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26화 (26/312)

26화. 하투제를 시작한다

“전략이라니요?”

당진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우선 목표를 분명히 해야지. 하투제의 우승을 우선할 거냐, 아니면 잠룡대 1조에 대한 설욕을 우선으로 할 거냐.”

“차이가 있습니까?”

단목운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적어도 자신들이 알기에는 잠룡대 1조의 인원들이 교룡관에서 최강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와룡대 1조 정도가 있을까.

우승하려면 결국 그 둘을 이겨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히 설욕도 되는 것이고.

“너희들의 실력이 아슬아슬한 게 문제야. 우승을 노린다면 최대한 전력을 유지하면서 싸워야 하는데. 그러자면 잠룡대 1조는 늦게 만날수록 좋아.”

하무백의 설명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런 시간을 보내면, 잠룡대 1조 정도면 어느 정도 하투제의 전투방식에 익숙해져 있을 수 있다는 거지. 하투제가 진짜 유격전도 아니고, 유격전 흉내 내는 애들 장난 같은 거니.”

실제 전쟁을 겪었던 하무백 입장에서는 그의 말대로, 하투제는 애들 장난 같이 느껴졌다.

“그러면 마지막에 맞붙었다가 설욕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단목운뢰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전력을 보존한다고 해도 과연 다섯이 전부 살아남아서 잠룡대 1조와 맞붙을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군요.”

백리평 역시 자신의 생각을 보탰다.

“설욕을 우선한다면 달라지는 게 있나요?”

조용히 있던 연하민이 물었다.

“가장 먼저 잠룡대 1조를 상대해야지.”

“잠룡대 1조가 목란산의 환경과 유격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적응하기 전, 우리 전력이 최대일 때 쳐야 한다는 뜻인가요?”

연하민의 물음에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너희가 잠룡대 1조에게 설욕, 아니 복수를 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방법이야. 현실적으로.”

“거기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남궁지후로군요.”

단목운뢰가 알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이들이 설욕하고자 하는 대상은 사실 당추다.

그날의 치욕을 잊을 수 없기에.

다른 이들도 당추의 행패를 지켜만 보고 있었기에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에 그들의 분노의 대상은 당추였다.

***

하무백이 자리를 비우고 다섯 사람만이 묘한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진산이 정하는 게 좋겠어.”

긴 침묵을 깬 사람은 연하민이었다. 그녀의 말에 조원들의 시선은 당진산에게로 향했다.

하무백이 말했던 우선할 목표.

그것에 대해 가장 많은 사연을 가진 이가 그였으니.

“오늘 훈련에서 두 명이 탈락했어. 아마 실전에서도 비슷할 거라 생각해. 저 괴물 같은 교관님이 설정한 무력이니. 그렇다면 남궁지후를 잡은 후에는 세 명이서 남은 잠룡대 1조 네 명을 잡아야 한다는 거야. 그것도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

연하민이 냉정하게 분석했다.

그녀의 말이 끝났을 때 다섯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굴욕, 치욕.

그날 당했던 일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아쉬웠다. 적어도 한 달의 시간이 더 있었다면, 아마 이런 고민은 없을지도 몰랐다.

그때라면 목란산에서의 조별 집단전이라면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었다. 지금 자신들이 발전하는 속도로를 보면 가능한 일이리라.

“설욕만 목표로 잡아도 쉬운 게 아니라는 거네. 후.”

단목운뢰가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정확한 목표를 설정해야 할 거 같아. 설욕이라 한다면 정확히 누구에게 설욕한다는 거지? 잠룡대 1조?”

연하민의 물음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자신들은 과연 누구에게 설욕하길 원하는가.

물론 잠룡대 1조다.

그런데 왜 그리되었을까.

일의 시작을 되짚어 봤다. 그러고 보면 그간 그 부분을 다들 간과하고 있었다.

아니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옳으리라. 하무백이 그렇게 몰아붙였으니까.

이제야 그것을 생각해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당추…….”

당진산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 음성에 나머지 네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일의 시발점은 그였다.

그의 의도적인 시비와 함께 그에게 무참히 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무런 감정 없는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잠룡대 1조의 얼굴들도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래, 그놈이 시작이었지.”

백리평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의 눈빛이 빛났다.

일차적인 목표는 정해졌다.

당추.

그놈을 먼저 잡고, 여유가 된다면 잠룡대 1조에게 설욕도 한다.

설혹 남궁지후의 실력에 밀려 패하게 되더라도 당추, 그놈만은 어떻게든 무참히 박살을 내야 했다.

목표는 정해졌다.

이제는 전략을 짤 차례였다.

“잠룡대 일조가 함께 움직이면, 사실 당추를 잡기는 곤란해.”

연하민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흩어놔야겠네.”

백리평의 말에 다들 동의한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각개격파로 가야겠어. 그게 차후 남궁지후를 상대하는 데도 유리하고.”

연하민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었다.

목표와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들 알게 되었다. 이 중 전략전술에 관해 가장 뛰어난 이는 그녀였다.

오히려 다른 네 사람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연하민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연하민의 입이 열리자, 네 사람은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

이른 아침임에도 햇살이 따갑다.

아직 한여름이 오려면 제법 시일이 남았으나, 하루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인 탓일까.

얼굴을 두드리는 햇볕은 제법 뜨거웠다.

목란산 초입.

수많은 교룡관 생도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하지(夏至).

하투제의 날이 밝았다.

전날 인근 마을의 객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하투제가 벌어질 목란산 초입에 모인 생도들의 얼굴에는 가벼운 긴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교룡관주 팽도율은 흐뭇한 얼굴로 그런 생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군. 난 늘 하투제 시작 전의 이 긴장된 분위기가 좋아. 올해는 또 어떤 원석들이 튀어나올까 하는 기대감에 말이지.”

팽도율의 말에 와룡대주 상경문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사실 전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비무대회를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저 동투제와 같은 방식이 더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런 방식은 시간과 인력의 소모가 너무 큰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앞으로 정천맹의 동량이 될 아이들이네. 저런 유격전의 경험이 그들의 성장을 위해 한층 좋은 밑거름이 될 거야.”

팽도율은 상경문의 부정적인 말에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력이 아닌, 운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런 방식의 비무대회는 사실 불합리하다는 게 제 사견입니다.”

그러나 상경문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자네. 지난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고 했던가?”

팽도율의 물음에 상경문의 눈썹이 꿈틀했다. 뇌정루 최후의 결사대 중 일인으로 그가 폐관 수련을 마치고 나왔을 때는 이미 전쟁이 끝난 후였다.

그랬기에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역린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꺼낸 이가 교룡관주였기에 차마 분노를 터트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만은 막지 못했다.

팽도율은 그런 그의 변화를 알았으나,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전쟁이라는 것이 그런 불합리로 승패가 결정 나는 경우가 많다네.”

그리고 팽도율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생도들에게 두었다.

한쪽에 설치된 간이 천막에는 수많은 교관들이 모여 있었다.

하투제의 판정관이 될 이들이다.

각 조에 한 명씩의 교관이 늘 함께 움직인다. 그리고 상대를 만나 비무가 벌어질 때, 두 사람의 교관이 개개인의 전투 불능을 판정하고, 결국 승리와 패배까지 판정하게 되는 것이다.

해당 조의 담당 교관은 함께 움직이며, 모든 전투를 지켜볼 수 있다.

단 개입은 불가능하다.

전음 등의 방법으로 부정하게 개입할 경우 적발 즉시 패배가 된다.

판정관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기에 잠룡대와 와룡대 사 년 차 생도 담당 교관들이 차출되어 왔다.

덕분에 사 년 차 생도들은 하투제 직전에 모든 교육이 끝나고 하계 휴관기에 들어간다.

사실 2, 3, 4년 차 생도들 역시 하계 휴관기에 들어간 상태다.

오직 일 년 차 생도들만이 하투제를 치름으로 교룡관에서의 첫 학기의 성과를 겨루는 것이다.

때문에 하투제에 참가하지 않는 조들도 모두 이곳에 모여 있었다.

맹룡대 역시 마찬가지.

맹룡대 생도들은 자신들과는 상관없다는 듯, 지루한 얼굴로 그저 주변을 살피며 있을 뿐이다.

오직 칠조만이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칠 조 생도들은 하무백이 미리 챙겨둔 깔끔한 맹룡대 무복을 입은 상태다.

전날 계곡에서 적당히 씻고, 적절한 휴식을 취한 덕에 꾀죄죄하던 몰골도 사라지고, 눈밑의 그림자도 많이 옅어졌다.

붉게 충혈되어 있던 눈도 정상에 가깝게 돌아온 상태다.

몸 상태는 최상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전투 직전에 딱 알맞게 적당히 예열된 상태였다.

칠조의 시선이 머무는 곳.

그곳에는 잠룡대 일조가 있었다.

당추는 그런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같잖을 뿐이다.

“잡것들이. 주제도 모르고.”

“당추. 조용히 있자.”

남궁지후의 말에 당추는 곧 입을 닫았다. 다만 마음에 안 든다는 시선을 맹룡대 칠조를 향해 보내고 있었다.

시간이 되자, 팽도율이 미리 준비해둔 간이 단상에 올랐다.

“오늘은 교룡관 일 년 차 생도들의 첫 학기를 집대성하는 날이다. 마지막 생존조가 남을 때까지, 치열한 전투가 계속될 것이다. 규칙은 미리 숙지한 바 그대로다. 모든 생도들의 건투를 빈다. 이상.”

짧은 연설을 마친 팽도율이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 뒤를 이어 단상에 오른 이는 잠룡대주 능우담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하투제를 시작한다. 전원 판정관과 함께 목란산으로 진입한다. 전투 시작 시간은 지금부터 한 시진 후다. 가라!”

능우담의 외침이 끝나자 생도들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판정관들은 자신이 담당한 조의 곁에 자리했다.

맹룡대 칠조에도 판정관이 붙었다. 와룡대 소속의 교관이었다. 그는 하무백을 힐끔 보았다.

“같이 움직일 건가?”

“그럴 예정이오.”

“규칙은 알고 있겠지?”

판정관의 물음에 하무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출발하지.”

그의 말에 백리평이 앞장섰다. 다섯 사람은 곧장 목란산을 향해 치달렸다.

그 뒤를 판정관과 하무백이 따랐다.

백리평은 침착한 눈으로 앞에서 움직이는 이들을 살폈다.

그들의 목표는 정해져 있었다.

잠룡대 일조.

그중에서도 당추. 그놈이 최우선 순위였다.

그들의 움직임을 잘 살폈다.

가장 먼저 그들과 맞붙기 위해서는 그들의 위치를 파악해야 했으니.

자신감의 발로일까.

잠룡대 일조는 천천히 움직였다.

***

당추는 힐끔 뒤를 돌아보다가 당진산과 눈이 마주쳤다.

인상을 쓰는 당추.

“남궁지후. 꼬리가 붙었는데?”

“꼬리?”

앞장서 움직이던 남궁지후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수많은 조들이 각자의 길을 가는 가운데, 유독 자신들의 경로를 뒤따라오는 이들이 눈에 보였다.

“맹룡대 칠조인가?”

남궁지후가 담담히 중얼거렸다.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로군.”

당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남궁지후도 아무 말이 없었다.

“무슨 생각일까? 당추 한 명도 감당을 못하는 실력인데?”

남궁지유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누나의 말에 남궁지후도 그저 고개를 저었다.

고작 두 달도 되지 않은 일이다.

당추의 시비에, 싸움이 붙어 그에게 처참하게 박살 나지 않았던가.

그때의 원한 때문에 자신들을 뒤따른다 해도 또 같은 전철을 밟을 뿐일 텐데.

맹룡대의 실력이란 것이 뻔하지 않던가.

“신경 쓸 이유는 없잖아. 어차피 당추 혼자서 모두 정리가 가능할 수준인데.”

영호준이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청우자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의견에 힘을 보탰다.

“그런데 활에 방패라니, 웃기지 않아? 저런다고 제깟 것들이 무슨 수가 날까.”

당추가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멀지 않았기에 맹룡대 칠 조의 무장이 모두 보인 것이다.

무인답지 않은 무장이었다.

병사나 엽사에 어울리는 병기들이다.

그에 반해 잠룡대 일조의 무장은 단출했다. 모두 가검을 한 자루씩 들었을 뿐이다.

당추는 스무 자루의 날이 없는 비검을 장비했다.

암기 대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들이다. 하투제에서 암기만큼은 금지되었기에 선택한 병기였다.

하무백은 그 대화를 모조리 듣고 있었다.

‘좋군. 방심은 우리 애들에게 아주 좋은 우군이지.’

슬며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맺혔다.

판정관은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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