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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37화 (37/312)

37화. 나만 그런가?

“그래. 그동안 어찌 지냈느냐?”

식사가 끝나갈 무렵 사부가 물었다.

하무백이 과하다고 했던 오리 구이는 이미 뼈만 남은 상태.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무백은 간단히 지난 7년간의 일을 이야기했다.

하설란이 함께 있었기에,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최대한 간결하게 하고 넘어갔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이야기하는 부분은 최근 교룡관에서의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네가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위지군이 새삼스럽다는 얼굴로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하설란은 흥미가 가득한 눈빛이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시류에 떠밀려 흘러가다 보니 그곳이더군요.”

하무백은 담담히 지난 석 달간의 일을 이야기했다.

“어쩌면 그 덕인지도 모르겠구나.”

“네?”

“내 예상보다 빨리 냄새가 빠지는 거 말이다.”

하설란이 함께였기에, 피 냄새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하무백은 충분히 알아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라버니. 지난번처럼 무서운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영특한 하설란은 사부의 말에서 무언가를 깨달은 듯 말했다.

7년 만의 만남이었기에, 너무 오랜 세월의 만남이기에, 그만큼 애틋했기에, 그리 안긴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설란의 말에 하무백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다.

사부의 말대로 교룡관에서의 경험 덕이라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그곳에서 교관 노릇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람들이네요. 오라버니가 가르친다는 생도들.”

하설란이 흥미가 가득한 두 눈을 반짝였다.

“평범한 이들은 아니로구나.”

위지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덕에 귀찮아졌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려 했는데.”

“무량환(無量丸)까지 먹이고서는 그런 소리를 하는 게냐? 끌끌.”

위지군이 웃음을 흘렸다.

7년 전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하무백에게 잔뜩 들려 보냈던 사문의 영단인 무량환이다.

헌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교룡관이라는 곳에서 가르치는 아이들 다섯에게 쓴 게 전부인 듯했다.

“헌데, 오라버니. 무량환을 주고 바로 이곳으로 오셨으면 그 생도들은 그 가치를 아직 모르겠네요?”

하설란은 물음에 하무백이 빙긋 웃었다.

“그래야 재미있지.”

“허. 무량환을 먹이고 재미라니. 녀석. 많이 좋아졌어.”

잘 벼려진 한 자루의 검과 같던 아이가 이제 저런 여유를 가지게 되었으니, 위지군은 사부로서 절로 마음이 놓였다.

“지효성인 무량환을 먹였으니. 그 아이들은 네가 괴롭힌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구나. 흘흘.”

세상에 알려진 영단, 영약은 보통은 먹는 즉시 그 약기운이 온몸을 가득 채우며 효과를 보인다. 즉, 속효성인 것이다.

그런 속효성의 영단은 즉시 엄청난 양의 내공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그것이 단점이기도 했다.

순간적으로 온몸을 가득 채우는 기운을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하면, 모두 흩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하무백의 사문인 무극검문은 그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지효성의 영단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하무백이 맹룡대 칠 조에게 먹인 무량환이다.

물론 사문에는 속효성의 영단도 있었다.

“각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에서 천천히 기운이 풀려 나올 테니……. 두 달이면 몰라보게 달라져 있을 겁니다. 그걸 괴롭힌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괴롭히는 게 어떤 건지 보여줘야죠.”

하무백의 입가에 장난스런 미소가 걸렸다.

하설란은 그런 오라버니의 모습을 활짝 웃으며 바라보았다.

“해서 예 머무르는 동안은 어쩔 거냐?”

위지군의 물음에 하무백은 잠시 입을 닫았다.

그렇잖아도 간밤에 거기에 대해 생각했었다. 사부가 자신의 몸에 밴 피 냄새가 많이 옅어졌다고 했기에 든 생각이다.

“몸을 좀 씻을까 합니다.”

“그래?”

“네. 뜨거운 불길로 씻어내면, 삿된 기운이 좀 더 씻겨 나가겠지요.”

그런 하무백의 시선은 다른 모옥 한 채로 향했다.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문가에 거미줄이 있었다.

“근 칠 년 동안 문 한 번 열지 않았다. 정리부터 해야 할 게야.”

“네.”

***

하 교관이 이상한 단환을 먹이고 떠난 지도 어느새 열흘이 흘렀다.

그동안 칠 조 생도 다섯은 정말 치열하게 수련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과연 지금이 휴식기가 맞나 싶을 정도의 하루하루였다.

대다수의 관도들이 떠났기에 조용한 교룡관은 이들이 수련을 하기에 더없이 훌륭한 장소였다.

“그, 뭐냐. 다들 요즘 좀 이상하지 않아? 나만 그런가?”

점심 식사 중, 당진산이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응? 뭐가?”

단목운뢰가 되물었다.

“그, 심법 수련할 때 말이야…….”

“아!”

연하민이 작은 탄성을 흘렸다.

“응? 하민 너도?”

당진산의 고개가 그녀를 향해 돌아갔다. 연하민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도 그런데.”

백리평이다.

곧이어 낙우진과 단목운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모두 동일한 경험을 하는 중이었기에,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았다.

“내공이 너무 빨리 늘어.”

당진산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삼재심법으로는 불가능한 속도지. 내 사문의 심법으로도 불가능한 속도야.”

백리평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이상한 게 맞았구나. 난 내공심법은 처음이라. 수준이 올라가면 그렇게 되는 건가, 긴가민가했었어.”

하투제 이후로 제법 말을 길게 하는 연하민이다.

그녀의 말에 단목운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역시 익힌 내공심법이라고는 삼재심법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내공심법은 내공을 쌓는 속도가 정해져 있어. 상승의 내공심법일수록 안정적으로 빠르게 쌓을 수 있고. 삼재심법은 굉장히 안정적이지만, 대신에 엄청나게 느리게 내공이 쌓이고.”

당진산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된 일이지?”

낙우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되긴. 교관님 때문이지.”

백리평이 담담히 말했다.

그 말에 다섯 사람은 서로 눈을 맞췄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 다음 날부터 내공이 좀 더 쌓이기 시작했어.”

연하민이 중얼거렸다.

“그 지랄맞은 단환이……?”

당진산은 그러지 않을까 짐작은 했지만,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런 생각에서 조원들에게 물었던 건데, 오히려 그것이 사실이라니.

사천당가의 직계로서 쉬이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 단환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말이다.

“그거 보통 단환은 아닌 거지?”

단목운뢰의 말에 당진산과 백리평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이런 단환이 있다는 것은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 교관님은 어떤 사람인거지?”

연하민이 의문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런 의문은 다른 네 사람의 얼굴에도 어려 있었다.

***

깡! 깡! 깡!

요란한 망치질 소리가 대장간 안을 가득 채우며 울렸다.

이글거리는 백염 앞에서 하무백이 쇳덩이를 두드리고 있었다.

한쪽에는 검 비슷한 형체를 한 것이 네 자루가 놓여 있었다.

하무백이 망치를 내려칠 때마다, 그의 등근육이 꿈틀거렸다. 벗은 상체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때 두꺼운 철문이 열렸다.

망치질 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벽과 문 모두 두꺼웠다.

덕분에 대장간 내부의 열기는 숨을 쉴 때마다 폐가 불타오를 듯 지독했다.

“헉.”

하설란이 경악성을 흘렸다.

이곳은 들어올 때마다 이랬다. 이런 곳에서 하루종일 망치질하는 오라버니가 새삼 대단했다.

열린 문틈으로 여름날의 더운 공기가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하무백에게는 시원한 바깥바람이었다.

등 뒤로 느껴지는 시원함에 하무백은 망치질을 멈췄다.

“벌써 점심때냐?”

몸을 일으켜 뒤돌아보며 하무백이 물었다.

“네. 오라버니. 식사하세요.”

한쪽에 놓인 수건으로 상체의 땀을 닦은 하무백은 겉옷을 대강 걸쳤다.

“가자.”

하설란과 하무백이 함께 마당으로 나왔다.

“건강해지니 어떠냐?”

“좋아요.”

하무백의 물음에 하설란이 생긋 웃으며 답했다.

이게 벌써 몇 번째 물음인지 모른다. 매일같이 똑같은 물음을 던졌다. 하설란은 이 다음에 나올 말도 예상할 수 있었다.

‘건강한 모습을 보니 좋구나.’

“건강한 모습을 보니 좋구나.”

그녀의 생각과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은 말이 하무백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완쾌된 지 삼 년이 지났는데, 이제야 찾아와 미안하다.’

“완쾌된 지 삼 년이 지났는데, 이제야 찾아와 미안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오라버니. 벌써 몇 번째 그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설란의 말에 하무백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음을 흘렸다.

그런 그의 두 눈은 더없이 맑았다. 지난 열흘 간의 변화였다.

앞장서 걷던 하설란이 빙글 돌아 하무백과 눈을 맞췄다.

“그래도, 이젠 옛날의 오라버니가 돌아온 거 같아요.”

그녀의 예민한 기감이 하무백의 몸에 밴 피 냄새를 느끼지 못하게 될 정도로.

“다행이구나.”

동생을 마주 보는 하무백.

“수련은 어떠냐?”

“좋아요. 즐겁고.”

하설란의 대답에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에게 있어서 무공은 딱 그런 존재로만 남기를 하무백은 간절히 바라마지 않았다.

“단지…….”

그때 갑자기 하설란의 표정이 바뀌었다.

“이제 사람들과 어울려서 지내보고 싶어요.”

그 말에 하무백은 우뚝 멈춰 섰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살지 않는 동정호의 군도.

본디 무인도였던 이곳에 사부가 하무백과 하설란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하설란은 기억이 자리한 순간부터 이곳에서 지냈다.

하무백이 있을 때는 세 명, 그리고 이후로는 사부와 단둘.

사람이 그리울 법도 했다.

‘세 살 때부터인가?’

어느새 하설란의 나이도 방년(芳年)이다. 이곳에서 17년을 지낸 것이다.

그동안은 건강이 몹시 나빴기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살아남는 것이 먼저였으니.

헌데, 천형(天刑)과도 같았던 지병에서 완쾌된 지도 어느새 3년.

이제는 바깥이 궁금할 법도 했다.

“천천히 생각해 보자.”

그 대답과 함께 두 사람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룻배를 띄워 놓고는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던 위지군.

그가 남매의 대화에 빙긋 웃고 있다가, 하설란의 말에 가볍게 혀를 찼다.

“쯧쯧. 이 좁은 곳이 세상의 전부였으니, 답답도 했겠지…….”

강호의 전쟁에 휘말려 고아가 된 어린 남매를 17년 전에 만났다.

옷이라고 할 수도 없는 거적데기를 걸치고는 열 살이나 어린, 허약하디 허약한 동생을 품에 꼭 안고 있던 소년.

그 소년의 눈빛은 그럼에도 형형하게 살아 있었다.

그리고 위지군의 눈에 보인 소년의 자질.

그 자질을 보고 소년을 거둬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제자로 들인 소년뿐 아니라 어리고 예쁜 그 동생에게도 정이 갔다.

그 어린아이에게 천형과 같은 병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어떻게든 치료해내겠다 마음먹었다.

사문의 비전에는 그 천형에 대한 치료법도 전해져 오고 있었으니.

다만, 어디까지나 기록일 뿐이었기에 실제로 행함에 있어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제자는 약관이 되던 10년 전에 부모의 복수를 하겠노라 세상으로 나갔었다.

그리고 7년 전 잠시 돌아왔다가 다시 떠났었다.

그사이 어린 하설란 역시 위지군은 제자로 들였고 기어코 그 천형을 치료하는데 성공했다.

기실 하무백과 하설란은 위지군에게 제자 이상의 존재였다.

자신의 아들딸이요, 손자 손녀와 같은 존재였다.

그런 하설란이, 이제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싶다 한 것이다.

“이제 이곳도 정리할 때가 되었는가…….”

위지군이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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