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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32화 (32/312)

32화. 이쯤하지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판정관 님이 계신 이상 내가 손속에 사정을 둘 테니까. 마음 같아서는 아주 철저히 박살을 내고 싶은데 말이지. 아 그래서 네 놈이 감히 나에게 덤비는 건가?”

당추의 오른손에 들린 검은 채찍은 흡사 뱀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당진산은 자신의 간격을 유지하며 무심히 당추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평온한 상대의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이 특히나 무공에 대한 재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오로지 가주의 직계라는 혈통만으로 온갖 혜택을 누렸던 당진산이라면 더욱더.

“감히라고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네 놈이 진짜 미친 것 같구나.”

돌아온 대답에 당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날 무시하는 건 상관없는데, 네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는 하지 말아야지. 내가 무능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네가 그렇게 유능한 것 같지는 않거든.”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당진산의 대꾸.

“이익.”

이를 악문 당추는 곧장 당진산을 향해 왼손을 휘둘렀다.

날이 없는 단검이 곧장 당진산을 향해 날아갔다. 가볍게 방패를 움직이는 것만으로 단검을 막았다.

그 순간 흑사편(黑絲鞭)이 당진산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당진산은 자신을 향해 쇄도하고 있는 당추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 전이라면 채찍을 피하는데 급급해서 뒤로 몸을 날리다가, 당했을 터.

당진산은 분명 바뀌어 있었다.

그 모든 것이 하무백과의 수련 덕이었다.

그것을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당진산 본인이었다.

당추의 흑사편은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땅을 후려쳤고, 당진산의 검은 당추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가고 있었다.

예상외의 반응에 당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왼손으로 다시 한번 단검을 던지고는 몸을 틀었다.

사천당가의 구환현보(九幻玄步)가 당추에게서 펼쳐졌다.

그는 유려하게 몸을 움직여 당진산의 검을 피했다.

서로 교차하며 서로에게 등을 보이고 선 둘.

동시에 몸을 빙그르 돌렸다.

“제법, 한 수가 있다 이건가? 그래서 그렇게 건방지게 입을 놀렸던 건가? 놀랍군. 사천제일둔재가 나의 채찍을 피하다니 말이야.”

당추는 여전히 당진산을 비아냥거렸다.

“사천제일둔재에게 당하면 제법 기분이 좋을 거야.”

당진산의 짧은 대꾸.

그 말에 당추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세상에서 가장 심한 욕을 들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어쩌다 한 번 그럴듯하게 피했다고 아주 제 주제를 모르는구나. 아주 제대로 짓밟아주마.”

당추의 음성에 살기가 실렸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당추는 현란하게 움직였다.

구환현보.

그 이름에 걸맞게 아홉 번의 변화를 보여주는 보법이었다.

당추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지며 당진산을 덮쳐왔다.

흑사편이 영활하게 움직이며 당진산의 다리를 쓸어왔다.

이번에는 앞으로 파고들기 어려운 위치였다.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나며 방패로 채찍을 막았다.

“윽.”

절로 신음이 흘러나오는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언제 던진 것일까?

두 자루의 단검이 당진산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검을 휘둘러 재빨리 쳐냈다 싶은 순간 당추가 당진산의 등 뒤에 나타났다.

“훗. 고작 이 정도도 따라잡지 못하는 꼴에.”

비웃음이 가득한 한 마디.

당추의 왼주먹이 그대로 당진산의 관자놀이를 노리고 날아왔다.

“핫.”

당진산은 재빨리 몸을 굴렸다.

나려타곤(懶驢打滾).

게으른 당나귀가 구르는 모습 같다며 무림인들에게 비웃음을 받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당진산은 그리 움직이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쯧. 역시 주제에 딱 맞군. 나려타곤이라니. 킥킥. 어디 계속 그렇게 건방지게 입을 놀려보지 그러느냐.”

당추는 당진산이 나려타곤을 펼쳤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듯했다.

그러나 정작 나려타곤을 펼친 당진산은 무덤덤한 얼굴이다.

그것을 지켜보는 다른 맹룡대 칠조의 세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럴 수밖에.

하무백과의 대련에서 정말 수도 없이 펼쳤던 나려타곤 아니던가.

나려타곤을 펼치면 피할 수 있는 수를 차마 부끄러워 펼치지 못하고 당할 때, 하무백이 일갈했었다.

“그깟 겉멋 때문에 죽을 거냐!”

그러면서 하무백은 나려타곤을 펼칠 수밖에 없는 공격을 지속했고, 결국 맹룡대 칠조는 나려타곤이라는 수에 대해서 무덤덤해졌다.

어쨌든 피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쑤셔 박아 버린 것이다.

나려타곤으로 땅을 굴렀던 당진산이 그 반동으로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당추를 향해 파고들었다.

득의양양한 얼굴로 비웃음을 머금고 있던 당추는 갑작스러운 반격에 살짝 당황했으나, 이내 구환현보를 펼쳐 그 자리를 벗어났다.

당진산도 보법을 마주 펼치며 그를 쫓았다.

삼재보법.

현재 당진산이 펼칠 수 있는 보법은 그것이 유일했다.

“훗, 고작 삼재보법 따위로 감히 구환현보를 쫓으려는 거냐? 무식하기는. 네 놈 재능이 아무리 일천해도 구환현보가 어떤 보법인지는 알 텐데?”

흑사편을 연이어 휘두르며 내뱉는 당추의 말.

그 말대로 삼재보법으로는 구환현보의 현란한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연이어 방패를 두드리는 채찍을 막기에 급급했고, 날아오는 단검을 쳐내는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당추의 움직임은 점점 더 현란하고 빨라졌다.

당진산은 점점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맹룡대 칠 조 세 명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밀리고 있지만 단단한 그의 모습을 믿었기 때문이다.

“크하하하! 어디 아까처럼 계속 지껄여보시지!”

오른쪽에서 당추의 음성이 들렸다 싶은 순간, 왼쪽에서 당추의 채찍이 날아들었다.

당진산은 방패를 움직여 채찍을 막고, 몸을 뒤로 젖혀 단검을 피했으며, 삼재보법의 움직임에 따라 옆으로 움직였다.

당추의 발길질이 당진산이 피한 자리를 헛되이 지나갔다.

당추는 지체 없이 움직였고, 다시금 당진산의 뒤를 잡았다.

아니,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얼굴 앞에 방패가 불쑥 나타났다.

퍼억!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피하기에는 너무 가까웠고, 당추의 속도 또한 너무 빨랐다.

“크윽.”

움직이던 속도가 독이 되어 그대로 당추에게 돌아왔기에 충격은 적지 않았다.

얼굴 전체를 찌르르 울리는 통증.

그리고 코에서 느껴지는 익숙하지만 낯선 감각.

손을 들어 코를 훔쳤다.

붉은 피가 양 콧구멍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익.”

그것을 본 당추는 분노의 신음을 흘렸다.

코피라니. 그것도 양쪽에서 동시에.

어린 시절이라면 몰라도, 열다섯 이후로는 흘려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것을 고작 저 당진산 따위에게 당해서 흘리고 있다니.

주변의 혈을 눌러 대강 지혈한 후 다시 당추가 신형을 날렸으나.

퍽.

이번에는 배에서 둔중한 충격이 느껴졌다.

“크윽. 어, 어떻게.”

당추의 배를 그대로 후려친 건 당진산의 검이었다.

“당추. 네가 날 너무 무시하고 있는데. 구환현보. 물론 내가 펼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나 또한 그걸 배웠고 구결은 알고 있다. 네가 잘난 듯이 밟고 있는 그 방위를 내가 모두 알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네 경지는 그저 구결에 따라 방위를 정직하게 밟는 정도고.”

당진산의 말에 당추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무리 알고 있다 한들…….”

“단번에 경로를 예측하고 이렇게 후려치긴 어렵지. 그래서 적응하느라 시간을 좀 보낸 거야."

당진산의 담담한 말.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당진산 네 놈이 그런 실력을……. 이건 말도 안 돼!!!”

당추가 악을 쓰며 외쳤다. 발악하듯 채찍을 휘둘렀다.

단검은 이미 전부 던졌다.

당추의 흑사편은 영사편법의 투로에 따라 거칠게 움직였다.

당진산도 익히 익혔던 편법이다. 단지 알고 있을 뿐, 펼치지는 못했던 편법.

맹룡대에 처음 들어와 흉내라도 내보려고 휘둘러보았지만,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편법.

당진산은 이제 편은 숙소에 버려두고 검과 방패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그 투로는 모두 알고 있었다.

흥분한 당추의 영사편법의 투로와 투로 사이의 빈틈으로 당진산이 스며들었다.

당진산의 검이 당추의 오른손을 그대로 후려쳤다.

“악.”

비명을 지르며 채찍을 놓치는 당추.

귀원보의 보법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던 녀석이 어떻게 구환현보의 경로를 미리 예측을 하며, 또한 영사구편의 투로 사이를 이렇게 정확히 찌를 수 있단 말인가.

흑사편을 놓친 당추는 적수공권이 되었다.

“그럼 그날의 뒤를 계속해볼까?”

당진산이 검과 방패를 던졌다. 그리고는 곧장 당추를 향해 몸을 날렸다.

구환현보를 펼쳐서 피하려는 당추.

그러나 그의 경로를 읽을 수 있는 당진산이었기에, 삼재보법으로도 그 길을 막아섰다.

퍽. 퍼퍽.

“컥. 커억.”

삼재권법이 당추의 몸을 두드렸다.

당진산은 일말의 사정도 봐주지 않았다. 그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대한의 위력을 실었다.

단전에서 끊임없이 내공을 끌어 올렸다.

“악. 크악.”

당추의 입에서 연신 비명이 터져 나왔다.

두 눈은 시퍼렇게 멍들었고, 지혈시켰던 코에서는 다시 코피가 줄줄 흘렀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당진산의 주먹에는 지난날의 울분이 실려 있었기에 더욱 매서웠다.

“그, 그만……. 제발…….”

지독한 고통에 질린 당추는 간절한 눈으로 당진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두 눈은 이미 패배자의 그것이었다.

그럼에도 당진산은 주먹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한번 당추의 관자놀이를 노리고 뻗어가는 주먹.

덥석.

그러나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다.

어느새 끼어든 판정관 묵해진의 손바닥이 당진산의 주먹을 막은 것이다.

“아아…….”

두 눈을 질끈 감았던 당추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 같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그야말로 처참한 몰골이었다.

“이쯤 하지. 자네 승리네. 더 이상 하다가는 사람 하나 폐인 만들겠어.”

판정관의 판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당진산은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차가운 눈으로 당추를 내려다보았다.

후련했다.

그러면서 찝찝했다.

겨우 저 정도의 녀석이 무서워 그동안 그리 피해 다녔던가.

그런 생각이 든 탓이다.

“당추. 탈락.”

판정을 내린 묵해진은 하늘을 향해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오늘 세 번째 탈락자다.

***

“세 번째 신호탄이로군.”

하늘을 올려다본 청우자가 중얼거렸다.

신호탄이 터진 곳이 자신들이 모인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비가영은 그 신호탄이 묵해진의 것임을 알아보았지만, 굳이 잠룡대 일 조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알려줄 이유도 없었고, 알려줘서도 안 되었다.

“남궁지후와 당추가 놈들을 쓸어버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영호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 오지 않은 두 사람.

맹룡대의 수작에 말려들어 산속에서 길을 잃은 건 아닌지 걱정하던 참이다.

물론 남궁지후라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만, 앞뒤 안 보고 무작정 달려 나간 당추 그놈이 문제였다.

그리고 처음에는 두 개의 신호탄이 동시에 터졌고, 지금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개의 신호탄이 터졌다.

좋게 생각하자면 처음 두 개는 남궁지후의 솜씨고, 뒤의 하나는 당추의 솜씨라고 보면 될 것이다.

남궁지유는 두 사람의 말에도 고운 아미를 찡그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언가 불길한 예감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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