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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29화 (29/312)

29화. 늦지 않았어

“큭.”

남궁지후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백리평과의 대결에 집중하고 있었다지만, 자신이 기척을 놓치다니.

남궁지후는 백리평의 허리를 노리고 찔러가던 검을 거두고는 재빨리 몸을 훌쩍 날렸다.

팍. 팍.

촉이 없는 화살은 땅에 튕겨 볼품없이 나동그라졌다.

백리평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곧장 따라붙었다.

“윽.”

재빨리 검로를 바꿔 백리평의 검을 막은 남궁지후.

곧이어 연하민과 단목운뢰가 나타나 합공을 펼쳤다.

화살을 쏘았던 두 사람이다.

남궁지후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삼 대 일의 대결.

수적으로 불리했지만, 남궁지후는 그들과 대등하게 싸웠다.

잠깐 당황했던 초반만 조금 밀렸을 뿐이다.

그럼에도 남궁지후의 표정은 심각했다.

아직 두 사람이 더 있었다. 그런데 고작 세 사람을 상대로 자신이 평수라니.

언제든 다섯 모두를 상대할 자신이 있었는데.

‘그동안 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당혹스러웠다.

담룡각 앞에서 당추 하나 감당하지 못해 형편없이 나동그라지던 맹룡대 칠조가 아니었다.

이를 악문 남궁지후는 모든 내공을 끌어올렸다. 온몸에 힘이 차올랐다.

그 내공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창궁무애검.

웅혼함과 패도적인 기운을 모두 머금은 검이 세 사람을 쓸어갔다.

‘속전속결.’

남은 두 사람이 합류하기 전 빨리 승부를 내야 했다.

남궁지후의 검은 연하민의 방패를 노리고 날아갔다. 저 거추장스러운 방패를 먼저 정리해야 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저 방패에 막혔던가.

검기를 잔뜩 머금은 검이 연하민의 방패에 부딪히려는 찰나.

단목운뢰의 검이 남궁지후의 다리를 쓸어왔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이들의 합격은 마치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물려 움직였다.

“타핫!”

몇 번의 경험으로 이미 예상했던 바, 남궁지후는 몸을 휘돌리며 단목운뢰를 향해 각법을 펼쳤다.

검격을 피하는 동시에 공격이 되는 절묘한 수였다. 그러면서 연하민을 노린 검격 역시 거두지 않았다.

단목운뢰와의 거리를 벌린 후 검격은 계속 뻗어갔다.

연하민이 방패를 들어 검격을 막으려 했다.

상관없었다. 애초에 목표는 방패가 아니던가.

콰직!

검기를 머금은 검까지 나무 방패가 막을 수는 없었다.

아니 방패의 강도를 넘어선 검격이었다.

현재 교룡관 생도들 중 이 정도의 검기를 사용할 수 있는 이는 많아야 두 명 정도일까?

그중 하나가 바로 남궁지후였다.

방패를 깨부순 검은 그대로 연하민의 몸통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입술을 질끈 깨문 연하민이 검을 들어 자신을 향한 공격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과연 막을 수 있을까?

그런 불안이 그녀의 두 눈에 어렸다.

그 순간 남궁지후는 옆구리에서 섬칫한 느낌을 받았다.

어느새 몸을 날린 백리평의 검이 남궁지후의 옆구리를 노리고 찔러 오고 있었다.

이대로 연하민을 공격한다면, 그녀를 탈락시킬 수 있겠지만 자신 또한 탈락이다.

“쯧.”

아쉬움에 혀를 찬 남궁지후는 재빨리 보법을 밟아 백리평의 검을 피함과 동시에 상대와 거리를 벌렸다.

“후우.”

한숨을 내쉰 백리평이 남궁지후의 앞을 막아서고, 단목운뢰와 연하민이 좌우에 섰다.

삼인진.

그럭저럭 남궁지후를 상대하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당장 연하민이 방패를 잃지 않았나. 그 말은 곧 자신들의 방어력이 그만큼 떨어졌다는 의미였다.

“정말 괴물이네…….”

백리평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진심이었다.

교룡관 생도 수준에서 삼 대 일의 합공을 이렇게 버티고 조금씩 유리하게 만들어갈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아.”

호흡을 고르는 남궁지후 역시 낭패한 심정은 마찬가지였다.

뒤를 생각지 않고 전력을 다하고 있었는데, 압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조금씩 우세해질 뿐.

어쩌면.

문득 든 생각을 애써 떨쳐 내며 다시 한번 기수식을 취하는 남궁지후.

그런 그의 감각에 새로운 기척 둘이 잡혔다.

전력을 다하고 있었기에 아까처럼 기척을 놓치는 일은 없었다.

그의 얼굴이 다시 한번 일그러졌다.

익숙한 기척이 아니었다.

그 말은 맹룡대 칠조의 남은 둘이거나, 다른 조의 사람이라는 뜻.

‘아니, 맹룡대 칠 조겠지.’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이는 남궁지후의 예상대로 당진산과 낙우진이었다.

“다행이군. 늦지 않았어.”

세 사람이 여전히 남궁지후와 대치 중인 상황을 확인한 당진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남궁지유의 고운 아미가 찌푸러 들었다.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탓이다.

비가영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런 남궁지유를 지켜보았다.

과연 이런 상황을 어찌 해쳐나갈 것인가.

이제 겨우 교룡관에서 첫해, 그것도 전반기를 보낸 생도다.

이런 상황에 대한 교육을 받았을 리 없었다.

‘아니, 애초에 잠룡대나 와룡대의 교육 과정에 이런 상황은 없지.’

비가영은 살짝 쓴웃음을 머금었다.

지금 상황은 그야말로, 진짜 실전에서나 겪을 법한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잠룡대와 와룡대의 교육 과정 중 이런 상황에 대한 것은 없었다.

남궁지유는 찬찬히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가 왔던 길을 돌아가서 다시 살피기도 했다.

마지막 흔적이 남아 있던 곳.

선명한 족적.

남궁지유는 그것들을 유심히 살폈다. 발자국의 깊이, 보폭, 그리고 방향까지.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는 마지막 족적에서 주변을 살폈다.

“이 정도 보폭에서 흔적 없이 움직일 수 있는 곳은…….”

마침 흙바닥 위로 드러난 작은 돌멩이가 보였다. 남아있는 족적의 보폭에 비해 두 배 정도 거리였다.

이 정도쯤은 능히 움직일 수 있으리라.

그곳에서 다시 주변을 살폈다. 일정한 반경을 샅샅이 살핀 끝에 수상한 곳을 발견했다.

다른 곳에 비해 너무 깔끔했다.

“아마도 이게 흔적을 지운 흔적이겠지?”

비가영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배우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상황을 타개해 나가고 있었다.

다만.

‘너무 느려.’

점점 흔적을 찾아내는 데 익숙해진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느렸다.

대강 십 장(약 30미터) 정도의 거리를 움직이는데 이 각(약 30분)의 시간이 소모되었다.

비가연의 예상보다 빨랐지만, 그럼에도 느리다는 것은 변함없었다.

그 자리에 멈춰선 남궁지유가 인상을 썼다. 그녀도 자신이 너무 느리게 쫓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계속 추적하느냐, 돌아가느냐…….’

선택의 기로였다.

그 자리에 멈춰선 남궁지유는 생각에 잠겼다. 상대가 왜 이런 전술을 펼치고 있는지부터 상대의 입장이 되어 천천히 복기했다.

“아무래도 이건 각개격파를 위해 우리를 흩어 놓은 것 같은데…….”

그렇다면 자신만 이런 꼴을 겪고 있지 않을 것이다. 다른 네 사람 역시 자신과 같은 상황일 터.

뿔뿔이 흩어지게 해놓고 다섯이서 한 명씩을 상대하려 할 테지.

오 대 일의 싸움.

지난 담룡각 때와 같다면 위협이 될 것은 전혀 없었다. 다만, 자신이 그들의 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이 걸렸다.

분명 그사이 발전이 있었다는 의미다.

“아무리 그래도 지후는 못 당할 텐데…….”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남궁지유는 결정을 내렸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로.

어디인지도 모를 산속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맹룡대 칠조의 합공을 당하는 것보다는 출발지로 돌아가 다른 조원들과 합류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 같았다.

‘다른 이들도 나와 같은 결정을 해야겠지만.’

남궁지유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추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가영은 그 일련의 행동을 모두 지켜보고는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하군.’

맹룡대가 유인을 위해 남긴 족적이, 반대로 원래의 장소로 돌아갈 수 있는 이정표이기도 했다.

이정표가 있는 상황에서 현 상황에서 흥분해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길을 잃는 것은 바보짓이다.

이럴 때는 출발한 곳으로 돌아가 일행과 합류하는 쪽이 현명한 대처였다.

적어도 비가영은 그리 생각했다.

남궁지유 역시 그리 생각했는지 길을 돌아갔다.

결정을 내린 순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영호준과 청우자 역시 같은 결정을 내리고 원래의 장소로 향했다.

이 각이 훨씬 지난 시간이었지만, 상대를 놓쳤으니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당추는 달랐다.

“이익. 당진산! 어디로 숨었냐!!! 비겁하게 도망만 다니지 말고 어서 모습을 보여라! 결판을 내자!”

산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르며 마구잡이로 달리고 있었다.

족적을 쫓다가, 그 족적이 사라지자 그저 곧장 달렸다. 힘이 빠져 족적이 사라진 거라 여긴 탓이다.

거기에는 연하민의 계략이 숨어 있었다.

다른 셋과 다르게 당진산에게는 점차 족적이 희미해지도록 힘을 조절하며 달리라 한 탓이다.

깊숙이 찍혀 있던 족적이 갑자기 사라졌기에 남궁지유와 영호준, 청우자는 이상함을 느꼈다.

당추의 경우는 점차 희미해지던 족적이 이윽고 사라졌기에, 단순히 당진산이 힘이 빠졌다 여긴 것이다.

경공이라면 오히려 족적이 깊게 찍히는 것이 힘이 빠진 것이거늘.

당추는 당진산이 제대로 된 경공을 익히지 못한 것을 알았기에, 오히려 족적이 희미해지는 것으로 그가 힘이 빠진 것이라 여긴 것이다.

당추가 당진산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을 역이용한 계략이었다.

덕분에 당추는 어딘지 모를 산속에서 홀로 악만 쏟아내고 있었다.

남궁지후와 당추, 그리고 남궁지유, 영호준, 청우자.

이렇게 삼등분을 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여기까지가 연하민의 일차적인 계략이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남궁지후를 탈락시켜야 했다.

***

맹룡대 칠조 다섯 명이 모두 모였다.

백리평을 중심으로 좌우로 넓게 벌려 선 다섯 명.

“오 대 일이라니. 비겁하다는 생각은 안 드나?”

검을 늘어뜨린 남궁지후가 백리평을 바라보며 물었다.

“일대일 비무를 펼치는 동투제면 몰라도, 하투제에서 그런 말이라니 우습군. 다대다의 전투에서.”

백리평이 담담히 답했다.

남궁지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그래도 한 번에 다섯을 상대하려니 이거 아무래도 힘에 부칠 거 같아서.”

“우리도 남궁세가의 소공자를 상대로 얼마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

백리평과 남궁지후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혀들었다.

“전쟁에서는 적을 쓰러트리고, 이기는 것이 곧 정의다. 현재 우리의 적은 너고.”

그 말을 끝으로 백리평은 검과 방패를 들어 기수식을 취했다.

다른 네 사람도 곧 기수식을 피하고 각자의 방위로 움직였다.

남궁지후는 쓴웃음을 지으며 검을 곧추세웠다.

이기는 것이 곧 정의라니.

그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

달리 말하면 힘을 가진 자의 뜻이 곧 정의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음이니.

“누가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무척이나 위험한 발상이군. 종남의 제자가 할 말은 아니야.”

남궁지후의 검극이 백리평을 향했다. 백리평의 눈에 흔들림 따위는 없었다.

“너무 확대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난 전쟁이라는 단서를 달았어.”

정확히는 하무백의 말이었다.

아군과 적군으로 나뉘는 전장에서는 아군이 선이요, 적군이 악이다.

그런 이분법적이고 불합리한 사고가 지배하는 것이 전쟁이었다.

그랬기에 하무백은 전쟁이라는 것을 지독히 혐오했다.

“흐음.”

철기방의 묵해진은 흥미가 가득한 얼굴로 눈앞의 대치를 바라보았다.

참으로 절묘했다.

기어코 잠룡대 일조를 흩어놓고 남궁지후 한 사람을 다섯이서 상대하는 형국을 만들어 냈으니.

힐끔 하무백을 쳐다보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담담한 얼굴로 맹룡대 칠조와 남궁지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손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맹룡대의 저리 달라진 모습을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아무리 목란산에서 특훈을 했다지만, 저런 극적인 변화라니.

‘대체 정체가 뭐지?’

묵해진의 생각은 하무백에 대한 의문으로까지 이어졌다.

적어도 저 교관은 유격전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고 있는 것 같았으니.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데, 어디서 그런 전장을 겪었을까.

설마 지난 전쟁?

머리에 문득 떠오른 생각을 묵해진은 애써 지웠다.

그 전쟁의 경험자가 고작 맹룡대의 교관 따위를 하고 있을 리는 없다는, 그런 묵해진만의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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