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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뮬레이션-387화 (366/379)

387화. 제3의 힘 (3)

“너, 너는 혜윤이 거두었다고 하는…….”

무당파 장문인, 혜우는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길 바랐다.

한 달이 좀 넘었던가. 진무관주가 데리고 온 사내. 그를 기억해 낸 것이다.

“예. 맞습니다. 얼마 전 무당에 입문한 진자 항렬의 진휘라고 합니다.”

“그래……. 노부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방금 거대한 태극이 일어났는데. 혹시……?”

“부족한 소손(小孫)의 재주이옵니다.”

“……!”

장문인의 눈빛에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생을 포기해서라도 지켜내고 싶었던 태극. 허나 강대한 외문의 힘에 곧 무력감을 맛보며 좌절하던 때에 나타난 새로운 태극.

극과 극이었다.

잠깐이나마 더할 나위 없는 안도감이 들었고, 동시에 불신과 경외의 감정이 일어났다.

자타공인. 무당에서 태극에 관해서만은 제일이라고 자부했던 그에게, 최소 한 단계 이상의 뛰어난 기예를 보이며 나타난 이.

그것이 전대의 절대고수도 아닌, 큰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사라진 사제의 제자라니.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를 데려온 것은 다름 아닌 진무관주. 지금 무당에 반기를 든 인물이 아닌가.

혼란에 빠진 그에게 진휘가 물었다.

“장문인. 실례가 안 된다면, 지금부터 제가 장문인의 정신을 계승해나가도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그는 현실을 다시 한번 자각했다.

눈앞의 이가 자신보다 더 나은 실력자란 사실을.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왜 그런 건지는 생각할 여유, 아니 굳이 그럴 의미조차 없었다.

“뒤를 맡아주겠나?”

태극. 외문의 무공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태극.

그걸 보여준 이를 믿지 않으면, 다른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함께하겠습니다.”

장문인은 다시금 정신을 다잡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아직 어떤 연유인지를 모르는 무당의 사람들에게 말을 이었다.

“그는 혜윤 사제의 제자였소. 얼마 전까진 무당에 새로 입문한 도인이었고. 하지만 오늘은.”

목소리에 내기를 실으며 말을 이었다.

“외문의 무공으로부터 옛 정신을 지켜줄, 우리 무당의 미래요.”

“……!”

“……!”

장문인의 말에 사람들은 당황스러워했다. 특히 명자배 중년인, 장년인의 표정에 근심이 서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나치게 젊었다. 어쩌면 약관, 많이 보아주어도 고작해야 서른이나 되었을까.

그런 이가 이런 중요한, 어찌 보면 무당의 존폐가 걸린 싸움에 장문인 대신에 나서다니.

하지만 장문인이 공식적으로 선언한 마당이라, 가타부타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진휘야.”

“예, 장문인.”

설휘는 몸가짐을 바로 했다.

장문인은 표정만이 아니라 음성에서도 느껴졌다. 자존심 같은 게 아니라, 이제 더는 남을 게 없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이길 수 있겠느냐……?”

설휘는 느꼈다.

그만큼 간절했을 장문인의 마음을.

자신이 안 된다는 무력감보다 더 무서운 건, 무당의 무공이 외문의 무공에 굴복당한다는 것.

그건 자신의 인생을 부정당하는 느낌일 것이다. 그러니 겨우 한 번 마주한 자신에게, 이 모든 수치스러움을 감수하고 물어보고 싶었을 것일 터.

“가르쳐 줄 생각입니다.”

“……?”

“하는 일마다 어긋나거나 싫증이 날 수도 있고, 때론 거대한 무력감에 주저앉을 때도 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돌아온다는 걸.”

“……!”

장문인의 가슴이 둥, 하고 울렸다.

눈앞의 진휘, 그의 말은 그 어떠한 말보다 마음을 벅차게 만들었다.

태극.

자신이 마지막까지 놓지 못했던 정신과 힘.

하지만 외문의 힘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그것을 가지고 싸우겠다는 말이었다.

그래서였다.

“지켜주게. 무당을…….”

그는 모든 걸 벗어던져도 된다고 생각했다.

눈앞의 사내가 해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버텨만 준다면.

그것만으로 자신은 어떤 모멸감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가진 모든 걸, 이 아이에게 넘기고 물러나겠소.”

장문인의 퇴장은 이렇게 끝이 났다. 장내의 시선은 모두 설휘에게로 향했다.

“훌륭했다. 방금은.”

상황을 지켜보던 진무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극으로 자신의 뇌기를 무력화시키는 장면을 그 역시 보았다. 장문인보다 경지가 높다는 걸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뿐.

화경의 극, 아니면 극의 극일 뿐이지 않은가. 설령 현경에 올랐다 하더라도 그것이 뭐? 하는 수준. 그만큼 진무관주는 제3의 힘, 무한한 힘에 경외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전에는 막연하게 경도되었다면, 직접 장문인의 무공을 파훼해 본 지금은, 이 힘에 그 어떤 무공도 대적할 수 없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제3의 힘. 그것도 자연계를 뚫고 들어온 뇌기. 어쩌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한 힘일지 모르겠습니다.”

“안다면 덤비는 게 무모한 일이라는 사실도 알 테지.”

“허나 길고 짧은 것은 대어 보아야 아는 법이지요. 실제로 그만큼 강한지 어떤지, 직접 경험해 보겠습니다.”

“흠. 우둔하구나. 이미 무당의 힘 따위는 종이처럼 구겨진 상황일진대, 무엇을 기대하는 거냐.”

진무관주의 눈이 일렁거렸다.

한때는 차라리 자신이 패하는 것을 바랐으나, 무당에 가지고 있던 마지막 안타까움이 사라진, 새로운 힘에 완전히 적응한 일대 종사의 눈빛이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힘을 추구하는 패자(覇者)의 눈.

그런 그의 눈길을 받으며, 설휘는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대저, 빠름의 극을 넘어서고 나면 한없이 느려진다 하지요. 태극이야말로 만류귀종의 극. 오십시오. 제가 무당의 만검으로 외문의 뇌기를 상대하겠습니다.”

“만검? 푸, 푸하하하하!”

진무관주는 뭔가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들은 것처럼 배를 잡고 폭소했다.

너무 크게 웃어대니 지켜보는 사람들도 의아함을 내비칠 정도였다.

뚝.

한참을 웃던 진무관주가 웃음을 멈추고 차디찬 안색으로 말했다.

“만검(慢劒). 그래, 나도 한때는 연구한 적이 있었지. 태극의 흐름. 그 흐름의 끝에서 드러난다고 하는 전설.”

설휘를 향한 그 눈에, 일그러진 분노가 담겼다.

“쾌검(快劍)이 극에 이르면 의검(意劍)이 되고, 또 그것이 기검(氣劍)이 되며, 환(幻)의 극에 이르면 만검이 된다고? 그 구절을 말하는 건가?”

까닥.

그의 턱이 잠시 움직였다.

“…….”

설휘는 그에 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답을 바라고 물은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거, 개소리다. 대체 누가 그런 구상을 했는지 모르나, 후대의 멀쩡한 삶을 몇 년이고 잡아먹는 천하의 개소리. 무당에서 만검의 수련을 나보다 많이 한 자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라!”

부르르!

들어 올린 주먹을 분노로 떨었다.

진무관주는 이를 악물고 한참을 분을 삭이다가 다시금 차갑게 말했다.

“일부는 맞겠지. 쾌검의 극에 이르면 의검이 되어, 뜻하는 바로 검을 펼칠 수 있으니까. 또 기검이 되는 것도 맞다. 하지만 환에 이르지 않아도 거기서 끝이다. 나는 10년 넘게 노력하여, 만검이 누군가가 공상으로 말도 안 되는 잡론을 말했다는 걸 확인했다. 그에 비하면 뇌검은.”

츠츠츠츳.

말이 끝나자마자 흐르는 전격의 힘. 쳐다만 봐도 위협이 될 정도의 무시무시한 힘이다.

“이 힘.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는 거력. 이에 대항한다는 게 고작 만검인가? 일검에 천하의 모든 움직임이 들어있다? 그런 허황된 소리를 입에 담는 건가?”

“저는 허황된 소리라 보지 않습니다.”

스으윽.

설휘는 검을 들어 중단세를 잡으며 말했다.

“시작이자 끝. 모든 검법의 원형은 가운데에서 시작하여, 가운데로 돌아가는 법.”

지이잉. 우웅.

“……!”

검 끝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그에 진무관주의 눈빛이 조금 바뀌었다.

‘만근거력…….’

그저, 움직임만 느린 만검이 아니었다.

멈춰있지만 끝없는 진동을 담은, 그렇기에 예리함만은 오히려 더욱 날카로워진, 괴이한 검초.

“태극은 음과 양. 항상 상대가 있고 서로 바뀌며 대응하지요. 적과 아. 상대와 나. 당연히 때론 무겁고 때론 빠르며, 시시각각 변하기도 하며 부드럽게 흘리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강합니다.”

“…….”

“태극검에도 그 조화의 의미가 남겨져 있더군요. 어떠십니까. 한번 대련해 보시겠습니까?”

“……좋다.”

척.

진무관주는 검을 높이 들어 올리며 수긍했다.

우우웅. 부우웅.

한쪽은 넘쳐나는 뇌기로 인한 검명을.

또 한쪽은 한없이 느리게 보이나 수백수천의 진동을 일으키는 만변의 검을.

“결과를 보면 더욱 뚜렷이 보이겠지. 지극히 헛된 꿈이었다는 것을.”

다른 두 방향에서 극을 달리는 검이 거친 울음을 일으키며 서로를 인식했다.

척. 척.

두 사람은 그렇게 천천히 상대를 향해 다가섰다.

“이거…… 괜찮을까?”

“그러게, 만검이라니. 그냥 설화에서나 나오는 기예라고 알고 있었는데…….”

당사자 둘 외에도, 무당의 제자들이 수군거리며 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만검.

쾌검의 정 반대 방향으로 발전된 극한의 기예.

후제발선-느림으로 빠름을 제압한다는 극한의 극으로, 까마득한 옛날의 설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다.

달리 말해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전설에나 나오는 절기.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능유제강은 우리도 알고 있으니…….”

“궤가 다르잖아. 그거랑은.”

한 가닥 희망을 가진 이도 있었지만, 열에 아홉은 고개를 내저었다.

사량발천근. 이화접목 계열의 흘리기나 되돌리기는 무당에서도 익힌 자가 있었다.

하지만 후발선제는 까마득한 고수나 겨우 실행할 수 있는 것.

보통의 검객이 전력을 다해 겨루면 선제후발이 당연한 이야기다. 달리 쾌검이 무가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이던가.

“곧 알게 되겠지. 뭐.”

“어느 쪽이 맞는지…….”

지금 두 사람의 대결을 보는 이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들 중 대부분이 저 만검이라는 기예를 익혀 보려고 세월을 투자했던 이들.

그리고 백이면 백, 다 실패했던 이들이었다.

이 대결로 만검이 진짜 태극에서 존재할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허황된 소리로 드러날지.

애타게 기다리는 눈들 사이에서 싸움은 시작되었다.

쩌어어엉!

뇌기가 폭풍처럼 설휘에게 쏘아졌다.

그저 단순한 찌르기 동작일 뿐인데도, 진무관주의 일검은 바로 승부를 볼 정도로 강렬했다.

타캉!

그 일격을 아슬아슬하게 설휘가 흘렸다. 그 모습에 진무관주가 입꼬리를 올렸다.

“제법. 이번에도 흘려낼 수 있을지 보자꾸나.”

지지지지직. 구르르릉!

다시 그가 검을 들자, 무려 여섯 방향에서 뇌전이 일어났다.

불길하게 깜빡거리는 절대적인 힘.

저걸 맞으면 어찌 될지, 상상만으로도 장내의 이들은 그저 입을 쩌억 벌릴 뿐이었다.

“하압!”

함성과 함께 뇌기가 무려 여섯 방향에서 설휘를 향해 쏘아져갔다.

투캉! 파지직!

이번에는 검을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뇌전의 격류가 설휘의 몸에 직격했다.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속도였기 때문일까.

“큭!”

그리고 그 강력환 전력을 설휘는 온몸으로 받으며 생각했다.

‘느리게. 더욱 느리게.’

왜 자신은 수많은 검 중 만검을 떠올렸을까. 단순히 착각을 한 것일까? 그건 아니다. 진무관주의 뇌검을 보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으니까.

뛰어난 천재들이 산학의 어려운 문제를 보고, 사고과정 없이 바로 답부터 떠오르는 것처럼.

‘지수화풍의 지(地).’

대지의 굳건함은 벼락을 받아들인다.

뇌전은 속성상 사대거력 중에서는 바람에, 오행 중에서는 금(金)의 기운을 가진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벼락은 결국 땅에 떨어지는 순간 스며드는 법.

치지직! 지지지직!

이치상으로는 그렇다. 그렇기에 답이 먼저 나왔다.

하지만 과정은 모른다. 그렇기에 설휘는 알아야 했다.

‘한없이 굳건하고 무거워, 모든 세상을 압도한다.’

그것이 바로 지. 땅의 힘이다. 또한 자신이 익혔던 사대극마공 중에서 가장 배움이 부족한 방위이기도 했다.

애초에 바람으로 시작하여(風).

한없이 차가운 물결과 얼음을 익히고(水).

파괴이자 재생의 불꽃을 보았으나(火).

굳건한 바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부족했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붙잡을 수 있는가.’

답은 나와있다. 문제는 과정이다. 그러니 어떻게란 질문이 다시금 물어온다.

뇌전을 다룰 수 있는 게 가능한가부터, 어떤 방식으로 제압할 것이냐는 어찌 보면 당연한 질문.

당연히 답하지 못했다.

아니,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생의 사부가 일러준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청성파에서 왜 유독 바람을 중시하는지, 그 이유를 아느냐?

-그야 물아일체.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걸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그거야 말코 도사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고.

-허면, 또 이유가 있습니까?

-자연의 힘 중에 가장 센 것이 무엇일 것 같으냐?

-번개? 아닌가요?

-그래. 번개. 그 번개는 어떤 힘으로 만들어지느냐.

-그거야…… 구름과 바람. 바람 아닙니까?

-그렇다. 청성파를 지탱하는 힘으로 잡은 것이 바로 바람이 근원이다.

-만약 네가 바람과 하나가 되고, 나아가 지배할 수 있다면.

-…….

-청성의 무공을 익히고 있는 한,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뇌리에 박혀 있는 것이다.

결국 자연을 거스를 수 없다면, 바람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저 거대한 제3의 힘이라는 것도 결국 자연 속에서 구현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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