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6화 (6/312)

6화. 개가 똥을 끊지

폭풍 같은 사흘이 지났다.

교룡관은 담룡남각의 문제로 인해 시끄러웠다.

모든 담룡각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한시가 멀다 하고 관련자들이 불려갔다.

그렇게 드러난 실체에 팽도율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왔는가?”

관주실로 들어오는 하무백에게 팽도율이 자리를 권했다.

“벌써 조사가 끝난 거요?”

“대강은.”

“사흘이면 끝날 것을 대체 몇 년을 놔둔 건지. 쯧.”

하무백이 혀를 차는 소리에도 팽도율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시작은 동서남북의 담룡각의 이용자들의 신분이 거의 고정되었다는 거였네. 그러다가 은연중에 관례가 생기고. 잠룡대와 와룡대에 치인 맹룡대 인원들이 남쪽으로 모이면서 놈들이 나쁜 마음을 먹었더군.”

“약자를 귀신같이 알아본 거로군요.”

“그렇네. 잡일꾼과 맹룡대원들이라. 뒤탈이 없을 거로 생각하고, 담룡남각의 음식을 질을 조금씩 떨어트린 게지. 아무 일도 없으니 점점 간이 커진 거고. 문제는 동서남북의 네 각주가 모두 한 패였다는 걸세.”

“썩을 대로 썩었구만.”

“오랫동안 많이도 해 먹었더군. 특히나 놈들이 앞장서서 맹룡대원들을 남쪽으로 몰았어. 가끔씩 다른 쪽의 담룡각으로 오는 맹룡대원들은 안으로 들여보내지도 않고 남쪽으로 보냈다고 하니. 그러면서 위쪽으로 뇌물도 많이 뿌렸더군. 그러니 그동안 그렇게 해 먹은 걸세.”

“개새끼들.”

하무백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잠룡대와 와룡대, 그리고 맹룡대의 관복마다 문양이 달랐다. 그랬기에 담룡각의 일꾼이 맹룡대를 구분해낸 것이다.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걸세.”

팽도율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개가 똥을 끊지. 한 번 맛을 봤는데 어찌 그럴 수 있겠소?”

하무백이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적어도 내가 관주로 있는 한은 그런 장난질은 못 칠 게야. 앞으로 내 삼시세끼를 담룡각에서 먹을 생각이거든. 동서남북 중 아무 곳이나 발길 닿는 대로.”

하무백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의외라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이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자네 말대로 하루 먹고 살겠다고 힘든 삶을 이어가는데, 먹는 걸로 장난을 치면 안 되지.”

그 말에 하무백이 싱긋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자네가 생각하는 것 같은 그런 개새끼는 아니라네.”

“뭐, 그거야 두고 볼 일이지요.”

하무백은 그 말을 남기고 관주실을 떠났다.

그가 향한 곳은 칠 조의 연무장이다.

자신의 일이니 연무장에는 착실히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계속 자습만 지시했을 뿐이지만.

연무장 근처로 걸음을 옮기던 하무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느껴지는 기척이 여섯 개였기 때문이다.

추가된 그 하나의 기척 역시 한 번 만난 적이 있던 이였다.

‘저 친구가 왜 여기에…….’

만나보면 의문은 해결될 일.

하무백의 걸음에 변화는 없었다. 연무장에 가까이 이르자, 상대도 하무백의 기척을 느낀 듯했다.

하무백이 모습을 드러내자 상대가 포권을 하며 허리를 숙였다.

“하 교관께 인사드립니다.”

“제갈 교관께서 이곳까지는 어쩐 일이신가?”

마주 포권을 하는 하무백의 얼굴에는 의문이 서려 있었다.

“그것이, 감사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응?”

“하 교관의 말씀대로 제가 애송이였습니다. 설마 담룡각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관례를 이용해서 그런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니. 그것도 무사들과 일꾼들이 먹어야 할 식사로…….”

의외의 모습이었다.

적어도 하무백이 아는 오대세가의 사람들은 이러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법이요 진리였다.

“부끄러운 말씀입니다만, 잠룡대가 식사를 하는 담룡동각만 신경을 썼을 뿐, 다른 담룡각은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저 북각과 동각이랑 전부 비슷하겠거니 했지요.”

사실 그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었다.

교관들은 식사를 담룡북각에서 해결했다. 그것은 맹룡대의 교관들도 마찬가지.

다른 담룡각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랬기에 그런 말도 안 되는 비리가 가능했던 것이다.

맹룡대의 생도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알았기에, 그런 식사에도 제대로 항의하지 않았던 것이고.

사실 칠 조 인원의 신분이 맹룡대답지 않게 이상한 것이다.

보통의 맹룡대 생도들은 단목운뢰 같은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하무백이 자신의 조원들을 데리고 담룡남각을 찾기 전까지, 교룡관의 그 어떤 교관이나 관도들도 남각의 식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애초에 교관들은 생도들의 식사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동각의 식사에라도 관심을 가진 제갈명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 관례를 들먹이며, 동각으로 식사하러 온 맹룡대 생도들에게 남각으로 갈 것을 종용하는 수석 교관의 행동에도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으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다시 한번 허리를 숙이는 제갈명.

“뭐, 모르면 그럴 수도 있지.”

하무백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자 그제야 제갈명이 살짝 웃음을 머금고는 연무장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아직도 생도들을 방치하고 계시는군요.”

제갈명의 음성에는 씁쓸함이 감돌았다.

“…….”

하무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오후로군요. 제가 매달 7, 14, 21, 28일에 맹룡대 전체를 가르칩니다. 괜찮으시다면 참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대연무장에서 미시 초부터 시작합니다.”

제갈명은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떠났다.

하무백은 의외라는 얼굴로 제갈명의 뒷모습을 보았다. 잠룡대의 교관이 맹룡대를 가르친다니?

호기심이 동했다.

그러고 보니 그 말대로 오늘이 7일이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식사 후에 애들과 함께 대연무장으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힐끔거리던 다섯 사람 중 단목운뢰의 얼굴에 묘한 흥분이 감돌았다.

한 달에 네 번, 맹룡대 전체 수련이 있는 것은 일과표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교관이 제갈명일 줄이야.

무공이라고는 하나도 배운 적이 없는 단목운뢰로서는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

교룡관에서 가장 넓은 대연무장.

잠룡대, 와룡대, 맹룡대의 모든 생도가 모여도 넉넉할 정도로 넓은 면적을 자랑했다.

내려쬐는 햇볕 아래, 대연무장에 맹룡대 생도 이백 명 전원이 오와 열을 맞춰 서 있었다.

가운데 단상에는 제갈명이 올라 그런 맹룡대 생도들을 내려다보았다.

하무백은 한쪽 구석 나무 그늘 아래 기대어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늘이 첫 단체 훈련인데 어찌 알고 왔는가?”

어느새 하무백의 뒤에 나타난 팽도율.

“관주. 나를 미행이라도 하고 있는 거요?”

하무백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설마. 우연일세, 우연. 오늘이 맹룡대의 첫 단체 훈련인지라, 잠시 보러 왔다가 자네를 발견한 거야. 이 훈련 덕에 그나마 맹룡대의 생환율이 오 푼이라도 나오니까.”

그 말에 하무백의 시선이 팽도율을 향했다.

“제갈 교관이 오기 전에는 맹룡대의 생환율이 일 푼이 될까 말까였네. 사실 내공 한 줌 없이 들어오는 이들도 있는 곳이 맹룡대인데, 그 저주 받은 땅에서 오 푼이나 살아 돌아온다는 것도 기적과 같은 일이지.”

하무백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공감하는 말이었으니까.

“제갈 교관은 말일세. 제갈세가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한 친구일세. 그리고 그 대단한 자긍심만큼이나 오대세가의 일원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 하는 사내지. 지금 저 단체 훈련도 그런 책임감의 발로일세.”

하무백으로서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 내용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팽도율이었다.

“이제 시작하려나 보군.”

그때 교룡관의 일꾼들이 무엇인가를 잔뜩 들고 대연무장으로 들어왔다.

“방패?”

그것을 본 하무백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상치 못한 것을 본 것이다.

무림인들 중에 방패를 쓰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아니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교룡관에서 방패를 보게 될 줄이야.

“앞으로 본 교관이 생도들에게 가르칠 것은 방패술이다. 무림인들 중 방패를 하찮게 여기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나, 방패는 훌륭한 병기다. 내 생명을 몇 번을 구해주고도 남을 만큼이나 말이다. 특히나, 산월마림으로 가야 하는 생도들에게는 더더욱 중요한 병기이자, 방어구, 그리고 목숨 줄이다.”

제갈명의 내공을 실은 목소리가 이백 명의 생도들 귀에 그대로 박혔다.

그때 대연무장 근처를 지나가던 다른 생도들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무인이라는 자들이 방패술을 배우다니. 쪽팔리게.”

“저들을 무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어디.”

무복을 보니 와룡대의 생도들이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작게 속삭인다고 했을지 모르나, 하무백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절로 얼굴이 찌푸려 들었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애송이들의 멍청하기 그지없는 생각이었으니.

“애송이는 아니로군요…….”

하무백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 팽도율이 싱긋 웃었다.

“어째 한 방 먹은 표정이구만. 그래.”

그만큼 팽도율의 눈에 비친 하무백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팽도율이 뭐라 하든 하무백의 시선은 연무장으로 향해 있었다.

방패는 컸다.

상하로 4척(약1.2미터), 좌우로 약 3척(0.9미터), 두께는 못해도 반 척 이상은 되어 보였다.

시야 확보를 위한 작은 구멍이 있었지만, 그야말로 전면을 모두 막을 수 있는 크기의 방패.

무게만도 보통이 아닐 것이다.

과연 부들거리면서 방패를 제대로 들지도 못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지금부터 내가 시범을 보이는 동작을 잘 보고, 철저히 익혀라. 그것이 곧 너희의 구명줄이 될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제갈명이 직접 방패를 들고 한 동작, 한 동작 천천히 시범을 보였다.

처음 보는 방패술이었다.

고작 네 개의 간단한 초식으로 이루어진 방패술이다. 그러나 그 하나하나의 초식이 제법 효율적이었다.

“어떤가?”

팽도율이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나쁘지 않군요.”

무뚝뚝한 하무백의 대답.

“자네도 알다시피 이 무림에 방패를 사용하는 순법(盾法)이라 할 만한 무공이 얼마나 되겠는가. 제갈 교관이 가르치는 저 방패술은 철저히 외공을 기반으로 한 것이지. 저런 방패술은 교룡관에는 없었네.”

맞는 말이다.

“맹룡대의 현실을 두 눈으로 확인한 제갈 교관이, 직접 만든 걸세. 군부의 병기술과 십팔반무예들을 참고하여, 직접 시행착오를 거치며 만든 방패술이지.”

“제법이군요.”

하무백의 입에서 살짝 감탄이 어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저 친구도 천재니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무공도 아닌 하찮은 병기술처럼 보일지라도, 그 속에 녹아든 이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저 방패술을 만들며 제갈명이 얼마나 고민하고, 번뇌했을지 눈에 보이는 듯했다.

“이 년의 훈련 기간 동안 대부분의 맹룡대 생도는 저 방패술에 익숙해져서 그곳으로 간다네. 일부는 아주 능숙해지지. 생환하는 오 푼의 인원은 그런 이들 중의 몇몇이야.”

팽도율의 이야기에 하무백은 물끄러미 연무장을 바라보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거리는 팔과 손으로 방패를 움직이는 단목운뢰의 얼굴이 보였다.

몸은 괴롭고 힘들지언정, 그 얼굴은 생기 넘치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잠룡대의 교관이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요?”

“한창 저 방패술을 만들고 있을 때, 그렇잖아도 내가 물어봤네. 업무 외의 일이었으니까. 교룡관의 교관이기 때문이라 하더군. 맹룡대도 교룡관의 일원이고.”

“퍽이나. 그러면서 잘도 그런 쓰레기만도 못한 음식을 먹였구려.”

“끄응. 이제는 그럴 일이 없으니. 그 이야기는 그만함세.”

담룡남각의 일이라면, 팽도율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맹룡대의 단체 훈련도 제갈 교관이 자청한 걸세. 저걸 굳이 잠룡대의 교관이 진행할 이유는 없네. 그것 때문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쪽에서 말이 나오기도 했어. 특히나 수석 교관인 사도광, 그 친구가 무척 싫어했지. 그럼에도 제갈 교관의 고집으로 한 달에 네 번씩 이뤄지는 단체 훈련일세. 천지도 모르는 애송이는 아니라는 말이지.”

“알겠수다.”

하무백이 퉁명스레 답했다. 팽도율은 그 모습에 그저 웃을 뿐이다.

‘어차피 죽을 거라 방치하지 말고, 조원들이 살아 돌아올 오 푼 안에 들게 하라고 했겠다…….’

하무백이 심유한 눈으로 제갈명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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