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일단 쫓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첫 날 식사는 설익은 과일이 전부였다.
야생의 사과나무라도 발견을 했기에, 그거라도 먹을 수 있었다. 설익었다기보다는 아직 채 굵어지지도 않은 사과.
크기는 한 입이 채 안 될 정도로 작은데다, 떫기만 할 뿐 아무런 맛도 없었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면 절대 먹지 않았을 것이다.
하무백은 한쪽에서 피식 웃으며 육포와 건량을 먹고 있었다.
미리 준비해온 자신 몫의 식량이었다.
작은 구슬보다 조금 더 큰 떫기만 한 사과알을 씹다가 그 모습을 본 다섯 명은 배신감 가득한 얼굴로 하무백을 보았다.
분명 식재료를 하나도 준비하지 않았다고 하고서는…….
“먹을 거 하나도 없어서 직접 사냥해야 한다면서요?”
당진산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이게 전부야.”
태연히 대답하는 하무백.
딱 한 명 먹을 분량의 육포와 건량을 챙겨와서는 혼자서만 저리 보란 듯이 먹고 있다니.
정말 자신들의 교관이 맞단 말인가.
“너무 하십니다.”
갑자기 들려온 말소리에.
다섯 사람은 동그란 눈으로 그 말을 한 사람을 보았다.
낙우진이었다.
평소 과묵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말이 없는 그였기에.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서러운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무백이 슬쩍 시선을 돌렸다.
“내일도 저희끼리 사냥을 해야 합니까?”
단목운뢰가 떫은 사과를 씹으며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그러고 싶은데……. 시간이 모자라네. 내일부터는 나랑 같이 움직인다. 오늘 한 번 고생을 해봤으니, 내일 더욱 집중해서 배울 수 있겠지. 어서 잠들 자라. 내일부터는 제대로 잠 잘 시간도 없을 테니.”
무척이나 불길하게 들리는 말이다.
하무백이 준비한 혁낭에는 작은 천막을 칠 수 있는 도구들이 들어 있었다.
각자 적당한 곳에 천막을 치고 자리에 누웠다.
산짐승들의 위협이 있는 곳이었으나, 하무백이 딱히 아무 말이 없었기에 불침번조차 세우지 않고 그대로 잠들었다.
산 속을 하루 종일 헤맨 오늘 하루가 너무 피곤했던 탓이다.
하무백은 나무에 걸어둔 천으로 된 침상에 올라가 누웠다.
그의 기감이 주변으로 넓게 퍼졌다.
하무백도 잠이 들었지만, 근처로 무언가가 접근한다면 바로 감지하리라.
이것이 굳이 하무백이 불침번을 세우지 않은 이유였다.
“잘 봐둬. 그리고 똑똑히 기억해. 이 정도 발자국에 이 정도 깊이, 그리고 주변 흙들의 상태를 보면 적어도 한 시진 전에 이곳으로 사슴이 지나간 거다.”
하무백이 떨어진 나뭇잎 아래 짐승 발자국을 발견하고는 알려줬다.
“단목운뢰. 방향은?”
하무백이 가리킨 사슴의 발자국을 한참동안 보는 단목운뢰.
“저쪽 아닌가요?”
“살짝 틀어졌다. 정확한 위치를 제대로 봐야해. 이쪽이야.”
시작이 틀어지면, 갈수록 그 오차는 엄청나게 커진다.
하무백이 다시 바로 잡아줬다.
칠 조는 그렇게 기본적인 수련 후 하루 종일 산속을 헤매고 다녔다.
둘째 날은 그렇게 훈련과 함께 사냥을 진행했다.
“빨리 먹어라. 야간 수련해야 하니.”
얼마 되지도 않는 토끼 고기를 먹던 다섯 사람의 시선이 하무백에게로 향했다.
“어제 그랬잖아. 오늘부터 잘 시간도 제대로 없을 거라고.”
악마의 얼굴이 보였다.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가르칠 건, 검진(劍陳)이다. 지금까지 나와 한 대련은 그 검진의 기초를 위한 거였고. 삼재공을 바탕으로 한 검진이라, 굳이 이름 붙이자면 삼재검진이 되겠군.”
하무백의 말에 다섯 사람은 집중해서 그의 말을 들었다.
“주공(主攻)은 백리평이 맡는다. 가장 위력이 강한 공격을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부공은 당진산. 정면의 방어는 낙우진이 맡고, 단목운뢰와 연하민은 측면의 공격과 후면의 빈틈을 노리는 역할이다.”
각자의 역할을 지정해주자, 저마다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면 배치는 백리평이 가운데, 낙우진과 당진산이 그 좌우다. 그리고 단목운뢰와 연하민이 그 바깥 좌우. 낙우진은 절대적으로 방어에 치중하고, 당진산은 방어하는 와중에 틈틈이 작은 공격으로 상대의 신경을 분산시키는 거다. 백리평은 상대와 맞상대를 하면서 결정적인 기회를 노리고.”
“저희 둘은 어떻게 하죠?”
연하민이 물었다.
“한 명을 상대하게 된다면 뒤를 노리는 거지. 상대의 정신을 뺏는 공격을 하는 와중에 빈틈이 보이면 그대로 큰 공격을 해도 좋아.”
저마다 자신의 역할을 곱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삼재검법에서 각 상황에 맞는 초식을 집중적으로 수련해야겠지?”
당연한 말에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는 다섯 명.
그때부터 하무백의 개인 교습이 시작되었다.
각자 알려주는 대로 열심히 검을 휘둘렀다. 하무백은 특히 낙우진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방어를 전담하는 역할이다 보니, 누군가가 공격 역할을 해줘야 하는 탓이다.
“간다.”
챙.
하무백의 검을 검으로 막은 낙우진.
고개를 저으며 하무백이 입을 열었다.
“방어의 시작은 방패다. 왼팔에 방패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방어에 있어서는 검보다는 방패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네.”
“다시.”
날아오는 검을 정확히 방패로 받아내는 낙우진.
“그대로 밀어내.”
하무백의 지시에 왼팔에 힘을 더했다. 그래도 검을 쥔 손이 튕겨나가고 오른쪽 가슴이 열렸다.
“좋았어. 한 번 더.”
하무백의 검이 다시 날아갔다. 반복될수록 검격에 실린 힘이 더 강해졌고, 속도 또한 빨라졌다.
이윽고 검의 움직임에 적절한 변화까지 가미되었다.
낙우진은 이를 악물고 방패로 검을 막고, 밀어냈다.
밀어냈다 싶은 검이 교묘히 변화를 일으켜 다시 올 때면 자신의 검으로 다시 한 번 막아냈다.
“좋아. 계속 그렇게 연습해라.”
하무백의 말에 낙우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패를 움직이고 검을 움직였다.
횟수가 반복될수록, 그 움직임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하무백은 한 명, 한 명 검진에서 맡아야할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연습시켰다.
다섯 명이 마른 침을 삼키며 하무백을 노려보고 있었다.
가검을 든 하무백이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일제히 움직였다.
그 중 백리평이 먼저 정면으로 검을 찔러가며 짓쳐 들었다.
그와 동시에 낙우진과 당진산이 방패를 앞세워 좌우를 보조했고, 단목운뢰와 연하민은 하무백의 좌우측면을 파고들었다.
하무백이 백리평의 검을 쳐내고 그를 향해 가검을 내려치는 순간 좌우의 두 사람이 방패로 하무백의 검을 막았다.
그 순간 좌우에서 찔러 들어오는 단목운뢰와 연하민의 검.
거기에 신경을 쓰는 순간, 당진산과 낙우진의 다리 사이에서 백리평의 검이 섬전처럼 솟아올랐다.
하무백은 훌쩍 뛰어 올라 뒤로 몸을 날렸다.
그 순간 멍한 얼굴로 하무백을 바라보는 생도들.
“쯧. 그렇게 멈추면 어떻게 하나. 바로 나를 쫓아 공격해 들어와야지.”
“이게 가능한 건가요?”
당진산이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배운 대로 합격을 해 들어갔으나, 너무 딱딱 맞아 들어갔다.
자신들이 하던 합격술과는 전혀 달랐다.
공격하는 과정이 크게 다른 것 같지도 않았는데, 이토록 현격한 차이가 나는 결과라니.
“내가 적당히 수준을 맞춰줬으니까.”
“그래도 교룡관에서의 합공에서는 이렇게 일방적으로 몰아붙이지 못 했습니다.”
백리평도 상당히 놀란 얼굴과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검진이지. 어설픈 너희의 합격술과는 다른.”
“그래도 너무 딱딱 맞아 떨어지잖아요.”
당진산이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간 너희들의 수련이 켜켜이 쌓인 결과다. 얼마나 검을 휘두르고 방패를 휘둘렀는지 생각해봐.”
하무백이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리고 고작 이정도로 만족하면 곤란해. 다시 말하지만 내가 너희들의 수준에 맞춰준 것뿐이야. 하투제에서 상대할 남궁지후라면 지금 정도의 검진은 손쉽게 파훼한다.”
그 말에 다섯 사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조금 전까지 자리했던 은근한 기쁨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자, 그러니까. 계속 하자고.”
하무백이 다시 다섯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고, 그들은 다시 검진을 펼쳤다.
***
열흘이 지났다.
맹룡대 칠 조의 몰골은 처참했다. 겨우 열흘 만에 어찌 저리 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다만, 눈빛은 달랐다.
형편없는 몰골과는 대조적으로 반짝이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지금 그들은 사냥을 나온 상태였다.
가장 후미에서 하무백이 뒷짐을 지고는 칠 조의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
단목운뢰가 짐승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사슴이네. 두 마리다. 어미와 새끼인 거 같은데…….”
크고 작은 발자국을 확인한 백리평이 방향을 가늠하며 말했다.
“사슴 괜찮지.”
당진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낙우진과 연하민 역시 작게 끄덕였다.
그걸로 목표는 정해졌다.
다섯은 조심스레 사슴의 발자국을 쫓았다. 대략 한 시진 전에 지나간 발자국이었다.
빠르게만 쫓으면 잡을 가능성이 있었다.
사슴 두 마리가 그대로 달려간 거라면 가망이 없었지만, 발자국의 깊이나 간격이 그 두 마리가 한가로이 걸어 다녔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백리평이 조심스레 앞장섰다. 그 곁에는 낙우진이 방패를 꽉 쥔 채로 따랐다.
이동 중에도 즉각 검진을 펼 수 있는 대형을 유지한 채였다. 하무백의 혹독한 훈련 덕에 어느새 그것이 습관처럼 되고 있었다.
“응?”
얼마나 발자국을 쫓았을까. 백리평이 눈살을 찌푸렸다.
단목운뢰가 백리평의 시선이 닿은 곳을 확인했다. 발자국의 간격이 넓어져 있었다. 깊이도 깊었다.
이곳부터 갑자기 땅을 박찼다는 이야기다.
“뭐지?”
단목운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단 쫓는다.”
바람은 맞바람이었다. 조금 서두른다고 자신들의 냄새가 사슴에게 닿을 일은 없었다.
덕분에 다섯 사람의 걸음이 빨라졌다.
“쯧.”
그 모습에 하무백은 작게 혀를 찼다. 저 녀석들이 갑작스러운 목표의 변화에 당황해서 빨리 움직이는 바람에 놓친 것을 봤기 때문이다.
물론 저 녀석들의 시력으로는 볼 수 없는 거리에 있는 발자국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변화에 수상함을 느끼고 주변을 넓게 수색했다면 발견했을 수도 있는 흔적이다.
‘뭐, 이것도 수업이고 경험이지.’
하무백은 잠자코 그 뒤를 따랐다.
발자국의 간격은 벌어졌지만, 깊고 뚜렷이 남았기에 쫓는 것은 더 쉬웠다.
덕분에 다섯은 달리다시피 발자국을 추적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헉.”
당진산이 놀라서 경악을 내뱉으며 황급히 멈춰 섰다. 다른 네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점점 가까워지는 사슴의 발자국에만 정신이 팔린 덕일까.
미처 다른 짐승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지금 노란 눈동자를 빛내며 자신들을 바라보는 검은 존재.
“흐, 흑표(黑豹)?”
단목운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놈은 입가에 피를 잔뜩 묻힌 터다. 그 아래에는 새끼 사슴이 죽어 있었다. 이미 흑표가 상당히 뜯어 먹은 후다.
어미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사냥에 성공한 흑표가 마음껏 식사를 즐기고 있는 때에, 맹룡대 칠 조 다섯 명이 난입한 것이다.
“크르르르르.”
낮은 울음을 흘린 흑표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다섯 사람을 노려보았다.
잔뜩 드러낸 송곳니에서 침이 뚝뚝 떨어졌다. 아직 굳지 않은 새끼 사슴의 피가 뒤섞여 붉디 붉었다.
“제, 젠장.”
당황한 당진산이 욕설을 내뱉었다.
흑표는 다가오지 않았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어슬렁거리며 낮은 울음을 흘릴 뿐이다.
다섯 사람은 저마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저런 맹수를 마주 칠 줄이야.
지난 열흘 동안 이곳 목란산을 누비며 사냥과 수련을 했지만 처음 있는 일이다.
그랬기에 방심한 것이다.
이런 깊은 산이면 저런 맹수가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껏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기에 그 존재의 가능성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갑자기 사슴이 달린 게 저놈 때문이었어…….”
단목운뢰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래. 주변을 잘 살폈으면 저놈의 발자국도 발견했을 거야. 아마.”
연하민이 낭패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 속에는 자신에 대한 자책도 진하게 어려 있었다.
“어쩌지?”
낙우진의 짧은 물음.
당진산이 힐끗 하무백이 있는 곳을 보았다가 두 눈을 부릅떴다.
없었다.
천천히 자신들을 따라오고 있던 교관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싸워야겠네, 젠장. 교관님 없다.”
당진산의 말에 저마다 곁눈질로 뒤를 확인하는 이들.
“우리가 상대할 수 있을까?”
단목운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해야지.”
백리평이 검과 방패를 들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크르르르릉.”
흑표의 울음이 한층 커졌다.
낙우진이 방패를 꽉 쥐고 백리평의 옆을 지켰다.
절대 만만한 놈이 아니었다.
일단 덩치부터가 대단했다. 표범의 덩치가 아니다. 저 정도면 그냥 호랑이라고 봐야할 정도다.
흑빛의 몸체에, 더 검은 점들이 알알이 박혀 있었다.
커다란 송곳니는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하다. 땅을 디딘 발의 날카로운 발톱은 또 얼마나 사나워 보이는가.
맹수라고는 처음 마주치는 다섯 사람이다.
이곳에는 그들 다섯과 흑표만이 있었다.
서로를 향한 대치.
모두가 검과 방패를 들었다.
양쪽 모두 섣불리 상대를 향해 달려들지 않았다.
흑표는 빈틈을 노리고 있었고, 다섯 사람은 어찌 상대해야 할지 몰랐기에 일단 흑표를 지켜보고 있었다.
검을 쥔 손이 잘게 떨림을 느낀 단목운뢰가 이를 악물었다.
절로 어머니와 동생이 떠올랐다.
절대 이곳에서 이렇게 허망하게 당하지 않으리라.
자신들의 빈틈을 노리고만 있는 흑표지만 놈이 뿜어대는 살기는 이미 이 주변에 가득했다.
덕분에 단목운뢰는 하무백의 존재를 완전히 잊었다.
다섯 사람은 흩어지지 않았다.
삼재검진의 기본은 적절한 간격을 둔 산개 대형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랬다가는 단번에 놈의 목표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들을 뭉쳐 있게 만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대치를 했을까.
흑표가 어슬렁거리는 것에 맞춰 방향을 바꾸며 움직이던 칠 조.
“어…….”
단목운뢰가 잔뜩 긴장한 때문인지, 돌부리에 걸려 휘청했다.
순간 드러난 허점.
“크어어엉!”
흑표가 커다란 울음과 함께 검은 바람이 되어 단목운뢰를 목표로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