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어디까지 진지해져야 할까?
“야, 그게 말이 되냐?”
잠룡대 일 년차 생도가 함께 걷던 친구에게 물었다.
“나도 안 믿긴다.”
두 시진 전, 맹룡대의 연무장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맹룡대 교관이면 강해야 이류 정도라고 하지 않았나?”
“맹룡대주 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렇다고 했지. 간혹 삼류도 섞여 있고. 수석교관도 없는 오합지졸이 맹룡대 교관이잖아.”
잠룡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후기지수들이 교육을 받는 교육대답게, 맹룡대의 교관들마저 무시하고 있었다.
그런 맹룡대의 일개 교관이 잠룡대의 교관을 박살을 냈다. 그것도 수석교관을.
일 년차 생도 담당 수석교관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일류의 끝자락에 이른 고수였다.
그런 고수를 내공도 쓰지 않은 맹룡대 교관이 쓰러트렸다니.
“대체 맹룡대 교관이 어떻게 수석 교관님을…….”
“그 교관 정체가 대체 뭐지?”
이런 대화가 잠룡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소문은 퍼지고 퍼져서 일 년차는 물론, 이 년차, 삼 년차 심지어 사 년차 생도들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잠룡대를 넘어 와룡대와 맹룡대에도 들어갔고.
***
“부당주.”
분노를 억지로 내리누르는 목소리였다.
“네. 당주님.”
“이게 대체 무슨 쪽팔리는 소문이지?”
“그것이…….”
교룡관 금당(金堂)의 당주인 남궁화인의 물음에 부당주 곡무영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도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것은 성질이 개 같은 저 당주에게는 전혀 이유가 되지 않았다.
“하무백이라 했나?”
“네.”
“알아봐. 샅샅이. 속옷 개수까지 알아와.”
그의 성정을 알 수 있는 신경질적인 말투였다.
“네, 넷!”
빠르게 대답한 곡무영은 황급히 당주실을 벗어났다. 아직 터지기 전에 빨리 나가야 했다.
“쯧.”
남궁화인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찼다.
가뜩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맹룡대다. 그런데 그런 곳에 설마 숨은 고수가 교관으로 있었다니.
“사도광. 산적 같이 생긴 놈이 멍청하기까지 하다니. 빌어먹을.”
어떻게든 오대세가에 줄을 대보겠다고 자신에게 열심히 꼬리를 흔들던 놈이다.
정성이 갸륵해서 조금 키워볼까 했더니, 자신에게 이런 망신을 줬다.
어찌 대 잠룡대의 교관이 쓰레기 집합소인 맹룡대 따위의 교관에게 그리 형편없이 당한단 말인가.
“결국 명이 녀석도 회유하지 못하고…….”
제갈명.
사실 교룡관에 있을 인물이 아니었다.
제갈세가에서도 알아주는 기재로, 계속 천목각에 있었다면 분명 각주나 그에 근접한 위치에까지 올라갈 수 있을 인재였다.
교룡관.
말이 좋아 정천맹의 정예를 키우기 위한 교육기관이라 하지만, 기실 이곳에 오는 이들은 각 문파나 세가에서 비주류인 이들이다.
어느 문파나 세가가 자신들의 최고 기재를 정천맹의 공동 교육기관에 보내겠는가?
비전 절기를 한시라도 빨리 가르치기 위해 꽁꽁 숨겨놓지.
그러니 교룡관은 각 문파와 세가의 비주류들이 밀려나서 모여든 곳이라 보면 된다.
그런 곳에서 다시 파벌이 나뉘고, 맹룡대라는 최하층을 무시하며 자신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곳이다.
간혹 예외적으로 주류의 제자들이 오기도 하지만 굉장히 드문 일이다.
남궁화인.
그 자신도 방계였다.
남궁세가주의 육촌 동생이긴 하지만, 육촌까지 멀어진 이상 이제 방계에 들어간다.
그러니 교룡관에 와 있는 것이다.
교룡관의 재정을 담당하는 금당의 당주라고 하지만, 고작 교룡관 안에서 그래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남궁화인의 야망을 채워주기에는 너무나 하찮은 자리다.
그런데 제갈세가 최고의 기재 중 한 명이라는 제갈명이 잠룡대 교관으로 교룡관에 들어왔다.
어떻게든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위로 올라갈 발판으로 삼아야 하건만, 맹룡대 따위에게 신경을 쓴다고 잠룡대 일 년 차 교관을 맡겠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의 재능이면, 잠룡대에서도 뛰어난 이들을 전담해 더 뛰어나게 빚어낼 수 있었다.
비록 비주류로 밀려난 이들이지만, 그 중에도 재능이 있는 이는 있었다.
게다가 현재 잠룡대에는 주류에다가 재능이 넘치는 자신의 조카가 와있지 않던가.
왜 잠룡대에 있는지는 남궁화인 자신도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런 재능이 또 다른 재능을 만난다면 분명 큰 발전을 이룰 터.
그것이 곧 남궁화인 자신의 실적이 되는 것이고, 자신의 세력이 되어 그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 것이다.
그런데 제갈명이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제갈명을 직접 설득하려 했으나, 자신은 만나주지도 않았다. 같은 오대세가의 어른으로서 만나려 해도 말이다.
첫 만남에서 자신의 제안을 거부하더니, 그 이후로 줄곧 그랬다.
결국 제갈명을 설득하기 위하여 받아들인 이가 사도광이다.
같은 일 년차 생도를 가르치는 교관에, 더욱이 수석 교관이기까지 했다.
만나지 않을 수가 없는 관계인 것이다.
그 설득 작업이 가뜩이나 지지부진하여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런 치욕을 안겨 주었으니.
앞으로 남궁화인이 사도광을 볼 일은 없었다.
“아, 마지막으로 한 번 봐야지. 나에게 망신을 준 대가를 톡톡히 받아내야 하니. 으드득.”
***
일과 시간이 끝났다.
하늘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고, 하무백은 오랜만에 제대로 가르쳤더니 피곤하다며 사라진 지 오래다.
칠 조 다섯 사람만 남아 있었다.
여전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상태다.
어느새 백리평까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는 종남의 심법을 수련했다.
다른 네 사람은 하무백의 가르침에 따라 삼재심법을 계속해서 운용했다.
계속 운용했다고 해도, 오늘은 그저 숨을 쉰 것뿐이다.
시키는 대로 들이쉬고, 호흡을 모았다가 다시 내쉬고.
그것만을 반복했다.
몸에 무슨 변화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만약, 하무백이 사도광을 박살내는 것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또다시 의심했을 것이다.
계속 자율학습을 시키는 것이 눈치가 보이니 자신들을 가르치는 척 하는 거라고.
하지만 내공도 사용하지 않고 잠룡대의 수석교관을 그렇게 농락한 고수가 자신들에게 할 일 없이 그러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에, 열심히 시키는 대로 호흡을 했다.
“저, 당진산.”
단목운뢰가 쭈뼛거리며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같은 조원이라고는 하나, 아직 이들 사이에는 별다른 대화도 친분도 없었다.
상당히 시일이 흘렀음에도 그랬다.
계속 되는 자율학습에 그저 각자의 일만 묵묵히 한 탓도 있고, 생도들의 성향 탓도 있었다.
연하민도, 백리평도, 낙우진도 말이 없었다. 간혹 당진산이 툴툴거리듯 말을 했지만, 대꾸하는 이가 없었다.
단목운뢰로서는 다른 네 사람 중 말을 걸기 제일 편한 상대가 당진산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이는 당진산과 백리평 둘 뿐이었으니.
“왜?”
짧은 물음이 당진산의 입에서 나왔다.
“오늘 교관님 정말로 내공을 사용하지 않으신 거야?”
가장 궁금한 것이 그것이었다.
말로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고선, 실제로는 사용해도 단목운뢰로서는 알아볼 방법이 없었다.
“하아.”
단목운뢰의 물음에 당진산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단목운뢰는 당황해서는 눈치를 살폈다.
“그래. 믿기지 않지만 내공도 사용하지 않고 일류 고수를 박살냈지. 우리 교관님.”
“정말이야?”
“그래. 정말. 사실. 진실. 그렇다고.”
다시 한번 되물은 단목운뢰에게 당진산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어, 어. 그래. 알았어.”
“그런데 그건 왜?”
“뭔가 엄청 대단한 사람이 우리 교관님이 된 거 같아서…….”
“아하. 교, 교관님. 강, 강해지고 싶습니다?”
“그, 그건.”
당진산이 장난스레 웃으며 단목운뢰가 했던 말을 흉내내자 단목운뢰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 모습에 당진산이 피식 웃었다.
“뭐, 나도 강해지고 싶다.”
당진산의 말에 단목운뢰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뭐야? 그 얼굴은. 강해지기 싫은 무인이 어디 있다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자리를 털고 웃으며 일어난 당진산이 단목운뢰의 어깨에 팔을 척 걸쳤다.
“어, 그, 그래.”
그나마 말을 하는 이 녀석이 다른 세 녀석보다는 편한 당진산이었다.
남쪽의 담룡각으로 향하는 그의 얼굴에는 어딘가 씁쓸한 웃음이 걸렸다.
가문에 있을 누군가, 그리고 동쪽의 잠룡대에 있을 누군가를 떠올린 탓이다.
‘나도 강해진다. 어쩌면 기연을 만난 것인지도 모르니.’
당진산은 살짝 자신의 단전어림을 쓰다듬었다.
당가의 내공심법을 익혔음에도 다시 삼재심법을 익혔다.
독공과 암기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자신에게 당가의 무공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었기에 시도한 일이다.
원래는 될 대로 되라고 도박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하무백의 실력을 보니 어쩌면 최고의 패를 뽑았는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그러나 오늘 오후 내내 교관이 시키는 대로 호흡했지만, 내공 비슷한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과연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인가.
당진산으로서도 가슴 떨리는 모험이었다.
***
하무백은 자신의 방 서탁을 톡톡 두드리며 앉아 있었다.
“재미있어.”
진실로 그랬다.
칠 조의 다섯 조원은 분명 관주가 의도적으로 모은 아이들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재능이 넘쳤다.
호흡을 시켜보니 알 수 있었다.
찜찜한 구석이 있는 낙우진 녀석까지 보통 재능이 아니었다.
팽 관주는 어떻게 이런 아이들을 모아서 자신에게 맡겼을까? 그저 우연일까?
모를 일이다.
“그런데 너무 늦었어.”
다섯 중 딱 하나가 눈에 걸렸다.
단목운뢰.
그야말로 무공이라고는 단 하나도 익힌 적 없는 보통 신체였다.
덕분에 혈맥이 상당히 막혀 있었다.
보통 다섯 살 정도부터 혈맥에 탁기가 자리하기 시작하니, 지금 나이의 단목운뢰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한다.”
그래서 지금 하무백은 고민 중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강해지고 싶다고 하던 녀석.
그 녀석의 눈빛이 하무백을 고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디까지 진지해져야 할까?”
제갈명의 말 때문에 시작을 해볼까 마음을 먹고 움직였다.
그런데 막상 시작을 하니 어디까지 해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교룡관 맹룡대.
본맹의 권력 암투 때문에 의도치 않게 이곳까지 흘러왔기에, 그저 조용히 있다가 조용히 떠날 생각이었다.
그 와중에 맹룡대의 창설 목적을 알고는, 역시 이놈들은 개새끼구나 하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하무백은 자신이 알고 있는 두 가지 삼재공을 떠올렸다.
하나는 저자에서 돈푼 좀 주면 쉽게 살 수 있는, 흔히 나도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부가 가지고 있던 비급 중 하나였다.
삼재공의 원류.
저자에 나도는 것들은 삼재공의 원류에서 그 지극한 오의와 이치가 상당부분 유실된 것이다.
심법도 마찬가지.
본래의 심법은 토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축기와 세맥까지 있었다.
내공을 쌓는 축기, 혈맥을 깨끗이 닦는 세맥.
구결의 몇 글자가 유실된 것만으로 사라져 버린 두 가지 공능.
과연 이것까지 알려줘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삼재는 무극으로 가기 위한 첫 계단이었으니.
삼재공에서 멈춘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단목운뢰의 재능에 끌려서, 다른 아이들의 재능에 끌려서 다음 계단까지 밟게 한다면?
그러면 그때는 단순한 교관과 생도의 관계를 넘어서야 했다.
하무백이 교룡관으로 온 의도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다만.
“강해질 겁니다. 강해지게 해주세요!”
하무백의 사부가 보았던 어떤 꼬맹이의 간절하고 진지한 눈빛.
그것을 하무백 자신도 본 것 같아서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