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아직은 할 만하지?
아침 첫 수련 시간.
하무백이 먼저 나와서 생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
가장 먼저 연무장에 도착한 당진산은 처음 보는 모습에 눈을 크게 뜨고는 빠르게 달려 왔다.
“교관님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제대로 해야지. 니들 죽게 놔둘 수는 없으니까.”
그러면서 싱긋 웃는 하무백.
당진산은 왠지 그 웃음이 그렇게 섬뜩할 수가 없었다.
“2년 뒤에 죽으러 갈 거, 그냥 집에 가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어제 물었던 말을 다시 물었다.
“그래. 집에 가라. 가지 않을 거면 나하고 수련하고. 어차피 2년 뒤에 죽으러 갈 거지만 발버둥은 쳐보게 하려고. 그러니까 힘들면 그냥 집에 가면 된다.”
무심하게 이어진 말.
그냥 방치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분명 좋은 일인데.
‘뭔가 좋지 않은 일 같단 말이야…….’
당진산의 뇌리를 지배하는 불길한 예감.
그 예감은 조원이 모두 모인 후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앞으로 수련 일정을 알려주마. 우선 아침 첫 수련 두 시진은 외공 수련이다. 그리고 다음 두 시진은 심법 수련. 점심 식사 후 오후에는 초식 수련과 방패술이다. 단체 수련이 없는 날은 계속해서 이런 일정이다.”
무언가 제대로 된 수련 일정이다.
매일같이 자율학습만 이야기하던 교관의 저런 모습이 새삼스러웠다.
하무백은 곧장 당진산과 백리평 그리고 낙우진의 몸 여기저기를 만지며 상태를 확인했다.
“역시. 충실히 수련했군.”
백리평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하무백.
“너도 나쁘지 않아.”
당진산을 향해 말했다.
두 사람은 역시 명문거대정파 출신답게 제법 탄탄한 근골을 가지고 있었다.
낙우진은 단목운뢰나 연하민보다는 나았지만 두 사람에게 미치지 못했다.
“네 사람은 잠깐 기다려라.”
하무백은 연무장 한쪽에 마련된 방패를 들고는 단목운뢰를 불렀다.
“방패술의 각 초식이 전신의 근육을 단련하는데 나쁘지 않은 동작인 건 분명해. 하지만 너에게는 아직 부담이 크지. 그러니까.”
콰직.
하무백이 방패를 부수었다. 크기가 삼분지 일로 줄었고 무게도 그만큼 줄었다.
“이 정도 무게가 적당하겠군. 이걸로 초식 수련을 천천히 해. 당장은 그 정도가 너에게 딱 좋아.”
단목운뢰가 지시대로 수련을 시작하는 모습을 잠깐 지켜본 하무백이 남은 네 사람에게로 몸을 돌리며 빙긋 웃었다.
그 웃음에 연하민의 안색이 살짝 질렸다.
아직 지난밤 수련의 여파가 전신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근육통이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연하민은 옆으로 빠지고.”
하무백의 지시에 연하민은 몇 걸음 떨어졌다.
“이제 너희 셋이로군.”
“꿀꺽.”
하무백의 분위기에서 느낀 것이 있어서일까. 당진산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럼 어디, 외공과 근골 단련을 시작해볼까. 우선 마보.”
하무백의 지시에 따라 세 사람은 즉각 자세를 취했다.
“여기, 여기, 여기.”
툭툭 치면서 자세를 교정하자 지난 밤, 연하민이 취했던 것과 같은 자세가 만들어졌다.
“천천히 내려갔다가 올라와라. 허벅지와 종아리가 닿을 때까지 내려가는 거야.”
한쪽 그늘에 서 있던 연하민은 살짝 기대 어린 얼굴로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저 동작이 얼마나 끔찍한지는 자신이 직접 겪지 않았던가.
그러나 연하민의 기대는 깨졌다.
낙우진이 조금 힘들어하는 기색일 뿐, 당진산과 백리평은 너무도 평온했다.
“지금보다 좀 더 천천히 계속해라.”
당진산은 살짝 안도한 표정이었다. 잔뜩 긴장했건만 이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마보 비슷한 자세로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동작쯤이야. 그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가문에서 망나니 비슷하게 살았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수련은 했었다. 마보는 기본 중의 기본.
‘이쯤이야.’
하무백은 그런 표정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 피식 웃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 일단 오늘은 준비를 못 했으니.”
근처 종종 자신이 앉던 바위로 걸어갔다. 세 사람의 등 뒤에 있었기에 셋은 모두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다만 연하민은 하무백이 하는 행동을 똑똑히 보았다.
수도를 들어 올려 가볍게 휘두르는 것만으로 바위가 쩍쩍 잘려 나왔다.
크기가 다른 두 개의 바위.
제일 큰 것을 가지고 와서는 백리평의 등에 얹어줬다.
“윽.”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으나, 백리평의 동작에는 변함이 없었다.
다른 바위는 당진산의 등 위에.
“헉.”
헛바람을 뱉었으나, 금세 자세를 바로 했다.
하무백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연하민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은 맨몸으로도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저런 바위를 짊어지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니.
하무백은 세 사람과 마주 섰다.
“아직은 할 만하지?”
물음과 함께 다시 한번 빙긋 웃은 하무백.
당진산은 그 웃음에서 악귀의 그림자를 본 듯한 느낌이었다.
“그, 그…….”
막 당진산이 무어라 입을 열려는 찰나.
하무백의 손이 전광석화와 같이 움직였다.
“크헉!”
“으윽.”
그와 동시에 당진산과 백리평의 입에서 조금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외공 수련과 근골 단련이라니까. 어디서 내공으로 장난을 치고 있어.”
하무백이 점혈로 두 사람의 내공을 금제한 것이다.
그러자 두 사람은 전날의 연하민과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이를 악물고, 얼굴은 시뻘게져서 땀을 줄줄 흘렸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제야 하무백은 만족스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연하민은 그 모습에서 내공의 힘을 새삼 실감했다.
“연하민.”
“네.”
“너는 이미 한 번 했으니, 이번에는 근육을 풀어주는 수련법이다. 일종의 체술이지.”
그리고 한쪽에서 팔과 다리를 뻗고, 몸을 비틀기도 하면서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동작을 가르쳐줬다.
그와 동시에 하무백은 세 사람에게 다른 동작을 가르치면서 하무백의 방패술을 살폈다.
“운뢰. 방패를 좀 더 뻗어라. 거기서는 다리를 좀 더 벌려야지.”
직접 수련한 적도 없건만, 하무백은 방패술의 정확한 동작을 전부 꿰고 있었다.
단목운뢰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하무백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다섯 사람 모두 힘들었다.
특히 세 사람은 괴롭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마음 한 곳에서 작은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야 제대로 교룡관의 생도로 수련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시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좋아. 일 각 휴식 후 심법 수련에 들어간다.”
그 말에 땀에 흠뻑 젖은 네 사람은 그대로 주저앉았으나, 하무백은 그대로 두지 않았다.
“쉴 때도 움직여라. 그대로 멈추면 근육이 뭉쳐서 내일 아침에 지옥을 맛볼 테니까.”
하무백이 싱긋 웃으며 근육을 푸는 동작을 알려줬다. 연하민이 한 시진동안 줄곧 수련하던 동작이다.
일 각 후.
다섯 사람은 가부좌를 틀고 심법 수련을 시작했고, 금세 점심시간이 되었다.
담룡각에 함께 간 하무백의 참견은 계속됐다. 가장 앞장서 접시에 음식을 가득 담고는 단목운뢰에게 내밀었다.
“다 먹어야 한다.”
다른 네 사람의 식사도 그렇게 챙겼다.
“내가 항상 같이 올 수는 없으니까. 지금 받은 음식들 잘 기억해둬라. 밥과 고기, 야채를 지금 같은 구성과 비율, 양으로 먹어.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단목운뢰 너는 저녁 식사 후 그 정도로 음식을 싸가서 밤에도 한 번 더 먹고.”
그 말에 단목운뢰는 살짝 질린 표정을 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음식을 입으로 넣었다.
이것도 수련이라 했으니. 열심히 할 뿐이다.
식사를 먼저 마친 것은 하무백이다.
“난 대장간 좀 들러야 하니까, 마저 먹고 이따가 연무장에서 보자.”
하무백의 말에 당진산은 무언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대장간에는 왜…….’
어쩐지 자신들을 더욱 괴롭게 할 무언가를 대장간에서 가져올 것만 같았다.
***
“끄응.”
참으려고 했으나 절로 신음이 흘러나온다.
온몸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정말로 단 한 곳도 빼지 않고, 골고루 아팠다. 근육통으로 인해 작은 움직임조차 괴로웠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전신의 모든 근육을 이렇게 혹사할 수 있을까.
수련이라 했지만 연하민 입장에서는 혹사였다.
그럼에도 그녀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괴로웠지만,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하루하루였다.
악몽에 잠을 깨고는 홀로 수련을 하다가 교관을 만난 것도 사흘 전이다.
사흘간의 수련은 정말 살벌했다.
숙소에서 이렇게 신음을 흘리고 있는 이는 아마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지금은 방을 혼자 쓴다는 것일까?
교룡관의 특성상 여생도는 적었다. 그랬기에 모두 연룡숙이라는 한 숙소를 사용했다.
물론 방은 같은 소속의 인원끼리 사용했다.
연하민 역시 맹룡대의 다른 여생도와 함께 방을 썼으나, 오늘 오전에 그 생도는 교룡관을 떠났다.
자신이 마주한 현실을 결국은 버티지 못한 것이다.
맹룡대는 와룡대나 잠룡대에 비해 여생도의 숫자가 더욱 적었다.
당연한 일이다.
이 년 수련 후 그곳으로 가야한다는데, 과연 어떤 여인이 지원을 할까.
“푹 쉬는 것도 중요한 수련이다.”
교관의 말을 떠올린 연하민은 근육을 푸는 것으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대로 잠자리에 들었다가는 근육이 더욱 뭉쳐 통증이 더 심해진다는 것을 이틀 전에 배웠다.
하 교관이 가르쳐준 대로, 천천히 부드럽게 전신의 근육을 풀어준 연하민은 침상에 누웠다.
요 사흘 동안 몸을 한계까지 혹사한 덕분일까.
잠을 잘 잤다.
더 이상 악몽을 꾸지도 않았고, 가문의 일도 떠오르지 않았다.
호북연가.
연씨세가라고도 하는 연하민의 가문이다.
‘아니, 내 가문은 아니지. 사실.’
홀로 밤을 보내는 첫날인 탓일까? 떠올리기 싫은 가문의 일이 떠올랐다.
아직도 그 거대한 문을 처음 봤을 때가 똑똑히 기억이 난다.
세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계부.
사실 친부는 기억에 없었다. 무언가를 인식할 수 있었을 때, 이미 자신과 어머니 둘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나타난 새로운 아버지.
어렸던 자신은 그저 아버지가 생겼다는 사실이 좋았었다.
그렇게 계부의 손을 잡고 도착한 가문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압도당했었다.
그리고 자신의 성이 바뀌었다.
임씨에서 연씨로.
그렇게 연가의 일원이 되었다.
어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과 어머니를 지켜주는 든든한 계부가 있었기 때문일까?
그때는 몰랐다. 지옥에 들어왔다는 것을.
전쟁의 여파는 호북연가에도 미쳤다.
길고도 치열했던 전쟁.
그 결과는 계부의 죽음.
지옥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연가 안에 아무런 연이 없게 되었으니까.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연가를 떠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연가주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두 모녀도 연가의 가족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였다. 가문의 체면도 있었겠지.
그리고 그들은 어머니와 자신을 연가에 묶어두는 것만으로 체면은 다했다.
자신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천대가 어떤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으나, 그 모든 것은 연가의 담장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자신이 열다섯이 되었을 무렵.
그때부터 노골적인 시선이 날아들었다.
자신을 보는 가문 사람들의 시선에는 음욕이 가득했다.
어쩌면 못 버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를 나날들이었다.
그 지옥 같던 날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었던 두 사람.
오빠와 막내 숙부.
계부도, 어머니도 재가였다.
계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연하민보다 일곱 살이 많았다.
처음 만난 날, 여동생이 생겼다고 얼마나 기뻐하던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음에도, 오라버니는 정말 친오빠 그 이상의 정으로 자신을 돌봤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그건 변하지 않았다.
막내숙부.
아버지를 유독 잘 따랐던 때문일까.
막내숙부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가문 내에서 연하민 모녀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
가문 내에서의 입지가 그리 튼튼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에서는 최선을 다해주었다.
그 덕일 것이다.
그나마 자신이 그 지옥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갑자기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며 눈물이 흘렀다.
그래도 다행이다.
좋은 사람들의 얼굴만 떠올랐다.
지옥의 악귀 같은 놈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놈들을 떠올리기에는 몸이 너무 지쳤다.
‘오라버니는 괜찮을까?’
가문을 떠나 교룡관으로 오는 여정은 전적으로 오라버니의 덕이었다.
새장 속의 새처럼 갇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던 자신을 가문의 밖으로 빼낸 것도, 가깝다고는 하나 무창까지 홀로 가야 할 여정을 안배한 것도.
모두 오라버니였다.
가주가 알게 되면,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텐데.
갑자기 걱정이 되었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만.
하무백 교관.
그에게는 무언가 있는 것 같았다.
최대한 그에게 많은 것을 배워야 했다. 그러면, 어쩌면 새로운 길이 열릴지도.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연하민의 두 눈이 스르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