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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6화 (16/312)

16화. 치사한 새끼

삼재권법.

천, 지, 인의 단순한 세 가지 초식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운데로 지르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고, 옆에서 돌려치고.

어떻게 보면 정말 단순한 주먹질로만 보일 수도 있었다. 권법이라는 거창한 말이 무색하게 말이다.

“하지만 말이야. 결국은 주먹으로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동작 세 가지라는 것은, 무수히 많은 응용과 변초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

하무백이 다섯 사람을 돌아보며 담담히 말했다.

칠 조의 다섯은 삼재권법 중 천(天)의 초식을 수련 중이었다.

정면을 향한 정권 지르기.

절도 있게, 양 주먹을 번갈아 가며 질렀다.

“지금 정권 지르기도 마찬가지다. 기본 동작에 익숙해지면 얼마든지 변초를 파생시킬 수 있어. 이렇게.”

당진산의 얼굴 앞으로 순간 바람이 몰아쳤다.

주먹이 어떻게 왔다 갔는지 알 수도 없을 만큼 빨랐다.

“준비 동작을 생략하고, 가볍고 간결하게 뻗은 거다. 팔꿈치를 얼마나 빠르게 펴느냐가 중요하지. 물론 가벼운 만큼 위력은 약해진다.”

하무백의 설명에 연하민이 바로 따라했다.

제법 그럴 듯한 모양이 만들어졌다.

그 모습에 하무백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재능이 넘쳤다.

적어도 이 다섯 중에는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단목운뢰의 재능이 발군이라 생각했었는데, 막상 수련을 시작하니 가장 눈에 띄는 이는 연하민이었다.

“아직 너희들은 변초를 사용할 단계가 아니다. 기본에 충실해. 단목운뢰. 허리를 좀 더 펴고 주먹에 힘을 더 실어. 당진산. 발의 방향이 틀렸다.”

하무백이 하나하나 세세하게 집어주며 수련을 진행했다.

“백리평. 권법이라고 우습게 보는 거냐? 권의 방향이 틀어졌다.”

하무백의 지적에 생도들은 바로바로 지적 받은 부분을 고치려 했다.

하무백이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지도 이제 사흘째.

다섯 조원은 여전히 온몸을 울리는 근육통에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초식 수련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왔군.”

그때 하무백이 길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네? 뭐가요?”

그냥 지나칠 당진산이 아니었다. 궁금한 것은 즉시 물었다.

“도구.”

짧은 대답에 당진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구심이 생긴 것은 다른 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황소가 끄는 작은 수레 하나가 연무장으로 향하는 길로 오고 있었다.

대체 무슨 도구이기에 수레까지 동원한 걸까?

그런 의문이 다섯 사람의 머리에 스치는 순간.

하무백은 수레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가 연무장의 경계에 도착할 때쯤, 수레도 그곳에서 멈췄다.

수레를 덮고 있는 커다란 천을 벗기자, 기기묘묘하게 생긴 쇳덩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무백은 그 하나하나를 직접 들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요.”

“물론입죠. 말씀하신 대로 최선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하무백이 치른 대금이 상당했기에 물건을 직접 가지고 온 대장장이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때 말씀드렸던 거치대들은 어찌 되어갑니까?”

“모레쯤이면 장인들과 함께 와서 설치가 가능할 듯합니다.”

그 대답에 하무백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남은 것도 잘 부탁드립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럼 이만.”

대화를 나누는 사이 하무백이 수레의 물건을 모두 바닥에 내려 두었기에 장인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저, 저게…….”

당진산은 초식 수련을 멈추고 손가락으로 수레를 가리키며 부들부들 떨었다.

한눈에 봐도 흉측한 물건들이다.

그냥 봐도 용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외공과 근골 수련 첫날, 하무백이 손수 바위를 쪼개 등 위에 올려 주지 않았던가.

감정의 변화를 거의 보이지 않는 연하민의 눈동자도 잘게 떨렸다.

“후우.”

늘 조용하던 백리평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낙우진은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단목운뢰는 복잡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자신은 제대로 된 근골 수련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수련은 잠시 중단하고, 이것 좀 옮기자.”

하무백의 말에 그들은 쇳덩이들을 옮겼다.

무거운 쇳덩이들의 모양은 각양각색이었으나, 그냥 봐도 그 용도를 알 수 있었다.

“이건 손으로 잡으라고 있는 부분이고, 이 구멍은 저 철봉에 끼우려고 만들어둔 건가?”

당진산이 옮기는 와중에 살핀 모양을 보고 중얼거렸다.

“역시 당가 출신인가? 물건을 보는 안목이 있어. 정확해.”

하무백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당진산의 눈에는 그 웃음이 마귀의 그것으로만 보였다.

“저 물건들의 사용법은 내일 수련 때 알려줄 테니, 저기에 잘 두고 초식 수련을 이어서 한다.”

모두 옮긴 후 하무백의 지시에 따라 다섯 사람은 다시 삼재권법의 수련을 시작했다.

물론 하무백의 지적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아주 간단한 동작이건만, 대체 무슨 지적 사항이 이리도 많은 것일까?

그러나 거기에 대해 불만을 말하는 이는 없었다.

그저 하무백의 지시를 최대한 이행하려 노력할 뿐.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무백은 저 삼재권법으로 절정고수를 박살을 내는 모습을 직접 보여줬으니까.

의심은 있을 수 없었다.

***

교룡관주실.

네 사람이 모여 앉아 있었다.

교룡관주 팽도율.

잠룡대주 능우담.

와룡대주 상경문.

맹룡대주 모용진호.

그들 앞에 놓인 찻잔에서는 향긋한 다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렇게 삼대주가 다 모인 것도 오랜만이군, 그래.”

팽도율이 은은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입관식 전에 이렇게 모였었으니, 한 달이 더 지났습니다.”

잠룡대주 능우담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올해 일 년차 생도들은 어떤가? 맹룡대가 워낙 시끄러워서 잠룡대와 와룡대에는 내가 영 신경을 못 썼군.”

팽도율의 말에 모용진호가 고개를 푹 숙였다.

반면 능우담과 상경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맹룡대가 시끄러웠던 연유를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잠룡대, 와룡대 두 곳의 망신과도 연관이 있는 일이었고.

“묘한 교관이 들어왔더군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부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상경문이 서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는 신진팔문 중 뇌정루 출신이었다. 같은 신진팔문인 도림의 한평이 망신을 당한 것이 무척 마음에 안 드는 얼굴이었다.

“제법 한 수는 있는 친구 같습니다만. 그런 친구가 어찌 맹룡대로 발령이 난 것인지도 신기하군요.”

능우담이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뭐, 나도 본맹에서 발령이 난 사람을 받아들인 거니.”

팽도율의 말에 능우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무백이라.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인 듯도 하고 말입니다.”

능우담과 상경문.

두 사람이 교룡관으로 파견된 것도 어느새 십 년이 다 되어 간다.

그것도 본맹에서 파견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사문에서 파견된 것이다.

그러니 본맹 쪽의 소식은 어쩌다 듣는 정도였기에 하무백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본맹에서도 하무백에 대해 알고 있는 이는 소수였기에 그 이야기가 그들의 귀에까지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그들이 교룡관에서 대주로 있는 것도, 본맹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를 수련하고 후학을 가르치는 일이 즐거운 천생 무인들, 그것이 능우담과 상경문이었다.

교룡관주 팽도율을 제외하면, 교룡관에서 가장 강한 두 사람이었다.

“뭐, 우리가 모인 게 그 친구 때문은 아니지 않나.”

“하투제(夏鬪祭)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그래서 올해 일 년차 생도들에 대해 물어본 거고. 이제 두 달쯤 남았지? 아마.”

상경문의 물음에 팽도율이 답했다.

“당가와 종남의 아이가 맹룡대에 있는 것이 조금 신기한 일이긴 합니다만……. 잠룡대에 괜찮은 자질을 가진 아이들이 제법 들어왔습니다. 교룡관에 입관할 리 없는 인재도 입관을 했고요.”

미소를 지은 능우담의 대답에 팽도율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를 지칭하는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그 이름을 보고 팽도율도 무척이나 놀랐으니.

다만 능우담은 연하민의 존재는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교룡관에서 그녀의 존재에 대해 제대로 아는 이는 팽도율 혼자였다. 이제는 하무백까지 둘이 되었지만.

호북연가의 내부 사정을 제법 자세히 알고 있는 그였기에 알아본 것이고. 때마침 맹룡대로 발령받은 하무백에게 그녀를 맡긴 것이다.

그녀가 교룡관 맹룡대에 있다는 사실이 연가에 전해진다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와룡대에도 괜찮은 녀석들이 제법 됩니다. 와룡대도 올해는 신기하게도 입관할 리 없는 인재가 입관을 했지요.”

“좋은 일이군. 앞으로 정천맹을 이끌어갈 인재들이 많다는 이야기니. 올해 하투제도 기대할만하고 말이야.”

팽도율이 빙그레 웃었다. 상경문이 말하는 이 또한 이미 알고 있었으니.

“올해는 맹룡대에서도 하투제에 참가를 합니까? 모용 대주?”

능우담이 모용진호에게 물었다.

“글쎄요. 일단 교관들에게 전달은 할 텐데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투제(夏鬪祭).

매년 하지(夏至)에 열리는 교룡관 일 년차 생도들의 비무 대회였다.

특이한 점은 조별로 단체로 실력을 겨룬다는 것이었다.

맹룡대의 경우는 일 년차 생도들의 실력이 뻔했기에, 지금까지 참가한 적이 손에 꼽았다.

참가를 하더라도 겨우 한 조 정도였고, 늘 일차전에서 무참하게 탈락했다.

덕분에 최근 사 년 정도는 하투제에 참가한 적이 없었다.

“당가와 종남 출신 생도가 있으니 올해는 한 번쯤 해볼 만하지 않습니까?”

상경문의 물음에도 모용진호는 그저 쓴웃음을 지을 뿐이다.

저 둘이 자신을 낮잡아 보고 있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맹룡대도 우습게 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가와 종남 출신의 생도가 소속된 조의 교관이 그놈이라는 것도 문제였다.

그랬기에 모용진호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번 하투제도 잘들 준비해 보게.”

***

“끄아아악!”

당진산의 괴상한 비명과 함께 철봉이 위로 올라갔다. 철봉의 양 끝에는 상당히 무거워 보이는 쇳덩이가 걸려있었다.

당진산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온몸은 땀에 절어 있었다.

이 흉측한 쇳덩이를 들기 시작한 지도 어느새 열흘이다.

이 빌어먹을 수련 후에는 또 얼마나 심한 근육통에 시달려야 할까 싶지만, 이제는 괜찮았다.

자기 전에 운기를 하면 근육통은 거의 없었으니까.

다섯 중 당진산과 백리평만 가능한 일이었다.

아직 다른 셋은 그 정도의 내공을 쌓지 못했으니.

“하, 진짜 빌어먹을 교관님 같으니라고.”

호흡을 고르며 투덜거렸다.

“진산. 집중해.”

곁에서 당진산의 자세를 봐주는 백리평이 말했다.

하무백은 현재 단목운뢰에게 붙어 있었다. 그 사이 제법 살이 올라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한 것이다.

“너도 그렇잖아. 진짜. 진작 말해줬으면 그 지랄 맞은 근육통도 안 겪었을 거잖아.”

수련 둘째 날.

온몸을 두드리는 고통에 괴로워 할 때.

자신을 바라보는 하무백의 그 무표정한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통증으로 인해 하무백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못하자, 한심하다는 듯 자신에게 한 말.

“자기 전에 운기를 안 했나?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너 정도의 내공이면 운기만으로 근육통을 거의 해소할 수 있었을 텐데?”

정말로 충격이 너무 과해 얼이 빠졌었다.

왜 자신이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도 못할 만큼 혹사를 당한 탓일까.

“자, 다시 내려가야지.”

당진산이 회상과 함께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사이 백리평이 말했다.

“크윽.”

무릎이 천천히 내려가는 와중에.

“그리고 나는 그날 운기하고 잤어.”

담담한 백리평의 작은 목소리가 당진산의 귀에 들렸다.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동작을 마친 당진산이 백리평을 쳐다봤다.

“치사한 새끼.”

그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울분과 원망이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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