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왜 이쪽으로 와?
백도회(白道會).
혹자는 정파 무림의 수구 세력이라고, 혹자는 적폐라고, 또 어떤 이들은 고인 물 아니 썩은 물이라고도 부르는 집단이 있다.
바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한때는 각기 구파일방끼리, 오대세가끼리 나뉘어 경쟁하기도 했었다.
흥망성쇠에 따라 구파일방의 구성원이 바뀌기도 했고, 오대세가의 구성원이 바뀌기도 했다.
대략 육십여 년 전에 현재의 구파일방와 오대세가로 정리가 되었고, 그 두 집단은 하나의 연합체로 힘을 모았다.
마교와 혈교, 그리고 정파 내의 신진팔문이라는 신세력의 도전 때문이었다.
백도회는 그렇게 탄생한 모임이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서로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밀어주고 끌어주는 집단.
그런 백도회 내에서도 특출난 두 문파가 있었다.
천하제일문으로 일컬어지는 무당파.
천하제일세가로 불리는 호북연가.
마교와 혈교와의 대전은 천하제일문의 자리를 소림에서 무당으로 바꾸었고, 천하제일세가의 자리 역시 남궁세가에서 연씨세가로 바꾸었다.
정천맹 내의 모처.
그곳에서 백도회의 회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허, 이번 교룡관 하투제에서 재미난 일이 있었더군요.”
소림의 현각대사가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 말에 대번에 남궁세가 쪽에서 얼굴이 일그러졌다.
“가벼운 소란 정도죠.”
그리 말하는 호천단주 남궁화우의 얼굴이 좋지 못했다.
속된 말로 쪽팔렸다.
다른 이에게 당한 것도 아니고, 소모품으로 키우는 떨거지 중의 떨거지인 맹룡대에게 당한단 말인가.
“뭐, 교룡관 쪽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방금 입을 연 화산파의 인물에게로 모였다.
그런 주목이 못내 마음에 드는 듯, 화산파의 장로이자 정천맹의 장로인 선청우는 빙그레 웃었다.
“능 사질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재미있는 이름이 나왔더군요.”
재미있는 이름이라는 말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눈치가 빠른 몇몇의 얼굴에는 설마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하무백.”
짧은 이름 하나가 이곳에 던진 여파는 컸다.
열다섯 명의 사람 중 무려 열 명이 입을 쩍 벌렸으니. 나머지 다섯은 그 이름을 모르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친구가 맹룡대 칠 조 담당 교관이라 하더군요.”
그리 말하고는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입으로 가져가는 선청우였다.
“흐음…….”
“끄응…….”
곳곳에서 난감하다는 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팽 관주가 장난질을 좀 과하게 쳤군요.”
불쾌한 듯 말하는 이.
남궁화우였다.
현재 그가 앉아있는 호천단주라는 자리가 원래는 하무백 그의 것이었으니.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팽가 대표로 참석한 팽도린이 불편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능 사질은 그를 모르기에 그저 담당 교관이 능력이 대단한 것 같다는 정도로 서찰을 전했습니다만. 아시는 분은 아시지 않습니까? 그거 어떤 인물인지.”
“상종 못할 괴물…….”
어디선가 나직한 말이 울렸다.
그놈이 정천맹에 있는 것이 눈엣가시 같았기에 밖으로 내쳤더니.
물론 그 과정에서 집법원주의 희생이 있었다. 상관폭행이라는 구실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정말로 집법원주를 반 죽여 놓고 떠난 미친놈이다.
그 놈이 교룡관에서 그런 짓을 벌이고 있을 줄이야.
“놈이 자신의 절기라도 전수를 한 걸까요? 그게 아니고서야 어찌 맹룡대 따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미파의 정유사태였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아무튼 놈이 그곳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앞으로 세심히 살펴야겠습니다. 우리의 대업에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화산의 선청우의 말에 다들 생각에 깊게 빠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 하무백이란 존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다섯 사람의 얼굴에는 여전히 의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
무당산 천주봉 정상에 있는 금정(金頂).
“사부님. 부디 제자의 청을 들어주십시오.”
그곳에서 허리를 숙이고 간절히 외치는 청년이 있었다.
그런 청년을 바라보는 노도사는 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네가 갈 곳이 아니다.”
지엄한 사부의 말씀이나 청년은 도통 포기할 줄을 몰랐다. 여전히 허리를 숙인 채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후우.”
한숨을 깊게 쉰 노도사.
무당의 전대고수로 현 무당 장문인의 사숙이 되는 인물이다.
무연진인(無聯眞人).
전대 무당제일검이 바로 그였다.
“우명아. 대체 왜 그러는 것이냐?”
무연진인이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창궁무애검이 꺾였다 합니다.”
무연진인의 속가제자, 주우명(朱羽明)이 몸을 일으키며 형형히 빛나는 눈으로 답했다.
그 말에 무연진인은 전날 자소궁의 장문인에게 정천맹 본맹에서 정기 서찰이 도착했음을 떠올렸다.
아마도 주우명이 사형인 장문인에게 그에 관해 들은 모양이다.
“그게 네가 교룡관에 가는 것과 무에 상관이란 말이냐. 네가 그곳에서 배울 것은 없다. 고작 남궁가의 어린 아해가 익힌 창궁무애검이 꺾인 것이 무에 대단한 일이라고 그러느냐.”
“제자, 이곳에 있지만 늘 끊임없이 들어왔습니다. 제 연배에서 최고의 기재는 남궁가의 지후라는 인물이라고. 그런 그의 검이 꺾였다 하니, 교룡관에 대체 무엇이 있는지 반드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쯧.”
그 대답에 무연진인은 혀를 찼다.
그의 눈에는 제자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호승심이 너무도 진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우명아. 무당의 검을 익히는데, 다투려는 마음은 하등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너는 지금 다투어 뽐내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하구나.”
“…….”
무연진인의 말에 주우명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심마로고.”
무연진인은 두 눈을 감고는 작게 말했다.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듯, 두 눈을 뜨고는 제자를 바라보았다.
“그래. 차라리 심마도 일찍 겪는 편이 훗날을 위해 나을지도 모르지. 내 장문사질에게 이야기를 해둘 터이니 가도록 하거라.”
사부의 허락에 주우명의 얼굴은 대번에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큰 소리로 외치는 주우명이었다.
***
“남궁의 검이 꺾였다 이거지? 킥. 남궁도 별거 없군.”
팽가주의 장손인 팽군호는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아니 그의 얼굴에는 아주 통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남궁의 검, 팽가의 도.
강호인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늘 팽가의 도가 남궁의 검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기지수 최고의 기재라는 남궁지후.
그 어디에도 팽군호 자신의 이름은 없었다.
“알고 보면 최고의 기재는 헛소문인지도 모르겠군. 겨우 맹룡대 잡것들의 합공을 버티지 못하고 당했다니. 크크.”
“형님. 무슨 생각이신 겁니까?”
소식을 전한 육촌 동생의 말에 팽군호는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섰다.
“아버님을 뵈어야겠다. 내가 진짜 기재란 어떤 인물인지 보여줘야겠어. 하하하.”
커다란 웃음을 터트리며 소가주전을 찾은 팽군호는 아버지 앞에서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말았다.
“안 된단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팽가의 소가주, 팽도원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무엇 때문입니까?”
“내가 네 놈 생각을 모를 거 같으냐? 남궁지후가 맹룡대 아이들에게 패했다니, 우습게 보인 거겠지. 미천한 실력으로 가서 망신이나 당하지 말고 그냥 가문에 붙어 있어라.”
팽도원은 자신의 장남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인물이었다.
안타까웠지만, 자신의 장남은 그릇도, 재능도 보잘것없었다. 그랬기에 오히려 가문에 두고 있는 터다.
“미천한 실력이라니요! 아버지께서 어찌 저를 이리 무시하십니까!”
폭급한 성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버지를 앞에 두고 성난 외침을 터트리는 모습.
그럼에도 팽도원은 아들에게 엄히 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냐?”
때마침 찾아온 팽도원의 아버지, 팽가의 가주 팽무량 때문이다.
“할아버님!”
팽무량의 등장에 팽군호는 화색을 지었다.
할아버지라면 자신의 청을 들어줄 거라 생각한 탓이다.
팽군호는 급히 자신이 아버지에게 언성을 높였던 연유를 빠르게 말했다.
“흐음. 남궁가의 아이도 별것 없구나. 그래. 우리 군호면 충분하지. 암, 그렇고말고.”
그저 손자가 이뻐 죽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팽무량.
팽도원은 그 모습을 불안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교룡관이면 어차피 도율이가 관주로 있지 않더냐?”
“그렇습니다.”
팽도원은 아버지의 물음에 짧게 답했다.
“네 동생이 관주로 있겠다. 딱히 문제가 될 게 없어 보인다만?”
그 물음에 팽도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팽무량의 눈빛이 엄하게 빛났다.
[도율이가 전한 소식입니다만, 그곳에 그가 교관으로 있다고 합니다.]
아들에게 들려줄 이유가 없는 이야기였기에 전음으로 짧게 말했다.
[그라니?]
팽무량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입니다.]
그제야 아들이 이야기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차린 팽무량.
[그놈이 거기에? 본맹에서 찍어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만, 왜 거기에 그놈이 가 있는 거냐?]
[본맹 장로원의 결정입니다.]
정천맹은 답답하다며 본가에 있기를 선택한 팽무량은 본맹의 장로원의 장로로 자신의 동생 팽무린을 보내놓은 터였다.
팽군호는 긴장한 얼굴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눈치를 보았다.
전음으로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데 점점 더 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는 탓이다.
[군호 녀석의 성정상 자칫 그에게 험한 꼴을 당할까 걱정입니다.]
[…….]
팽도원의 말에 팽무량은 아무 말이 없었다.
팽무량이라고 자신의 손자의 성정을 모를까? 알고도 두었다.
이곳 팽가에서는 그래도 아무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주인 자신의 장손이다. 장차 가주가 될 아이였으니 그 정도는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장차 가주가 되어 아랫것들을 통솔하려면 그런 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자신의 장남은 성정이 너무 부드러웠다.
팽가의 도를 익힌 팽가의 인물답지 않게.
그것이 못내 불만이었던 팽무량이었기에 팽군호를 더욱 그리 둔 것인지도 몰랐다.
잠시 그런 팽군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팽무량.
[제깟놈이 감히 내 손자를 어찌하기만 해라. 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도율이 통해서 단단히 일러두마.]
결국 팽무량은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팽도율은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가거라. 내 네 숙부에게 말을 해두마.”
“가, 감사합니다. 할아버님!”
팽무량의 허락에 팽군호는 허리를 숙여 기쁨의 감사를 표했다.
‘그래. 어쩌면 차라리 그곳에서 호되게 당하는 것이 나을지도.’
팽도원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어떤 인물인데, 팽가의 눈치를 볼까 하는 생각과 함께.
***
“교룡관에서 재미난 일이 있었습니다.”
수하의 보고에 연씨세가의 소가주 연백량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교룡관 따위에 신경 쓸 이유가 있을까?”
이미 보고서로 내용을 확인한 터다.
가주인 아버지, 연자경이 정천맹 장로원에 가 있는지라 가문의 대소사는 연백량이 처리하고 있었다.
그가 처리해야 할 일은 산적했고, 교룡관 따위의 사소한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대강 넘겼던 보고다.
“그보다 그 아이의 행방은?”
그리 묻는 연백량의 두 눈이 탐욕으로 빛났다.
수하는 그 탐욕의 빛이 의미하는 바는 알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아직입니다.”
“2월에 사라졌어. 그리고 벌써 넉 달이군. 우리 연가의 능력이 고작 이 정도였나?”
연백량의 질책에 수하는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아, 아닙니다.”
그런 수하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연백량.
“이건 어쩌면 누군가가, 숨기고 있을지로 모를 일이야. 등하불명이라 했으니, 가까운 곳부터 다시 찾아봐.”
“네. 알겠습니다.”
수하가 나간 후 연백량은 한쪽에 치워둔 보고서를 다시 힐끗 보았다.
“그놈이 교룡관에 있다라…….”
***
모처럼의 휴가다.
그것도 무려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하투제야 어찌되든 말든 교룡관으로 복귀한 하무백은 빙그레 웃으면서 휴가를 어찌 보낼지 고민했다.
차라리 맹룡대 칠 조 생도들이 빨리 탈락한 게 고맙기도 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짐을 정리하던 하무백이 우뚝 멈췄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귀를 휘적였다.
“누가 내 이야기 하나? 왜 이리 가렵지?”
그때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하무백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저놈들은 휴관기인데……. 왜 이쪽으로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