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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7화 (17/312)

17화. 과하다

5월이 되니 햇볕이 제법 따가웠다. 그래도 아직은 선선한 아침.

맹룡대 칠 조의 일과는 변함이 없었다. 연무장에 모여, 간단하게 간밤에 굳은 근육을 풀어준다.

거치대에 올려진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쇠봉에 흉측하기 그지없는 쇳덩이들을 끼워 넣고 짊어졌다.

이제는 굳이 하무백이 점혈을 하지 않아도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근골 수련을 곧잘 하는 당진산과 백리평이었다.

그렇게 한창 땀을 흘리고 수련을 하고 있으면 하무백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때부터 서릿발 같은 자세 지적이 시작된다.

몇 배는 힘들어지는 수련을 겨우 끝내고 잠시 숨을 돌린 후 심법 수련을 하면 점심시간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

당진산은 자신이 언제부터 이렇게 밥때를 기다렸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시선이 흉측한 쇳덩이로 향했다.

‘저것들을 가져다 놓은 다음부터로군…….’

정말로 오전의 수련이 힘들었으니까. 마음 편히 쉴 휴식 시간이 간절했던 것이다.

심법 수련으로 어느 정도 심신이 안정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널브러져 있고 싶었다.

점심 식사 후에 존재하는 짧지 않은 공백 시간이 바로 그런 때였다.

그랬기에 점심시간만 기다리며 수련을 하게 된 것이다.

“자, 밥 먹고 하자.”

하무백의 말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이들이 운공을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때만큼은 철저히 지키는 하무백이었다.

언젠가 당진산이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잘 챙겨 먹어야지.”

참 간단하면서도 허탈한 이유였다.

다만 그 말을 들었을 때, 단목운뢰는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단목운뢰는 그 간단한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어머니가 어떤 고생을 하는지 잘 알았던 탓이다.

기실, 단목운뢰가 맹룡대에 들어온 것도 먹고 살기 위해서였고.

다섯이 식사를 하러 갈 준비를 마치자 하무백이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방향이 달랐다.

“교관님. 그쪽이 아닙니다.”

당진산이 외쳤다.

“아, 난 오늘은 북담룡각. 찾아오지 마라.”

손을 휘휘 젓고는 걸음을 빨리 하는 하무백이다.

“에효. 오늘 그곳 책임 당번이 조 숙수인가 보구만. 쯧.”

당진산이 혀를 차며 말했다.

조 숙수는 백족 출신 숙수였다. 그가 북담룡각의 식단 책임을 지는 당번일 때면 하무백이 좋아할 만한 특식을 식단에 포함시켰다.

하무백이 작소육을 즐기는 모습을 인상 깊게 본 이후로 그랬다.

그 덕에 하무백은 조 숙수가 책임 당번일 때면, 북담룡각으로 가고는 했다. 한 달에 두세 번 있는 일이었다.

“자, 우리도 먹으러 가자. 어서 먹고 쉬어야 오후에 또 푸닥거리를 하지.”

당진산이 앞장섰고, 네 사람이 뒤를 따랐다.

고된 수련으로 점철된 그간의 시간은 이들을 한 조의 구성원답게 만들어 주었다.

“진산. 잠깐만.”

단목운뢰가 당진산이 향하는 방향을 보고는 그를 막았다.

“응? 왜?”

“오늘은 교관님도 안 계신데, 그냥 남쪽으로 가지?”

당진산은 늘 그렇듯이 동담룡각으로 향하려 하고 있었다.

이곳 칠 조의 연무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으니, 습관대로 향한 것이다.

“응? 아…….”

당진산은 이내 단목운뢰의 의도를 깨달았다.

“그 날파리들 때문에?”

일전에 겪은 일 때문이다.

하무백이 함께 하지 않았던 날, 시비를 걸어온 잠룡대 생도들 때문에 성가셨던 적이 있었다.

물론 당진산 입장에서나 성가신 것이지, 단목운뢰 입장에서는 꺼려지는 일이었으리라.

“괜찮아, 괜찮아. 교관님이 안 계셔도 내가 있는데, 뭘. 나 사천당가의 당진산이다. 날 믿어.”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말하고는 멈췄던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따르는 단목운뢰의 눈이 유독 불안하게 떨렸다.

그리고 그 불안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아이씨, 어디서 잡냄새가 이리 나는 거야?”

“저 떨거지들 때문인가?”

칠 조가 담룡각 내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들으라는 듯이 수군거리는 이들.

그들은 이미 하무백의 부재를 확인한 터였다. 그러자마자 승냥이들처럼 칠 조를 살살 물어뜯기 시작한 것이다.

“하, 진짜 어이가 없네.”

당진산이 그런 그들의 행태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 대다수가 잠룡대의 생도들이다.

즉,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출신의 인물들이란 말이다. 그런 그들이 이런 추잡한 짓거리라니.

오대세가 중 사천당가의 일원인 당진산으로서는 참으로 쪽팔린 일이었다.

당진산이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내자 대번에 조용해졌다.

그들로서는 당진산을 상대할 수 없었던 탓이다.

맹룡대 소속이라고는 하지만, 그는 분명 사천당가의 직계였다.

자신들이 아무리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출신이라 해도 직계에게 함부로 할 수는 없는 일.

그들은 자신보다 강해 보이는 이 앞에서 다시 한번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당진산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연하민은 면사 너머로 차가운 눈빛을 쏘아내고 있었다.

그날 이후 연하민은 연무장을 벗어날 때면 항상 면사를 썼다.

하무백의 조언 때문이었다. 식사가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가능은 했기에 꾸준히 쓰고 있었다. 그편이 힐끔거리는 시선이 없어, 오히려 더 편했다.

단목운뢰의 눈빛은 여전히 불안하게 떨렸다.

단목세가 출신이라 하더라도, 철이 들기도 전부터 무창 빈민가에서 지냈던 그였다. 그로서는 저런 시비가 불안한 것이 당연했다.

칠 조만 있을 때는 그런 기색이 없다가도, 이렇게 다수 앞에서 당할 때는 아직도 불안해했다.

당진산이 늘 답답해하는 모습이었다.

그 후로 식사를 마칠 때까지는 아무 일이 없었다.

단목운뢰는 하무백의 지시대로 음식을 담아놔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실상은 굉장히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이었지만, 단목운뢰는 애써 수련을 위해 꾸역꾸역 먹는 거라 다짐했다.

그러지 않으면 엄마와 동생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래도 월봉을 가져다 드렸으니, 고생은 좀 덜하셔야 할 텐데…….’

밥을 쑤셔 넣다가 문득 떠올랐다.

4월 초에 3월 월봉의 구 할을 갖다 드렸다.

그걸로 좀 편히 지내시라고.

과연 그리 지내고 계실지 궁금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외출일이 사흘 남았나?’

이번 외출 일에는 수련 대신 집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4월 월봉도 전해드릴 겸 어찌 지내는지 알아보기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식사가 끝나고 막 동담룡각의 문을 나섰을 때.

“어? 이게 누구신가? 성도화화공자(成都花花公子) 아니신가?”

한쪽에서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다섯 사람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곳에는 한 무리의 사람이 서 있었다.

가장 앞에 있는 다섯 명.

그중 하나가 반갑다는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입은 활짝 웃고 있었으나, 눈빛은 아니었다. 당진산을 깔보고 업신여기는 기색이 완연했다.

“당추…….”

“맹룡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제야 얼굴을 보는군. 잠룡대 입관 때문에 내가 먼저 세가를 떠났으니 말이야. 그런데 의외야. 아무리 가주님의 명령이라지만, 순순히 교룡관, 그것도 맹룡대에 입관하다니.”

당추라 불린 이의 입가에 걸린 것은 명백한 조소였다.

“뭐, 여러 가지 사정이 있으니까.”

두 사람의 대화에 여기저기서 시선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감히 근처로 오지는 못했다.

두 사람도 두 사람이었지만, 당추와 함께 나타난 다른 네 사람 때문이었다.

“아, 소개하지. 이쪽은 나와 같이 잠룡대 일 년 차 일조에 함께 있는 조원들이야. 남궁세가의 남궁지후와 남궁지유 남매, 무당파의 청우자, 화산파의 영호준. 이쪽은 사천당가의 사공자 당진산.”

당추의 말에 서로 가볍게 포권을 했다.

칠조의 다른 네 사람도 얼떨결에 함께 포권을 했다.

“그런데 드디어 편법마저 포기한 건가?”

당추가 당진산의 허리 어림을 보며 말했다.

“뭐, 잘한 결정이야. 억지로 매달려 봐야, 의미 없는 미련일 뿐이니. 지금 맹룡대에서 하고있는 외공 수련이나 삼재권법이 너한테 딱 어울릴지도 모르지. 크크.”

당진산이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이어서 나온 말.

그 말에 단목운뢰는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들어도 명백히 무시하는 말이었으며, 도발이었다.

주변에 모인 이들의 시선의 절반 정도에서 흥미가 일었다.

다른 절반은 면사로 얼굴을 가린 남궁지유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무림오미, 또는 무림오화라 불리는 무림 최고의 미녀 다섯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였으니, 뭇 남성 생도들의 시선을 모두 잡아끄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 시선이 싫었기에 면사를 쓰고 다니고, 또한 사람이 별로 없는 때에 맞춰 식사를 하러 오는 편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꼬였다.

덕분에 무수한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연난화(曣蘭花) 남궁지유.

그녀를 지칭하는 말이다.

따스한 난꽃이라는 별호다운 자태는 면사로도 모두 가릴 수가 없었다.

그런 남궁지유의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녀의 시선은 한창 시비가 붙으려는 당추와 당진산이 아닌 연하민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렇잖아도 맹룡대에 엄청난 미녀가 한 명 있다는 소문은 들었었다. 그 주인공이 아마도 저기 면사를 쓰고 있는 여인이리라.

호북연가의 빙연화(氷蓮花)와 이름이 같다고 했었다. 그러나 같은 것은 이름만이 아닌 듯했다.

특유의 냉랭하고 도도한 분위기도 그런 듯했다.

비록 남궁지유가 빙연화를 만나본 적은 없었지만, 들리는 소문이 그랬다.

“뭐, 일단은 소속된 곳에서 열심히 해야지. 잠깐 우리 조원들 소개를 좀 하자면…….”

“됐어. 너랑 어울리는 떨거지들은 별로 알고 싶지 않군.”

그 말에 당진산이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 전의 도발에도 담담한 신색을 유지하던 그였는데.

“아. 그쪽 소저는 누구신지 조금 궁금하긴 하군. 맹룡대에 있기에는 아까운 자태와 미모인 듯해서 말이야.”

당진산의 표정이 더욱 심하게 찌푸려졌다.

남궁지유 역시 눈살을 찌푸렸다. 다만 그녀는 당추의 뒤에 있었기에 당추는 미처 그런 사실을 몰랐다.

“말이 심하다. 당추. 나에게 그러는 거야, 익숙하니 상관없다만. 다른 친구들에게는 말조심해.”

“하? 뭐라고?”

당진산의 말에 당추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을 때, 남궁지후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래. 당추. 방금은 네 말이 심했다.”

묵직한 음성.

그 말에 당추는 금세 입을 닫았다.

아무래도 남궁세가 소공자의 말에는 대꾸를 하지 못하는 듯 했다.

“이 친구를 대신해서 내가 사과를 하지. 소저께도 사과드리오.”

남궁지후가 정중히 포권을 하며 허리를 숙였다.

“사과는 본인이 직접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때 나선 것은 단목운뢰였다. 당추가 당진산을 도발할 때부터 표정이 안 좋던 그였다.

“뭐라?”

당추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가뜩이나 마음에 안 드는 당진산이다. 해서 많은 이들 앞에서 망신을 주려 말을 걸었던 것인데, 오히려 남궁지후의 사과로 자신이 망신을 당한 터.

그 때문에 속에서 열화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거기에 단목운뢰가 기름을 들이부은 것이다.

“네놈은 출신이 어디냐? 어디기에 낄 곳 안 낄 곳 구분을 못하는 거지? 딱 당진산과 어울릴만한 수준이구나. 아주 못 배운 티를 팍팍 내고 있어.”

“당추!”

당진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가 단목운뢰에게 한 말은 큰 모욕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추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남궁지후가 다시 나서려고 할 때.

“어디 네놈 실력도 그 주둥이만큼 대단한지 한 번 보자꾸나.”

쾅!

당추가 단목운뢰를 향해 진각을 내딛었다.

순식간에 몰아치는 기파에 이를 악 문 단목운뢰가 뒤로 나동그라졌다.

당진산이 그 앞을 재빨리 막아섰다.

“과하다. 당추.”

“시끄러. 저딴 놈이 감히 나 당추에게 모욕을 주다니. 나와 저놈의 일이다.”

“모욕은 네놈이 운뢰에게 줬어.”

당진산의 두 눈이 살벌하게 빛났다.

“그래서? 네가 대신 날 상대하겠다는 거냐? 네 실력으로?”

당추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내가 상대해 주마. 와라!”

남궁지후는 나서려던 손을 멈췄다. 이미 당진산까지 저러는 마당에 자신이 끼어들 수는 없었던 것이다.

때를 놓친 것이다.

당진산이 삼재권법의 기수식을 취했다.

당추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그런 당진산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얇은 채찍이 들렸다.

요대처럼 허리에 감고 있던 것이다.

맹룡대 칠조와 잠룡대 일조의 인원은 뒤로 물러났다.

당진산이 잔뜩 긴장한 눈으로 당추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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