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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35화 (35/312)

35화. 대체 이게 뭐 길래

“교관님.”

단목운뢰의 부름에 하무백은 뚱한 얼굴로 자신의 앞에 있는 다섯 사람을 바라보았다.

현재 이곳은 동담룡각이다.

식사 시간이 아닐 때라도, 이렇게 장소가 개방되어 있어 간단한 이야기 정도는 나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 휴관기에 교룡관에 남아 수련하겠다?”

하무백의 물음에 다섯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 어차피 집이 이곳인지라…….”

하무백의 시선에 단목운뢰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갈 곳 없어요.”

연하민은 짧게 말했다.

“저도 사천까지 다녀오기에는 길에서 시간을 다 보낼 것 같군요.”

당진산이 능글맞게 웃으며 답했다.

“저도 딱히 다녀올 곳이…….”

낙우진은 뒷말을 제대로 맺지 못했다.

“사문에 다녀올 시간에 이곳에서 더욱 정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백리평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하무백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아. 그래. 좋아. 휴관기에도 남아서 수련을 한다는 태도는 좋아. 그런데 난 왜 찾아온 거야?”

하무백은 내키지 않은 얼굴로 다섯 사람을 보며 물었다.

“당연히 가르침을 청하려고 왔지요.”

당진산이 뭘 그런 걸 묻느냐는 얼굴로 물었다.

“휴관기다만?”

“에이, 우리 사이에 뭘 그런 걸 따지십니까? 어차피 교관님도 별일 없으시잖습니까?”

능청스런 표정의 당진산이다.

“네가 어찌 내 일정을 알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의 하무백. 당진산은 여전히 빙글빙글 웃을 뿐이다.

“칠 일. 딱 칠 일이다. 난 나대로 할 일이 많은 사람이야.”

하무백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조금 더 쓰시지요?”

당진산이 은근한 얼굴로 말하자 하무백은 고개를 저었다.

“싫으면 말고.”

하무백이 식탁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하자, 당진산이 황급히 하무백의 손을 잡았다.

“아닙니다. 칠 일. 충분합니다. 남은 기간은 저희끼리 수련하고, 하반기 때 교관님께서 봐주시면 되죠. 그렇지?”

당진산의 다급한 말에 다른 네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란산에서 덜 굴렀구나.”

하무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일부터 연무장으로 나가면 됩니까?”

백리평의 물음에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늘 그 시간에 나오면 된다.”

그리 대답한 하무백은 다시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이 녀석들 덕분에 일정이 조금 늦어질 듯 했다.

그래도 하투제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뒀으니 거기에 대한 포상이라고 생각하면 될 일이다.

“뭐, 칠 일 정도 늦게 간다고 무슨 일이 생길 것도 아니고. 잘 지내고 있을 테니.”

하무백으로서도 정말 오랜만의 휴가였다.

호천단주로 있는 동안은 사실 제대로 휴가를 쓴 적이 없었다.

전쟁이 끝난 뒤로도 말이다.

맹주의 수신호위라는 것이 보통 신경 쓸 것이 많은 일이 아니다.

그리고 당최 수하들을 믿고 맡길 수가 없었다.

덕분에 출도 이후 이렇게 여유로운 휴가는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장로원 늙은이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그리 말하고도 스스로 어이가 없었는지 피식 웃은 하무백이다.

***

다섯 사람은 여전히 똑같이 검을 휘둘렀다.

삼재검법이다.

사문의 검만 수련하던 백리평도 이제는 아무런 어색함 없이 삼재검법을 수련하고 있었다.

하무백은 그 모습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실전만 한 훈련은 없었다.

몰라보게 실력이 상승한 다섯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다들 재능들이 출중하니.’

이들의 재능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는 하무백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그만.”

하무백이 짧게 말하자 일제히 검을 멈추는 다섯 사람.

“앞으로 칠 일간은 지금까지와 동일하게 수련한다. 너희들 모두 하투제의 실전으로 각자 느끼고 깨달은 바가 있을 터. 그걸 정리하는 게 먼저다.”

“…….”

다섯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장은 내가 딱히 가르칠 게 없어. 너희는 지금 이번에 얻은 걸 각자의 것으로 체화하기에도 버거운 상태니까. 새로운 걸 알려줘 봐야, 흘러넘쳐 사라지겠지.”

다섯 사람의 눈이 잘게 떨렸다.

이렇게 밑밥을 깐 다음에 나올 말이 무엇인지는 다섯의 머릿속에 명확히 떠올랐다.

하무백이 이들과의 첫 만남부터 했던 말이니까.

당진산이 황급히 끼어들었다.

“설마 칠 일 동안 자율 수련하라는 겁니까?”

그 목소리는 다급했다.

그래서야, 하무백을 졸라서 받아낸 칠 일의 시간이 아무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무백이 당진산을 보며 싱긋 웃었다.

“역시 눈치가 빨라서 좋아.”

“그런…….”

당진산이 곧장 무어라 하려 할 때 하무백이 손을 뻗어 그 말을 제지하고는 이어서 계속 말했다.

“물론, 자율 수련만 하는 건 아니다. 하루에 한 시진. 나와 실전 대련을 한다. 너희들이 얼마나 지난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했는지 똑똑히 봐주도록 하지.”

다시 한번 싱긋 웃는 하무백.

그런데 그 웃음이 왠지 섬뜩하게 다가오는 다섯 사람이었다.

유시 초부터 술시 초.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드는 초저녁 무렵에 한 시진씩의 대련이 매일같이 펼쳐졌다.

검진을 펼쳐 합공하는 대련은 물론, 각 개인 별로 일대일 대련까지.

총 여섯 번의 대련을 하는데 한 시진은 충분하고도 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끝은 언제나 탈진이었다.

“후아… 죽겠다…….”

연무장에 드러눕는 당진산이 짙은 노을을 바라보며 힘없이 말했다.

“…….”

다른 이들은 말할 힘도 없는지 거친 숨만 몰아쉴 뿐이다.

“우리 교관님.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어느 정도 호흡이 진정된 후 문득 중얼거리듯 말하는 백리평.

그의 짧은 경험에 비추어도 자신들의 교관은 어마어마한 괴물이었다.

당장 자신의 사문의 어른들과 비교를 해봐도, 그만한 이는 없었다.

종남파의 장로나 호법, 심지어 문주님과 비교해 보더라도 말이다.

단목운뢰나 낙우진, 연하민은 몰라도 적어도 명문에 몸을 담은 백리평 자신과 당진산은 분명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그 사연 때문에 우리랑 연이 닿은 걸 감사해야지. 우리 입장에서는 기연이나 마찬가지이니.”

당진산이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백리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난 하투제에서 그들은 당진산이 가진 사연의 한 조각과 마주했으니까.

“근데, 우리 교관님은 대체 얼마나 강한 걸까?”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문득 단목운뢰가 궁금하다는 듯 말했다.

“…….”

그 물음에 답하는 이는 없었다.

그저 저마다 머릿속으로 얼마나 강할지 상상해볼 뿐.

***

칠 일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다섯 사람의 두 눈은 더욱 형형하게 빛났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그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였다.

그럼에도 오늘 역시 다섯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하무백은 마지막 날인 탓일까. 오늘은 자리를 뜨지 않고 가만히 그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언가 마음에 안 차는 듯한 기색이다.

“헉헉. 설마 안 끝난 겁니까?”

당진산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하무백에게 물었다.

“아니. 끝이다.”

“그런데 왜…….”

불안한 듯 잘게 떨리는 당진산의 눈동자.

“숙제.”

짤막한 답.

“내일 새벽에 여기서 보자. 그때 숙제를 줄 테니까.”

그 말을 남기고 하무백은 자신의 숙소로 돌아왔다.

그곳에 이미 짐을 다 싸둔 상태다. 원래는 곧장 출발할 계획이었는데, 바꿨다.

가슴 한구석에 찝찝하게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출발하나 내일 새벽에 출발하나 큰 차이는 없으리라.

“역시 내공이 문제야.”

작은 다탁의 의자에 앉은 하무백이 턱을 괴고 다탁을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하투제의 성과는 절반은 운이었다.

잠룡대나 와룡대의 아이들과 자신의 아이들은 그 기초부터 달랐으니.

맹룡대 칠 조에 그나마 기초가 좀 있는 이는 당진산과 백리평이 전부다.

내공은 결국 얼마나 오랜 시간 수련을 했느냐가 중요했다.

아직 십 대 후반 이십 대 초반인 교룡관의 아이들이었기에, 내공 수위의 차이는 많아야 십오 년 적으면 육칠 년 내외일 터.

그랬기에 하투제의 그런 성과가 있을 수 있었다.

당진산과 백리평은 그런 격차조차 거의 없을 테니.

그런 약점을 지닌 단목운뢰가, 하투제에서 칠 조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실로 어마어마한 재능이었다.

그랬기에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그런 재능이, 고작 내공에 발목을 잡힌다는 것이 말이다.

“하반기에는 견제도 심해질 테고…….”

하투제에서의 활약은 다른 이들이 맹룡대 칠 조를 우습고 본 덕도 있었다.

그야말로 방심하다가 일격을 얻어맞은 것이다.

“내 이야기도 본맹에 흘러 들어갔겠지.”

그런 이변이 있었는데, 아무런 정보도 흘러 들어가지 않았다면, 정천맹은 곧 망할 집단이란 소리다.

아무것도 없는 맹룡대의 아이들이 남궁지후를 꺾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으니.

“하아. 이래서 아무것도 안 하려고 했는데, 자꾸 귀찮은 일이 생기는구만.”

깊은 한숨에는 진심이 담긴 귀찮음이 가득했다.

하무백은 물끄러미 침상에 놓인 혁낭을 바라보았다.

당장 떠나려고 싸놓은 혁낭이다.

“어쩔 수 없나?”

자신과 엮여서 엄청난 성과를 냈으니, 알게 모르게 여러 눈이 붙을 것이다. 게다가 잠룡대와 와룡대의 견제까지.

지금도 충분히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있지만, 그런 점을 고려하면 아직 느렸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하무백은 그 조치를 위해 혁낭으로 손을 뻗었다.

새벽에 보자고 말할 때 이미 마음을 먹었건만, 그럼에도 쉬이 행동으로 옮길 수 없어 지금까지 다시 한번 고민했다.

그럼에도 결국 답은 정해져 있었다.

하무백은 혁낭에서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종이를 꺼내 펼쳤다.

거무튀튀한 단환이 잔뜩 들어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다시 한번 중얼거리며 단환 다섯 개를 따로 종이에 쌌다.

다음 날 새벽.

다섯 사람은 자신의 손에 들린 단환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종이에 아무렇게나 싸여 있던 거무튀튀한 그것. 냄새도 좀 고약한 것 같았다.

향긋한 약향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것보다는 무언가 께름직한 냄새가 더 진했다.

“저, 이건 뭔가요?”

당진산이 하무백을 바라보며 물었다.

“니들이 지금 먹어야 하는 거.”

조금 나아졌다 싶었으나, 여전히 불친절한 교관님이다.

“먹어도 괜찮은 거 맞나요?”

당진산이 마른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물었다. 하무백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단목운뢰가 단번에 단환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꼭꼭 씹었다.

신묘한 맛이었다.

굳이 좋게 표현하자면 그랬고, 솔직히 말하자면 맛이 없었다.

단목운뢰의 표정이 절로 찡그러졌다.

그 모습을 본 당진산은 더욱 불안한 눈으로 단환을 바라보았다.

연하민이 고민할 거 없다는 듯 단환을 입에 넣고 씹었다. 고운 그녀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이어서 백리평과 낙우진도 먹었다.

네 사람의 표정은 똑같았다.

“저, 교관님. 아무리 좋은 약은 입에 쓰다지만, 대체 이 정체도 모를 단환은…….”

아무래도 당가 출신이라 그럴까? 단환을 대하는 자세가 다른 넷과는 달랐다.

연신 당진산은 다른 네 사람을 힐끔거렸다.

다들 특별한 이상이나 변화는 없어 보였다.

먹어도 될 것 같았으나, 아무 변화도 없는 걸 왜 굳이 먹이지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먹기 싫으면 말고.”

하무백이 됐다는 식으로 손을 뻗자, 당진산은 재빨리 단환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인상을 잔뜩 쓰고는 꼭꼭 씹었다.

단언컨대, 지금껏 당가에서 먹어본 그 어떤 단환보다 괴랄한 맛이었고, 씹기도 많이 씹어야 했다.

‘대체 이게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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