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22화 (22/312)

22화. 그게 훈련 맞나요?

어느새 5월 말.

하투제가 열리는 하지까지는 이제 고작 이십 여일에서 조금 더 남았을 뿐이다.

그동안 그야말로 지옥훈련이라는 말이 우스울 정도의 훈련을 받아낸 맹룡대 칠 조의 다섯 사람이다.

그 결과라고 할까.

방패를 들고 삼재검법을 펼치는 이들의 합이 제법 잘 맞아 들어갔다. 실전을 상정한 하무백과의 대련에서도 제법 버티는 시간이 길어진 상태다.

“이제 기초는 끝났군.”

대련이 끝난 후 하무백이 담담히 말했다. 그러나 다섯 사람은 질린 얼굴이었다.

지금까지 그야말로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이제 기초가 끝났다니.

“그런데 시간이 부족해. 뭐, 예상한 거지만.”

그 말에 당진산이 입을 쩍 벌리고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교, 교관님. 그 말씀은 그러니까. 저기, 지금 저희에게 사기를 치셨다는…….”

하무백을 가리키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깊은 배신감의 반응이었다.

“응? 그게 무슨 말이냐?”

“하투제에서 복수할 수 있을 거라면서요? 그래서 이렇게 죽을 만큼 구르고 있는 건데……. 애초에 시간이 부족할 걸 예상했다고요?”

당진산의 원망어린 물음.

“뭐,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지. 못한다고는 안 했다.”

“그게 무슨 궤변입니까?”

“궤변은 아니고. 일종의 편법이라고 해야 하나?”

그 말에 칠 조의 시선이 일제히 하무백에게로 향했다.

“애초에 이게 일대일 비무였다면, 그런 틈도 없었겠지만 하투제는 좀 다르잖아. 산에 몰아넣고 단체전이라니. 그것도 모의 유격전 같은 형식의.”

“그래서요?”

당진산의 목소리가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비무와 전투는 다르다는 거지. 단순히 무공의 고하로 승부가 결정 나는 게 아니거든. 강한 놈이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긴 놈이 강한 거야.”

“뭔가 굉장히 치졸한 방법을 쓰시려는 겁니까?”

당진산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전쟁에는 치졸한 것도, 비겁한 것도 없다. 살아남는 게 선이고, 정의야.”

“이건 비무대회입니다만?”

“그리고 유격전이기도 하지.”

“그래서요?”

“오늘 수련은 여기까지. 남은 시간 푹 쉬고, 내일부터는 직접 현장에서 합숙하면서 모의 훈련을 갖는다.”

하투제가 열리는 산은 늘 같은 곳이었다. 즉, 모두가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되나요?”

연하민이 조용히 물었다.

“안 된다는 말은 없던데?”

태연하게 되묻는 하무백의 얼굴에 다섯 사람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어서들 씻고 쉬어라. 내일부터 진짜 지옥문이 열릴 테니까.”

그러면서 하무백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평소 가는 방향이 아니었다.

“교관님은 어디 가시는데요?”

당진산이 커다랗게 외치며 물었다.

“염탐.”

그 말을 남기고 하무백의 모습은 빠르게 사라졌다.

일단 적을 알아야했다.

그날, 동담룡각에서 본 정도로는 살짝 부족한 감이 있었기에, 하무백은 상대의 실력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무백이 파악한 것은 당추 한 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한 조가 함께 움직이는 단체전인 이상, 다른 네 사람의 실력도 제대로 확인해 둬야 했다.

잠룡대의 연무장을 향하는 하무백의 움직임은 가벼웠으나 은밀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휘적휘적 걷는 것 같았지만, 바로 곁을 지나친 생도도 하무백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잠룡대 1년 차, 1조라고 했지?’

대강의 규칙에 따라 배치된 수없이 많은 연무장을 지나쳤다. 그렇게 눈에 들어오는 연무장을 보며 하무백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런 게 연무장이지.’

거기에 비하면 맹룡대의 연무장은 그냥 공터였다. 그 크기도 잠룡대에 비하면 너무도 협소했다.

현재 칠 조가 수련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지만.

어쨌든 각 조별로 전용 연무장이 배정이 될 정도로 교룡관의 부지는 엄청나게 넓었다.

그 속에서 하무백은 잠룡대 1년차 1조의 연무장을 발견했다.

‘대단하군.’

다른 연무장과 또 달랐다.

잠룡대는 실력순으로 조를 배치하는 것인지, 1조의 연무장은 정말 훌륭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각자 수련하는 이들의 실력 또한 출중했다.

담당 교관은 그저 간단한 지적만 할 뿐 적극적으로 가르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저런 친구들이 잠룡대를 거쳐 정천맹으로 입맹한단 말이지.’

각 문파나 세가의 권력의 중심에서 살짝 벗어난 제자들.

그럼에도 실력이 뛰어난 이들은 이렇게 교룡관을 거쳐 정천맹 본맹으로 들어간다.

문파 내 알력 다툼도 해결하고, 정천맹에서 문파의 입지도 높이고.

일석이조의 효과를 발휘하는 덕이다.

‘그런데 저 둘은…….’

하무백의 눈길이 남궁지후와 남궁지유에게 멈췄다.

이곳에 올 일이 없는 이들이었으니.

권력의 중심에 자리한 남매다. 저들의 아비가 남궁세가주였으니까.

남궁지후의 경우 지금 남궁세가에서, 가주 독문무공인 제왕검형(帝王劍形)을 한창 익히고 있어야 할 때이건만.

잠룡대 연무장에서 창궁무애검을 열심히 수련하고 있으니.

‘분명 남궁지후. 저 친구 올해 나이가 열여덟. 소가주로 인정받고, 한창 가문에서 자리를 잡아야 할 때인데…….’

의아함이 가득한 시선으로 잠시 남궁지후를 바라보는 하무백이었다.

‘그나저나 곤란하군.’

하무백이 눈살을 찌푸렸다.

남궁지후의 실력이 예상외였다. 그날 대강 느꼈던 것과는 차이가 제법 있었다.

나머지 네 사람은 상정했던 범위 안이라 상관없었다.

‘창궁무애검에 저토록 능숙하다라…….’

당최 남궁세가주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저렇게 훌륭한 아들을 후계자 수업을 시키는 대신 교룡관으로 보내버리다니.

덕분에 하무백의 얼굴에 고민이 늘었다.

***

대별산맥(大別山脈).

하남, 호북, 안휘. 이 세 성의 경계를 따라 북서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큰 산맥이다.

이 대별산맥이 호북성 쪽으로 지맥을 뻗는데, 그 자락이 무창 북쪽에 닿아 작은 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목란산(木蘭山).

목란이라는 여성의 이야기가 얽힌 산이었기에 유람객들이 제법 찾는 곳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매년 교룡관의 하투제가 이곳에서 열린다는 사실이다.

이른 아침.

하무백과 맹룡대 칠 조 다섯 명은 커다란 등짐을 지고 이 목란산의 초입에 서 있었다.

“여기서 하투제가 열린다. 매년 그래왔고, 올해도 그럴 거다.”

“확실한가요?”

당진산이 미심쩍다는 얼굴로 물었다.

“이미 관주님께 확인했다.”

확실한 말에 당진산은 즉시 입을 닫았다.

“어제 관주님께 이미 말해뒀다. 우리는 하투제 당일 이곳에서 바로 참가하겠다고 말이다.”

그 말은 곧 하투제가 끝날 때까지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섯 사람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래도 산 초입에는 객잔이 있었다. 유람객들이 찾아오는 덕이다.

이들은 이미 그곳을 지나쳐 왔다. 절로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하무객은 생도들의 생각을 쉬이 알 수 있었다.

“과연 그곳에서 쉴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결코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어서 서둘러라.”

하무백이 앞장 서 빠르게 걸었다.

커다란 혁낭 등짐을 하나씩 짊어진 이들은 힘없는 걸음으로 그 뒤를 따랐다.

“오늘 새벽에 이렇게 큰 짐을 다섯 개나 준비해둔 걸 처음 봤을 때 아마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당진산이 허탈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교관님이 전부 다 준비해주신 게 어디야.”

단목운뢰가 담담히 말했다. 사실 이런 것을 자비로 준비하라 했으면 그에게는 상당한 부담이었다.

최소한의 돈을 남기고 월봉 대부분을 어머니께 드린 터였으니.

제법 깊은 산에 도착해서야 걸음을 멈출 수 있었다. 하무백이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군.”

나무가 우거진 가운데 적당한 공터가 있는 곳이었다. 하무백이 먼저 등에 맨 혁낭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커다란 천을 꺼내 기둥을 박고, 나무들 사이에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그럴 듯한 차양막이 순식간에 생겼다.

“며칠간은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서 훈련한다.”

혁낭을 내려놓고 주저앉아 숨을 돌리던 다섯 사람은 하무백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새벽부터 이른 아침까지는 심법 수련과 초식 수련이다. 그리고 그 후로 실전 모의 훈련을 할 거다.”

“실전 모의 훈련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당진산의 질문이다.

“사냥이다.”

“네?”

의외의 대답에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사냥. 일단은 동물 사냥부터 시작해야지. 오늘은 너희들만으로 해봐라. 성공하면 식사를 하는 거고, 실패하면 식사는 없다.”

“네에?”

당진산의 물음이 더욱 길어졌다.

이런 경우는 없었다. 적어도 먹는 것만큼은 제대로 챙겨줬던 교관이었건만.

이곳에 오자마자 먹는 걸로 저러다니.

“식재료는 하나도 준비하지 않았거든. 현지 조달이다. 그러니 사냥을 성공해야지.”

“채집은 안 됩니까?”

백리평이 물었다.

“뭐, 고기 없이 풀만 먹어도 된다면야. 그건 편한 대로 해라.”

과일은 아직 먹을 만한 게 없는 때였다.

설익은 녀석들 뿐. 아니 이제 알이 생겼을까 싶은 시기였다.

그보다 그런 설익은 과일이 있는 곳도 몰랐다.

결국 먹을 만한 것은, 버섯이나 풀 정도인데. 버섯도 아무 거나 먹을 수가 없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독 때문에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으니.

“저기. 그게 훈련 맞나요?”

당진산이 도무지 납득이 안 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전쟁에서, 유격전이란 결국은 사냥이다. 동물이 아닌 사람을 목표로 한다는 게 다를 뿐. 동물조차 잡지 못하면서, 사람을 잡겠다니 어불성설이지.”

“그, 저. 저희는 전쟁을 하는 게 아니라, 비무 대회를 하는 겁니다만?”

“상대가 그리 생각할 때, 너희만은 전쟁을 해야 이길 수가 있는 거다. 특히나 잠룡대 1조를 상대로는 말이다.”

“…….”

잠룡대의 이야기가 나오자 당진산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잠깐 잊었었다.

자신들이 그 고생을 하며 수련을 한 목적을 말이다.

결국은 잠룡대 1조를 꺾기 위함, 정확히는 그날의 수모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시작은 동물 사냥이겠지만, 그 후에 내가 사냥감 역할을 하기도 하고, 반대로 너희가 사냥감 역할을 하기도 할 거다.”

하무백이 추가적으로 훈련에 대한 설명을 보충했다.

“결국은 추적, 매복, 기습, 도주. 이것들이 유격전의 요체다. 사냥꾼이 되는 건 그 중 추적과 기습을, 사냥감이 되는 건 매복과 도주를 훈련하기에 좋은 방법이지.”

다들 하무백의 말에 집중했다.

“오늘 심법 수련과 초식 수련은 이곳까지 이동에 소모된 시간으로 생략할 테니. 어서 사냥들 해 와라.”

하무백은 그리 말하고는 혁낭에서 천을 꺼내서 나무 사이의 적당한 높이에 묶었다. 순식간에 공중에 뜬 간이 침상이 만들어지자 그곳에 누워서는 눈을 감았다.

“교관님 식사까지 저희가 사냥해야 합니까?”

무언가 불만이 어린 목소리의 당진산이었다.

“나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희들 몫이나 잘 챙겨라.”

그리고는 입을 꾹 닫았다.

다섯 사람은 서로를 돌아봤다.

이 중에 사냥을 경험한 사람이 있을까.

저마다의 얼굴을 살폈다.

백리평이 살짝 앞으로 나섰다.

“종남에 있을 때, 조금…….”

종남산 깊은 곳에 자리한 종남파다. 속가의 문파인지라, 어쩌면 사냥도 했을지도 모르는 일.

나머지 네 사람의 두 눈이 기대로 빛났다.

“다만, 이런 도구로는…….”

그러고 보니, 가검과 방패가 가진 병기의 전부다. 이런 걸로 어찌 사냥을 하란 말인가.

그때 무언가 생각이 미친 것인지, 단목운뢰가 혁낭을 열었다.

일단 자신들이 가진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첫 번째 할 일이었다.

한쪽으로 돌아누운 채 눈을 감고 있던 하무백은 기척으로 그런 단목운뢰의 행동을 느끼고는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일단 첫 과제는 통과한 모양이다.

“아. 여기.”

먼저 발견한 사람은 백리평이었다.

살짝 말린 활대과 잘 감겨 있는 시위, 그리고 화살이 있었다.

시위를 풀어 활대에 묶으니, 쓸 만한 활이 완성됐다.

다섯은 각자 시위를 튕겨봤다.

“괜찮군.”

당진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궁술을 본격적으로 수련하지는 않았지만, 취미 삼아 사냥을 다니며 활을 쏜 경험은 있었다.

물론 그 사냥은 몰이 사냥이었다.

몰이꾼들이 사냥감을 몰아오면 활로 쏘아 잡는 유희거리.

이렇게 직접 아무 것도 없는 산 속에서 사냥감을 찾아 잡는 제대로 된 사냥이 아닌.

그랬기에 당진산 역시 사냥 경험이 없다한 것이다.

활을 다룰 줄 아는 이는 당진산과 백리평, 둘이었기에 나머지 셋에게 간략히 활을 다루는 법을 가르쳤다.

“그런데 하투제에 활을 사용해도 되나요?”

당진산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사용이 금지되었다면, 이건 아무 의미 없는 짓이었으니.

“화살촉만 없으면 돼.”

하무백은 별 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속성으로 활을 다루는 법을 익힌 이들의 시선이 백리평에게로 향했다.

이제 어찌하냐는 물음이 담긴 시선이다.

“사냥감을 찾아야지.”

당연한 말이다.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어떻게 찾느냐. 그게 중요한 것을.

“일단 흔적부터 찾자.”

그리 말한 백리평은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두 눈을 빛내며 땅을 살피기 시작했다.

사냥감을 찾기 위한 첫 번째 단계. 사냥감의 흔적부터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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