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동작 그만!!
단목운뢰는 계속해서 하무백이 기대앉은 나무 그늘을 힐끔거렸다.
자신의 마보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이 각(약 30분)의 시간이 흘렀다. 그 후로 아무런 말도 없었다.
역시 한 순간의 변덕으로 참견한 것일까?
단목운뢰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마보에 집중했다.
온 몸에서 땀이 후두둑 떨어졌다. 정말이지 괴롭고도 괴로웠다. 그럼에도 마보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단목운뢰가 알고 있는 수련법은 마보가 유일했으니까.
같은 조원 중 두 사람은 확실히 무공을 알고 있는 듯했다. 한 명은 그 유명한 사천당가라고 했던가.
그리고 연하민이라는 생도도 무공에 관해 무언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그들에 비하면 자신은 정말 쥐뿔도 없었다.
이 년 뒤.
교관님이 말한 그 저주받은 땅에 가면 분명 죽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
발버둥이라도 쳐야 했다.
그것이 단목운뢰에게 있어서는 마보였다. 유일하게 알고 있는 무공 수련법.
하무백은 그런 단목운뢰를 반쯤 감은 눈으로 안 보는 척, 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발끝 햇볕이 내리쬐는 땅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자네 또 한바탕 했더구만.”
교룡관주 팽도율이었다.
“고작 그런 걸로 한바탕이라니, 너무 소심한 거 아니오? 관주. 그리고 지난번에도 말한 것 같은데 말이오. 난 가만히 있었는데, 그쪽에서 먼저 시끄럽게 군 거요.”
“뭐, 그랬다고 하더군. 그래도 생각보다 조용히 넘어갔구만.”
“잡놈 상대로 시끄럽게 해봐야 무슨 소용이요.”
“잡놈 말고 애송이에게 한 방 먹어서 그런 건 아니고?”
팽도율이 놀리듯 농담조로 은근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 무슨 얼토당토않은 말이요?”
“패배자에 도망자 거기에다 쓰레기까지. 그 애송이에게 들은 말이 아닌가? 천하의 하무백이 말일세.”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의 헛소리에 신경 쓸 시기는 지나도 한참 지났소.”
“정곡을 찔려서 그런 건 아니고? 좀 전에 보니 당진산과 단목운뢰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 같더군.”
하무백이 눈을 뜨고는 팽도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맹룡대라는 곳이 부조리의 온상 같아 보일 테지. 그래서 자네가 이곳을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라 여길지 모르겠네만. 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법이라네. 그러니 저 아이들을 잘 봐주는 건 어떤가. 생환율 오 푼을 넘어서도록.”
“…….”
“사도광 그 친구야 뭐, 그렇다 치더라도. 제갈명.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애송이네만. 그래도 이곳에서 가장 책임감이 투철한 교관일세. 그러니 잠룡대의 교관이면서, 맹룡대의 사정을 알고 있는 게지. 그 나름대로 신경도 쓰고 있고 말이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게요?”
“그냥 그렇다는 걸세.”
“그나저나 정말 이용할 수 있는 담룡각이 정해져 있는 거요?”
“흠. 난 모르는 일일세. 관칙에도 그런 사항은 없고. 그럼 잘 부탁하네.”
팽도율은 그렇게 멀어져갔다.
하무백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런 팽도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오후의 일과 시간도 모두 끝났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자리에서 일어난 하무백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네.”
땀에 흠뻑 젖은 단목운뢰가 힘차게 대답했다. 다른 이들은 묵묵히 있을 뿐이다.
이번에 향한 곳은 남쪽의 담룡각이었다.
낮의 일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생도들의 숙소인 맹룡숙(猛龍宿)이 남쪽의 담룡각에서 가까웠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친 후 바로 맹룡숙으로 갈 수 있게끔.
남쪽 담룡각의 입구.
확실히 동쪽에 비해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이 많았다. 하무백에게 그런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저 문 앞에 붙어 있는 식단표를 유심히 살필 뿐이다.
식단을 확인한 하무백이 우뚝 멈춰 섰다.
달랐다.
동쪽의 것과 남쪽의 것이 달랐다.
점심 식사를 위해 낮에 갔을 때, 이미 저녁 식단까지 붙어 있었다. 그것과 이것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질의 차이가 확 났다.
동쪽의 담룡각에 나오는 식사의 질이 훨씬 좋았다.
“흐음.”
하무백이 침음을 흘렸다. 그래도 일단은 직접 음식을 확인할 요량으로 식당 안으로 들어가 배식판을 들고 줄을 섰다.
줄이 제법 있었으나, 빠르게 줄었다.
이윽고 하무백의 차례가 되었고, 식판에 음식을 받았다.
동쪽과 달리 이곳은 보조 숙수들이 직접 음식을 담아 주었다. 그 말인즉슨, 양이 적었다.
동쪽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음식을 퍼갈 수가 있었는데.
하무백의 눈썹이 꿈틀했다.
아니, 음식을 처음 봤을 때, 이미 하무백의 얼굴에서는 북풍한설이 불고 있는 터였다.
다섯 생도들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건 점심때 갔던 동쪽의 담룡각과는 너무도 다르지 않은가. 이들도 입관식에 이곳에서 식사를 한 후 남쪽으로 온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수련 첫날인 어제 점심은 굶었고, 저녁은 하무백과 나가서 먹었다. 아침은 다들 거르고 연무장에 나간 탓에 지금이 입관식 후 처음 온 것이다. 적어도 입관식 날은 이렇지 않았다.
음식의 질은 참담했다. 종류도 적었다. 식단표만도 못한 음식들이었다.
게다가 양은 어떤가. 주는 대로만 받아야 하는데, 그 양도 적었다.
누구 코에 갖다 붙이라는 것인지.
빈자리에 다섯 생도가 앉으려 할 때, 하무백의 입에서 스산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딴 개밥 같은 음식을 사람 먹으라고 준단 말이지… 일단 먹지 말고 기다려라.”
그 말을 마친 하무백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일단 입구의 식단표부터 떼어서 챙겼다.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움직임이었다.
하무백의 신형이 다시 사라졌다. 그가 나타난 곳은 동쪽의 담룡각이다.
그곳의 식단표를 떼어 내고는 식당 내부를 확인했다.
같은 행동은 서쪽과 북쪽에서도 했다.
네 곳의 담룡각을 확인한 하무백의 얼굴은 분노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후우. 후우.”
하무백이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빠르게 했다.
천천히 해야 하건만, 그것이 되지 않았다.
적어도 먹는 것에 있어서는 진심인 하무백이었기에 분노가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팽 관주…….”
중얼거리는 하무백의 음성은 살기마저 띠고 있었다.
하무백은 곧장 흉흉한 기세를 뿌리며 관주실로 향했다.
아직 집무를 보고 있는지 불이 밝혀져 있었다.
“관주. 하무백이요. 잠깐 뵈었으면 합니다.”
순식간에 입구에 나타난 그 모습에 수행위사들이 당황해 어쩔 줄 몰랐으나, 하무백의 외침에는 거침이 없었다.
관주실의 문이 열리고 팽도율이 얼굴을 보였다.
“자네가 갑자기 웬일인가?”
그리 묻는 팽도율의 얼굴에는 은근한 기대감이 있었으나, 하무백의 표정을 확인하고는 곧 딱딱하게 굳었다.
그가 풍기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들어오게.”
관주실의 문이 닫혔다.
“이거 좀 보시오.”
하무백이 내려놓은 네 장의 종이.
동서남북의 담룡각의 식단표였다.
“이게 뭔가?”
대강 보기에도 음식과 요리가 적혀 있는 종이였다.
“동서남북 담룡각의 식단표요.”
“그러니까 이걸 대체 왜 내게 가지고 온 건가?”
네 장의 식단표를 살피던 팽도율의 눈썹이 꿈틀했다.
한 장의 종이가 그의 시선에 걸린 것이다. 요리나 음식에 조예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저 배가 고프면 먹고, 너무 맛없는 음식만 아니라면 잘 먹는 편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도 무언가 걸리는 식단표였다.
“남쪽 거요.”
하무백이 툭 내뱉듯 말했다.
“근데 그거 아시오? 그것도 굉장히 많이 꾸민 식단표요.”
“…….”
“남쪽 담룡각 가본 적 있으시오?”
“없네. 알다시피 관주실에서는 북쪽이 가장 가까우니 주로 그곳을 이용하네.”
“그럼 북쪽의 음식이 어찌 나오는지는 알고 계시겠수다.”
“그렇지.”
“그럼 가봅시다.”
“어딜?”
“남쪽이오.”
“…….”
팽도율은 아무 말도 없었다. 하무백의 두 눈이 사납게 빛났다.
“이러면 안 되는 거요. 이것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고, 게다가 맹룡대 놈들은 이 년 뒤에 고기 방패로 죽어 나자빠질 녀석들인데. 먹을 것으로 장난을 쳐? 정녕 사람이오?”
자리에서 일어나 팽도율을 쏘아보는 하무백의 눈빛이 흉흉해졌다.
팽도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지.”
“전력으로 갑시다.”
전력으로 남쪽 담룡각으로 달리라는 말이다.
팽도율의 눈썹이 꿈틀했으나 방법이 없었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당장 자신의 멱살을 잡고 내달릴 듯한 기세였으니.
하무백이 열어젖힌 것은 문이 아니라 창문이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문 팽도율이 몸을 날렸다.
나름 절정고수였기에 그는 표홀한 신법을 펼치며 남쪽으로 내달렸다.
하무백이 바로 뒤에 따라 붙었다.
갑작스런 관주의 움직임에 수행위사들이 바쁘게 따라 붙었다.
두 사람이 남쪽의 담룡각 입구에 도착한 것은 금세였다.
담룡각에서 일하던 숙수들이 관주의 방문 소식에 부리나케 입구로 뛰어나왔다.
그리고는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팽도율의 앞길을 막았다.
담룡각 내부에서 좋은 냄새가 조금씩 풍기기 시작했다.
팽도율의 얼굴이 일그러지려는 찰나, 뚱뚱한 체구에 얄팍한 눈을 가진 사내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담룡남각주 홍오철이 관주를 뵙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황급히 허리를 숙이는 홍오철이다.
“홍 각주. 왜 숙수들이 내 앞을 막는 겐가?”
“관주께서 들어갈 만한 곳이 아닌지라, 아직 정리가 안 되어서 그럽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제가 직접 안내하겠습니다.”
“정리가 안 된 곳에서 밥 먹고 있는 사람들은 그럼 뭐지?”
하무백의 말에 홍오철이 이를 질끈 깨물었다.
“하 교관의 말이 맞네. 북쪽은 내가 아무 때고 드나드는데, 왜 남쪽은 나를 막는단 말인가. 어서 길을 열게.”
“그 북쪽과 남쪽은 각자의 사정이라는 것이 다른지라…….”
“오늘 오후에 관주께서는 저에게 네 곳의 담룡각은 모두 같다 하지 않았습니까? 관칙도 그러하다 하셨고요.”
주변의 시선 때문인가.
하무백은 평소와는 다르게 경칭을 사용했다.
그 말에 팽도율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저, 관칙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만… 현장에서는 또 나름 실무자들의 사정이라는 게 있는지라…….”
그 사이 점점 음식 냄새가 향기로워지고 있었다.
“안 비키면, 맞는다.”
하무백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그의 몸에서 광폭한 기세가 주변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윽.”
그 기세에 홍오철이 움찔하고 놀라는 찰나.
하무백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고, 팽도율이 그 뒤를 따랐다.
“이건…….”
잡일꾼들이 열심히 식판의 음식을 버리고 있었고, 음식이 놓여 있어야 할 선반은 비어 있었다. 대신 주방 쪽에서 연신 시끄럽게 음식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만큼 식욕을 자극하는 향기가 그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동작 그만!! 모두 그대로 멈춰!!”
내공이 담긴 하무백의 외침.
그 효과는 지대했다. 모두가 움찔하며 그대로 굳었다.
“제대로 살펴보시지요.”
팽도율이 아직 식판을 들고 있는 잡일꾼들을 살폈다. 맹룡 대원들도 곳곳에 보였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런 걸…….”
사람 먹는 밥이라고 그동안 내놓고 있었단 말인가.
화가 나고, 부끄러웠다.
교룡관에 온 지 고작 사흘째인 하무백이 단번에 찾아내는 것을, 몇 년을 관주로 지낸 자신이 이제야 알게 되다니.
관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뜰히 살핀다고, 일과 시간이면 곳곳을 다녔다. 그랬기에 오늘 낮에 담룡동각에서 있었던 소란에 관한 소문도 들었고, 하무백이 잠깐이나마 생도들을 가르치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그런데 담룡각은 놓치고 있었다.
몇 년을 있으며 단 한 번도 북쪽이 아닌 다른 곳을 찾지 않은 탓이다.
‘음식이 다 같겠지’라는 안일한 생각 때문이었다.
황급히 따라 들어온 홍오철은 팽도율의 표정을 확인하고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홍 각주.”
스산하고도 사나운 목소리가 팽도율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네, 네… 네. 관주님.”
홍오철의 목소리가 거칠게 떨렸다.
“동서남북 네 곳의 식당이 동등하다 하더니. 남쪽은 이런 개밥 같은 밥을 주면서, 맹룡대랑 잡일꾼들은 남쪽만 이용하는 게 관례라니. 참 대단합니다. 교룡관이.”
하무백이 비꼬듯 말하고는 피식 웃었다.
팽도율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분노가 아니었다.
부끄러움이었다.
자신이 하무백에게 그리 말하고 대체 몇 시진이 지났단 말인가.
그런데 이딴 참담한 꼴이라니.
‘쪽팔리군.’
그때 막, 주방에서 바쁘게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끄럽고 정신없는 주방이었기에, 식당의 일을 미처 알지 못한 탓이었다.
숙수와 보조 일꾼들이 음식을 가득 담은 커다란 그릇을 들고 나오다가 흉흉한 분위기가 그대로 멈춰 섰다.
“일단 식사부터 할 수 있도록 하지.”
제대로 된 음식이 나왔기에 팽도율은 주변을 둘러보며 그리 말했다.
그때, 팽도율의 수행위사들이 허겁지겁 도착했다.
그들을 본 팽도율이 마침 잘 됐다는 얼굴로 말했다.
“잘 왔군. 여기 홍 각주 체포하게. 그리고 홍 각주 집무실 탈탈 털고.”
무심한 말에 홍오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먹는 걸로 장난치지 맙시다. 다들 하루하루 먹고 살겠다고 힘든 삶을 버티고 있는 거니.”
하무백은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식당에 있던 다섯 생도는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하무백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팽도율 역시 여전히 붉은 얼굴로 점점 작아지는 하무백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