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뮬레이션-394화 (373/379)

394화. 신비의 여인 (4)

“당장 신분을 밝혀라!”

“그러지 않으면 목숨이 날아갈 것이다!”

타다닥.

비구니들의 경계는 심했다. 그녀들은 소리치며 포위 대형을 가다듬고 있었다.

설휘의 시선이 잠깐 그녀들에게 머물렀다.

‘아미파가 성질이 매섭다더니…….’

공양과 수행에만 힘쓰는 여승이 비구니다. 그런 비구니가 대뜸 목숨이 어쩌고 하는 경고를 날리는 게 심히 팍팍해 보였다.

말만이 아니다.

무장에다 포위 대형을 구축하는 것이, 이런 상황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닌 것 같았다.

“음. 소인은…… 청성파 사람이오. 아미파에 잠시 가르침을 받고자 들렀소.”

설휘는 일단 대화로 풀고 싶어서, 과거 생의 소속을 밝혔다.

청성파의 무예는 때론 독랄하고 매서운 분위기를 지니고 있기에, 몇몇 초식은 사파의 무공이라고 오해받기까지 할 정도다.

하지만.

“청성? 웃기지 마라!”

“진한 것과 역겨운 것은 엄연히 다르다! 다른 곳에서라면 몰라도, 아미파 앞에서 거짓이 통할 것 같으냐!”

‘이런.’

뜻밖에도 그녀들은 완강했다.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다른 문파보다 사이한 기운과 불완전한 기운을 확실히 구별할 줄 아는 모양이었다.

허나, 설휘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세상일이 어찌 항시 마음대로 되겠소? 청성의 무공을 익히는 와중에 어찌해보니 탁기(濁氣)가 몸에 스며들게 되었소. 이대로는 사부를 뵐 면목이 없는 몸이라, 본인 신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례를 무릅쓰고 여기로 오게 된 것이오.”

“이놈. 썩 물렀거라!”

“헛소리 말고, 당장 돌아가지 못할까!”

철벽이었다. 설득은커녕, 아예 말도 듣지 않으려는 그녀들의 태도에 설휘는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싸우는 건 최악이다.

칼을 주고받는 순간, 적대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그리되면 지금 대화로 풀 수 있는 문제도 영영 풀지 못하게 될 수 있다.

그러니 어떻게든 대화로 푸는 게 좋다고,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그녀들의 반응이 한발 빨랐다.

“놈이 눈알을 굴리는구나. 선수조! 저놈을 쳐라!”

사삭. 삭.

후열에 있던 누군가의 외침에 앞에 선 여인들이 몸을 낮추며 접근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가.’

할 수 없이 설휘가 싸울 채비를 했다. 그런데 거기서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생겨났다.

- 진정하라. 모두 무기를 거두어라!

우우웅.

숲 전체를 뒤흔드는 중후한 내공.

한 여인의 목소리에 여인들의 움직임이 족쇄를 맨 것처럼 죄다 멈췄다.

“……?”

전혀 기색을 느끼지 못한 설휘가 당황할 때, 앞에 있는 이가 소리쳤다.

“무기를 거두어라! 진여 사태께서 말씀하시지 않는가!”

촤라라락.

그제야 모두가 창, 도끼, 검을 거두었다.

좌르륵.

도열하듯 옆으로 비켜선 비구니들. 그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두 여인이 있었다.

‘아!’

설휘는 그 모습에 놀랐다.

먼저 비구니가 아니어서 놀랐다. 불가가 아니라 도가 복장의 여인이 자신에게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수행원으로 보이는 여인이 있었다.

“청성파……의 사람이라고 하셨나요?”

수행원을 한쪽에 세워두고 설휘의 지척까지 다가와 말을 거는 여인.

그녀의 눈엔 기광이 서려 있는 것이, 확실히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무공을 가지고 있어 보였다.

“그렇습니다만.”

“그럼 먼저 확인 좀 해보겠습니다.”

“확인?”

스윽. 슥.

설휘가 의아해하는 사이, 머리를 묶은 여인은 뒤로 걸어가 수행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척. 스릉.

그러고는 검을 받아들자마자 설휘에게 냅다 던졌고.

“……이건?”

검 한 자루를 받은 설휘는 눈을 크게 떴다. 의도를 묻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답은 말로 돌아오지 않았다.

파팟.

검 하나를 더 받아든 그녀가, 순식간에 검을 빼들며 자신에게로 달려왔기 때문이다.

파바바밧!

거리도 그렇고 워낙 갑작스러운 신법.

설휘가 급히 뒤로 물러서는데, 검기 한줄기가 본래 자신이 있던 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쇄애애액!

‘이 무슨……?’

초면에 단순한 공격이 아닌. 검기라니.

이는 사정을 봐주지 않는 살상의 의도였다.

“이게 무슨 짓이오?”

설휘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보자.

“무슨 짓이긴요. 본인을 증명하라는 것이죠.”

여인은 뭐가 어쨌냐는 듯 천연덕스레 되물었다.

“하아.”

설휘는 고개를 내저었다.

싸움이 자주 일어나는 청성파도 저 정도로 사납게 굴지는 않는다. 과연 독랄하기가 구파일방 가운데 최고라는 아미파.

하긴, 백 마디 말보다는 한 번 직접 보여주는 게 더 확실한 증명이라는 것은 그도 이해했다.

척.

설휘는 검을 들어 중평 자세를 유지했다.

청풍검법의 자세 중 하나인 중(中平).

검을 반듯하게 받드는 초식 중 하나를 쓸 생각이었다.

파앗.

하지만 자세를 잡자마자 상대가 검기를 쏘아냈다.

동시에 직감적으로 이전과 다름을 느꼈다.

설휘는 일순, 시야에 은빛이 감지되자마자 청성의 비류보(飛流步)로 공중으로 솟아올랐고.

촤아아--

은빛 검기는 설휘가 밟던 잔풀들을 베지 않고 부드럽게 타고 넘었다.

‘이건 무슨……?’

검기를 피해낸 설휘가 당황했다.

기공이 응축된 검기가 지나가며, 풀을 베지 않고 타고 넘는 현상.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는 일자수미검(一字須彌劍)이란 아미파 특유의 검결이었다.

검기가 바람에 날리는 버들가지처럼 부드럽고 가뿐하다는 것. 하지만 몰아치면 검기가 중첩되거나, 갈라지고. 또 다수로 변한다고 했다.

쉬익.

설휘의 움직임에 다시 한번 그녀의 은빛 검기가 펼쳐졌다.

그리고 이번엔 검기가 수십 개로 갈라져 사방의 퇴로를 막으며 공격해 왔다.

‘까다롭다.’란 생각이 설휘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그때.

쉬이이이익-

검기가 설휘의 몸을 파고들었지만, 곧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매서운 바람과 함께 한 쪽에 생겨나 흩어지는 십여 개의 환영.

“환환미종보!”

그걸 지켜보던 한 비구니가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바로 청성의 성명절기가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투욱.

요란한 바람과 함께 다시 나타난 설휘는, 가파른 절벽에 솟은 소나무를 밟고 있었다.

웅청.

나뭇가지가 위태롭게 휘청였지만, 설휘는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더 하시겠소?”

설휘의 말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고는 들고 있던 검을 검집에 넣으며 말했다.

찰칵.

“청성파의 도사가 맞으시군요.”

“…….”

“따라오시지요. 당신을 뵙기를 기다리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그렇게 돌아서는 여인.

‘후우…….’

설휘는 그제야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금 몸으로는 무리하게 운용했지만, 그래도 청성파 무공을 쓴 것이 어느 정도 통한 모습이었다.

***

금남의 성지.

불문과 도문이 함께 어우러진 유서 깊은 사찰.

설휘에겐 아미파는 이름만 들었지 처음 오는 곳이다.

하지만 앞서 걸어가는 여인의 발이 복호사로 향하고 있다는 것쯤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금정봉.

아미산의 가장 꼭대기라는 곳으로 향한다는 건, 그곳에 지어진 복호사로 향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헌데, 그분께 어떤 전갈을 받으셨소?”

“…….”

꽤 오랜 시간을 걷던 설휘가 궁금해서 한마디 던졌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괜히 수행원으로 보이는 여인의 눈총만 받을 뿐이었다.

‘말수가 정말로 적군.’

그렇게 한참, 꽤 오랜 시간을 산길을 올라 도착한 곳은 아미파의 대웅전이었다.

저곳이 말로만 듣던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는 곳이라 생각할 때쯤.

“이쪽입니다.”

사박.

앞서 걷던 여인이 갑자기 소로로 방향을 안내했다.

“……?”

자박. 자박.

바짝 마른 산길과 달리, 조금 습한 땅이었다. 그런 길을 꽤 걸어갔을 때쯤 동혈 같은 곳이 보였고, 여인은 그 안으로 들어가며 따라오라는 듯 손짓했다.

휘우우우.

바람이 분다. 들척지근한 바깥의 바람이 서늘한 동굴 안쪽으로 몰려든다.

습하기는 하지만 곰팡내는 느껴지지 않는 동굴.

빛이 들지 않아 어두운 곳이었지만 안쪽의 바위나 돌덩이 등은 금방 구분할 수 있었는데, 이는 동굴에 낀 이끼가 희미하게 빛을 발하기 때문이었다.

자박자박. 자박자박.

발걸음 소리가 메아리치는 습한 동굴.

그렇게 한참을 더 걸어가자, 얼핏 횃불에 문 하나 달린 곳이 있었는데, 여인은 그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내 일은 여기까지다. 안에 두명 사태께서 계시니 어서 가서 알리도록…….”

“아.”

익숙한 이름에 그제야 설휘는 제대로 찾아옴을 느꼈다.

사박사박.

온다간다 말도 없이, 그를 이곳까지 인도한 비구니들이 떠났다.

설휘가 그에 천천히 문앞에 다가가 인기척을 냈다.

“안에 계십니까?”

“…….”

잠깐 몰려온 정적.

그리고 다시 물으려 할 때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시지요.”

“…….”

설휘는 슬쩍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섰다.

동굴 방에는 알 수 없는 조그만 불상이 하나 놓여 있었고,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내 예감이 맞았군요. 또 보게 될 줄 알았어요.”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자신을 아는 말투에 그녀 옆으로 편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럼 본인이 무슨 연유로 온 건지 알고 있겠지요?”

“…….”

“모릅니까?”

이번엔 설휘가 당황했다.

앞서 만났던 기억들이 모두 존재하지 않은 것인가?

“훗. 너무 당황하지 마시지요. 말씀하신 대로 모두 알고 있습니다.”

“아, 하긴.”

잠깐 걱정했던 설휘에 안도의 한숨이 감돌았다. 그녀가 기억을 못 하면 여기까지 올 리가 없으니까.

“우선 다시 들어보겠습니다.”

“뭐 아시다시피, 정공과 마공을 정반합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불가능했던 일입니다. 차가우면서 따뜻할 수 없는 법. 이는 자연의 이치에 반하는 것이고요.”

그녀는 말에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말했던 음과 양처럼, 태극을 섞이게 하여 균형을 이루는 방식으로 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혹 그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방법을 아신다면 말해주십시오.”

“…….”

“저기, 이보시오?”

설휘의 말에도 여인은 즉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걸리게는 있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겁니까?”

“왜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거죠?”

“……?”

설휘는 의아해서 다시 되물었다.

“왜 안 되는 겁니까?”

“균형보다는 조화부터 먼저 시도해야죠. 두 개의 서로 다른 기운이 충돌하기 때문에 그 안에 또 하나의 기운을 넣는 방식으로요.”

‘이게 무슨 말이야.’

설휘는 당황했다.

똑같은 상황일진대, 예전에 그녀가 했던 말과 달랐기 때문이다.

긴가민가했지만, 다음 그녀의 말로 더욱 확신했다.

“또 하나의 기운이라면?”

“단전.”

그녀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하단전과 중단전. 이 두 기운을 상단전을 통해 제어하고 조화롭게 만드는 겁니다. 결국 받아들이는 건 사람의 몸이니, 그 안에서 조화롭게 만들어 신(神)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죠.”

“……”

“왜요? 제가 틀린 말을 했나요?”

달랐다.

똑같은 모습, 똑같은 상황일진대. 그녀는 예전과 분명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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