이 다시 한번 진무관주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허초?’
탓.
진무관주는 빠르게 반응하며 반격하려 했지만, 상대는 이미 오히려 뒤로 물러나 있었다.
‘신법을 통한 눈속임인가?’
그리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두 걸음 멀어진 곳에서 장문인은 양손바닥을 겹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 단어가 퍼뜩 떠올랐다.
‘면장공(勉障功)!’
밀면서 때리는 기공법 중 하나인 면장공을 펼쳐낸 것이다.
퍼어어억!
기공이 발출됨과 함께 진무관주의 몸이 크게 뒤로 날아갔다. 하지만 그는 몸의 균형을 곧장 잡았고, 착지하자마자 태극의 동작으로 충격을 갈음했다.
“후우.”
“스읍.”
양쪽 다 호흡을 고르는 가운데, 좌중은 열화와 같이 끓어올랐다.
와아아아! 우와아아!
한 명은 진무관주, 또 한 명은 장문인.
단어 그대로 무당파 최고수 두 사람의 대결이다. 그들이 펼치는 태극권의 정수를 보고 가슴이 끓어오르지 않는다면 무당파의 문인이 아니리라.
먼저 장문인이 펼쳐낸 면장공.
무당파의 기공 중 가장 기본적인 기예로, 하체에서 시작된 발경의 힘이 허리를 지나 어깨와 팔까지 그대로 소용돌이치며 뻗어나가는 힘.
세간에서 태극권은 그저 물처럼 부드럽기만 하다는 각박한 평이 있다. 하지만 그 물이 소용돌이치는 와류로 변하면, 통나무나 바위도 그대로 꺾어버리는 일초필살의 위력을 가지는 법.
이것을 장문인이 펼쳤고, 또 그걸 공중에 붕 뜬 상태에서 대응한 진무관주였다.
사량발천근.
작은 힘으로 큰 힘의 방향을 바꾸어 버리는 태극권의 정수 중의 정수. 날아가는 와중에 그걸 사용해서, 장문인의 면장을 해소해 날려버린 것이다.
스르릉.
활화산처럼 들끓는 환호 속에서, 장내로 쇳소리가 서늘하게 퍼졌다.
장문인이 검을 꺼내는 소리였다.
스릉.
뒤이어 진무관주도 손에 검을 쥐었다.
마치 이제까지의 대결은 그저 예의로 보인 것이고, 진짜 생사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걸 알리는 듯했다.
팟.
장문인과 진무관주. 둘은 동시에 뛰어들었고, 그때부터 보는 이들의 눈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휘휙! 파바박! 카각! 챙!
순식간에 수많은 무공이 지나갈 정도로 그들의 치고받는 동작이 빠르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검과 검이 둥글게 부딪히고, 때론 검이 아닌 주먹. 그리고 다리로 상대를 공격하기도 했다.
쾅! 쾅!
장문인이 몸을 회전시켜 발로 내리찍자, 진무관주는 같은 회전 동작으로 무릎으로 쳐올렸다.
반발력으로 둘 다 밀려나자, 다시 지면을 딛고 서로의 발차기가 이어졌고.
이번엔 진무관주가 밀렸다.
파앗.
하지만 진무관주는 마치 이걸 노린 듯이, 장문인이 지면을 밟기 전에 기습적인 검기를 쏘아냈다.
퍼드드등!
그러자 장문인은 거기서 또 하나의 절세신법을 보여줬다. 떨어지던 중 허공을 밟으며 다시 한번 튀어 오르는 묘기를 선보인 것이다.
“제운종(梯雲縱)이다!”
“아…….”
“우와…….”
지켜보던 이들은 승패를 까맣게 잊고 감탄하기에 바빴다.
화경에 오른 절대고수들이 펼치는 무공.
이들의 펼치는 것은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연계된 무예. 둥글게 모아 직격으로 나가니, 흡사 그 자태가 두 사람의 춤사위와도 같았다.
그러니 전투 중 승기를 잡은 인물이 계속 뒤바뀌고 있었다.
스으으으으.
잠시 서로 한발 물러섰다. 대치 상황이 생겨나자, 장문인이 물었다.
“이번엔 자네가 올 텐가?”
진무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질이 좀 더 진지하게 가겠습니다.”
“기대하겠네.”
스윽.
진무관주는 자연스럽게 검을 원형으로 돌리며 기류를 모았다.
그리고 그 모인 기류에 미미하게 파동을 담았다.
기류 속의 파동.
그걸 본 장문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십단금……?”
스으으- 파아아아악-
형태는 익숙했지만, 그 내용은 단순한 십단금이 아니었다. 본래 무당이 추구하던 십단금보다 월등히 높은 성취의 십단금.
기류 자체 안에 폭발적인 파동이 담긴, 어찌 보면 강기보다 한 차원 높은 힘이었다.
꾸욱.
장문인이 자세를 낮췄다. 그 또한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의 힘이라는 걸 알아보고 있었고.
“자, 이것도 한번 받아보시지요.”
준비를 끝마친 진무관주의 검 끝이 장문인을 향했다.
파아아아--
검신에서 뻗어 나온 십단금의 힘은 예상을 벗어났다. 날카로운 직선의 검기가 아니라, 부채꼴처럼 넓게 퍼져 쏘아진 것이다.
“하압!”
그사이 장문인은 두 팔을 들어 올려 막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저 강력한 기류에 대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드드드득!
공간을 흔들어버릴 것 같은 십단금의 파괴적인 기운은 이내 장문인의 영향 안에 들어왔고, 동시에 태극의 기운과 얽히며 강하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으으으…….”
툭. 툭.
쉽지 않아 보였다.
장문인의 코와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일격을 막아내는 데 실핏줄이 모두 터졌다.
아무리 사량발천근, 넉 냥으로 천 근의 힘을 흘려낸다 하나, 천 근이 아니라 만 근, 십만 근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 짓쳐들어오는 십단금의 파동. 그건 태극의 이치로 돌려보내기엔 너무도 강했던 것이다.
그그그그극---
미친 듯한 태풍이 불어닥쳤다. 하지만 혜우 또한 무당의 장문인. 그는 내상을 입는 것을 감수하고, 전력을 다해 태극의 묘를 운용했다.
드득. 드득. 그그극.
그리고 놀라운 광경이 이어졌다. 만 근을 가볍게 넘을 엄청난 힘의 파도가, 기어코 태극의 둥근 힘에 비껴 나갔다.
“으아아아!”
잠력까지 쥐어짠 장문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십단금의 파괴적인 힘은 곧 방향을 바꿔, 원래 쏘아냈던 상대에게로 날아갔다.
“헙!”
진무관주의 머릿속에 경종이 울리고 있었다.
실로 불가해(不可解). 결코 사량발천근으로 통제할 수 없는 정도의 힘을 쏘아냈는데, 예상을 깨고 그 기류가 돌아오고 있었다.
쏘아낼 때는 호쾌했지만, 그 격류의 파도가 자신에게로 돌아오자 일순 어찌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과연 장문인이라고 할까. 태극의 묘리로는 장문인 혜우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인정했다.
저 거대한 힘을 자신이 받아내려 하다가는 끔찍한 내상을 입을 터.
“할 수 없지.”
결국 그는 고민 끝에 선택했다.
더는 사정을 봐줄 수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저 힘을 태극의 기예가 아닌, 다른 힘으로 완전히 박살 내버리는 것뿐.
우우웅.
진무관주의 검에서 나지막한 울림이 일었다.
파지직. 파직!
그리고 일어나는 뇌전.
쩌어엉!
“헉!”
“으엇!”
이어진 뇌성벽력에 모두가 경악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문인이 날린,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 같은 실로 공포스러운 기운.
그것이 진무관주에게 닿는 그 순간, 뻗어 나온 뇌기의 줄기가 너무도 쉽게 기류 속 파동을 갈라버리는 장면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소멸.
힘을 가르거나 비트는 것도 아닌, 완벽한 제압.
그 압도적인 모습에 장문인도 놀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더는 숨기지 않겠습니다.”
파지직. 파직!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진무관주는 뇌기가 튀어 오르는 검을 들어 올렸다.
“외문의 무공을 펼칠 테니, 한번 받아보시겠습니까.”
그리고 선언했다.
이제는 태극, 무당의 힘은 여기까지. 더는 사용하지 않기로.이는 일종의 경고였다. 앞으로는 대련을 넘어선, 생사를 다투는 싸움이 될 거라고.
“언제든지.”
장문인도 자연스럽게 검을 세우며 말했다.
그 역시 이런 순간을 기대하고 있었다.
얼마나 강할지.
자신이 얼마나 무력할지. 그걸 직접 받아보기를.
***
“저기…….”
대의전 앞에서 설휘는 머리를 긁적였다.
검문관으로 보이는 도사들이 문을 반쯤 열고 안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흠!”
설휘의 존재를 깨달은 이들은 순간 당황한 눈으로 변하더니, 이내 엄숙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일이시오?”
“진자 항렬의 휘라 합니다. 진무관주님의 초청을 받아 이곳에 왔는데,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
검문관 둘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걱정스레 미간을 좁힌 이가 말을 걸어왔다.
“하명된 인원 외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으나…….”
“아니, 아니. 진무관주께서 한 말도 사실이기에, 뭐. 들어가도 될 거요.”
그 말을 다른 이가 제지했다.
모호한 답을 들은 설휘는 반쯤 열린 문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싸움이 점입가경으로 흘러감을 직감했다. 분출되는 뇌기를 직접 목도했으니까.
츠츠츠츠.
혜우 선인은 검을 든 손을 보았다.
한순간에 지져진 뇌기가 아직까지 감돌고 있다.
상대의 기운을 흘리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태극의 힘에 전혀 비껴나가지 않고, 뚫고 들어와 그대로 손을 가격해버린 것이다.
“화경에 오른 태극을 벗어나는 힘이라니…….”
장문인은 진무관주가 사용하는 뇌기를 십단금처럼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팔을 뻗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히 태극이 존재하는 흐름 속에서, 뇌기는 사납게 움직이며 자신을 때렸고, 또 흐름까지 부숴버렸다.
추욱.
거의 익혀지다시피 한 팔이 늘어졌다.
“다시 한번 가겠습니다. 이번엔 좀 거칠 겁니다.”
촤아아아악.
진무관주가 뿜어내는 뇌전이, 이전의 몇 배로 팽창했다.
따당!
마른하늘에서 내려찍힌 뇌기가, 대의전의 천장 일부를 뚫고 그 힘을 발휘했다.
그 모습은 가히, 좌중을 모두 뇌전의 힘으로 뒤덮을 듯 보였다.
‘가만있으면, 당한다.’
뇌기를 본 장문인은 판단했다.
어떻게든, 무언가 방어나 저항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파팟.
최선의 방어는 공격. 그렇게 마음먹고 장문인은 검을 뻗어냈다.
“하앗!”
진무관주에 채 검이 닿기 전에 펼쳐낸 검초. 그런데 흘러나온 검기는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었다.
좌, 우, 아래.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 쏘아진 것이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쉬이이이.
검 끝에 맺힌 기류는 안개처럼 주변을 흐리게 만드는 효과도 보여주고 있었다.
칠십이초 요지유검(繞指柔劍)과 유운검법(流雲劍法). 무당을 대표하는 검법을 동시에 2개나 펼쳐낸 장문인이었다.
쩌엉!
허나, 그 화려한 검초가 무너지는 건 단 한 번의 휘두름에 의해서였다.
뇌기가 검기를 삽시간에 분쇄해 버렸고, 안개를 뚫고서 정확하게 장문인의 어깨에 박혔다.
“크읍!”
휘청.
진무관주를 향해 달려가려던 장문인의 발걸음이 막혔다. 끔찍한 충격. 급히 태청심법으로 몸을 보호했지만, 대부분 막아내지 못했다.
“으드드득!”
파직! 파직!
온몸에 끔찍한 충격이 달렸다. 오장을 뒤집으며 온 기혈이 역류하려 했기에 그는 급히 몸을 다스렸다.
거기서 장문인은 목격했다.
치지지지지!
방금 전보다 한층 더 강해진 뇌기의 힘을.
“아!”
“이건…….”
세 번째로 생성된 뇌기는 말 그대로 전류의 폭풍이었다. 천지만물 간에 가장 강하다는 뇌기가, 벼락치듯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드드드득.
그 힘을 다시 검에 모으는 진무관주. 일대 장관을 일으켜 보이며, 그는 맞은편에 있는 노쇠한 표정의 장문인을 보고 말했다.
“장문인. 이젠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그래. 오너라. 언제든지.”
열의는 꺾이지 않았으나, 그는 툭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이었다.
실제로 받아친다는 확신도 없었다.
‘이대로 죽는구나.’
하지만 그는 무당파의 장문인으로서, 거대한 절벽 앞에서도 절대로 피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죽는다 해도.
그걸로 여기서 끝내고 싶었다.
무당이 언제 비굴한 모습을 보였던가. 비록 말하지 않아도, 자신을 따르는 이들의 길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여기서 모든 걸 결판내고 싶었다.
‘태극…… 나의 삶…….’
그는 이미 한 번 실패를 맛본 태극의 기류를 다시금 재정비했다.
되든 안 되든, 자신의 삶을 부어온 이것으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었다.
늘 자신의 앞에 의문을 제시하고, 길을 알려주었던 태극과 함께 말이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진무관주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검을 들어 올렸다.
치지직. 파지지직!
뇌기의 번쩍임을 장문인은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직감했다.
감히 자신 따위가 맞설 수 있는 게 아님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저 강함에 그저 무릎 꿇을 수밖에 없음을.
안타깝게도 그가 아는 태극은 저 거대한 힘 앞에서 그저…….
그저 무력한…….
스으으으으-
아스라이 펼쳐진 태극이, 뇌기의 폭풍 앞에서 무너졌다.
동시에 그는 기적을 보았다.
스르륵.
“……?”
무너지는 태극 속에서, 또다시 피어오르는 태극.
분명 자신과 같은 태극이었다.
그런데 진무관주의 뇌전이 자르고 잘라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거짓말처럼 계속해서 태극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건 대체……?’
중심이 자신이 아님을 느낀 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의 옆에, 아니 태극의 중심에 선 사내를 목도했다.
“약해 보이고 느려도, 결국 먼저 이른다.”
설휘였다.
이 싸움에 개입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제가 한번 겨뤄봐도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