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나도 멀었군
팡! 탕! 타탕!
달빛도 어스름한 어두운 밤.
산속에 파공성이 울렸다. 소리와 함께 튀어 오른 땀방울이 곧장 날아온 주먹에 산산히 부서졌다.
주먹질 한 번, 한 번에 상체의 근육이 도드라지게 움직였다.
“후우.”
하무백은 깊은 호흡을 내뱉었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상체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머리칼은 물론이고 온통 땀범벅이다.
내공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신체의 힘만을 사용하는 외공 수련.
무공을 익힌 이후로 단 하루도 소홀히 하지 않은 수련이다.
애초에 사부에게 배우기를 그렇게 배웠으니까.
내공의 경지가 아무리 깊어지더라도, 외공이 그러한 몸의 근간이니 절대 소홀히 하지 말라던 가르침.
하무백은 오늘도 그 가르침을 충실히 지키고 있었다.
자정 무렵.
반 시진이 조금 넘는 수련이 끝났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집중적으로 한 수련이기에 그의 몸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계곡 물에 몸을 씻고 땀을 식혔다.
상의를 챙겨 입은 후 경공을 사용해 교룡관으로 돌아왔다.
축시 초 무렵.
교룡관의 담을 훌쩍 넘어 자신의 숙소로 향하던 하무백의 기감에 걸리는 익숙한 기척들이 있었다.
‘이 늦은 시간에?’
그의 발길이 자연히 그곳으로 향했다.
***
맹룡숙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
연무장이 아니었기에 넓지 않은 공간에서 단목운뢰가 땀을 뻘뻘 흘리며 제갈명의 방패술을 수련하고 있었다.
기본 초식에 따라 정직하게 방패를 움직였다. 때로는 상단으로, 때로는 좌우의 공격을 막는 움직임으로.
저 방패술은 철저히 방어에 집중한 형태였다.
‘그야말로 생존을 최우선 목적으로 둔 무술이지.’
방패술의 초식에 대해 간단한 평가를 내린 하무백은 새삼스럽다는 눈빛으로 단목운뢰를 바라보았다.
이 늦은 시간까지 저런 수련이라니.
“안 자고 뭐하는 거야?”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단목운뢰의 움직임이 멎었다.
“아, 교관님. 이 시간에는 어쩐 일로…….”
“내가 먼저 물은 거 같은데? 축시 초에 뭐하는 짓이야? 오늘은 달빛도 어두운데.”
“오늘 방패술을 제대로 수련하지 못해서요. 외공 수련도 겸해서…….”
“쯧.”
그 모습에 하무백은 혀를 찼다.
분명 제갈명의 방패술은 여러모로 효용이 있는 무술이다. 외공 수련의 효과도 나쁘지 않았고.
다만 단목운뢰에게는 아니었다.
하무백은 단목운뢰에게 다가가 몸 여기저기를 만졌다. 역시 눈으로 본 그대로다.
“아서라. 너에게는 아직 일러.”
“네?”
단목운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반문했다.
“너도 알거 아니야. 네가 방패를 휘두르는 게 아니라, 방패가 너를 휘두르고 있다는 걸.”
“그건…….”
뼈아픈 지적에 단목운뢰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간 근육이 아주 조금 붙기는 했다만, 아직 한참 모자라. 외공이란 결국은 튼튼한 신체의 균형과 근육이 기본이다. 넌 아직 기본이 안 되어 있어. 방패술의 초식을 제대로 구현하기에는 근력이 너무 모자라.”
“더, 더 열심히 수련하겠습니다.”
절박한 단목운뢰의 말에 하무백은 고개를 저었다.
“열심히 하면 안 된다.”
“네?”
다시 한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열심히 하지 말라고.”
“그게 대체…….”
당혹스러웠다.
열심히 수련해서 외공을 더욱 갈고 닦겠다는데 열심히 하지 말라니.
“넌 지금 열심히 수련할 단계가 아니다.”
단목운뢰의 수련을 볼 때마다 느꼈던 것을 이제야 이야기를 해주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진작 말해줄 것을.’
아쉽기도 했다.
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진지해질 줄은 예상치 못했으니까.
“열심히 할 단계가 아니라고요?”
그 물음에 하무백은 단목운뢰의 비쩍 마른 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밥은 제대로 먹고 있냐?”
“네.”
단목운뢰의 당당한 대답에 하무백은 피식 웃었다.
그가 어느 정도 먹는지는 점심 식사를 함께 할 때 이미 봐온 터다.
“한참 모자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먹는 것도 수련이다. 지금 비쩍 마른 네 몸은 외공 수련을 못 버텨. 수련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몸이 약해질 뿐이다. 그러니까 일단 먹어. 먹는 게 괴로울 정도로 먹어라. 수련은 정규 수련 시간에만 하고.”
“그러면 한참 뒤처지는 거 아닌가요?”
“지금처럼 하면, 어느 순간 영원히 망가진다. 뭐, 삼재공을 익혔으니 폐인이 되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내공과 외공의 균형이 맞지 않게 돼.”
“…….”
“외공이란 튼튼한 신체의 균형과 근육이 기본이라고 했지? 일단 지금 네 신체는 약해. 튼튼하게 만드는 게 먼저다. 그러니 일단 먹어. 고기를 위주로 골고루. 많이. 다행히 담룡각에 고기는 많이 나오더라. 양에 제한도 없고. 몸이 자리 잡혔다 싶으면 그때 이야기 해줄 테니까. 그럼 어서 들어가서 자라. 잠도 잘 자야 한다.”
“그게…….”
망설이는 듯한 단목운뢰의 모습에 하무백이 두 눈을 부라렸다.
“교관의 말을 못 믿겠다는 거냐? 지금 네게 가장 시급한 수련은 잘 먹고, 잘 자는 거다. 어서 움직여.”
살짝 기세를 실어 말하자 단목운뢰가 움찔했다.
“그래도…….”
여전히 망설이는 단목운뢰. 그 모습에 하무백은 눈을 찡그렸다.
“하. 너도 참. 과하면 독이다. 외공과 근력 수련, 그리고 식단은 내가 날이 밝으면 따로 알려줄 테니까 쉬어라. 이미 많이 무리했어.”
한숨에 이어 나온 말은 차가웠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단목운뢰는 맹룡숙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여기는 됐고…….”
하무백이 느낀 기척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이제 다른 곳으로 가봐야 했다.
***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눈앞을 가렸다. 손으로 쓸어 넘기고 다시금 주먹을 뻗었다.
무복은 땀으로 흠뻑 젖은 지 오래다. 땀에 젖어 몸에 착 달라붙은 무복이 몸의 곡선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귀찮네.”
그리고 움직임을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그것이 마음에 안 드는 듯 연하민은 짜증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곧장 기수식을 취했다.
오늘 오후에 배운 삼재권법이다.
점심때의 그 치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 꿈에서 그 치욕을 다시 겪었다. 덕분에 자정에 다시 깨버렸다.
이가 갈렸다.
한시라도 빨리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자다가 말고 무복을 입고는 적당한 공터를 찾아와 오후에 배웠던 삼재권법의 초식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일초식은 가장 기본적인 정권 지르기였다. 초식이라 하기도 애매한 동작. 이초식, 삼초식이 진행될수록 무언가 권법 같은 동작이 나왔다.
연하민은 한 초식, 한 초식 정성을 다했다.
수련 말미에 느꼈던 내공의 움직임은 없었다. 하지만 단전 어림의 간질거림은 명확히 느껴졌다.
“이 야밤에 뭐 하고 있는 거냐?”
그때 들린 목소리에 연하민의 고개가 돌아갔다.
“교관님.”
“잠이나 잘 것이지, 이 시간에 무슨 수련이야. 수련은. 쯧.”
그리 말하며 연하민에게 다가가는 하무백.
땀에 흠뻑 젖은 연하민을 위아래로 살폈다.
“흐음.”
단목운뢰와는 달랐다.
그러고 보면 자율학습을 시켰을 때, 홀로 수련하는 체술이 있었다. 그 덕분일 것이다.
자세 하나, 움직임 하나에 담긴 의도를 하무백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 결과물이 지금 땀에 젖은 무복이 찰싹 달라붙은 연하민의 체형이었다.
“잠깐 실례해도 될까?”
“네?”
“근육이랑 신체 균형을 좀 확인해야 할 것 같아서.”
단목운뢰와 같이 마구 만질 수는 없었다.
“네.”
하무백의 눈을 본 연하민은 어렵지 않게 허락했다.
자신에게 음욕을 가지고 보던 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맑고 깨끗한 눈이었기에.
연하민의 허락이 떨어지자 하무백은 팔과 어깨 그리고 종아리 정도만 스치듯 잠깐 눌러 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잘 먹고, 잘 움직인 몸이다.
다만 그 목적이 무공 수련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가요?”
연하민이 무심한 얼굴로 물었다.
“뭐, 넌 그놈과는 달리 기본 토대는 괜찮은데 방향이 조금 잘못됐군. 그 부분만 바로 잡으면 될 것 같다.”
“방향이 잘못되었다고요?”
“그래. 무공을 펼치기 적합한 몸으로 근골을 발달시키는 무인의 수련이 아니야. 체형을 아름답게 만드는 쪽이라 해야 할까?”
그 말에 연하민은 고소를 머금었다.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연가의 기본적인 근골 단련법이라고 자신에게 가르쳐 준 것. 실상은 몸을 가꾸도록 하기 위해 알려준 체술이었다.
언젠가 정략혼으로 비싸게 자신을 팔아치우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럴 것이라 예상하면서도, 그 단련법과 체술을 수련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무공 비슷한 것이라고는 그것이 유일했으니까.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언제 고소를 머금었냐는 듯 감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일단 외공 수련부터. 삼재권법의 수련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분명히 있으니까.”
“외공이요?”
이번에는 그녀의 목소리에 희미한 감정이 담겼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하무백은 그 감정을 읽었다.
“쯧.”
그랬기에 절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무인들이 외공은 경시하고, 내공을 우선시 하는데. 분명히 말하지만 그건 틀린 거다.”
“틀렸다고요?”
“그래. 외공과 내공. 둘 모두 중요해. 둘이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져야 그때서야 무공이 최고의 위력을 발하는 거지. 물론 경지에 이르렀을 때의 위력이야 단연 내공이 압도적이다만. 그 내공을 버틸 몸, 그러니까 외공이 없다면 그것도 분명 한계가 있어.”
“그럼 지금 전?”
“외공도 내공도 부족하지. 신체 단련이 먼저다. 정확히는 무공을 익히기 적합한 근골로 몸을 다듬는 거지. 물론 삼재공의 수련도 꾸준히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죠?”
“가르쳐주지.”
하무백은 그 말과 함께 몇 가지 근골 단련법을 알려주었다.
직접 시범까지 보여주었다.
그 모습에 연하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연가에서 익혔던 것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모습에 하무백은 싱긋 웃었다. 어딘가 음흉해 보이기도 한 웃음이다.
“백견이 불여일행이야. 어디 직접 한 번 해볼까?”
하무백의 고갯짓에 연하민은 마보 자세를 취했다. 단목운뢰가 늘상 하던 자세였다.
“발끝은 좀 더 바깥으로 그리고 양발을 조금 더 벌려.”
하무백이 자세를 바로 잡아줬다.
“좋아. 그러면 천천히 무릎을 굽히면서 엉덩이를 아래로 내린다. 무릎은 양 발끝 방향으로 움직이는 거야. 허벅지와 종아리가 닿을 때까지 완전히 내려와야 해.”
연하민은 지시에 충실히 따랐다. 서너 발 떨어진 곳에서 팔짱을 낀 채 말로만 지시를 했으나, 연하민은 그 지시를 정확히 이행했다.
‘윽.’
그리고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는 물론이고 허리까지 이어지는 통증 같은 자극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릴 뻔했다.
“허리 똑바로 펴.”
하무백의 말에 연하민은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좋아. 이제 한 번.”
천천히 움직여 내려갔다가 올라온 자세를 보며 하무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번이다.
별것 아닌 동작. 그걸 단 한 번, 천천히 했을 뿐이다.
그런데 연하민의 얼굴에 잠시 식었던 땀이 금세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쉽… 지 않군요.”
살짝 떨려나오는 목소리.
연가에서 배웠던 체술과 비슷하다 싶었는데, 아니었다.
그것은 이렇게 온몸에 힘이 들어가면서, 괴롭지 않았다.
“이제 한 번이야. 지금보다 조금 더 천천히 움직여야 해.”
연하민은 그렇게 하무백의 지시에 따라 근골 단련법을 하나하나 진행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가 느끼는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근육 곳곳에 자극이 올 거다. 그렇게 전신의 근육을 골고루 발달시키는 수련을 하는 거야. 무공을 익히기 위한 최적의 근골 상태를 만들면서.”
“끄응.”
하무백이 설명하는 동안에도 연하민은 단련법을 지속했다.
“아냐. 방금 발의 방향이 틀렸어. 정확한 자세가 중요하다.”
하무백의 지적에 연하민은 이를 악 물고는 자세를 고쳤다.
열 번을 반복하라는데, 일곱 번쯤 반복하면 죽을 것 같았다. 여덟 번째부터는 그야말로 악으로 버텼다.
“내공을 쓸 줄 모르는 게 어쩌면 다행이군.”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내공을 사용할 줄 아는 무인은, 저 상태가 되면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내공을 사용해 힘든 것을 벗어나 버린다.
그러면 외공 수련은 하나마나한 것.
연하민은 내공의 씨앗은 있으되, 사용할 줄을 몰랐기에 그야말로 순전히 신체의 힘만으로 외공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좋아. 거기까지. 익숙해지면 또 다음 단계를 알려주지. 어서 들어가서 쉬어라.”
어느새 인시 초.
깊은 밤을 지나 새벽으로 향해 가는 시간이었다.
연하민이 여자 생도들의 숙소인 연룡숙(娟龍宿)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한 하무백은 자신의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수련 방향을 다시 짰다.
삼재공과 삼재권법도 중요하지만, 그러고 보니 외공 수련을 지나쳤다.
지극히 중요하기에 자신도 매일같이 수련을 하면서, 정작 가르칠 때는 빼먹다니.
“나도 멀었군. 아직 어설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