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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33화 (33/312)

33화. 수고했다

“흠. 남궁지후라면 제대로 이곳을 찾아오겠지? 세 사람 처리했으면, 맹룡대 칠조도 이제 끝일 테고.”

영호준이 근처 바위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두 사람이 오는 것만 기다리면 되겠군.”

청우자도 근처 나무에 기대며 두 눈을 감았다.

긴장이 풀린 모습이다.

남궁지유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저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라 생각한 탓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부스럭. 부스럭.

수풀을 헤치고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그들의 귀에 들렸다.

“왔나보군.”

영호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우자가 두 눈을 떴다. 남궁지유는 오히려 두 눈을 감고 감각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저벅. 저벅.

발자국 소리까지 그녀의 귀에 들렸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들 조심해!”

뾰족한 교성이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영호준과 청우자는 서로를 바라보며 영문을 몰라하는 표정을 지었다.

“접근하는 이들이 네 사람이야!”

그 말에 두 사람의 표정도 변했다.

둘이 아닌 넷이라니.

재빨리 자신들의 검을 뽑고는 가운데로 모여 들었다.

그때, 맹룡대 칠 조 네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당한 얼굴이었다.

“어떻게…….”

그 모습에 청우자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셋 중 둘은 우리 조원이었나 보군요?”

남궁지유가 침착한 얼굴로 연하민을 보며 물었다.

연하민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지후, 당추. 두 사람은 산 아래로 보냈습니다.”

여유가 가득한 대답.

남궁지유는 다시 한번 입술을 잘근 씹을 수밖에 없었다. 당추 따위야 어찌되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가장 큰 전력인 남궁지후가 탈락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당연히 합공을 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동생이 탈락했다니.

동생의 실력이 어떤지는 남궁지유, 그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던가.

설사 와룡대 일 조와 혼자서 조우했다 할지라도 저렇게 네 사람을 남겨두고 탈락할 리 없었다.

남궁지유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청우자와 영호준은 한 발 뒤 좌우에서 검을 들고 섰다.

전후좌우의 네 방위를 맹룡대 칠조 네 사람이 포위했다.

사 대 삼의 형국.

누가 보든 이 상황은 잠룡대 일 조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맹룡대 떨거지 따위가 네 명이 모였다고 위협이나 되겠는가. 그게 보통의 잠룡대 생도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남궁지후가 당했다.

자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을 포위한 녀석들은 보통의 맹룡대 떨거지가 아니었다.

‘어쩌면 정말 맹룡(猛龍)일 지도…….’

남궁지유의 상념은 이어지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네 사람이 동시에 움직인 것이다.

철저히 짜여진 듯한 유기적인 움직임.

저들은 검진을 펼치고 있었다.

단순한 합공이 아닌.

그에 반해 잠룡대의 세 사람은 제대로 된 합격을 해본 적도 없었다.

자연히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간혹 시도하는 회심의 일격이 번번이 방패에 막히자, 손발이 더욱 어지러워졌고.

일각을 버티지 못하고 세 사람이 모두 탈락했다.

그 와중의 성과라면 당진산 한 명을 탈락시킨 것이랄까?

비가영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는 눈을 살짝 치켜떴다.

어찌 맹룡대가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녀의 시선은 자연히 한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어느샌가 나타난 하무백이 묵해진의 곁에 서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아주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묵해진과 비가영의 시선이 얽혔다. 묵해진의 고갯짓에 비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품에서 신호탄을 꺼내 쏘았다.

네 사람의 탈락을 알리는 신호탄이 목란산의 하늘을 수놓았다.

***

그날 저녁.

단목운뢰가 터덜터덜 산을 내려오는 것으로 맹룡대 칠조의 하투제는 끝이 났다.

불과 하루 만에 끝난 것이다.

목란산에서 숙식하면서, 하투제 때 밤을 보내는 방법까지도 훈련했건만 써먹을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단목운뢰의 얼굴은 당당했다.

그와 함께 내려오고 있는 다른 세 사람이 소태 씹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

잠룡대 이 조의 생도들이었다.

“수고했다. 어서 와라.”

당진산이 싱긋 웃으며 단목운뢰를 맞았다.

작은 천막에는 먼저 탈락한 맹룡대 칠조의 다른 네 명이 있었다.

“운이 없었어.”

단목운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내 탓이야.”

연하민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 사람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탈락 신호탄을 생각지 못했어. 그것까지 고려했어야 하는데……. 좁은 지역에서 연달아 신호탄이 올라오니, 어부지리를 노리고 접근하는 이들이 있는 게 당연한데.”

그녀의 말대로였다.

최초의 신호탄이 올라온 곳에서 연이어 신호탄이 터지니, 은근슬쩍 탈락하고 남은 이들을 목표로 모여드는 이들이 있었다.

“뭐, 그래도 와룡대 일조, 와룡대 이 조를 전부 탈락시켰고, 잠룡대 이 조는?”

당진산이 백리평과 단목운뢰를 보며 물었다.

잠룡대 이 조를 조우했을 때는 백리평과 단목운뢰 두 사람이 전부였다.

그래도 연하민까지 단 세 사람이 와룡대 일조와 이 조를 전부 탈락시킨 것은 엄청난 성과였다.

“내가 탈락할 때, 한 명 같이 탈락했고. 나머지는 운뢰가 알겠지?”

백리평이 단목운뢰를 바라보았다.

단목운뢰는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둘이나?”

당진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지막에 가망이 없다 싶어서……. 그냥 동귀어진으로 밀어붙였어. 그냥 탈락하겠다는 심정으로.”

단목운뢰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네 사람은 새삼스럽다는 얼굴로 단목운뢰를 바라보았다.

“자, 잡담은 거기까지.”

그때 천막의 입구가 열리며, 하무백이 들어왔다.

다섯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됐다. 편하게 있어라.”

하무백의 말에 저마다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하무백 역시 빈 의자 하나를 가져다 앉았다.

“설마 벌써 수련 시작은 아니겠지요?”

당진산이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하투제를 마무리 지은 시점에서 교룡관 전반기 일정은 끝이 났다. 앞으로 두 달은 휴관이다.”

그 말에 다섯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럼…….”

백리평이 말을 끌었다.

“내일 교룡관으로 복귀한 후로는 두 달간 자유라는 거지. 구월 초하루에 하반기가 시작된다. 나도 이제 좀 쉬겠군. 참 귀찮은 전반기였어.”

하무백의 말에 다섯 사람은 각자의 상념에 잠겼다.

짝!

손뼉 소리에 다섯의 시선이 다시 하무백에게로 향했다.

“자, 너희들의 휴관기는 내일부터고. 오늘은 하투제를 제대로 마무리해야지. 지금부터 하투제를 복기한다. 이른바, 반성회다.”

그 말에 저마다 표정이 바뀌었다.

어찌 반성할 게 없는가.

오늘 아침부터의 과정을 모두 돌이켜 보면,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이러는 게 더 좋았을 텐데……. 그런 아쉬움이 가득했다.

“제가 전략을 잘못 짰어요.”

연하민의 말에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막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밖에서 들었던 터다.

“신호탄 말이군. 그러면 더 좋았던 방안은?”

“남아있던 잠룡대 일 조 세 명을 너무 빨리 공격했어요. 최대한 몸을 숨기고 추적하면서 어부지리를 노리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었어요.”

연하민의 대답에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들이 하투제를 대비해 전략을 짤 때부터 해주고 싶었던 조언이다.

단순한 비무 대회가 아닌, 전쟁 상황을 가정한 실전 모의 대회였기에 가능한 전략이다.

하지만 자신이 알려주는 것보다 본인들이 직접 겪고 깨닫는 쪽이 좋았기에 그냥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

“좋아. 그러면 애초에 왜 그런 전략을 짜지 않았던 거지?”

“…….”

하무백의 물음에 연하민이 순간 입을 닫았다. 하무백은 잠자코 그런 연하민을 바라보았다.

“그건. 저희들의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잠룡대 일 조에게 당한 일에 대한 설욕을 우선시 하다 보니, 전체를 보는 눈이 흐려진 것 같습니다.”

백리평이 대신 답했다.

그 또한 이미 그 원인을 알고 있었다.

연하민이 주도적으로 전략을 짰지만, 당시 함께한 자신들 모두 잠룡대 일 조에게 설욕하는 것에 대한 생각만으로 활활 타오르지 않았던가.

“전체를 보지 못하고 너무 사사로운 것에만 얽매였어요.”

힘겹게 떨어진 연하민의 입에서 나온 대답이다.

“그 결과는?”

“아군의 전멸. 책사나 지휘관으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입니다.”

하무백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저마다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했고, 하무백은 때로는 물음을 던지고, 때로는 조언했다.

그중에는 남궁지후를 쓰러트릴 때, 백리평의 방심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그 순간순간이 맹룡대 칠 조에게는 커다란 깨달음이 되어 다가왔다.

그렇게 매 순간에 대한 복기가 끝날 무렵.

하무백의 시선이 단목운뢰에게 향했다.

“왜 동귀어진을 택했지?”

마지막 순간에 대한 복기. 하무백의 물음이었다.

“…….”

단목운뢰는 답하지 못했다.

하무백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쳤습니다. 희망도 없어 보이고. 어차피 탈락할 거라면, 적들을 하나라도 더 탈락시키자는 생각에…….”

힘없는 목소리의 대답이었다.

이미 그간의 복기 과정에서 단목운뢰 나름의 깨달음이 있었기에, 동귀어진에 대한 복기도 머릿속에서 끝난 상태다.

그랬기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이다.

“도주 후 다음을 도모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나?”

“실전이라는 생각보다, 하투제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동귀어진을 하더라도 죽는 것이 아닌 그저 탈락이라는 생각에…….”

“앞으로는?”

“최대한 도주 후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합니다.”

단목운뢰의 대답에 하무백은 싱긋 웃었다.

이걸로 되었다.

적어도 전반기에는 자신이 이들에게 가르칠 것은 모두 가르쳤다.

“좋아, 그럼 반성은 이걸로 끝내고…….”

하무백이 뒷말을 흐렸다. 그 모습에 다섯 사람은 긴장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또 무엇이 있단 말인가.

“이제는 칭찬할 건 칭찬해주지. 아쉬웠던 부분들은 모두 말했으니까.”

예상치 못한 말에 다섯 사람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저 교관에게 이런 면도 있단 말인가.

“잠룡대 일조를 상대로, 내 예상보다 더 잘해줬다. 특히 남궁지후와의 전투. 설마 그 정도 성과를 내리라고는 나도 예상 못 했어.”

그 말에 다섯 사람은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이후 당추를 잡을 때나, 남은 세 명과의 전투도 훈련 이상으로 좋았다. 낙우진과 당진산의 탈락 후 남은 세 명의 대처도 좋았고. 무엇보다, 그 짧은 기간의 훈련으로 이렇게 발전한 그 모습이 아주 좋았어. 너희들 재능 있어. 어쩌면 그곳에서 바로 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푹 쉬어라. 내일 복귀할 준비 제대로 하고.”

하무백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가 나가고 비어 있는 의자.

다섯 사람은 그곳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정말 우리 교관님이 맞는 건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당진산이었다. 그런 칭찬은 받은 적이 없는 탓이다.

“글쎄…….”

백리평이 얼떨떨한 얼굴로 답했다.

“그래도, 기분은 좋네.”

연하민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천막 밖에는 팽도율이 가만히 서 있었다. 이미 그 기척으로 알고 있던 사실이다.

“상당히 열심이구만?”

“하고 싶은 말이 뭐요?”

물음에 물음으로 답하는 하무백.

퉁명스러운 그 말에도 팽도율은 그저 웃을 뿐이다.

“좀 걷겠나?”

답은 듣지 않았다. 그저 걸음을 옮길 뿐.

하무백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 곁에서 걸었다.

밤은 고요했다.

그럴 수밖에. 첫 날에 탈락한 이들만 있는 곳이지, 떠들썩할 수가 없었다.

“하반기에는 여기저기서 견제가 들어올 거야.”

팽도율의 말에 하무백이 피식 웃었다.

“어쩌라는 거요? 애들 가르치라고 보내놔서, 가르쳤더니 이번에는 견제 이야기요?”

“나라고 이렇게 엄청날 줄 알았는가. 잠룡대 일 조에, 와룡대 일 조, 이 조. 더군다나 가장 먼저 탈락시킨 이가 남궁지후 그 친구이니.”

하무백은 답하지 않았다.

“우승 후보들을 죄 탈락시키고 탈락하지 않았는가. 덕분에 이번 하투제에서는 어부지리로 우승하는 친구들이 나올 거야. 그런 게 실전의 묘미지. 올해 하투제가 덕분에 아주 재미있었고 말이야. 허허.”

“하고 싶은 말이 뭐요?”

“하반기에도 잘 부탁함세. 그 말이 하고 싶었네.”

“거, 실없는 소리.”

하무백은 피식 웃고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팽도율은 어느새 멈춰서 있었다.

가만히 하무백의 등을 바라보는 팽도율.

“쯧. 주머니 속의 송곳이 너무 크게 튀어나와 버렸어. 애들 잘 챙기게.”

나직이 중얼거리듯 말했지만, 하무백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하무백은 자신의 천막으로 향했다.

하늘의 별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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