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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뮬레이션-393화 (372/379)

393화. 신비의 여인 (3)

아미파 여인은 떠나갔다. 설휘는 그에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이토록 신비한 일은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내심을 계속해서 읽히는 것도,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넌지시 알려주는 사람을 만난 것도.

‘이런 게 정말 예언자 같은 게 아닐까.’

무당에서 되지도 않게 앞일을 안다고, 몇 마디 주워섬긴 자신과는 궤가 달랐다.

더 묻고 싶었고, 좀 더 대화하고 싶었지만 여인은 그냥 가버렸다.

설휘로선 붙잡을 수도 없었다. 별다른 무예는 없다고 하지만 현경, 혹은 그에 비견할 경지에 이른 이를 어찌 강제하겠는가.

‘세상엔 참 신비한 일들이 많구나.’

설휘는 마음을 추슬렀다.

그녀가 말한 ‘균형’이란 것도 쉽게 흘려들을 수 없었다.

균형점 없이 자신이 가진 정반합의 힘을 통제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시도는 해봐야지.”

어느 정도 마음을 정리한 설휘는 수련 장소로 향했다.

산 풍광이 다 내려다보이는 꽤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설휘는 천천히 정신을 집중했다.

시도하지 않고선, 경험할 수 없고. 해법 또한 찾을 수 없는 상황.

태극의 음과 양처럼. 정종의 내공과 마공을 융합하여 균형을 이루는 일에 완전히 몰두할 수 있어야 했다.

“과연 살아날 수 있을지.”

호흡을 천천히 느리게 하며, 설휘는 명상에 빠져들었다. 예전에 무당에서 깨달았던, 태극의 흐름을 좇아 천천히 의식을 집중한 것도, 놓은 것도 아닌 자연스러운 상태로 들어섰다.

그러자 뚜렷하게 보였다.

양과 음, 위아래로 분리된 두 대자연의 근원이.

스으읍!

이제부터가 관건이다. 설휘는 태극을 기반으로 하되, 다른 방식의 운공을 동시에 운용하기 시작했다. 바로 마기. 마교의 마공을 끌어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그그극.

그러자 태극의 음양. 그중 음의 기운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정종의 내공은 따스하고 몸에 이로운 성질이니 당연히 양(陽)이다. 마교의 마공은, 강한 힘을 주지만 수행자의 혼백에 상처를 주니 당연히 음이다.

지금은 설휘도 현경의 경지를 얻었지만, 상대적으로 탈마의 경지에 있었던 시간이 훨씬 오래되었다.

당연히 끌어올린 음기(陰氣)의 양이, 이제 갓 만들어진 태극 기반의 양을 압도적으로 덮어씌웠다.

“으으윽…….”

단 일각도 지나지 않아, 설휘의 신음에 고통이 스며나오기 시작했다.

태극이 풍랑에 흔들리듯 미친 듯이 돌아가고, 설휘의 온몸에서는 뜨거운 열기와 차가운 냉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설휘는 정신을 놓지 않았다.

현경의 도달한 정신력은, 범인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참을성과 인내력을 가져다주었다.

우드득. 도도독.

혈맥에서 콩 볶는 소리가 나고 전신의 혈관이 미친 듯이 확장되어 얼굴이고 몸이고 시뻘겋게 변했다.

그렇게 버텨서 또 일각이 지났을 때.

‘이번이 진짜다.’

설휘는 싸한 무언가를 직감했다.

몸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음기의 양이 이전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배나 커졌다.

지난번엔 음기가 탈마의 영향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건 극마의 극 정도였고, 이번이 진짜 탈마에 도달해 얻었던 음기의 침범이었다.

스스스스. 화르륵.

음양이 서로 상생이 아니라 상극을 이룬다. 몸에 걸치고 있던 옷은 모두 불타서 없어졌다.

설휘의 몸은 이미 용암처럼 들끓어 올랐고, 정수리에선 수백, 수천 개의 꽃들이 피고 지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우드득! 우드드득!

그럼에도 몸속으로 들어오는 내기는 멈추지 않았다. 이미 주변에 있는 식물이 말라버릴 정도로, 한순간에 자연의 기가 물이 쏟아지듯 끌려들어 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쾅!

설휘의 눈이 부릅떠졌다. 머릿속을 때리는 거대한 충격에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현경을 기본으로 하여, 마기를 흡수하여 탈마에 도달한 자신의 상태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우드득. 빠바바박!

전신의 기혈에서 콩 볶는 소리, 아니 가죽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일었다. 그와 함께 엄청난 고통. 정신을 흐트러트리는 외부의 힘이 상, 중, 하단전에 압력처럼 가해졌다.

울컥!

“끄그그극.”

몸속의 기혈들이 다 뒤집혔다.

절대로 섞일 수 없는 두 기운이 공존하자, 태극을 유지하며 돌아가는 음양의 기류는 짐작되지 않을 정도로 빨라지고 있었다.

그 미친 듯한 흐름에, 현경에 올라 다져진 설휘의 정신도 점점 흐릿해질 정도였다.

‘버터야…… 버텨야 살 수……!’

악착같이 버티던 설휘는 그때, 그것을 보았다.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음기.

아마도 탈마 중에서도 기신에 올랐을 때에 느꼈던 막대한 내기가, 단번에 몸속으로 들어온 듯했다.

쾅! 콰콰콰콰콰쾅!

가히 화약 천 섬을 놓고 불을 지른 것처럼, 미친 듯이 터지는 마기의 흐름.

결국 설휘는 태극의 중심을 놓쳐버렸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온몸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공중으로 터져나갔다. 한 줌 핏자국만 남은 그 중심에서는 남은 기류가 거대한 소용돌이로 변했다.

우르릉. 우르르릉.

그것은 더더욱 덩치를 키우며 주변을 잡아먹고, 이내 하나의 산만큼 거대해졌다.

이미 죽은 설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 거대한 힘은 그 뒤로 몇 년 동안 무시무시한 돌풍으로 계속 존재했다. 아무도 이해 못 할 기현상이 되었다.

***

[설휘 님은 죽었습니다.]

[현재 477개의 목숨이 남았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

설휘는 눈앞에 뜨는 문자를 보고서야 자신이 죽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이거 쉽지 않다.’

주화입마는 기본적으로 정신적인 혼란을 유발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동안 온몸의 혈맥이 타들어가는 듯한 환상통 때문에 감당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대체 이걸 어떻게 균형을 이뤄야 하는지 막막했다.

‘처음부터 제어를 했어야 했나?’

현경의 태극을 먼저 바닥에 깔고, 양과 음을 구분하여 정반합이 가능한 길을 열려 시도했다.

하지만 음기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도저히 제어도 되지 않았다.

탈마에 오르자, 그 기운을 감당하기 불가능할 정도였다. 마치 제어가 불가능한 주화입마와 같은 기분이랄까?

▶ 처음부터 시작한다.

▷ AI로 시작한다.

▷ 계속 이어서 한다.

▷ 저장한 지점을 불러온다.

‘끝까지 간다.’

실패하긴 했지만, 설휘는 선택은 이전과 같았다.

저장한 지점을 불러와, 시스템을 벗어나는 것으로.

그렇게 시작하자, 설휘는 지난번에 명을 달리했던 그곳으로 향했다.

“후우.”

명산에 도착한 설휘는 그때부터 다시 수련을 시작했다.

우선은 몸만들기.

현경에 오르기 위해선 깨달음뿐만 아닌, 신체 조건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한 단계 낮은 화경만 해도 정기신이 완전히 조율되어야 돌입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신체를 만들기에 돌입하고, 대략 반년째쯤.

설휘는 다시 한번 현경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것도 쉽지 않구나.”

도가도비상도. 도가 어떻다고 말을 하면 그 순간에 그 도는 더 이상 도가 아니다. 선입견과 판단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걸 피해서 다시 한번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야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경지에는 올랐고, 다시 운명의 날이 왔다.

설휘는 이번엔 기운을 절제하며 받아들이는 방법을 써보려고 했다.

지난번에 태극의 흐름이 갑자기 음으로 쏠려, 감당하기 힘들 쪽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자, 시작하자.’

그렇게 다시 명상에 빠져들고, 태극이란 거대한 중심을 만들었다.

이전처럼 음기를 받아들이며, 순간순간 태극의 흐름이 과하게 빨라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쿵!

‘으음.’

처음 시작은 좋았다. 극마에 이르자, 엄청나게 파고든 음기를 일정 부분 제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온몸에 기이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고, 기운의 흐름도 차분하게 절제되어 진행됐다.

일부러 일각이 아닌 한 시진 정도를 느긋하게 운용하며, 몸을 추슬렀다.

콰아아앙!

그렇게, 조금씩 받아들이던 음기가 어느 순간 갑자기 거대해졌다.

‘왔다.’

분명히 한 톨 한 톨 조금씩 받아먹던 음기가 갑자기 한 바가지씩 어마어마하게 몰아닥치자, 설휘는 이제부터가 탈마에 오르는 것임을 직감했다.

그때부터는 모든 정신을 음기 제어에만 힘썼다.

쾅! 콰콰코콰쾅!

허나, 그것은 과욕에 불과했다.

‘이. 이런?’

음기의 통제는 불가능했다. 아무리 정신을 집중하여 흐름을 도도하게 이끌려고 해도, 화산의 분출처럼 터지는 그 힘을 막을 수 없었다.

우드득. 우드득.

“컥.”

온몸 내부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설휘의 정신을 뒤흔들었고. 잠깐 고통에 제어를 놓친 틈을 타 막대한 음의 기운이 설휘의 몸을 흔들었다.

“그그그그극.”

조금은 버틸 수 있었다. 이 악물며 태극의 중심을 잡았으니까.

하지만 파도 수준이 아닌 해일에 가까운 기운이 몰려오자, 설휘는 느꼈다.

‘이건…….’

도저히. 의지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고.

쾅!

머리에 벼락이 떨어지는 충격. 그 순간 정신을 잃었다.

쿠르르릉. 우르르릉!

그리고 이전보다 더한 소용돌이가 설휘의 온몸을 찢고 터져 나왔다.

[설휘 님은 죽었습니다.]

[현재 476개의 목숨이 남았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한순간 멍한 상태로 문구를 보았다.

이번에 어떻게 죽었는지, 마지막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 저장한 지점을 불러온다.

그 뒤로, 다시 시도했던 설휘.

그리고 차근차근 앞서의 길을 걸었지만, 또다시 실패했다.

[설휘 님은 죽었습니다.]

“허어…….”

이번에는 한 시진이 아니라, 며칠 정도 명상에 잠겨 완전히 느리게, 기운을 흡수했지만 결과는 전과 같았다.

그다음 생에는 또 다른 방법을 썼다.

현경에 먼저 올라 탈마를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라, 탈마에 먼저 올라 현경에 오르는 방식으로.

[설휘 님은 죽었습니다.]

“…….”

허나, 그것도 실패했다.

애초에 태극이 아니라서였을까, 제어 자체가 불가능했다. 왜 정종무공이 마공보다 위력은 낮아도 안정성에 크게 중심을 두는지 역력하게 실감하게 되었다.

[설휘 님은 죽었습니다.]

다음 생은 현경과 태극을 동시에 오르는 방식을 해봤지만 실패.

[설휘 님은 죽었습니다.]

“…….”

다음 생에는 호심공을 잔뜩 익혀서 몸을 보호한 뒤 현경에 올라 태극으로 마공을 불러왔지만, 또다시 실패.

[설휘 님은 죽었습니다.]

[설휘 님은 죽었습니다.]

[설휘 님은 죽었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그렇게 다섯 번 정도 더 실패를 경험한 설휘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그는 이제 생각을 바꿨다. 지난 생에 만났던 그 여인에게 해법을 물어보기로.

아미파의 복호사로 발걸음을 뻗게 된 순간이었다.

***

아미산.

불문의 사대 성지, 보현보살의 성지, 최대의 비구니가 모여 있는 곳.

가장 높은 봉우리로 금정봉이 있었는데, 기암괴석 사이에 세워진 사찰이 하나 있다. 이곳이 강호에 알려진 복호사라는 곳이다.

아미파.

무공을 익힌 자들이 많지만, 불법의 교리를 읽고 연구하여 깨달음을 얻는 문인들도 있다.

남자도 없지는 않지만, 장로급 인사는 거의가 여인. 사태라 높여 부르는 것도 다른 불문과는 다른 점이다.

그리고 지금에는 검의 명문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미파의 근원 절기는 복호권과 복호창이다. 기타 다른 병기들도 종종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우.”

설휘는 숨을 바삐 내쉬며 아미산에 오르고 있었다.

일단 그 여인을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에 움직였는데, 생각해 보니 지난번에 그녀의 이름도 법명도 듣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나마 복호산에 머문다는 얘길 들었으니 무작정 이렇게 걸음을 한 것이었다.

‘호오.’

걸음 중에 내려가는 비구니를 몇몇 보았다.

혹시나 하여 자신이 아는 여인을 물었는데,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기를 한참, 어느새 아미파의 본문 앞까지 도착했고, 잠깐 휴식을 취했다.

“그나저나……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오는 도중 내내 고민했던 것이었다.

자신의 지금 상황을 솔직히 말하고, 도움을 구할 것인가.

모양이 빠지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그녀가 도움을 주지 않거나 애초에 자리에 없으면?

‘뭔가를 내밀어야 할 터인데.’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현경과 탈마를 융합해 새로운 경지로 나가기 위해 필요한 지식. 혹은 실마리.

그걸 어떻게 얻어 낼 것인가. 그리고 그녀가 순순히 내준다 해도 그걸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든 해 봐야지. 이대로는 계속 개죽음만 할 뿐이니…….”

다시 한번 마음을 추스로고 일어서던 그때였다.

채채채챙.

인기척과 함께 갑자기 대여섯의 비구니가 숲속에서 튀어나왔다. 졸지에 포위된 설휘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누구냐! 소속을 밝혀라!”

“이 느낌! 어느 곳의 대 마두냐!”

“……?”

살벌하기 짝이 없는 살기. 처음 보는 설휘를 향해 그녀들은 당장이라도 쳐 죽일 듯한 기세였다. 아미파는 손님 대접이 원래 이렇게 험한가?

“아차!”

잠깐 고민하던 설휘가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빨리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아무 억제도 하지 않고 달려왔으니. 그들이 느끼고 질겁한 것도 당연했다.

풀풀 풍기는 마기, 그것도 상당한 고수가 흘리는 마기였으니까.

‘시작부터 쉽지 않겠군.’

설휘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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