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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30화 (30/312)

30화. 인정하나?

남궁지후는 자신을 향해 곧게 뻗은 검을 바라보았다.

언제든 출수할 수 있게 준비하고 있는 상대.

백리평.

그리고 그 주위에 있는 맹룡대 칠조.

거슬렸다.

정말로 거슬렸다.

이런 느낌이 얼마 만인가. 설마 대남궁세가의 소공자인 자신이 고작 어중이떠중이가 모인 맹룡대를 상대로 이런 느낌이라니.

‘상대가 누구든 선입견은 위험하다.’

이미 삼 대 일의 대결에서 저들의 실력을 겪었기에, 남궁지후는 사용할 수 있는 내공을 전부 끌어올렸다.

그의 몸에서 투기(鬪氣)가 넘실거렸다.

과연 저들이 이런 투기를 겪어본 적이 있을까?

남궁지후는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창궁무애검의 가장 강력한 초식을 펼쳤다.

처음부터 가장 강력한 일격으로 저들을 박살을 낸다. 그런 각오였다.

웅혼함과 패기(覇氣), 거기에 더해 사나운 투기까지.

어느 한 명을 노린 것이 아니다.

다섯을 전부 일검에 쓸어버리겠다는 검격.

가장 먼저 튀어 나간 것은 낙우진이었다. 정면에서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이 그의 역할.

가진 바 모든 내공을 방패에 싣고, 온 몸의 힘을 쏟아 검격에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단목운뢰와 연하민이 움직였다.

전장을 전부 휘몰아치는 듯한 검격이지만, 그 둘은 낙우진이 검격의 진행을 막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반격하기 위해 두 사람은 남궁지후의 좌우 옆구리를 노리며 움직였다.

당진산은 낙우진의 뒤를 따랐다.

그가 완벽히 검격을 막아낸다면 곧장 반격을, 그렇지 않다면 방어를 도울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백리평이 내공을 잔뜩 끌어올리고 있었다.

일격이다.

온몸이 따끔거리는 상대의 기세를 보는 순간 알았다.

저 일격으로 자신들을 압도하면, 그 여세를 몰아 모든 것을 박살 내리라.

반면, 자신들이 저 일격을 막아내면 박살이 나는 것은 남궁지후다.

그랬기에 백리평은 동료들을 믿고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삼재검의 최고 초식을 전력을 다해 준비하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상대의 모습에 남궁지후의 표정이 변했다.

전력을 다한 일격이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면 더욱 기세를 올릴 수밖에.

이제는 투기의 수준을 넘어서 살기가 넘실거리는 검.

과연 맹룡대 일 년차 생도가 이런 상대를 맞이한 경험이 있을까?

자신을 덮치는 무시무시한 기운에 낙우진의 등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그러나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살기가 온 몸을 덮치는 경험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가능 한 일이다.

흑표!

그 빌어먹을 짐승.

놈이 줄기줄기 흘리던 그 소름끼치던 살기.

그 놈의 그 섬뜩한 숨결.

낙우진은 그것을 바로 눈앞에서 겪지 않았던가.

지금 남궁지후가 내뿜는 투기와 살기는 흑표의 그것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다.

그랬기에, 낙우진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쾅!

커다란 소리가 울리며 낙우진의 몸이 휘청 뒤로 밀리려는 순간.

등을 받쳐 추는 든든한 힘을 느꼈다.

당진산이었다.

당진산은 남궁지후의 검이 낙우진의 방패에 부딪히는 순간, 공격을 포기하고 낙우진을 돕는 것을 택했다.

그 덕에 남궁지후의 검의 흐름이 끊겼다.

단목운뢰와 연하민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두 사람의 검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쳤다.

이미 낙우진의 방패에 막혀 기세가 죽어버린 검. 이번 일격은 실패했고, 그 결과 상대의 반격이 날아들었다.

남궁지후는 어쩔 수 없이 검을 돌려 단목운뢰와 연하민의 검을 쳐내려 했다.

쾌검 못지 않은 신속함이었으나, 그 빠른 변화 사이에 생긴 아주 미세한 틈.

백리평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전력을 다한 찌르기.

천지인 삼재 중 천의 초식이다.

빈틈을 정확히 파고든 찌르기에 남궁지후는 당황했다.

자신의 좌우측을 파고드는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야 했기에 미처 거기까지 대비할 겨를이 없었다.

완벽한 패착이었다.

“빌어먹을…….”

욕설을 내뱉고는, 이를 악문 남궁지후는 검을 거칠게 떨쳤다.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단번에 단목운뢰와 연하민의 공격을 쳐냈다. 검에 실린 힘에 두 사람은 뒤로 나동그라졌다.

온 몸의 힘을 다해 저항을 했음에도 그랬다.

대신, 그 덕에 남궁지후의 몸이 열렸다.

완벽한 허점.

그곳을 향해 백리평의 검이 날아가고 있었다.

모두의 얼굴에 희열이 떠올랐다.

됐다!

이 순간 맹룡대 칠 조 다섯 명의 표정은 모두 같았으리라.

그 모습에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하무백이 인상을 찡그렸다.

‘너무 이르다. 이 멍청한 녀석들. 실전에서는 그러다가 죽는 수가 있다.’

승리할 것이라는 희열이 준 찰나의 멈칫거림.

남궁지후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빛살보다 빠르게 검을 움직였고, 어마어마한 기세를 뿌리며 백리평의 일격을 향해 날아갔다.

콰앙!

검기를 잔뜩 머금은 남궁지후의 검이 일순 희미하게 빛나는 듯 보이는 순간, 백리평의 검과 부딪혔고, 커다란 소리가 터져나왔다.

“크윽…….”

엄청난 힘에 백리평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뒤로 튕겨나갔다.

검은 검병만 남아 있을 뿐이다.

박살난 검편이 사방으로 날아갔고, 백리평은 자신의 검 조각에 작은 상처도 입었다.

제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남궁지후.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울컥.”

순간 피를 토했다. 검게 변한 선혈이다.

심각한 내상을 입은 것이다.

오연한 시선으로 장내를 바라보던 남궁지후는 각혈과 동시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자신이 펼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창궁무애검의 초식을 펼쳤고, 지금 모습이 그 대가였다.

“빌어먹을…….”

다시 한번 흘러나오는 욕설.

“이런.”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묵해진이 몸을 날렸다.

“잠깐 중지!”

그의 외침에 모두들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었다. 판정관의 지시를 무시하고 움직이면 그 즉시 탈락이었다.

가장 먼저 남궁지후에게 다가가 그를 살피던 묵해진이 고개를 저었다.

“인정하나?”

묵해진의 물음에 남궁지후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의 두 눈은 여전히 투지로 불타고 있었다.

묵해진은 그런 남궁지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시 후, 남궁지후가 고개를 떨궜다.

그도 알고 있었다. 더 이상 하투제를 진행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내상을 입었음을.

다만 인정할 수 없었을 뿐이다.

고작 맹룡대에게 이렇게 당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묵해진이 고개를 들어 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이미 하무백이 가 있는 상태였다.

“대체 왜 그런 거야?”

연하민이 복잡한 얼굴로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낙우진은 바라보았다.

그의 허벅지는 피로 물들어 있었다.

남궁지후가 박살을 낸 백리평의 검.

조각난 검편이 사방으로 비산할 때, 백리평은 피했고, 다른 이들은 방패로 막아냈다.

너무 갑작스러웠기에, 아니 승리했다는 방심이 반응을 늦췄기에 방패로 겨우겨우 막아낸 것이다.

문제는 연하민이었다.

방패가 없었으니.

그 모습을 발견한 낙우진이 자신의 방패를 던져 연하민에게로 날아가던 검편을 쳐냈다.

대신 그의 허벅지에 제법 큰 검편 하나가 깊숙이 박혔다.

“난 없어도 전력이 조금 주는 정도지만, 네가 탈락하면 우리는 지휘관을 잃는 거야. 그래서 그랬어.”

낙우진이 담담히 말했다.

그의 대답에 연하민은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낙우진의 상세를 살피던 하무백이 몸을 일으켰다.

“운이 좋았다. 치명적인 곳은 절묘하게 피했어. 그냥 근육에 박힌 정도다.”

어느새 주위로 모여든 칠조의 생도들은 그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무백은 그런 생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뿐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묵해진이 다가왔다.

“남궁지후 생도는 탈락입니다. 그리고 낙우진 생도 또한 정상적인 하투제 진행이 어렵다 판단되어, 탈락입니다.”

낙우진은 고개를 떨궜다.

다른 조원들도 고개를 떨궜다.

상대에게 당한 것이 아니라, 검편을 피하지 못해 탈락이라니.

검을 부순 것이 남궁지후이니, 남궁지후에게 당했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억울했다.

“네. 알겠습니다.”

고개를 떨구고 있던 낙우진이 작게 답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조원들을 둘러봤다.

“치명상을 피했다지만,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의 상처야. 내가 같이 있어 봐야 짐만 될 거다. 탈락이 맞아.”

오늘따라 유독 말이 많은 낙우진이었다.

“그럼 응급치료부터 하도록 하지요.”

스며 나오는 피에 붕대가 붉게 물들었다.

그 사이 낙우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치료 과정의 고통 때문이었다.

“흐음. 이제 어쩐다.”

묵해진이 고민이라는 듯 말했다.

남은 이들은 하투제를 계속 진행해야 한다. 탈락자들을 산 초입으로 보내야 하는데, 둘 모두 부상자다.

판정관은 자리를 비울 수 없고, 둘만 내려보내기는 불안했다.

“제가 함께 가도록 하지요. 어차피 탈락자들이니 상관없지요?”

하무백의 말에 묵해진의 안색이 밝아졌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지요.”

묵해진은 혁낭에서 푸른색 띠를 꺼내 두 사람의 어깨에서 허리로 빗겨 맸다.

탈락자라는 표식이었다.

남궁지후는 푸른 띠를 씁쓸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럼 우리는 내려가도록 하지.”

하무백의 말에 몸을 일으킨 낙우진이 쩔뚝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남궁지후 역시 걸음을 옮기는데 휘청거리는 모습이 위태위태했다.

“쯧. 너는 일단 운공을 해서 내상부터 다스려야겠다.”

무슨 고집일까.

남궁지후는 탈락이 결정된 이후에도 내상을 입은 상태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고집스런 눈빛으로 하무백의 말을 거부하려던 남궁지후는, 지그시 자신을 바라보던 교관의 눈빛에 결국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하무백이 묵해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 묵해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 정도는 직접 말하셔도 상관없습니다만. 자리를 비켜줘야 할 것 같군요. 일단 다른 곳으로 이동합시다.”

묵해진은 맹룡대 칠조의 생존자, 네 명을 향해 말했다.

백리평이 검병만 남은 검을 버리고는 낙우진이 떨군 검을 집어 들었다. 연하민은 방패를 집어 들었다.

연하민이 앞장섰고, 네 사람은 곧 사라졌다. 묵해진이 그 뒤를 따랐다.

***

“미안하다.”

백리평이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아무도 그에 답하지 않았다. 그가 무엇이 미안하다는 것인지 다들 알았기 때문이다.

“아니. 우리 모두 잘못한 거야.”

당진산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그래. 그 순간, 너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긴장을 풀어 버렸어. 바보같이…….”

연하민은 자책 어린 얼굴로 말했다.

“그럴 만했지. 남궁지후잖아. 그 남궁지후의 일격을 막아내고 반격하는 것으로 이길 뻔했어. 단 한 번의 격돌로 말이야. 교관님과의 대련 때와 달리 단 한 명의 탈락자도 없이.”

단목운뢰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고소가 맺혔다.

착각이었으니까.

자신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위력을 보여준 남궁지후였다.

물론 그 때문에 내상을 입기는 했지만.

“한 호흡이었어. 딱 그만큼 멈칫한 것뿐인데, 그런 결과라니…….”

백리평은 도무지 자신이 용서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뭐, 그러면서 배우는 거겠지. 아마 교관님도 그리 말씀하실 거야. 그러니까 반성은 여기까지만 하자. 아직 하투제는 끝나지 않았어. 우리들의 복수도 마찬가지고.”

당진산이 백리평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복수라는 단어에 이들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다음은?”

단목운뢰가 연하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연히 당추야.”

그 대답에 당진산이 앞장섰다. 자신이 그를 유인해 떨어트려 놓은 곳으로 향했다.

“다들 은밀히 움직여. 흔적을 남기지 말고. 당추라면 그곳에 가만히 있거나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을 거야. 그 흔적을 쫓으면서 포위한다.”

연하민의 지시에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심? 자만?

그런 것은 한 번이면 족했다.

당추야말로 진짜 복수의 대상이었다. 이제 그때의 비참한 굴욕에 대한 설욕이 시작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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