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이거, 마공 아니죠?
수련을 마치고 공용 욕장에서 차가운 물로 몸에 가득한 땀을 씻어내니 개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차가운 물로 씻기에는 아직은 많이 쌀쌀한 밤 날씨이나, 당진산에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공으로 몸을 덥히는 것은 아무리 가전무공에 재능이 없는 망나니라 불리는 그라도, 어렵지 않은 일이니까.
마른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며 방으로 들어갔다.
침상에 가부좌를 튼 채로 앉아 호흡법에 집중하고 있는 단목운뢰가 보였다.
맹룡대에 온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즉, 저놈이랑 같은 숙소를 사용한 지도 제법 시간이 흐른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색한 사이였다.
사실 오늘 수련 시간 말미에 어찌 자신이 단목운뢰에게 그런 농을 던졌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매일 같이 알아서 수련하라고 자율학습을 외치던 교관이 제대로 된 수업을 진행한 탓일까?
다같이 같은 수련을 한 탓일까?
이제야 같은 조에 소속된 동료라는 느낌이었다.
그랬기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야.”
당진산의 부름에 단목운뢰는 미동도 없었다.
두 눈을 감은 채 그저 호흡에만 집중하고 있는 듯, 규칙적인 날숨과 들숨의 소리만 들렸다.
“야. 단목운뢰!”
제법 큰 목소리.
그제야 단목운뢰의 눈꺼풀이 떨리며 눈을 떴다. 그리고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당진산을 바라보았다.
그동안은 있는 듯, 없는 듯 지냈던 동거인 아니던가.
오늘 수련 시간 말미에도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더니, 무슨 일인 것인지.
“무슨 일이야?”
“내가 그동안은 참았는데 말이지.”
“응.”
“좀 씻자.”
“…씻었는데…….”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말에 단목운뢰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그맣게 말했다.
지금도 손과 발, 얼굴을 닦고 들어와 있던 터다.
“너. 솔직히 맹룡대 들어와서, 목욕한 적 있어?”
목욕?
그건 일 년에 몇 번, 특별한 날에만 하는 거 아니던가. 날이 따뜻할 때.
이곳 맹룡숙의 공동 욕장 역시 차가운 물만 있었기에 목욕이란 걸 하기에는 무리였다.
“그게… 아직 온몸을 씻기에는 추워서… 그리고 목욕은 그렇게 자주 하지는…….”
“후우.”
단목운뢰의 대답에 당진산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수련을 하고, 손발만 닦으면. 나머지는? 그러다가 건강 해친다. 가자.”
당진산은 머리를 닦던 수건을 대강 던져두고는 새로 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단목운뢰를 억지로 욕장으로 이끌었다.
떨떠름했지만 단목운뢰는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내공이라고는 한 줌도 없는 보통 사람이 단목운뢰다.
겨우 며칠 외공을 수련한 것으로, 당가의 자제인 당진산의 손을 뿌리칠 수 있을 리 없었다.
욕장은 썰렁했다. 씻을 사람은 다 씻은 것이다.
“솔직히 내가 고수라서 물을 데워 줄 수 있으면 좋겠다만, 그건 무리고.”
그러면서 단목운뢰의 손목 맥문을 움켜쥐는 당진산.
갑작스런 그 행동에 단목운뢰는 깜짝 놀랐다.
곧 손목으로부터 뜨거운 무엇인가가 치솟아 온몸을 휘돌았다.
당진산의 얼굴에는 살짝 땀이 맺혔다.
“후우. 내 수준에서는 이 정도가 한계네. 반 각 정도는 몸에 열기가 있을 거니 얼른 씻어라.”
“어, 으, 응.”
생각지도 못하게 접한 내공의 힘에 얼떨떨해하는 단목운뢰를 욕장에 밀어 넣고 수건을 던졌다.
“몸 식기 전에 빨리 씻어라. 나는 먼저 간다.”
그렇게 방으로 돌아온 당진산은 문을 활짝 열었다.
“휘유. 냄새야 어서 빠져라. 이제 숨 좀 쉬며 살자.”
그랬다.
단목운뢰의 몸에 찌들어 있는 땀 냄새. 그것을 참는 것이 상당한 곤욕이었다.
다른 조원이었으면 모르되, 같은 조원이었기에 차마 무어라 할 수 없었다.
교관에게 방치당하고 있느라 침울한 녀석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쓰던 녀석이었던가?’
당진산은 스스로의 변화에 살짝 놀랐다.
성도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그때는 가문에 대한 불만 때문에 타인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망나니짓을 하고 다니기 바빴으니.
맹룡대 칠 조.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저 방치당하고 있을 뿐.
그런데, 그것만으로 타인의 심경에 신경 쓰다니 자신답지 않았다.
‘어쩌면 성도에서의 내 모습이 나답지 않았던 것일지도…….’
당진산은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착한 아이였다.
적어도 자신의 생각에는 그랬다.
다만, 미천한 재능이 드러남에 따라 사방에서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견디려다 보니 그리 되어버렸다.
사천당가의 직계.
그 멍에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무거웠다.
그런데 재능까지 없는 직계라니.
한창 과거의 회상에 빠져 있는데, 문이 열리며 단목운뢰가 들어왔다.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입술이 살짝 파랗게 변해 있었다. 당진산은 그 모습에 다시 한번 맥문을 잡고 내공을 불어 넣어줬다.
금세 몸에 올라오는 열기.
“고, 고마워…….”
“별말을.”
그리고는 창가로 가서 앉았다. 혹시라도 단목운뢰가 창문을 닫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아직 방의 냄새는 다 빠지지 않았다.
“흑.”
단목운뢰가 코를 잡고 얼굴을 찡그렸다.
방에 남아 있던 냄새를 그제야 맡은 것이다. 그리고 그 냄새가 어디서 나는지도 알았다.
자신의 침상에 배어 있는 냄새였다.
“미, 미안…….”
단목운뢰가 얼굴이 벌게진 채 사과했다. 이제야 자신이 같이 방을 쓰는 동료에게 어떤 민폐를 끼친지 알게 된 것이다.
“뭐, 별거 아냐. 딱히. 다만 매일 같이 땀을 흘리는 우리 같은 무인들은 몸을 깨끗이 씻는 것도 중요해. 병은 무인을 가리지 않으니까.”
단목운뢰는 무가의 자식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 당진산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야말로 미안하다. 진작 알려줬어야 했던 걸.”
“그, 그럼 백리평이나 낙우진도…….”
“매일 전신을 씻지. 욕탕에 몸을 담그지는 못해도 물은 끼얹어서 깨끗이 씻어내긴 해.”
부끄러웠다.
백리평은 몰라도, 낙우진 역시 자신처럼 보통 사람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리고 자신은 실상은 무가의 자손이 아니던가.
사는 것이 힘들어 그런 것도 모른 채 살아온 것이 부끄러웠다.
“아직 건강을 해친 것도 아니고, 지금부터 잘 씻으면 되지. 오늘은 호흡법만 계속해서 좀 그렇지만, 마지막에 외공 훈련 빡세게 하고 난 후에는 씻을 만할 거야.”
“아, 그 당진산 네가…….”
“진산. 그냥 진산이라 불러. 뭐 성도 바닥에서 만났으면, 내가 네 살이나 많으니 당형이라 부르라 하겠지만. 여기서는 같은 조원이니 그냥 진산으로. 나도 그냥 운뢰라 부를 테니.”
“어, 그래. 진산 네가 내 손목을 잡았던 그거, 그게 내공인 거지?”
그 물음에 당진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내공이지. 아, 미안. 사과할게. 원래 무인의 맥문은 그렇게 함부로 잡는 게 아니야. 내공을 그렇게 불어넣는 것은 더더욱. 금기지. 아무 설명 없이 막무가내로 그래서 미안하다.”
그 말에 단목운뢰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날 도와준걸.”
“뭐, 앞으로는 절대 그렇게 함부로 잡히면 안 된다.”
“응.”
진중한 당진산의 당부에 단목운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내공이라는 거… 나도 익힐 수 있을까?”
“교관님에게 물어봐야지. 그럼 난 잔다.”
어느 정도 냄새가 빠졌다고 생각한 당진산이 창문을 닫고는 침상으로 향했다.
다음 날.
연무장에 다섯이 시간에 맞춰 모였다.
하무백도 시간에 맞춰 나타났다. 다섯 사람 앞에 선 하무백이 말했다.
“오늘도 오전은 호흡법이다. 가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다섯 사람.
물론 백리평은 사문의 내공 수련에 들어갔다.
남은 네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하무백.
들숨과 날숨의 움직임이 하무백의 눈에 확연히 보였다.
유실된 삼재공의 구결은 알려줄 수 없었다.
그것은 나름 하무백 사문의 무공이었으니까. 하지만 구결을 알려주지 않고, 이들에 한해 그것을 익힐 수 있게 해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난밤, 고민 끝에 하무백이 내린 결론이었다.
“움직이지 말고 호흡에 집중해라.”
하무백이 양손을 뻗어 연하민과 단목운뢰의 등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손바닥에서 빠져나가는 내공.
내공은 두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 호흡에 따라 천천히 몸 안을 움직였다.
두 사람의 몸이 흠칫했다.
특히 연하민이 심하게 떨었다.
단목운뢰는 전날 밤, 당진산의 내공을 겪어 본 덕에 살짝 몸을 떤 것이 전부다.
“연하민. 집중해라.”
곧 떨림이 멎었다.
“호흡을 계속해라.”
호흡에 따라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내공이 이윽고 단전에 자리 잡았다.
그간의 움직임은 당연히 하무백이 제어했다.
천천히 퍼지듯 움직이는 내공은 삼재공의 호흡에 따라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사라진 구결을 움직임 속에 숨겼기에, 축기와 세맥의 묘리 모두 가진 움직임이다.
“좋아. 그렇게 계속.”
그리고 하무백은 낙우진과 당진산에게도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네 사람이 호흡 삼매경에 빠져든 것을 하무백은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봤다.
그러다가 힐끔 백리평을 봤다.
“백리평. 심법에 집중해라. 그러면 모일 내공도 안 모인다.”
하무백의 말에 백리평이 움찔했다.
네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하무백의 행동에 백리평이 좀처럼 심법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백리평으로서는 왠지 자신만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는 절대 삼재공의 심법을 익힐 수 없었다. 사문의 내공심법이 있었으니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네 사람은 차례로 눈을 떴다.
세 사람은 긴가민가한 얼굴이었으나, 당진산은 경악에 가득 차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이게 대체… 이런 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요?”
당진산은 떨리는 눈으로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하무백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야릇한 웃음을 지었다.
단목운뢰와 연하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고 낙우진은 무언가 복잡한 얼굴이었다.
“너희들 정말 모르는 거야?”
당진산이 답답하다는 듯 세 사람을 돌아보고 물었다.
“뭐, 뭐가…….”
단목운뢰가 알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아이씨. 단전에 자리 잡은 내공이 안 느껴지냐고!!”
“응?”
“아?”
“어?”
세 사람의 입에서 각자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백리평이 두 눈을 뜨고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빛 역시 거칠게 떨리고 있었다.
당진산이 한 말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 아마도 이 자리에서는 백리평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쌀알 한 톨의 십분지 일 크기의 내공을 단전에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내공을 느끼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수련했던가.
그 지난날을 떠올리면, 지금 당진산이 내뱉은 말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마공이 아닌 다음에야…….
“이, 이게?”
단목운뢰가 배꼽 어름을 쓰다듬으며 내려다보았다.
“쌀알 반의 반톨 크기. 이 크기도 말도 안 되는 거라고… 후우.”
당진산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연하민도 자신의 단전에 손을 올리고 그 내공을 느꼈다.
당진산이 사나운 눈으로 하무백을 보았다.
“이거, 마공(魔功) 아니죠?”
마공이라는 말에 세 사람이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럴리가. 여기는 정천맹 교룡관이다. 그리고 나는 정천맹의 사람이고. 마공일 리 없지.”
“아씨.”
당진산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거칠게 자신의 머리를 헝클었다. 그의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말이 돼요?”
“직접 겪었을 텐데?”
“그러니까 미치겠다고요. 이게 가능하냐고요!”
상식을 벗어난 일을 당진산은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건 어제 있었던 수석교관과의 비무보다도 더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물론 세가에서는 간혹 있는 일이다. 세가의 어른이 내공을 이끌어 내공을 쉽게 느끼게 도와주고, 쉬이 쌓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일.
당진산도 그 혜택을 보았고.
하지만 이리도 짧은 시간에, 그것도 한 번에 두 명씩 순식간에 네 명의 단전에 내공을 심다니.
세가에서도 들은 적이 없는 일이다.
하무백은 다시금 당진산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게 가능한 사람이 너희의 교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