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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24화 (24/312)

24화. 후아, 빌어먹을

“정신 차려!”

당진산이 방패에 체중을 실으며 단목운뢰를 막아섰다.

쾅!

흑표와 방패의 충돌로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당진산이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나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흑표의 힘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방패에 막힌 자리에 그대로 정지한 흑표. 입가로 침이 뚝뚝 떨어졌다.

당진산과 함께 밀려 넘어진 단목운뢰까지 고스란히 흑표의 아가리 아래에 노출되었다.

놈의 눈가에 웃음이 떠올랐다는 착각이 들려는 찰나.

“타핫!”

커다란 기합과 함께 백리평의 검이 날아들었다.

상대에게 지금 공격하고 있다고 대놓고 알려주는 기합성은 내지르면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백리평은 그야말로 전력을 다해 검을 떨쳤고, 기합은 그에 따라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온 것이다.

백리평의 외침에 흑표의 시선이 그곳으로 돌아갔다. 뒤이어 날아오는 검을 훌쩍 뛰어 피했다.

택도 없는 공격이었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것은 그 덕에 당진산과 단목운뢰가 무사했다는 것이다.

그 틈에 두 사람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미안.”

“고맙다. 덕분에 살았어.”

단목운뢰의 사과와 당진산의 감사.

그것을 제대로 따질 틈도 없었다. 흑표가 다시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젠장. 고작해야 표범인데, 저놈은 왜 이리 괴물 같아.”

급박했기에 내공을 제대로 끌어올리지 못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힘껏 체중을 실었는데도 그리 밀리다니.

“그 정도도 대단한 거다. 그나마 몸에 힘이 없었으면 형편없이 뒤로 튕겨 날아갔을지도 몰라. 저놈을 멈춰 세우지도 못했을 거고. 그대로 당했겠지.”

백리평의 말에 당진산은 슬쩍 자신의 팔과 다리를 훑었다.

그러고 보니 많이 굵어져 있었다. 근육도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다.

맹룡대에 들어오기 전의 자신이었다면, 분명 백리평의 말 대로였을지도 몰랐다.

그 지옥 같던 외공과 신체 단련이 그래도 효과가 있는 듯했다.

“저놈, 그냥 맹수가 아니야.”

연하민이 잔뜩 경계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놈은 목란산의 여러 봉우리 중 한 곳의 주인이었다. 원래 그곳의 주인이었던 호랑이를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한 놈이다.

이미 놈의 날카로운 이빨 아래 유명을 달리한 엽사가 열 손가락을 넘어갔다.

그런 경험을 가진 맹수였기에 어지간한 고수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목란산 아래 마을의 사람들은 놈을 암주(暗主)라 불렀다.

검은 털 때문에 밤에는 그야말로 놈의 모습을 볼 수조차 없었기에, 두려움에 어둠의 주인이라 부르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놈의 영역 밖이었기에 마주칠 일이 없었다.

하필이면 칠 조가 쫓던 사슴이 놈의 영역으로 들어갔고, 칠 조도 그 뒤를 따라 들어왔기에 이렇게 조우하게 된 것이다.

등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다섯 사람 모두 똑같았다. 극도의 긴장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방패로 놈을 막았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긴 했다.

저 커다란 덩치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힘을 버텨낼 능력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이니까.

다만 그뿐이다.

놈은 다시금 자신들의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저마다 무기를 쥔 양손에 땀이 가득 찼다.

얼마나 대치를 한 것일까.

흑표는 여전히 그들을 노리고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이 정도면 지쳐서 그냥 떠날 법도 한데.

오히려 지쳐가는 것은 맹룡대 칠조였다.

이대로는 집중력이 떨어져 흑표에게 당할 것만 같았다.

저벅.

먼저 움직인 것은 백리평이다. 그가 한 발 앞으로 내딛자, 흑표는 그대로 멈췄다.

잔뜩 몸을 웅크리고는 언제든 튀어나갈 준비를 하는 흑표.

다시 한 발 내딛는 백리평.

흑표의 노란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그 살기는 다섯 사람 모두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검을 휘둘렀던 백리평의 모습을 흑표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저 다섯 중 가장 강한 이.

“크르르르릉.”

흑표는 낮은 울음을 흘렸다.

백리평이 다시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일행과 세 발짝 정도의 간격이 생겼다.

낙우진이 황급히 따라 붙었다. 그 이상 간격이 벌어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의 행동에 다른 세 사람도 따라 붙었다.

“간다.”

백리평이 나직이 말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는 말.

저마다 낮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몰린 바, 자신들의 실력을 믿고 흑표와 싸울 수밖에 없었다. 계속 버티기만 해봐야, 자신들이 불리할 뿐.

삼재검법의 기수식을 취한 백리평이 흑표를 노려보았다. 흑표 역시 백리평을 노려보았다.

둘은 치열한 눈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다른 넷은 백리평의 움직임을 읽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가 공격을 시작할 때 곁에서 보조를 맞춰야 했다. 홀로 저놈에게 달려들게 둘 수는 없었다.

어디선가 작은 바람이 불었다.

턱 끝에 매달린 땀방울이 바람에 뚝 떨어졌다.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바람이 참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백리평이 전력으로 튀어나갔다.

방패를 들어 올린 당진산과 낙우진이 바로 움직였고 검과 방패를 꽉 움켜쥔 단목운뢰와 연하민이 그 뒤를 따랐다.

백리평의 검이 흑표의 목을 노렸다. 흑표의 앞발이 백리평의 얼굴을 노렸다.

퍽.

그러나 흑표의 앞발은 당진산의 방패에 막혔다.

“큭.”

둔중한 충격에 신음이 흘러나왔으나, 지금은 내공까지 잔뜩 끌어올린 상태.

그대로 흑표의 앞발을 막았다.

백리평의 검이 활짝 열린 흑표의 목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흑표는 당진산의 방패를 지지대 삼아 앞발로 꾹 누르더니 그 반동으로 몸을 휘릭 돌렸다.

백리평의 검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지면에 몸을 납작 엎드렸던 흑표가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사나운 송곳니를 잔뜩 세운 아가리를 쩍 벌리고는 그대로 백리평의 머리를 씹어 삼킬 기세였다.

퍽.

낙우진의 방패가 흑표의 아래턱을 위로 쳐올렸다.

그 충격에 흑표의 공격이 빗나갔다.

그 순간 막 도착한 단목운뢰와 연하민의 검이 흑표를 향해 날아갔다.

흑표는 몸을 거세게 흔들었다. 놈의 발에 긁힌 땅에서 흙먼지가 거칠게 피어올랐다.

순간 시야가 가려져 흑표의 모습을 놓쳤다.

“악.”

연하민의 입에서 작은 비명이 터졌다.

흑표의 꼬리가 그녀의 발목을 후려친 탓이다.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연하민을 흑표는 놓치지 않았다. 그대로 달려들었다.

퍽.

그 순간 단목운뢰가 흑표의 전진을 막았다.

휘익.

흑표의 등 뒤에서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울렸다.

흑표는 지체없이 몸을 날렸다.

검은 허공을 갈랐다.

백리평의 공격이 빗나가자 흑표는 다시 땅을 박찼다.

이번 목표는 당진산이었다.

주변에서 귀찮게 하는 것을 먼저 처리하기로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큭.”

방패로 막았으나 정신없이 뒤로 밀려났다. 흑표가 작정하고 몸통으로 들이박자 내공을 끌어올렸음에도 버틸 수가 없었다.

덕분에 당진산이 일행에게서 홀로 떨어져 나왔다.

흑표의 노란 눈이 사납게 빛났다. 놈의 앞발이 당진산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검으로 황급히 막았다.

검과 흑표의 발이 부딪히고, 놈의 다리에서 피가 튀었다.

“크아앙!”

고통을 느낀 흑표의 울부짖음.

그와 동시에 놈의 몸이 거칠게 요동쳤고, 그 힘을 버티지 못한 당진산이 뒤로 날아가 처박혔다.

끝장을 내려 당진산에게 달려들던 흑표는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몸을 피했다.

“크르르릉.”

흑표의 울음이 더욱 섬뜩하게 변했다. 적들이 손에 들고 있는 날붙이의 위력을 체감한 탓이다.

흑표는 틈을 주지 않았다. 이번 목표는 낙우진이었다.

이어진 몸통 박치기.

“크으윽.”

낙우진의 등 뒤를 연하민과 단목운뢰가 지탱했다.

같은 수법에 또 당할 수는 없었다.

세 사람이 전력으로 막은 덕에 그 자리에서 버텨냈다.

“크르릉.”

울음을 흘리는 흑표의 숨결이 얼굴에 그대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낙우진은 물러서지 않고 버텼다.

등을 지탱해주는 동료들이 든든했다.

‘방패가 좀 더 컸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산속에서 쓰기 편하도록 크기를 줄인 방패에 대한 아쉬움이 이 순간에 어울리지 않게 머리에 떠올랐다.

낙우진이 버텨내자 약이 오른 듯 흑표는 네 다리에 힘을 끌어올려 체중을 잔뜩 실었다.

낙우진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뒤에서 밀리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것과 별개로, 자신의 팔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크앙!”

전력으로 방패를 밀어붙이던 흑표가 갑자기 뒷발로 땅을 디디고는 앞발을 들고 몸을 세웠다.

순간적으로 사라진 힘에 낙우진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방패가 열렸고, 그 사이로 세 사람의 당황한 얼굴이 드러났다.

흑표는 마치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듯했다.

아가리를 쩍 벌린 흑표.

놈의 뜨끈한 침이 뚝뚝 떨어졌다. 그것이 어찌 그리 서늘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흑표의 아가리가 낙우진의 머리를 당장에라도 집어삼키겠다는 듯 빠르게 다가왔을 때.

퍽.

황급히 달려온 백리평이 왼손의 방패를 그대로 놈의 아가리에 쑤셔 넣었다.

당장에라도 낙우진을 씹어 삼킬 기대에 백리평의 움직임을 놓친 대가였다.

방패에 놈의 이빨이 숭숭 박혔다.

“크어어엉!”

다물어지지 않는 입으로 포효를 터트린 흑표가 앞발을 마구 휘둘렀다.

놈의 날카로운 발톱에 백리평의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생겼다.

그럼에도 중구난방으로 날아오는 놈의 앞발을 침착하게 피했다.

그리고 틈이 벌어진 순간.

그대로 검을 내질렀다.

푹.

이번에는 제대로 박혔다.

흑표의 움직임 때문에 노렸던 목에서는 빗나갔지만, 오른쪽 어깻죽지 관절에 틀어박힌 검.

“크어어어어어엉!!!”

그 어느 때보다 큰 울음이 흑표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고통의 울부짖음이었다.

“지금!”

백리평의 다급한 외침에 쓰러졌던 세 사람이 자신의 검과 방패를 들고 흑표에게 달려들었다.

한쪽 앞발을 못 쓰는 흑표의 움직임은 느렸고, 공격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단목운뢰의 검이 흑표의 왼쪽 어깨에 박혔다.

연하민과 낙우진의 검이 흑표의 목을 좌우에서 꿰뚫었다.

“크르르르륵.”

피 끓는 소리가 흑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살기를 줄기줄기 흘려내던 샛노란 눈에서 점차 생기가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이내 흑표의 몸이 축 늘어졌다.

“후아. 빌어먹을.”

그 모습을 확인한 백리평이 한숨을 내쉬며 주저앉았다.

절로 욕설이 흘러나왔다.

조금 전, 흑표의 어깨에 검을 박아 넣을 때를 떠올렸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하마터면 아예 빗나갈 뻔한 탓이다.

운이 좋았기에 흑표의 어깨에라도 검을 박아 넣은 것이다.

“헉헉헉.”

낙우진이 거친 숨을 내쉬며 그대로 엎드려서는 구역질했다.

이제야 조금 전 흑표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의 공포가 떠오른 것이다.

단목운뢰가 거친 숨을 내쉬며 그런 낙우진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연하민은 흑표의 꼬리에 가격당한 발목을 만졌다. 살짝 접질린 듯한 통증이 느껴진 탓이다.

“하, 하하. 하하하. 저놈을 우리가 잡았네. 잡았어!”

쓰러졌던 곳에서 몸을 일으킨 당진산이 눈앞의 결과에 복잡한 웃음을 흘렸다.

“그렇군. 잡았어.”

그때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당진산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는 담담한 표정의 하무백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그 모습에 당진산의 표정이 콱 일그러졌다.

대체 어디를 갔다가 이제야 나타난 것일까.

“교관님! 가장 필요할 때 없으시더니……. 저희 정말 죽을 뻔했다고요!”

당진산이 원망 가득한 외침을 터트렸다.

네 사람의 시선이 하무백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그제야 하무백의 존재를 떠올렸다. 그리고 절로 힘이 빠졌다.

그래.

저 괴물 같은 교관이 있었지. 그러면 자신들을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텐데.

왜 그리 긴장한 것일까.

그런 생각에 몸이 노곤하게 풀려버렸다.

하무백이 힐끔 흑표의 시체를 쳐다보았다.

“쯧. 엉망진창으로 잡았군. 가죽은 제값을 못 받겠는걸?”

당진산은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산월마림에서 저 정도 녀석은 아무것도 아니다. 고작 저런 녀석 하나 감당 못하면, 산월마림에 도착한 날 죽어.”

하무백의 담담한 말에 당진산은 벌어진 입을 천천히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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