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31화 (31/312)

31화. 그것 보십시오

남궁지후는 꼬박 반 시진을 운공요상에 빠져 있었다.

혈색이 어느 정도 돌아온 후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움직임에 힘은 없었으나, 혼자서 산길을 걸어 내려갈 정도는 되었다.

낙우진 역시 통증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한 것인지, 절뚝거렸으나 부축 없이 홀로 걸음을 옮겼다.

하무백이 앞장섰고, 두 사람이 뒤를 따랐다.

두 사람 모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남궁지후는 복잡한 눈으로 하무백의 등을 바라보았다.

‘저 교관 때문이겠지?’

맹룡대 칠조.

입관할 때는 여느 맹룡대와 다를 게 없었다. 출신이 특이한 이가 두 사람(당가와 종남파) 있다고는 하나, 그 수준이 대단할 것이 없었다.

당추가 시비를 걸었던, 담룡각에서 충분히 확인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토록 짧은 시간에 이렇게 변모하다니.

맹룡대의 다른 조와 다른 것이라면, 결국은 교관이다.

저 교관이 맹룡대 칠조를 이렇게 바꿔놓은 것이다. 대체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그런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때, 하무백이 길을 꺾었다.

멀쩡한 오솔길을 놔두고 험한 길로 들어선 것이다. 아무리 이곳의 길을 모른다지만 적어도 이쪽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쪽 길이 아닌 듯합니다만?”

낙우진은 별말 없이 뒤를 따랐으나, 남궁지후는 멈춰서 물었다.

그 물음에 하무백이 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산 초입까지 가는 동안 아무도 마주치지 않는 것이 좋지 않나?”

그 물음에 남궁지후는 입술을 달싹일 뿐,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심정을 잘 읽고 있는 물음인 탓이다.

아직 하투제가 시작한 극 초반이다.

교룡관 일 년 차 생도 중 최강이라고 평가받는 자신이, 이런 초반에 탈락이라니.

어차피 알려질 일이라지만, 하산 하는 중에 다른 생도들을 만나 하투제 중간에 소문이 퍼지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단순했다.

쪽팔리니까.

“…그렇습니다.”

결국 남궁지후는 억지로 대답했다.

“저 길 따라 내려가면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다. 아마 곧 두 조가 마주칠 거 같네.”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는 다시 걸음을 때려는 하무백.

그 말에 남궁지후는 두 눈을 부릅떴다.

자신의 감각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탓이다.

교관이라면 자신보다 감각과 기감의 범위가 넓을 수는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대체 얼마나 그 범위가 넓다는 것인가.

적어도 육안으로 보이는 길에는 아무런 낌새도 없었다.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곳만 하더라도, 이미 남궁지후의 감각의 범위는 한참 넘어선 상태다.

‘정말로 저 교관의 정체는 뭐지?’

혼란스러운 얼굴로 하무백의 등을 바라보며 움직이는 남궁지후.

‘한 번 알아봐야겠어.’

그렇게 다짐하며 걸음을 옮겼다.

***

“아악! 이 빌어먹을 새끼야! 대체 어디에 숨은 거냐!!!”

당추의 발악이 나무 사이로 울려 퍼졌다.

악에 찬 그의 외침은 잠시 후 그에게로 돌아올 뿐이다.

완벽하게 길을 잃었다.

이제는 처음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당추는 멈췄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움직였으나, 방법이 없었다.

방심했다.

당가가 있는 사천성.

달리 서촉이라고도 불렸던 땅은 험준한 산들로 악명을 떨치기도 하는 곳이다.

당추는 그런 곳 출신이었다.

그랬기에, 목란산을 우습게 봤다.

그러나 목란산도 작지 않은 산이었고, 산길을 읽을 줄 모르는 당추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의 출신이 사천이면 무엇하랴, 그는 그곳의 험준한 산에서 생활했던 것이 아니거늘.

오히려 번화한 성도의 밖을 나가본 적이 없었다.

스스로를 몰랐던 탓이다.

“예상은 했지만, 그것보다 더 심한 상태네.”

당진산의 뒤를 따라 당추를 떨어뜨려 놓은 곳 근처에 도착한 연하민이 말했다.

당진산에게 들은 당추의 성격을 기반으로 만든 계략이었다.

헌데 당진산도 당추를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한 듯했다. 지금 그가 발악하는 것을 보면 자신들이 예상한 것보다 상태가 훨씬 안 좋았으니까.

물론 맹룡대 칠 조에게는 좋은 상황이다.

“그렇게 멀리 가지도 못했어.”

흔적을 한참 추적해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왔던 당진산이 말했다.

당추가 제 딴에는 이곳을 벗어나 당진산을 쫓겠다고 다닌 모양이지만, 깊은 산속 길도 없는 곳에서 계속해서 일정한 지역만 빙글빙글 돌고 있었던 것이다.

당추의 모습이 대강이나마 보일만 한 곳까지 접근한 네 사람.

그냥 봐도 상당히 지쳐 보였다.

심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생각보다 쉬울지도 모르겠어.”

백리평이 말했다.

남궁지후와의 일전은 이들 네 사람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물론 한순간의 방심으로 낭패한 순간을 겪기도 했지만, 그 경험은 이들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 말에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세 사람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당진산.

그였다.

당추와의 해묵은 악연의 한 자락을 끊어낼 기회였으니.

사실 당추의 일방적인 시비로 이루어진 관계였으나, 당진산에게는 정리해야 할 일 중 하나이기도 했다.

맹룡대에 들어와 하무백을 만나며, 새로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었으니.

묵해진은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이들이 질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네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며 눈빛으로 뜻을 모았다.

매복이나 기습 따위는 필요 없을 듯했다.

방심이 아니다.

이건 당추에게 지난날 당했던 것에 대한 설욕이었음이니, 그때 그에게 당했던 굴욕을 그 이상으로 돌려주기 위함이다.

저벅.

발소리와 함께 네 사람은 당추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쥐새끼처럼 숨지 말고 어서 나오라……. 응?”

한 번 더 악다구니를 쓰려다가 네 사람을 발견한 당추.

붉게 변한 그의 시선이 맹룡대 칠 조 넷을 일일이 훑었다.

“크크크. 쥐새끼처럼 어디로 숨었나 했더니 동료를 부르러 간 거였나? 그런데 그 와중에 하나는 어디에 가고 넷뿐이지? 뭐, 상관없나. 어차피 여기서 전부 나한테 뒈질테니?”

그러면서 주변을 살피는 당추.

그의 시선에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판정관 묵해진이 들어왔다.

“쳇.”

그리고는 무엇이 아쉬운지 혀를 차는 당추.

그런 그의 모습에 묵해진은 실소가 흘러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판정관은 철저히 중립을 지켜야 했기에.

당진산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검과 방패를 든 채로.

“응? 뭐지? 진산 네가 혼자 날 상대하겠다고?”

어느새 채찍을 풀어든 당추가 재미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의 왼손에는 날이 없는 단검이 하나 들려 있었다.

“지난번 담룡각에서의 일은 벌써 잊은 건가? 머리가 나쁜 줄은 알았지만, 그것마저 잊어버릴 줄은 몰랐군. 크.”

비웃음을 한껏 머금은 얼굴이다.

당진산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 얼굴을 마주했다. 다른 세 사람은 뒤로 물러났다.

그 행동에 당추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했다. 저들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당추 자신과, 당진산의 일대일 대결.

같잖은 수작이다.

***

탈락자가 발생했다는 신호탄이 목란산의 하늘에서 터졌다.

묵해진이 터트린 것으로, 오늘 첫 번째 신호탄이었다.

“저 신호탄의 교관이 담당한 조가 어디지?”

팽도율이 물었다.

능우담이 책자를 살피더니 답했다.

“묵해진 교관이로군요. 맹룡대 칠조의 판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킥.”

그 말에 상경문이 웃음을 흘렸다.

팽도율이 인상을 쓰며 그를 바라보았다.

“관주님. 그것 보십시오. 역시나 쓰레기들에게서 최초의 탈락자가 나왔습니다. 이런 규칙의 비무대회 따위는 그저 요식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운의 작용이 큰 하투제인데도, 그 쓰레기들에게는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나 보군요. 하투제 첫 번째 탈락자라니.”

하투제 시작 전에 있었던 논쟁에 대해 아직도 앙금이 남았음인가.

상경문의 평가는 신랄했다.

“흐음.”

팽도율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팔짱을 끼었다.

굳이 그 말에 반박하고 싶지 않았다.

맹룡대 칠조의 담당 판정관의 신호였기 때문이다.

그가 아는 하무백이라는 인간이라면, 이렇게 허무하게 탈락자가 나오도록 두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지난 전쟁에서 그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묵해진이 터트린 것이라고 꼭 맹룡대의 탈락자라는 법은 없었다.

그 상대가 탈락해도, 그 비무를 판정한 것이 묵해진이라면 그의 신호탄이 터지니까.

그래서 팽도율은 잠자코 있었다.

잠시 후, 탈락자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자연히 알게 될 테니.

상경문은 그런 팽도율의 속내도 모른 채, 마냥 의기양양한 얼굴로 앉아서는 팽도율을 힐끔거렸다.

그것 보시오, 관주. 내가 맞지 않았소? 라고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산 초입으로 세 개의 인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탈락자가 내려왔답니다!”

전해진 소식에 팽도율이 몸을 일으켰다. 궁금했다. 과연 맹룡대인지 아닌지.

그래서 직접 확인하려 몸을 일으킨 것이다.

그를 따라 능우담과 상경문이 함께 일어났다.

그렇게 산의 입구로 향한 세 사람.

그들은 막 내려온 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팽도율은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능우담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상경문은,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판단이 되지 않아 입을 반쯤 벌린 채 멍하니 있었다.

하무백의 뒤에 서 있는 남궁지후와 낙우진.

그들은 낙우진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했다.

오로지 남궁지후를 향해 시선이 고정되었다.

남궁지후.

교룡관 일 년 차 생도 중 최강이라 평가받는 생도.

아니, 그라면 당장에 사 년 차 생도를 포함한 교룡관 전체에서 최강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가 최초의 탈락자로 산을 내려왔다.

그것도 내상을 입은 채로 말이다.

하얘진 얼굴과 입가의 핏자국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남궁지후의 상태를 알게 해주었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냐?”

자신에게 배정된 천막으로 남궁지후를 데리고 온 잠룡대주 능우담은, 믿을 수가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남궁지후가 하투제 최초의 탈락자가 된단 말인가.

“싸웠고, 졌습니다. 그뿐입니다.”

남궁지후는 짧게 말했다.

“후우.”

답답한 한숨이 능우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이게 대체…….”

어이가 없는 것은 다른 이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중에는 맹룡대주 모용진호도 있었다.

첫 번째 탈락 판정의 신호탄은 묵해진의 것이었다. 그의 담당은 맹룡대 칠조.

그 말은 맹룡대 칠조와 남궁지후가 붙었고, 남궁지후가 탈락했다는 뜻.

그런 그의 곁에서 교룡관주 팽도율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어떤가? 자네 맹룡대 생도들이 분전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당최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 대답한 모용진호의 시선이 산길로 향했다.

탈락자 둘을 이곳에 데리고 왔던 하무백은 어느새 다시 목란산으로 들어간 후다.

부상을 입은 맹룡대 생도 낙우진에게 수많은 교관들이 따라붙어 어찌된 연유인지 물었다.

능우담이 데리고 간 남궁지후에 비해서, 이쪽이 사실을 다그치기 데 부담이 없던 탓이다.

그런 수많은 다그침과 압박에도 낙우진은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어쨌든 그는 부상자였으니.

그를 돌보는 의원의 성화에 결국 교관들은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무백. 역시 보통 친구가 아니지?”

팽도율의 물음.

그 물음에 답하려는 찰나.

하늘에 세 번째 탈락 신호탄이 올랐다.

이번에도 묵해진의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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