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안심이 되네요
거지 노인의 시선이 당진산이 들고 있는 꾸러미로 향했다.
“맛있는 걸 많이 가지고 왔구나.”
“아, 잠시만요. 조금 챙겨 드릴게요. 방 할아버지.”
그 말에 번뜩 고개를 든 단목운뢰가 막 당진산을 향해 몸을 돌리려 할 때, 거지 노인이 손을 내저었다.
“되었다. 되었어. 나 같은 거지는 먹다 남은 음식을 동냥해 먹으면 충분하다. 그럼 오랜만에 집에 온 거니, 잘 있다가 가거라.”
그 말을 마치고는 거지 노인은 몸을 돌려 총총 사라졌다.
굽은 허리와 자글자글한 주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걸음이었다.
“누구시냐?”
당진산이 단목운뢰에게 물었다.
어떻게 봐도 거지였다. 그러나 단목운뢰가 할아버지라 부르는 것을 직접 보았기에 함부로 무시하지 않았다.
“이 동네 터줏대감이시라 해야 하나? 거지들 중 대장이시라 해야 하나? 아무튼 먹을 거라고는 없는 이 동네에서 동냥하시는데, 우리 가족들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종종 주시는 분.”
단목운뢰의 말에 당진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가자.”
당진산의 재촉에 단목운뢰는 결국 움막이나 다름없는 집에 도착했다.
네 사람의 표정은 큰 변화가 없었다. 이미 이 동네에 들어왔을 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한 덕이다.
문이 열리고, 작고 귀여운 여자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오빠!”
병색 때문인가, 창백한 얼굴의 아이가 활짝 웃었다.
“운혜야. 잘 지내고 있었지? 몸은 괜찮고?”
단목운뢰가 재빨리 다가가 운혜를 안았다.
“뢰아, 왔구나.”
어머니가 안에서 나오셨다. 단목운뢰가 교룡관에 들어간 후, 강권에 의해 교룡관의 휴식일에는 집에서 쉬고 계셨다.
단목운뢰가 가지고 오는 월봉 덕도 있었다.
어머니의 시선이 뒤로 향했다.
“아, 같은 조원 사람들이에요.”
단목운뢰의 말에 어머니는 몸을 단정히 하고 허리를 숙였다.
“못난 자식의 어미입니다. 많이 모자란 아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아, 아닙니다. 저희가 오히려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당진산이라고 합니다.”
당진산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나머지 세 사람도 인사를 했다.
“많이 누추한 곳입니다만, 여기까지 찾아오셨으니, 안으로 드시지요. 대접이라고는 해드릴 게 없어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어머니를 따라 일행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당진산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이곳과 어울리지 않게 단아하고 기품이 있었던 탓이다.
낡고, 헤진 옷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모습이었다. 마치 명가의 부인과 같은 그런 기품이 느껴졌으니.
‘운뢰도 복잡한 사정이 있는 녀석이로구만.’
거기까지였다.
굳이 타인의 복잡한 사정을 알려하지는 않았다. 다른 이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때가 되면 말해주겠지.
자신이 교관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은 것처럼.
집안에는 별다를 게 없었다.
딱 밖에서 보이는 만큼의 크기였다. 낡은 식탁이 하나 덩그러니 있었다.
인원에 비해 작은 식탁이다.
당진산은 일단 식탁 위에 음식을 풀어 놓았다.
“우와!”
단목운혜가 음식들을 보고 눈을 반짝 빛냈다.
“저희가 대접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대접을 받으니 그저 송구스럽네요.”
어머니가 조심스레 말했다. 당진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대접하고 싶어서 이리 준비해 온 겁니다.”
단목운혜는 당장에라도 식탁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어머니가 엄한 표정으로 제지했다.
식탁을 가득 채운 음식에, 모자란 의자는 적당한 집기를 가져다가 걸터앉는 것으로 해결했다.
“어서 드시지요. 저희는 사실 죄송하게도 먼저 먹고 왔습니다.”
당진산의 권유에 어머니가 젓가락을 들었고, 단목운혜도 이어서 젓가락을 들었다.
단목운혜가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다들 그 모습을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모두 운뢰와 같은 조원이시라니, 교육 기간을 마치면 어엿한 정천맹의 무사가 되겠군요.”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어머니.
그 말씀에 다들 표정이 살짝 굳으려는 찰나 당진산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그렇습니다. 제가 이렇게 보여도 당가 출신입니다. 운뢰는 저와 한 방을 쓰고 있지요.”
그 말에 어머니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무언가 복잡한 빛이 채워진 눈이다.
“당가라면……. 사천당가 말씀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명문가의 자제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 계시다니, 제가 어찌해야할지 모르겠군요.”
어머니의 말에 당진산은 세차게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친구의 집인데, 누추한 게 어디 있습니까. 마음이 따뜻해지고 아늑한 것이, 세상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렇지는 못할 겁니다.”
“운뢰는 참으로 좋은 친구를 만났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어머니가 당진산과 다른 일행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저희가 좋은 친구를 만났습니다.”
어머니의 과한 예에 당진산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걱정이 많았답니다. 무공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갑자기 교룡관에 들어가겠다고 해서요. 정천맹의 교룡관인데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닐 텐데 말입니다.”
네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떡하니 합격했다며 입관하더니, 지난달부터는 월봉이라고 적지 않은 돈도 가지고 오더군요. 사실 운뢰가 어디 나쁜 짓을 하러 간 건 아닌가 하고 의심도 하고 걱정도 했습니다. 일전에 교관님과 함께 온 적도 있었는데. 그래도 마음이 완전히 놓이지 않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친구 분들을 보니, 정말 안심이 되네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이는 어머니의 눈가가 살짝 붉게 변해 있었다.
네 사람은 어색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단목운뢰가 정확한 사정을 이야기 하지 않았음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 단목운뢰의 마음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네 사람은 태연한 척, 즐거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 남은 훈련 기한이 길기는 합니다만, 운뢰라면 분명 훌륭한 정천맹의 무사가 될 겁니다. 그러면 조금 더 마음 편히 지내실 수 있을 겁니다.”
당진산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백리평은 그저 태연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입을 열었다가는 어색한 연기를 할 것 같았기에,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었다.
낙우진도 마찬가지였다.
연하민은 원래 말이 없는 성격이었다. 그럼에도 단목운혜는 어느새 그녀의 곁에 안기다시피 앉아 있었다.
면사를 내리고 드러난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절로 호감을 느낀 탓이다.
결국 이런 말을 자연스레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당진산만 계속해서 떠들고 있었다.
당진산의 말에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저 운뢰만 무탈하게 잘 지내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 말에 당진산은 슬며시 운뢰를 보았다.
단목운뢰는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술을 살짝살짝 깨물며 그저 애써 태연한 얼굴로 앉아 있을 뿐이다.
당진산은 연하민이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단목운혜를 보았다.
귀엽고 예쁜 아이다.
그런데 얼굴에 병색이 완연하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대체 무슨 병이기에.
낡고 헤진 옷을 입은 병색이 완연한 여동생.
단목운뢰가 왜 맹룡대에 들어왔으며, 하 교관이 집으로 가라 할 때 그럴 수 없다 했는지 이해가 갔다.
운뢰의 복잡한 사정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단순한 사정은 쉬이 알 수 있었다.
가난과 병.
그 두 가지였다.
그것들이 단목운뢰를 맹룡대로 떠밀었고, 그를 절박하게 만든 것이리라.
자신과는 전혀 다른 이유였다.
괜히 낯이 뜨거워지는 당진산이다.
‘나는 정말 호강에 겨웠군.’
괜스레 하무백에게 넋두리를 늘어놓던 밤이 생각났다. 부끄러워 얼굴이 붉게 변했다.
“왜 그러시는지요?”
그 변화를 읽은 어머니가 걱정스레 물었다.
이 누추한 곳이, 명문가의 도련님과 맞지 않아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묻어 있는 표정이다.
“아, 아닙니다. 운뢰를 보니 제가 너무 못나게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이렇게 헌앙하고 훌륭한 공자께서 그럴리가요. 괜한 생각입니다.”
어머니의 칭찬에 당진산은 더욱 부끄러워질 뿐이다.
화제를 돌려야 했다.
계속 운뢰와 자신을 비교하다가는 태연함을 덮어쓴 가면이 깨질지도 몰랐다.
2년 뒤.
자신들은 죽으러 갈 거라고 교관은 말했지만.
‘웃기지 말라 그래. 안 죽으면 되는 거지. 나도. 운뢰도. 그리고 모두 다. 운뢰는 이런 가족을 두고 어떻게 죽어.’
남모르게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당진산이다. 오기로라도 죽을 수 없었다.
그러려면 교관의 밑천을 탈탈 털어야 했다.
하 교관이라면, 어쩌면 그렇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뢰가 교룡관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화제를 전환하려 꺼낸 말이다.
일부러 맹룡대라는 말은 꺼내지 않고 교룡관이라 했다. 맹룡대라는 곳에 대해 어머니가 계속 몰랐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당연히 궁금하지요.”
그때부터 당진산의 입담이 시작되었다.
혀에 기름이라도 발랐는지, 정말로 끊임없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어머? 우리 운뢰가 그랬다고요?”
어머니는 흥미로운 얼굴로 적당히 맞장구를 쳐가며 이야기에 집중했다.
“진산. 그쯤만 해둬.”
단목운뢰가 당황해서 멈추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계속해주세요.”
여전히 연하민의 곁에 앉아있는 단목운혜까지 눈을 빛내며 그리 말했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네 사람은 의외였다.
연하민이 저리 쉽게 곁을 내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녀를 힐끔거리며 쭈뼛거리는 단목운혜에게 손을 먼저 내민 것도 연하민이었고,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도 연하민이었다.
교룡관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럼. 우리 예쁜 운혜가 부탁하는데 계속해야지. 일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냐면 말이지. 수련을 끝내고 이제 자야하는데 말이야.”
“어, 어어.”
단목운뢰는 무슨 이야기가 나오려는 것인지 직감한 듯 입을 벌렸다. 벌써 얼굴이 벌겋게 변하고 있었다.
“교관님의 특별 지시로 운뢰는 자기 전에도 반드시 음식을 일정량 먹어야 하거든. 그런데 잔뜩 싸 온 음식을 먹지 못하는 거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백리평이 금시초문이라는 듯 물었다.
“잘 먹고 있던 거 아니었나?”
낙우진 역시 한마디 보탰다.
다른 조원들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오직 단목운뢰와 같은 방을 쓰는 당진산만이 아는 이야기였다.
단목운뢰의 몸에 살과 근육이 시나브로 늘어왔기에, 다른 사람들은 그가 착실히 식사를 챙겨 먹는다고 여겼던 것이다.
“강해지고 싶다는 녀석이 먹지를 않고 있으니, 내가 억지로 먹이려 했어.”
“그래서요? 오빠는 왜 그랬대요?”
아니, 음식이 잔뜩 있는데 먹지를 못한다니.
단목운혜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호기심 가득한 눈을 빛내며 당진산을 재촉했다.
어머니 역시 의문이 자리한 눈으로 당진산을 바라보았다.
“도저히 음식을 씹어 삼킬 수가 없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이 친구가 어디 아픈가 했지. 그런데 멀쩡하더라고. 해괴한 일이지. 강해지려면 먹어야 하는데. 먹는 것도 수련이라고 교관님이 신신당부를 했는데. 이 친구가 어서 먹고 불을 꺼야 나도 잘 텐데. 방에서 음식 냄새만 풍기고 있고. 답답하더라고.”
“정말 우리 오빠지만, 답답하네요. 맛있는 음식들이 있는데 왜 먹지를 않는대요?”
단목운혜가 가슴까지 두드리며 반응하자, 당진산은 그 모습이 귀여운 듯 슬며시 웃었다.
연하민은 가만히 그런 운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서 내가 그랬지. 네가 안 먹으면 내가 먹어 치워 버리겠다고. 그랬더니 운뢰 저 녀석이 질색을 하는 거야.”
“에이. 진산 아저씨가 드시지 그랬어요. 우리 오빠는 음식 귀한 줄을 모르는 거 같은데.”
운혜의 말에 당진산이 멈칫했다.
“운혜야.”
그리고 단목운혜를 불렀다.
“네?”
“아저씨가 아니라 오빠. 오빠가 어려우면 오라버니.”
당진산이 더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 말에 단목운혜는 당진산과 단목운뢰를 번갈아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저씨 같은데…….”
“푸하하하!”
“하하하!”
“크하하!”
그 작은 목소리를 모두가 들었다. 그랬기에 당진산만 소태 씹은 얼굴을 하고, 다른 세 사람은 큰 소리로 웃었다. 연하민의 얼굴에도 웃음이 걸려 있었다.
“크흠. 흠흠. 그러니까.”
무안한 듯, 헛기침으로 주변을 환기한 당진산이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내가 먹으려는 시늉을 하니까, 운뢰가 질색을 하면서 음식 앞을 막더니, 입안으로 급하게 밀어 넣더라고. 음. 그건 먹는다기보다는 그냥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인 모습이었지.”
그 말에 어머니의 표정이 변했다. 자식이 안쓰럽기 그지없다는 그런 얼굴이었다.
어머니는 이미 그 연유를 짐작한 듯했다.
“운뢰야…….”
가만히 운뢰의 손을 꼭 잡아주는 어머니였다.
“그렇게 순식간에 다 먹었어. 씹어서 삼킬 수가 없다고 하더니. 그래서 내가 계속 물었지. 대체 왜 그런 거냐고. 그랬더니 운뢰가 하는 말이…….”
“하는 말이요?”
운혜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자기는 삼시세끼 배부르게 먹었는데, 또 먹으려고 하니 집에서 어머니랑 여동생이 끼니는 제대로 챙기고 있는지 걱정이 돼서, 도저히 음식이 안 넘어간다는 거야. 자기만 이렇게 잘 먹어도 되나 하고.”
“아…….”
운혜는 미처 예상치 못한 말에 입을 살짝 벌렸다. 단목운뢰는 얼굴이 벌게진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어머니는 단목운뢰의 손을 더 따스하게 잡아주었다.
누추한 공간의 누추한 식탁이었다.
그러나, 그 식탁은 산해진미로 가득 차 있었다.
정말 배가 터지도록 먹어도 남을 정도로 가득한 음식들.
백리평, 낙우진, 연하민이 음식과 당진산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새삼스럽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음. 그래서 이렇게 맛있는 것들을 잔뜩 가져왔지. 집 걱정은 그만하고, 많이 먹고 강해지라고 말이야.”
당진산은 거기까지 말하고 싱긋 웃었다.
“어……. 고, 고맙습니다. 당 오라버니.”
아저씨가 오라버니로 바뀌었다.
단목운혜의 말에 당진산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래, 그래. 맛있는 거 많으니까 마음껏 먹어라.”
“당 공자. 정말 고마워요. 모자란 제 아들은 물론, 부족한 저희까지 신경을 써주시고…….”
“아하하. 아닙니다. 그냥 재미있자고 한 말인데, 제가 괜한 말을 했군요. 그냥 운뢰 흉이나 보려 한 것인데 말입니다.”
당진산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머니는 그런 당진산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거야, 원.”
단목운뢰의 집 근처, 무너진 담장 위에 앉은 하무백이 난처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 근처에서 익숙한 기척이 느껴져 찾아왔더니, 그 기척의 주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단목운뢰의 집에서 조원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하무백 정도면, 집 안의 대화까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으니.
“괜한 호기심에 들어서는 마음만 찝찝해지는군.”
단목운뢰의 집안 사정을 어느 정도 알았기에, 어머니의 기대와 조원들의 거짓말이 하무백의 가슴 한쪽을 시큰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절맥을 앓고 있는 단목운뢰의 동생까지.
머리를 긁적이는 하무백.
이곳에 더 있어 봐야 기분만 더 찝찝해질 것 같아 일어서려는 찰나, 단목운뢰와 그 일행이 집을 나왔다.
왁자지껄 인사를 하고 그들이 떠나고, 어머니는 단목운혜의 손을 잡고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 표정이 사뭇 슬펐기에, 하무백은 우뚝 멈췄다.
좀 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교룡관에 들어간 아들에 대한 대견함과 뿌듯함, 앞날을 위한 기대는 씻은 듯이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 그리고 죄책감과 무력함이었다.
“뢰아야. 이 어미가 못나 너를 고생 시키는구나……. 내 어찌 이 돈을 쓸 수 있을까.”
손을 잡고 함께 있는 단목운혜조차 제대로 듣지 못할 작은 중얼거림.
그러나 그 말이 하무백의 귀에는 천둥소리보다 크게 박혀 들어왔다.
두 눈이 붉게 변한 채, 멀어지는 아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
그녀의 다른 손에는 조금 전 단목운뢰가 건넨 월봉이 들어있는 주머니가 쥐여 있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하무백.
그의 두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똬리를 틀고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