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이제 가자꾸나
깡.깡.깡.
달마저 숨은 깊은 밤이건만, 망치질 소리가 요란했다.
그러나 하설란은 그 망치질 소리가 자장가라도 되는 마냥,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망치질에 빠져든 지도 어느새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온갖 잡념과, 피냄새를 떨쳐낸 것인지 하무백의 두 눈은 맑고 투명하기 그지없었다.
“됐다.”
다섯 번째 검의 단조가 끝났다.
이제 이 다섯 자루를 연마할 차례다.
당분간은 망치를 놓아야 할 터.
하무백은 문을 열고 대장간 밖으로 나왔다. 깊은 밤임에도, 강바람은 후덥했다.
한여름의 밤다웠다.
“끝냈느냐?”
마당의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사부가 하무백을 보고 물었다.
“일단 두드리는 것은 끝낸 듯합니다.”
하무백의 대답에 위지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생각은 정리가 되었고? 어찌할 것이더냐?”
사부의 물음에 하무백은 쉬이 답하지 못했다.
“어렵습니다.”
그 대답에 위지군은 피식 웃었다.
당연한 일이다. 혈육의 일을 결정한다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란아가 완전히 건강해지고, 이제 일 년 정도 흘렀다. 이제 한 사람 몫은 할 게다.”
병에서 완쾌된 것은 삼 년 전이었지만, 투병 기간 동안 허약할 대로 허약해진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겨우 일 년 전의 일이었다.
하무백은 사부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불안할 게다. 그게 당연하지. 기실 나도 불안한 것을…….”
위지군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달이 없다 하나, 별은 제 자리에서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헌데, 란아의 세상이 이 좁은 곳이 전부라는 것은 너무 가엽지 않느냐. 이제 건강도 찾았는데. 너는 몰라도, 그 어린 것이 이곳에 들어왔을 때의 나이가 고작 세 살이었다. 기억의 전부가 이곳일 게야.”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그 아이가 바라는 것이…….”
그간 하설란은 하무백에게 은근히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야기하곤 했다.
이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보고 싶다 하면서.
다만.
‘교룡관에 입관하고 싶다니. 그것도 맹룡대에. 어떻게든 말려야지.’
하무백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환상을 가진 것일까.
하설란은 은연중 내년 봄에 교룡관에 입관하고 싶다는 의견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맹룡대를 꼭 집어서 말이다.
그것이 하무백을 고민에 빠트리고 있는 것이다.
맹룡대가 어디 평범한 곳이던가.
정천맹의 고기 방패를 만들기 위해, 희생양을 키우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 아니던가.
소중한 동생을 그곳에 보낼 수는 없었다.
“맹룡대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는 잘 알겠다만, 그래도 너라면 말이다…….”
위지군은 지금 하무백을 설득하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든 하설란이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고 싶었다.
“산월마림은 이름 그대로의 마림입니다.”
하무백은 하설란이 맹룡대의 교육과정을 마친 이후를 걱정하고 있었다.
“너와 내가 함께 가더라도 말이냐?”
“후우.”
위지군의 물음에 하무백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부가 함께 한다면야.
천하에 위험한 곳이 어디 있을까?
설령 그곳이 마교의 본산이라도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하설란이 산월마경 근처에도 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하무백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렇게 란이의 바람을 들어주고 싶으신 겁니까?”
“너는 오래도록 이곳을 떠나있으니 모를 게다. 란이가 자신의 천형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고통을 참아왔는지 말이다.”
“…….”
하무백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말로 그는 그것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그 힘든 것을 참고 버텨 이제야 보통 사람 같은 건강을 찾은 아이다. 무려 열일곱 해의 세월을 잃어버리고서야. 이제라도 란이가 자기가 원하는 삶에 그 발을 내디뎠으면 싶구나.”
“…….”
하무백은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천천히 생각해 보거라. 아직 시간은 남았으니.”
사부의 말속에 담긴 뜻을 알 수 있었다.
남은 시간 동안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란이를 데리고 가라는 뜻.
“후우. 일단 남은 일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피를 씻어냈더니, 이번에는 심마가 자리했다. 여동생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심마가 된 것이다.
하무백은 천천히 자신이 만든 장검의 연마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거친 숯돌로 만든 커다란 바퀴를 발로 돌려가며 갈았다.
어느 정도 초벌 연마가 끝난 이후로는 바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숯돌에 올려놓고 천천히 검을 움직일 뿐이다.
슥. 슥. 슥.
낮은 소리가 대장간에 울릴수록 검은 점점 더 예리해져 갔다.
하무백은 검만 갈아내는 게 아니었다.
검을 갈며 마음속에 자리한 심마도 조금씩 갈아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음을 자신 또한 알고 있었다. 저 불쌍한 아이가 그리도 원하는 것이니, 들어줄 수밖에 없음을.
그 바람을 들어준 이후가 걱정이 되어 심마가 되어 자리한 것이다.
온갖 나쁜 상상들이 하무백의 가슴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았다.
너무 과한 걱정이라 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전쟁 중에 하무백에 본 인간 군상들이 지옥의 야차나 나찰과 다름이 없는 것들이다.
아니, 악마라는 존재가 어쩌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도 마찬가지였다.
정천맹의 그 추악한 권력 투쟁. 자신 역시 거기에 휘말려 교룡관으로 간 것 아니던가.
그곳에서 피 냄새를 좀 씻을 수 있었기에 그에게는 전화위복이 된 것이지만.
부모님의 복수를 위해 출도했던 지난날은 하무백 그에게 심각한 인간 불신을 안겨 주었다.
‘이건 운뢰 녀석의 것.’
지금 예리하게 갈고 있는 검을 보며 잠시 한 아이를 떠올렸다.
그와 동시에 입가에 가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게 심마의 일부가 갈려 나갔다.
교룡관 맹룡대에 와서 만난 다섯 아이.
그중 한 녀석은 무슨 수작이 부려져 있어 보였지만, 그것마저 귀여워 보였다.
그 아이들과 보낸 세 달의 시간은 하무백에게 나름의 휴식과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
귀찮아하는 티를 팍팍 냈지만, 하무백은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으니, 무량환이라는 영단을 그 아이들에게 먹인 것이다.
며칠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새 검 다섯 개를 모두 갈았다.
순백으로 빛나는 검신은 시릴 듯한 한기를 머금은 채, 무엇이든 베어낼 수 있는 예리함을 은은히 비추고 있었다.
하무백의 두 눈도 그만큼 맑아져 있었다.
피 냄새를 모두 뺀 후 들어앉은 심마도 모두 갈아냈다.
지난 석 달의 시간을 반추한 덕이다.
그와 동시에 가슴 한 곳에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교롱관 맹룡대에서 다섯 사람을 가르치면서 느꼈던 감정들, 심마를 갈아내며 느꼈던 감정들. 그것들이 무언가의 깨달음이 되어 하무백을 자극하고 있었다.
하무백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내면을 관조하며 운공을 시작했다.
얼마나 깊은 곳까지 들어갔을까. 그것을 인지한 순간 하무백은 천천히 의식의 바깥으로 빠져나왔고, 이윽고 두 눈을 떴다.
“끌끌. 이제 끝냈느냐?”
위지군이 한쪽에 앉아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습니까?”
“네 녀석이 검을 벼리는데 닷새, 그리고 운공에 들어가고 또 닷새. 열흘이 흘렀구나.”
“그렇군요.”
하무백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란아.”
“네? 네. 오라버니.”
대장간 입구를 틈만 나면 기웃거렸던 하설란이다. 이곳에서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두문불출하는 오라버니가 걱정된 탓이다.
사부께서는 오라비에게 중요한 순간이니 방해하지 말라 하셨지만, 어찌 걱정되지 않을까.
사람이 열흘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것을.
그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자꾸나.”
“네?”
열흘 만에 자신을 부른 오라버니의 첫 말이었기에 언뜻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내 알 수 있었다.
“오, 오라버니.”
“내가 지내고 있는 무창. 그곳에 같이 가자꾸나. 맹룡대는 차차 생각해 보기로 하고.”
예상했던 말에 하설란의 두 눈이 붉게 물들었다.
온갖 복잡한 감격이 뒤섞여 몰려온 탓이다.
무어라 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마저 뒤죽박죽으로 엉켜 들었다.
“네…….”
그랬기에 그녀는 짧은 대답만 간신히 할 수 있었다.
“으차. 그럼 짐 정리해야겠구나.”
앉은 자리에서 일어난 위지군이 허리를 툭툭치며 말했다.
하무백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왜 그러느냐? 그럼 설마 이 늙은이 혼자 이곳에 놔두고 가려 했더냐?”
“아닙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그 짧은 한마디면 되었다.
위지군은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아, 그리고 축하한다. 이제는 이 늙은 몸으로는 네 놈을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고는 대장간을 빠져나가는 위지군.
“란아. 너도 정리할 거 정리해야지.”
하무백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닷새간 미동도 하지 않은 몸은 여기저기가 삐걱거렸다.
“오라버니!”
그런 하무백에게 하설란이 달려와 안겼다.
그리고 오라비의 가슴섶에서 그야말로 서럽게 울었다.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려온 것이다.
하무백은 가만히 그녀의 등을 토닥여 줄 뿐이다.
***
늦여름의 더위가 심상치 않았다.
뙤약볕에 절로 땀이 줄줄 흐르는 날이다.
그럼에도 하설란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오늘이 이 섬을 떠나는 날이었으니.
거처는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언제고 다시 올지도 모르는 곳이었기에, 대부분의 것들을 그대로 뒀다.
정말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정리해서 등짐으로 만들었다.
하무백과 위지군이 각기 등짐을 하나씩 매고 있었다. 하무백은 그 위에 가져왔던 혁낭도 올렸다.
“이제 가자꾸나.”
위지군이 앞장서 나룻배에 올랐다. 천천히 배를 저어 섬을 벗어났다.
군도에 펼쳐진 진법은 그대로 두었다.
유지보수를 하지 않은 채로 얼마나 버틸지 몰랐으나, 찾는 이도 얼마 없는 곳이니 아마 긴 시간 그대로 있으리라.
저 섬은 하설란의 기억의 시작과 함께하는 곳이다.
떠나서 좋았으나, 후일 그립기도 할 곳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 좋기만 한 곳은 아니니 말이다.
그리워지면, 가끔 돌아올 수도 있어야 했기에, 저렇게 두고 떠나는 것이다.
고향.
청란도. 저곳은 그녀에게는 고향이었으니.
무창으로 향하는 여정은 순조로웠다.
하나하나가 새롭고 신기하고 흥미로운 하설란을 제외하고는.
그녀의 두 눈은 항시 샛별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여기가 악양루로군요!”
동정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3층 창가 자리에 앉아 하설란은 감탄을 흘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 악양루가 문을 여는 시간에 곧장 찾아 겨우 잡은 자리다.
이미 1층에서 3층까지 만석이었다.
하무백은 그녀의 곁에서 무심히 앉아 있었다. 이미 몇 번 오른 적이 있는 터였다.
하지만, 하설란은 책에서만 보았던 곳.
그곳을 직접 오른 지금 그녀의 얼굴에는 감격만이 가득했다.
몇 가지 요리가 식탁 위에 올라왔다.
하나같이 맛있었다.
하설란은 멋진 동정호의 풍경과 맛있는 요리에 취해 한참을 그리 앉아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위지군의 말에 하무백은 싱긋 웃었다.
“제가 사부님 걱정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다만 어찌하실지 알아두어야 저도 란이 문제로 움직이기 편할 듯해서요.”
“맹룡대라는 곳에 들어가는 것은 허락 하는 게냐?”
위지군의 물음에 하무백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짧은 대답.
그러나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하설란의 목이 획 돌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오라버니!”
기대도 하지 않았던 허락이 이곳에서 떨어질 줄이야.
“다만, 내가 항상 지켜보고 있을 거다.”
하무백의 짧은 말.
“그럴 수는 있고?”
위지군의 물음에 하무백이 대답했다.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미 그곳에서 보낸 석 달 남짓한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파악한 바로는 마음먹고 은신한 하무백 자신의 기척을 알아챌 인물은 교룡관에는 없었다.
“흐음. 그렇다면, 나도 그 교룡관이라는 곳에서 일거리를 구해야겠구나.”
“네?”
“잡일 하는 자리 정도는 있겠지. 네가 혼자 지켜보는 것보다는 나도 함께하는 게 훨씬 낫지 않겠느냐. 허허허.”
웃음을 흘리며 수염을 가만히 쓸어내리는 위지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