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근데 맹룡대가 뭐하는 데요?
교룡관주 팽도율이 말했다.
“제1차 무림대전은 그야말로 지옥이었어.”
“혈교대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맹룡대주 모용진호가 되물었다.
“그래. 혈교주 개홍천. 진실로 괴물 그 자체였지. 그의 무공을 막을 자가 없었어. 정천맹 전체를 통해서 말이야. 한데 결국 그는 죽고, 혈교대전은 끝났단 말이야. 그를 죽인 자가 누군지 아는가?”
“맹주님이잖습니까?”
팽도율의 물음에 모용진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너무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무백.”
의외의 대답에 모용진호가 깜짝 놀랐다. 그리고 도무지 믿지 못 하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호천단주 말씀입니까?”
모용진호의 불신 가득한 표정에 아랑곳 않고, 팽도율은 술 한 잔을 따랐다.
“제2차 무림대전. 이른 바 마교대전. 그때는 정사가 연합해 마교와 싸웠어. 혈교 때가 그냥 지옥이었다면, 마교 때는 그야말로 수라지옥이었지. 마교교주 석원초, 혈교주를 뛰어넘는 괴물이었어. 그런 그를 누가 죽였는지 아는가?”
“설마 호천단주요?”
“그래. 하무백이지.”
“하면, 당금 무림의 천하제일인은…….”
“하무백이지.”
모용진호는 술잔을 들었다.
“그 거짓말, 저보고 믿으라는 말씀입니까?”
살짝 불쾌한 기색이 얼굴에 서린 모용진호다. 그럴 수밖에. 도무지 믿지 못할 이야기를 자신에게 하고 있는 탓이다.
“끌끌. 이래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굳이 입 밖에 꺼내지 않는 거지. 아마 강호에서 진실을 아는 사람이 채 스물이나 될까? 모르겠군.”
팽도율의 말에 모용진호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설마 저 거짓말이 진짜인가 하는 의구심이다.
“한데, 그 얘기는 왜…….”
“그 작자가 우리 교룡관으로 온다하네.”
“예? 왜요?”
“난들 아나. 위에서 그러라는데. 그것도 맹룡대 일반 교관으로 발령했더군.”
그 말을 듣는 순간 모용진호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오줌도 찔끔 지린 것 같았다.
관주 팽도율의 말대로라면 혈교주와 마교주를 죽인 자가 자신 밑으로 발령받아 오다니.
자기 보고 어쩌라는 건가.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
-호천단주 하무백을 교룡관 소속 맹룡대 일반 교관으로 발령한다.
하무백은 천목각주 공손단경이 내민 명령서를 물끄러미 보았다. 정천맹의 군사인 그가 내미는 명령서이니만큼 이미 맹주의 재가를 받았다는 의미.
“이유가 뭐요?”
곁에 함께 있던 집법원주가 답했다.
“네 놈이 잘못했으니, 그에 해당하는 처벌인 거다.”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하지?”
하무백이 가소롭다는 듯, 집법원주 운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저! 지금 그딴 말본새만 해도 하극상이야!”
“허, 헛소리도 정도껏 하지. 운학자 네 놈이 내 상급자라도 되나? 내 상급자는 맹주님 하나일 텐데?”
하무백의 직책은 호천단주. 정천맹주 소휘웅 직속으로 그의 수신호위를 책임지는 위치였기에, 그 말대로 하무백의 상급자는 정천맹주였다.
군사 공손단경은 두 사람의 대립을 재미있다는 듯 그저 지켜만 보았다.
“이런 빌어먹을 놈! 정천맹에는 엄연히 직책별 서열이라는 게 있다! 호천단주는 잘 쳐줘야 오십 위가 될까 말까야!”
정천맹은 정파 무림의 연합체로 그 규모는 거대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곳에서 서열 오십 위면 굉장히 높은 위치였지만.
“그리고 집법원주의 서열은 칠 위지. 엄연히 네 놈 상급자란 말이다!”
하무백의 막말에 분노한 운학자가 손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하무백의 시선이 공손단경에게로 향했다.
“그러니까 죄명이 뭐요?”
따가운 눈빛에 공손단경이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이유야 하무백을 만나서 적당히 달래서 보내려고 하던 참이다. 헌데 집법원주가 저리 판을 깔아줬으니.
“상관 폭행 정도?”
“내가 맹주님 팼소?”
공손단경의 말에 되묻는 하무백.
“방금 못 들었는가. 맹주님만 자네 상관은 아니라네.”
공손단경의 대답에 하무백의 시선이 운학자에게로 향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래. 그래도 팬 적도 없는데, 그걸 인정하기는 싫고. 그렇다면, 정말로 패면 되겠구만.”
하무백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뭐, 뭐냐! 네 이놈!”
무시무시한 기세를 풍기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하무백의 모습에 운학자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뭐긴. 상관 폭행하려는 거지.”
“건방진 새끼가!”
노호성보다 운학자의 손이 빨랐다.
그의 손에서 곤륜파의 절기인 낙안권(落雁拳)이 펼쳐져 하무백을 향해 날아들었다.
어디 이름도 알 수 없는 삼류문파 출신놈이 맹주의 이쁨을 좀 받는다고 주제도 모르고 덤벼든단 말인가.
마침 잘 됐다.
이참에 제대로 손을 봐주고 쫓아내면 될 듯했다.
군사의 체면을 봐서 검은 뽑지 않았지만, 저딴 놈이 곤륜의 절기 중 하나인 낙안권을 감당할 리 없었다.
“같잖아서, 원.”
하무백이 손을 한 번 휘젓자 어지러이 날아들던 운학자의 권영이 몽땅 사라졌다.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두르자.
퍽!
찰진 격타음이 운학자의 배에서 울렸다.
“커헉.”
그리고 터지는 비명.
“왜 이래. 시시하게. 이제 시작인데.”
하무백이 싱긋 웃으며 양손을 바삐 놀리자.
“아악! 크아악! 아악!”
운학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후우.”
공손단경은 낮은 한숨을 내쉬며 내공을 이용해 기막을 둘렀다. 이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 좋을 것이 없었기에 소리를 차단한 것이다.
덕분에 하무백은 더욱 찰지게 주먹을 휘둘렀고.
운학자는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인식도 하지 못한 채, 비명만 지르다가 정신을 잃었다.
“좆도 아닌게 나대기는. 쯧.”
하무백은 손을 가볍게 털었다. 그리고는.
“이런? 상관을 폭행해 버렸소 그만. 이걸 어쩌지?”
목각 인형 마냥 어색하게 말하는 하무백.
공손단경은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으나, 입꼬리는 웃음을 띠며 살짝 올라가 있었다.
“갈 텐가?”
“사고를 쳤으니 어쩌겠소. 그럽시다. 까짓거.”
“나도 안타깝기 그지없네. 마음이 아프구먼. 천하의 하무백이 한직에서 썩다니.”
“그런데 왜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거요?”
“내가?”
“좋아 죽는 거 같은데. 뭘.”
“커험. 무슨 소릴.”
“아주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은 표정이구만.”
하무백의 말에 공손단경은 슬며시 시선을 돌렸다.
“근데 맹룡대가 뭐 하는 데요?”
***
“맹룡대라…….”
교룡관으로 향하는 중에 작은 객잔에 식사를 위해 들렀다.
하무백은 자신이 발령받은 곳을 떠올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잖아도 이맘때가 맹룡대에서 교육생들을 모집하는 시기라 했다.
“여봐. 교룡관 맹룡대에서 교육생을 선발한다는구먼.”
마침 좀 떨어진 자리의 두 남자가 맹룡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무백의 귀가 절로 그곳으로 향했다.
“쯧쯧. 또 고기 방패를 구하는 철이 되었구만.”
털보 친구의 말에 혀를 찬 중년인은 술잔의 술을 한 번에 입으로 털어 넣었다.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한 중년인의 말.
하무백은 망설이지 않고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갑작스런 하무백의 등장에 두 사람의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연히 맹룡대에 대해 말씀하시는 걸 들어서요.”
“허. 거기에는 관심도 가지지 마시오.”
중년인이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으나 하무백은 빈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자세히 좀 말씀해 주시지요. 보답이라고는 뭐하지만, 이 자리는 제가 내겠습니다.”
그러면서 하무백은 점소이를 불러 몇 가지 요리와 술을 더 주문했다.
“뭐, 그렇다면야, 흠흠.”
술이나 요리 모두 제법 훌륭한 것들이었기에 중년인이 괜한 헛기침을 했다.
“좀 전에 고기 방패라 하시던데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사람 생목숨을 갈아 넣어서 그 마물들을 막으니 고기 방패라 한 거요.”
중년인의 대답을 하무백은 잠자코 들었다. 특별한 표정이 나타나거나 하지도 않았다.
“지원 자격을 봐도 그렇지 않소. 그저 열네 살 이상의 신체 건강한 남녀. 과거도, 출신도 아무것도 따지지를 않아. 무공의 재능조차 말이요. 심지어 정천맹의 산하 무력대인데, 칠단 중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교룡관 산하라니 말이요.”
“쯧쯧.”
중년인의 말에 털보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월봉이 괜찮게 나오는 게 불행 중 다행이랄까 싶지만, 뭐 목숨값이라 생각하면 그것도 많은 게 아니지.”
“목숨값이요?”
하무백이 물었다.
“그래요. 목숨값. 그나마도 소휘웅 맹주가 바꿔놓은 거야. 예전에는 그 목숨값도 푼돈 중의 푼돈이었어.”
맹룡대에 대해 설명하던 중년인은 답답하다는 듯 다시 한번 술을 들이켰다.
“그러니 행여나 맹룡대 근처로는 기웃거리지도 마시오.”
중년인은 하무백이 한쪽에 놓아둔 도를 힐끔거리며 말했다. 그냥 봐도 무림인으로 보이는 사내였으니까.
“뭐, 기웃거릴 일은 없습니다.”
하무백이 쓰게 웃으며 한 잔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곳 생환율이 오 푼이요. 오 푼. 백 명이 들어가면 다섯 명이 살아나온다는 소리요. 내가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오.”
중년인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다시 한번 말했다.
‘내가 그 고기 방패가 되기를 희망하는 교육생들을 가르치는 교관이 되었다는 말이지? 빌어먹을 늙은이들. 아주 고약한 곳으로 보냈어.’
생환율 오 푼이라는 말에 절로 속이 뒤틀리는 하무백이었다.
중년인은 그리고서도 한참동안이나 맹룡대가 얼마나 빌어먹을 곳인지 이야기했다.
마치, 지인이 그곳에 들었다가 죽기라도 한 사람 같았다.
얼마나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마셨을까.
두 사람은 이제 가봐야 한다며 자리를 일어섰고, 하무백 홀로 남아 술잔을 기울였다.
산월마림(山越魔林)이라는 곳이 있다.
옛 혈교의 본산이 있던 곳.
혈교의 온갖 사이한 사술로 만들어진,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마물들이 활보하는 땅.
혈교는 사라졌으나 마물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그 수는 오히려 늘어난 땅.
혈교와 싸우기 위해, 그리고 그 마물들을 막기 위해 거대한 장성으로 산월마림을 둘러쌌었다.
산월장성(山越長城).
맹룡대는 그곳을 지키는 정천맹의 무력단인 봉마단을 보조하는 무력대다.
그런데 소속은 교룡관.
그야말로 고기 방패라는 말이 딱 맞는 곳이었다.
“젠장. 어차피 죽을 놈들하고 뭘 하라는 건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술잔을 털어 넣는 하무백이다.
“뭐, 그래도 가봐야지.”
남은 음식을 모두 먹은 하무백은 셈을 치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룡관이 위치한 무창이 이제 지척이었다.
***
“오랜만이라 해야 하나?”
교룡관주 팽도율의 말에 하무백은 슬쩍 웃음 지었다.
“그렇다고 해야겠네요. 대전 이후 처음 보는 거 같으니.”
하무백은 관주실 여기저기를 살폈다.
“대체 맹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그리 묻는 팽도율의 얼굴에는 곤혹스러운 감정이 가득했다.
“난들 알겠소. 가라고 했으니 왔을 뿐.”
“자네 정도 되는 사람이 순순히? 그것도 일반 교관으로?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쩝. 환영받을 생각은 안했소만, 처음부터 이거 너무 한 거 아니오?”
“끄응. 자네가 내 입장이 돼보면 그런 소리가 나오겠나?”
“아니, 내가 뭐 어떻다고 그러는 겁니까?”
하무백은 짐짓 억울하다는 얼굴을 했다.
“뭐, 정말 몰라서 묻는 것 같은 그 얼굴이 더 놀랍구먼.”
팽도율이 고개를 저었다.
“제발 부탁이니, 교룡관에 있는 동안은 조용히 있어주게나.”
“난 항상 조용히 있었소만. 상대가 시끄러웠을 뿐이지.”
팽도율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저게 문제였다.
상대가 시끄러웠다는 저 말.
사실이기는 했다.
늘상 하무백을 건드리는 이들은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쪽의 인물들이었으니.
그들로서는 하무백의 존재가 눈의 가시였다.
명문정파의 출신도 아닌, 어디에 박혀 있는지도 모를 허접한 문파 출신의 그가 정천맹주의 최측근인 호천단주로 있다는 게 문제였다.
하무백이 어떤 괴물인지 아는 이는 정천맹 내에서 많지 않았다.
다행히 자신은 그의 진실한 실력을 아는 소수 중 한 명이었고. 그랬기에 모용진호를 불러다가 미리 언질을 준 것이다.
사고치지 말라고.
“후우. 알겠네. 뭐, 자네가 이곳으로 온 것만 봐도 지금 맹은 시끄럽겠구만.”
“뭐, 그런 쪽으로는 별 관심 없수다.”
하무백의 대답에 팽도율은 피식 웃었다. 설마 그럴라고. 저놈이 어떤 괴물인지는 지난 전쟁에서 멀리서나마 겪었다.
“다시 한번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있어주게.”
“그보다 맹룡대는 대체 뭐하는 데요? 오면서 들으니 고기방패 어쩌고 하던데.”
“음… 뭐, 틀린 말은 아니군. 생환율이 오 푼 정도이니. 죽으러 갈 사람들 훈련시키는 거나 다름없지.”
그 말에 하무백이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박아 넣어도 하필이면 이렇게 재수 없는 곳에 박아 넣나.”
“한 해에 한 번, 백 명씩 선발하네.”
“용케도 일 년에 백 명이나 모으는구려.”
“그야말로 아무것도 안 보거든. 지원만 하면 선발해. 그리고 결원이 생기면 팔월 즈음에 추가로 좀 더 선발하고.”
“끄응. 들을수록 답이 안 나오네. 이거.”
“그리고 이곳에서 이 년간 훈련을 시킨 후 그곳으로 보낸다네.”
“정말로 죽으라고 사람 모으는 곳이군요. 그곳에 보내는데 꼴랑 이 년? 그것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뽑아서? 진짜 개새끼들이네 이거.”
하무백의 적나라한 평에 팽도율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면전에서 욕을 들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그 분노를 하무백에게 직접 터트리지는 못했다.
그랬다가는 어떤 꼴이 될지 잘 알았으니. 분노 조절을 잘한 것이다.
“부르셨습니까?”
그때 문밖에서 모용진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게.”
관주실에 들어온 모용진호는 하무백을 발견하고는 흠칫했다. 밖에서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한 탓이다.
눈치가 있었기에 대번에 그 정체를 짐작했다.
“이번에 맹룡대의 교관으로 온 하무백이라 하네. 이쪽은 맹룡대주 모용진호. 자네 상급자일세.”
팽도율의 소개에 하무백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처음 뵙겠습니다. 하무백이라 합니다.”
“모용진호라 하오.”
미리 언질을 받은 것이 있었기에 모용진호는 긴장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하면, 모용 대주께서는 이 년 뒤에 함께 그곳으로 가시는 겁니까?”
하무백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팽도율에게서 나왔다.
“아닐세. 맹룡대는 교룡관에서 훈련만 책임질 뿐, 그곳으로 가는 것은 대원들뿐이네. 그곳에서 봉마단의 지휘를 받지.”
“이거, 여기도 개새끼네.”
그 말을 듣자마자 하무백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모용진호는 면전에서 욕을 먹고도 흠칫 몸을 떨 뿐이었다.
하무백에게서 흘러나온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