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골치 아프네
움막.
그래, 집이라기보다는 움막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허름한 집이다.
다른 훈련생도 넷을 숙소에 데려다 놓고 음식 보따리를 든 단목운뢰와 하무백이 도착한 곳이다.
단목운뢰는 얼굴 가득 웃음을 띤 채로 그 움막, 아니 집으로 들어갔다.
하무백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살짝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머니! 운혜야!”
“운뢰야. 네가 어찌 이리 온 게야… 첫 석 달은 못 나온다고 하지 않았니?”
먹먹한 어머니의 목소리다.
하무백의 뛰어난 청력은 그 목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오빠! 오빠! 그건 뭐야?”
앳된 여자아이의 목소리도 들렸다.
‘열 살이라고 했던가?’
하무백은 신상명세의 가족관계를 떠올렸다.
단목운혜. 올해 열 살이 된 단목운뢰의 하나뿐인 여동생이었다.
어머니와 여동생.
이게 그의 가족 전부였다.
찢어지게 가난한 가족.
그야말로 단목운뢰는 목숨을 팔러 맹룡대에 입대한 것이다.
“우와! 이게 뭐야? 이런 걸 먹을 수 있는 거야!”
기쁨에 가득 찬 단목운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뢰아야. 이게 대체 어찌 된 거냐? 어디서 이런 귀한 음식을…….”
반면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이런 고급 요리를 어찌 아들이 가지고 올 수 있단 말인가.
“아, 교관님이 훈련 첫 날이라고 사주셨어요.”
단목운뢰는 적당히 대답했다.
과연 훈련 첫날이라고 사준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이야기해야 어머니가 걱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마, 맛있다! 세상에 이런 음식이 있었어?”
단목운혜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마저 먹기 시작했다.
단목운뢰는 그런 여동생의 모습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잠시 후 단목운뢰가 나왔다.
“가자.”
하무백은 짧게 말했다.
“가, 감사합니다. 교관님.”
언제 나온 것일까? 단목운뢰의 어머니가 문 밖으로 나와 하무백의 등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하무백은 몸을 돌려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의 눈에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꽉 붙잡고 있는 단목운뢰의 여동생 운혜가 보였다.
‘저건…….’
하무백은 다시 교룡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단목운뢰가 그 뒤를 따랐다.
“저희 집안은 본디 세가였다고 합니다.”
묵묵히 걸음을 옮기던 단목운뢰가 입을 열었다.
“제가 여덟 살, 그리고 혜아가 아직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대략 십 년쯤 전인가 보다. 그 때면 강호는 한창 전쟁으로 시끄러울 때다.
하룻밤 사이에 수많은 방파가 사라지고, 수많은 방파가 생기던 시절이다.
“전쟁에 휘말려 세가가 멸문했습니다. 어머니께서 겨우 저만 데리고 이곳 무창으로 도망을 쳤지요.”
“…….”
“멀고도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아직 제가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요.”
하무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희 가문이 멸문을 당한 것이, 누군가의 배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맹룡대에 들어왔습니다. 단순히 돈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힘이 필요해요. 그런데 저 같은 아이에게 무공을 가르쳐줄 문파 따위는 없지요. 오직 맹룡대만이 저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입니다. 그러니 집에 가라는 말씀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동생도 아프고?”
“어떻게…….”
하무백의 물음에 단목운뢰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녀석은 과연 동생이 왜 아픈지 알고나 있을까? 잠깐 스치듯 본 것이지만, 하무백의 눈썰미를 피할 수는 없었다. 습관적으로 발휘된 무극명륜안 덕이다.
칠음절맥(七陰絶脈).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스무 살을 넘기지 못하는 지랄 맞은 체질이다. 단목운혜는 그걸 타고났다.
“의원에는 가봤냐?”
“원인을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욱 힘과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제발 집으로 가라고 하지 마십시오.”
“…….”
하무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사이 두 사람은 교룡관의 정문 근처에 도착했다.
어느새 자정이 넘어선 시각이다.
교룡관의 수문위사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었다.
“아.”
하무백이 우뚝 멈춰 섰다.
네 명의 훈련생도를 데려다 주고 다시 나올 때 수문위사가 한 말이 이제야 기억이 났다.
‘자정이 지나면 모든 출입이 금지된다 했던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정은 확실히 지났다.
즉, 출입이 금지된 상태다.
“골치 아프네. 젠장.”
“왜 그러시는지요?”
단목운뢰가 조심스레 물었다.
“자정 지났다.”
“네에?!”
그 말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들은 단목운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집에서 너무 오래 머무른 바람에…….”
단목운뢰가 허리를 숙였다.
“됐고.”
하무백은 손을 들어 단목운뢰의 입을 닫게 했다. 그리고 고민했다.
정면 돌파 할 것이냐.
측면 돌파 할 것이냐.
문득 팽도율에게 당당히 했던 말이 떠올랐다.
‘조용히 있을 거라 했지. 씨발. 쪽팔리게.’
정면 돌파를 시도하면 정문의 수문위사들과 부딪치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상당한 소란이 일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지금 하무백에게는 혹까지 딸려 있었다.
‘어쩔 수 없군. 마음에는 안 들지만.’
하무백은 측면 돌파를 택했다.
“너 숙소가 당진산 놈이랑 같은 방이라 했던가?”
“네? 네.”
고개를 끄덕인 하무백은 즉시 단목운뢰의 아혈과 마혈을 짚었다.
“?!?”
단목운뢰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대로 굳었다.
하무백은 그런 그를 한쪽 어깨에 둘러메고는 몸을 날렸다.
소리도, 진동도, 어떤 흔적도 없었다.
표홀히 몸을 날린 하무백은 교룡관을 지키고 있는 무사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순식간에 맹룡대 숙소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방을 찾아 창문을 열고는 단목운뢰를 던져 넣었다.
볼 일을 마친 하무백은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젠장. 근무 첫날부터 담을 넘어 들어오다니. 모양 빠지는군. 그나저나 단목이면… 역시 단목세가려나?”
섬서성 서안.
한때 그곳에서 명성을 떨쳤던 한 세가를 떠올리며 하무백은 중얼거렸다.
***
아침이 밝았다.
사시 초.
연무장에 다섯 사람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하무백은 귀찮음이 가득한 얼굴로 어기적거리며 걸어왔다.
“흐아암.”
생도들이 보는 앞에서 입을 쩍 벌리고는 커다란 하품.
“어제 누구 덕에 잠을 좀 늦게 자서 그러니까. 이해 좀 해라.”
그 말에 단목운뢰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하무백이 다섯을 일일이 눈을 맞춰가며 바라보았다.
“니들 진짜 집에 안 갈 거냐?”
다섯은 모두 살짝 시선을 피했다.
안 간다는 대답이다.
“아씨. 진짜. 집에 좀 가라, 가. 보내준다 할 때 가라고. 너희들 여기가 뭐하는 데인지 알아?”
“네!”
다섯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야, 당진산.”
“네.”
“그냥 성도에서 계속 망나니짓이나 하면서 사는 게 훨씬 좋지 않냐?”
하무백의 물음에 당진산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뭐, 여기가 개나 소나 다 뽑아다 놓는 줄 알아?”
“네. 개나 소나 다 뽑던데요.”
당진산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하무백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맞다. 사실 지원만 하면 개나 소나 다 뽑아줬다.
단.
“그래도 여기 교룡관이다. 누구네 집 개인지, 누구네 집 소인지 정도는 확인한단 말이지.”
그 말에 다섯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런데 너희 둘은 여기 있을 애들이 아니야.”
하무백의 시선이 사천당가의 당진산, 종남파의 백리평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하민을 슬쩍 보았다.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니들 여기 있어 봐야 저 셋에게 민폐다. 민폐.”
하무백의 시선이 이번에는 연하민을 스쳐 낙우진과 단목운뢰에게로 향했다.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고기 방패에 어울리는 아이들이다.
‘낙우진 저 새끼는 숨기는 게 있지만.’
단목운뢰는 당황한 얼굴로 세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명입니다. 집으로 가봐야 뒤지게 맞고 다음 기수에 다시 이곳으로 올 거예요.”
이미 전날 저녁에 비슷한 말을 했던 당진산이다.
“장문인의 명입니다.”
백리평이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후우.”
하무백이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죽어도 여기에 있다가, 이 년 뒤에 죽으러 가겠다?”
살짝 비아냥거리는 듯한 하무백의 어조에 두 사람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니들. 니들이 이 년 뒤에 가야할 곳이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냐?”
하무백이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산월장성 너머의 산월마림으로 알고 있습니다.”
“혈교의 잔당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마물들을 소탕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백리평과 당진산의 대답이다.
“그러면 그 잔당과 마물들이 어떤 놈들인지는 알고?”
“…….”
“음…….”
“…….”
그 물음에는 대답이 없었다.
그에 대해 정확히 아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정말 극소수였다.
강호에 퍼진 소문은 그저 마물의 땅이라는 정도다.
그나마 좀 아는 사람들이 맹룡대의 생환율이 극악하다는 정도까지 알았다.
“맹룡대 한 기수의 생환율이 오 푼이다. 오 푼. 백 명이 가면 오 년 뒤에 다섯 명이 돌아온다고. 스무 개 조 중에서 겨우 한 조. 그것도 멀쩡하게 오는지 병신이 되어서 오는지는 모르겠다만.”
하무백의 말에 다섯 명은 술렁였다.
위험한 곳이라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이렇게 정확한 수치로 들은 것은 처음인 탓이다.
“니들 중 몇 명이나 그 다섯 명 안에 포함될 거 같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하무백이 이토록 진지하게 이들을 말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산월마림.
혈교대전 당시 그 저주받은 땅을 직접 뚫고 들어간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혈교 교주는 처단했지만, 그 저주받은 땅은 여전했다.
‘빌어먹을 장로원 늙다리들.’
하무백은 맹에 있을 때, 볼 때마다 재수가 없었던 이들을 떠올리며 욕을 퍼부었다.
전쟁 후 산월마림의 소탕.
그것은 장로원의 강력한 주장으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맡은 임무였다.
신진팔문과 맹주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혈교 교주를 비롯한 주요 세력을 이미 모두 처단한 뒤였기에, 쉬울 줄 알고 선택한 일.
철저한 오산이었다.
그 저주받은 땅은 절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제대로 그곳을 소탕하려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역시 엄청난 희생을 감내해야 할 정도였으니.
그들이 그것을 감내할 리 없었다.
결국 유야무야 없던 일처럼 넘어가고, 현재는 정천맹의 무력부대 중 하나인 봉마단이 산월장성을 관리하고 있었다.
물론 그 책임자는 장로원 쪽의 인물이다.
그 덕에 계속해서 맹룡대라는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잘 들어라. 산월마림. 그곳이 왜 마림일 거 같냐? 그야말로 저주받은 땅이다.”
다섯 사람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고,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으니까.
“장로원의 빌어먹을 늙은이들이 꽁꽁 숨기고 있는 사실이다. 저기 위에 높은 곳에 있는 젠장맞을 분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지.”
하무백의 시선이 당진산에게로 향했다.
“물론, 네 아버지도 말이야.”
당진산의 아버지는 현 사천당가의 가주였다. 당진산은 당가주의 사남으로 절대 이곳에 올 신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큭.”
당진산은 작은 신음성을 흘렸다.
“세상에 숨긴 이야기를 지금 알려주지. 혈교에서 그 땅에 무슨 사술을 부려놨는지 몰라도, 끊임없이 사강시(死僵屍)가 나타나는 곳이다. 어제 죽은 내 동료가 다음 날 사강시가 되어 내 앞을 막아서는 그야말로 저주받은 땅이지. 사람만이 아니야. 온갖 짐승들도 사강시가 되어 나타난다. 어디 사강시뿐일까. 혈강시에 독강시, 온갖 빌어먹을 강시들이 나타나는 곳이야. 그야말로 마물 새끼들이지.”
“…….”
“…….”
말이 없었다.
누군가는 마른침을 삼켰다.
강시라니.
풍문으로만 듣던 존재 아닌가.
그런 존재가 끊임없이 나타나는 숲이라니.
“그리고 네 놈들은 그곳에서 봉마단이라는 빌어먹을 놈들이 그 강시랑 싸우기 편하게 방패 역할을 할 예정이고. 그 과정에서 전부 죽어 나가는 거지.”
“교, 교관님은 그걸 어떻게 알고 계시는 겁니까?”
당진산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한 의문이다.
오대세가의 가주 정도나 되어야 알고 있을 거란 비밀을 어찌 일개 맹룡대의 교관이 알고 있단 말인가.
“나야 알만한 사람이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래서 집에 갈 거야? 말 거야?”
한 번 더 묻는 하무백.
그럼에도 집에 가겠다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다만, 단목운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너. 진짜 집에 안 갈 거야? 이 년 뒤에 어머니랑 여동생 눈에 피눈물 나게 할 거야?”
“제가 집에 가면, 이 년 되기 전에 제 눈에 피눈물이 날지도 모릅니다.”
비쩍 마른 단목운뢰의 어머니와 여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단목운뢰의 건강 상태 역시 썩 좋지 않았다.
단목운뢰가 맹룡대를 나가면, 그 가족은 이 년이 되기 전에 굶어 죽을지도 몰랐다.
“이 병신들.”
하무백이 다섯 사람을 보고 중얼거렸다.
“그래. 집에 가기 싫다면 여기 있어라. 이 년 동안 잘 먹여주고, 재워주고, 돈도 줄 테니. 다만, 나는 죽으러 가겠다는 병신들한테 내 시간 쓰기는 싫다. 그러니까 알아서들 훈련해.”
“네?”
“자율 훈련이라고. 자습. 몰라?”
그 말을 끝으로 하무백은 연무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