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그럼 삼 초는 양보하지
멀리서 제갈명의 단체 훈련을 바라보는 눈빛이 하나 더 있었다. 아주 마음에 안 든다는 기색이었다.
사도광이었다.
‘끄응. 내가 그렇게 단체 훈련은 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하기 위해 담룡각을 찾았다가 건방진 잡놈이랑 얽혔었다.
그곳에 하필이면 맹룡대 잡놈들이 있었을 줄이야.
‘저딴 소모품 녀석들에게 쓸 시간이 있으면 오대세가 제자들에게 한 번 더 신경을 쓰라고.’
마음에 안 들었다.
역시 오대세가 출신이라 한미한 가문의 출신인 자신의 말은 우습다는 것인가.
아무리 그래도 수석 교관의 지시이자 부탁이었건만.
오로지 실력만으로 잠룡대의 수석 교관이 된 사도광이다.
그랬기에 더욱 줄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뒷배가 없이는 여기까지가 한계라는 것을 절감했기에.
결국 사도광이 택한 줄이 오대세가였고, 그들의 눈에 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건만.
아직은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제갈명이 오대세가 출신 제자들을 좀 더 봐주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그 자신도 오대세가이면서 왜 맹룡대 저 잡것들에게 저리 신경을 쓰는 것인지.
사도광에게 있어 맹룡대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
자율학습 시간의 풍경이 바뀌었다.
하루 종일 마보만 하고 있던 단목운뢰의 수련법이 바뀐 것이다.
연무장을 열심히 달렸고, 마보를 했으며, 제갈명에게 배운 방패술을 수련했다.
단체 훈련 말미에 제갈명에게 조언을 구한 것이다.
커다란 방패를 초식에 따라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근력 수련까지 되었다.
제갈명이 그것까지 고려해 만든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온몸을 부들거렸지만, 단목운뢰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다.
드디어 제대로 무공다운 무공을 배웠기 때문이리라.
이제 힘이라는 것을 가질 단초가 생겼다는 기쁨 때문이리라.
나무 그늘 아래의 바위에 올라앉아 턱을 괴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하무백의 눈빛이 복잡했다.
즐거운 모습으로 저리도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데, 자신이 저 녀석들을 이대로 방치해도 될까하는 고민 때문이었다.
“후우.”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때, 단목운뢰가 움직임을 멈추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다.
제갈명에게 배운 방패술의 네 개 초식을 모두 펼치고 잠깐 쉬는 때였다.
그러다 단목운뢰와 하무백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단목운뢰가 무언가 마음을 먹은 듯, 방패를 내려놓고 하무백을 향해 다가왔다.
“하 교관님.”
“응? 왜?”
“단체 훈련 때, 다른 조의 생도들에게 듣기로는 교룡관에 입관한 사람이면 누구나 배워야 하는 기본 무공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에 하무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금시초문이다.
그런 게 있었던가?
“다른 조의 생도들은 기본 무공을 배우고 있다고 하는데, 저희는 언제 배우게 됩니까?”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물음이었다.
하무백이 눈을 찌푸렸다. 아는 게 없으니 답을 줄 수가 없었다.
“잠깐만 수련하고 있어라.”
모르면 물어야지.
하무백이 향할 곳은 한 곳뿐이다.
교룡관 북쪽에 자리한 교룡전, 그곳에 위치한 관주실이다.
갑작스레 찾았음에도 팽도율은 자리에 있었다.
“무슨 일인가?”
팽도율은 평온한 얼굴로 하무백을 맞았다.
“교룡관의 생도면 누구나 익혀야 하는 기본 무공이 있었소?”
“그렇네만.”
“그런데 왜 나는 모르고 있었소?”
“첫날 전해준 서책들에 무공 비급이 있었을 텐데?”
질문에 대해 돌아온 물음에 하무백은 곰곰이 그날의 기억을 뒤적였다.
있었다.
교관의 근무 수칙과 관칙 위주로만 살폈지만, 분명 얇은 비급이 있었다.
너무 어이가 없는 내용이었기에 대강 보고 휙 던져뒀던 것 같은데…….
분명 제목이…….
“교룡심법, 교룡검법, 교룡권법, 교룡보법이었던가…….”
“맞네.”
팽도율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에 하무백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팽도율을 보았다.
“하아. 관주. 지금 진심으로 하는 소리요? 그 이름만 거창한 쓰레기들이?”
“그 이름만 거창한 쓰레기도 익히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곳이 맹룡대일세.”
“…….”
맞는 말이었다.
“와룡대나 잠룡대가 그것들을 익힐 것 같은가? 아니 익힐 필요도 없지. 한 번 슥 보면 이미 다 알고 있는 것들일 테니. 명가의 자제나 명문의 제자인 그들은 이미 익혀도 진작 익혔던 것들이지.”
“삼재심법, 삼재검법, 삼재권법, 삼재보법. 그러니까 삼재공(三才功). 그거랑 뭐가 다른 거요? 이름만 거창하게 지어놓고. 몇 부분만 대강 손을 보고.”
“그래도 그 삼재공보다는 낫지 않던가?”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시오?”
하무백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자네 생각은 다른가 보군. 뭐, 기본무공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한 제갈 교관이 방패술까지 만든 걸세. 그런 무공으로는 제대로 살아올 수 없으니까. 하지만 말일세. 방패술에 더해 기본 무공이라도 익히는 게 그들에게는 훨씬 낫겠지. 자네가 그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면 자네 담당 생도들은 그러지 못하겠군.”
“후우…….”
하무백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말인데.”
“뭐요?”
“그게 그렇게 못 쓸 무공인가? 자네에게도?”
은근한 웃음을 머금고 묻는 팽도율. 그의 시선을 마주한 하무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관주실을 나왔다.
연무장에 돌아오니 여전히 열심히 수련 중인 넷과 적당히 수련하는 척하는 하나가 있었다.
“주목.”
하무백의 낮은 외침에 다섯이 모였다.
“단목운뢰가 말한 교룡관의 기본 무공에 대해 알려주마.”
모두가 기본적으로 배우는 무공이 없다면야 계속해서 알아서 수련하라 팽개쳤을 것이다.
그러나 명목상으로 모든 교룡관도들이 의무적으로 익혀야 하는 기본공이니, 일단 교관인 하무백으로서는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칠 조의 조원들을 만나고 칠 일 만에 드디어 하무백이 처음으로 교관으로서의 책무를 시작하려 했다.
단목운뢰가 가장 빛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말 그대로 기본무공이다. 이미 비슷한 것을 익힌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교룡심법, 교룡검법, 교룡권법, 교룡보법. 이 네 가지인데,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그냥 삼재공이다. 그걸 손만 살짝 본 거지.”
진실을 알려줬음에도 단목운뢰의 초롱초롱한 눈에는 변화가 없었다.
하무백의 시선이 당진산과 백리평, 연하민을 차례로 지나갔다. 너희는 이미 다 익힌 것 아니냐는 의미였다.
“저는 이미 문파의 기본공을 수련 중입니다.”
백리평의 말이었다.
“뭐, 제가 익힌 것은 그런 쪽은 아닙니다.”
독과 암기, 채찍을 사용하는 당가 출신인 당진산이다.
“무공은 익혀 본 적이 없어요.”
연하민의 대답이었다.
의외였다.
하무백은 연하민에게서 분명 호북연가의 흔적을 보았었다. 그런데 무공을 익힌 적이 없다니.
단목운뢰와 낙우진은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면 단목운뢰와 낙우진, 연하민만 기본 무공을 익히면 되는 건가?”
“저도 익혀 보지요. 뭐. 삼재공이라면 제가 익힌 무공이랑 충돌하지도 않을 테고요.”
의외로 당진산이 함께 익히겠다고 나섰다.
백리평은 한 발 물러섰다.
종남에서 이미 기본부터 탄탄히 수련을 한 그였기에, 굳이 삼재공 기반의 무공을 익힐 이유가 없었으니.
“그러면 일단 심법부터 시작하지. 이쪽으로 와라.”
네 사람은 하무백의 가르침에 따라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을 조절했다.
그게 전부였다.
심법이라 거창한 이름을 가졌지만, 실상은 토납법이었다.
내공을 미약하게나마 쌓을 수 있는 토납법이기에 심법이라 한 것.
저잣거리에 나가도 돈만 주면 쉬이 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삼재공의 비급이었다.
비급이라는 말도 아까운 서책이었다.
낭인들이 가장 흔히 익힌 무공. 그게 바로 삼재공 아니던가.
물론 교룡관의 기본무공은 그것보다는 조금 더 발전한 형태였다.
“삼재공이라고 쉬이 보지 말아라. 나름의 지고한 이치를 기반으로 만든 무공이니까. 나는 조잡스레 손을 댄 교룡관의 기본무공보다는 삼재공, 그 기본으로 가르칠 거다.”
네 사람은 들숨과 날숨에 신경 써 토납법을 행하며 하무백의 말을 들었다.
“뭐가 어쩌고 어째?”
그때 거친 목소리가 하무백의 뒤에서 들려왔다.
연무장 가장자리 나무들이 우거져 그늘진 곳에서 토납법을 가르치고 있던 차였다.
그곳은 길과 인접한 자리였고, 마침 지나가던 사도광이 그 말을 들은 것이다.
“삼재공에 조잡하게 손을 댄 게 교룡관의 기본 무공이라고?”
잠룡대의 생도들을 데리고 이동하던 사도광이다.
과연 단순한 이동인지, 일부러 이 길을 택한 것인지는 사도광만이 알 일이다.
그러던 차에 하무백의 말에 트집을 잡은 것이다.
“교육 중이다. 참견하지 마라.”
하무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이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지껄이는데 어찌 잠룡대의 수석교관으로서 그냥 지나가겠느냐? 잠룡대의 생도들도 그 개소리를 들었는데.”
사도광의 두 눈이 분노로 물들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교룡관 기본무공 중 교룡권법을 손본 것이 그였으니까.
하무백의 말은 결국 사도광이 삼재공에 조잡스레 손을 댔다는 말이었으니.
“내가 가르치는 내 수업이다만.”
“조잡스럽게 손을 댔다고 한, 그 기본 무공. 교룡권법은 이 몸이 친히 열과 성을 다해 만든 권법이다. 그러니 응당 내가 참견할 수 있지.”
분노가 깃든 음성이었다.
그 말에 하무백은 피식 웃었다.
수준이 보였다.
제법 한 수는 있어보였으나, 아직 절정의 벽에 이르지 못한 무인이다. 그런 그가 손을 댔으니 조잡스러웠던 것이다.
삼재공.
삼재의 이치를 풀어낸 무공이다.
세월이 흘러 저자를 떠돌면서 본래의 지극한 이치가 많이 훼손되어 지금과 같은 꼴이지만, 절대 우습게 볼 무공도 아니었고 함부로 손을 댈 무공도 아니었다.
적어도 하무백은 스승께 그리 배웠다.
“그래서 그랬군.”
하무백의 말에 사도광이 노성을 터트렸다.
“네 이놈!!!”
아니 노성에서 끝나지 않았다. 불끈 쥔 주먹을 그대로 휘둘렀다.
담룡각에서의 시비와는 달랐다.
실내였고, 보는 눈도 많았다.
아니, 그때는 제갈명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없다.
보는 눈은 여전히 많았다.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동쪽의 잠룡대로 향하는 길의 곁이었다. 오가는 이들이 많았고, 대부분이 잠룡대의 생도들이었다.
사도광이 일으킨 소란에 그들이 하나둘 칠 조의 연무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도광의 주먹은 허공을 갈랐다.
하무백이 그런 주먹에 맞을 리가 없었다.
“이익.”
먼저 주먹을 휘둘렀음에도 무엇이 그리 분한지 이를 악물고 하무백을 노려보는 사도광.
“이게 무슨 행패지?”
“행패라고? 흥. 네놈은 네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거다. 교룡권법이 조잡한 무공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거라!”
독이 잔뜩 오른 외침이다.
그런 사도광의 눈빛에 하무백이 연무장 가운데를 눈짓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토납법의 수련을 멈춘 지 오래다. 진즉에 자리에서 일어난 네 사람과 백리평은 하무백의 뒤를 따랐다.
사도광과 잠룡대의 인원들도 함께 움직였음은 당연하다.
콧김을 내뿜으며 성큼성큼 걷는 사도광의 모습은 누가 봐도 크게 분노한 것이었다.
소문이 난 것인지, 알음알음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크지 않은 연무장 주변을 많은 이들이 둘러쌌다.
“대체 맹룡대에 왜 이러는지 모르겠군.”
방패술의 단체 훈련.
그때 사도광이 한쪽 구석에서 은밀히 그 모습을 지켜봤음을 하무백은 알고 있었다.
하무백 정도의 고수가 되면, 기척을 느끼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으니.
“그럼 삼 초는 양보하지.”
하무백이 사도광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이 개자식이!!!”
그 행동에 사도광이 괴성을 지르며 땅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