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39화 (39/312)

39화. 오늘 일진이 도대체……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흠. 여기란 말이지? 교룡관.”

상쾌한 공기보다 더욱 상쾌한 목소리를 흘린 한 여인이 교룡관 정문에 서서 현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이 자못 의미심장했다.

“어쩐지……. 웬일로 장기 휴가를 준다 하더니, 그사이에 이리로 도망을 왔단 말이지? 훗. 그런다고 내가 놓칠 줄 아는 건지…….”

여인은 자신의 가슴 위에 잠시 손을 올렸다. 그 품속에는 전출 명령서가 있었다.

앞으로 이곳 교룡관에서 일하게 해줄 명령서다.

새로 온 단주는 대놓고 자신을 싫어했다. 교룡관으로 보내달라고 할 때 어찌나 기뻐하던지. 그 모습에 짜증나서 그냥 계속 호천단에 있을까도 싶었지만, 그건 안 될 말이었다.

다만, 제동을 건 것은 다른 이들이었다.

단주가 바뀐 직후에 한 달의 장기 휴가에서 복귀한 부단주까지 바뀌면, 단의 업무가 제대로 인수인계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다른 부단주가 한 명 더 있음에도 자신을 붙잡고 굴렸다.

아니 그 부단주가 가장 질척거리며 자신을 붙잡았다. 정말 웬수같은 동료였다.

“길었다. 정말.”

잠깐의 회상을 마친 여인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짧게 중얼거렸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인수인계를 진행했지만, 망할 단주 놈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떠난 상태였다.

거기에 새로 온 단주 놈은, 그녀의 관점에서는 그저 권력욕에 눈이 멀어 능력도 안 되는 얼치기가 줄을 타고 내려왔고.

결국 고생은 그녀가 다 해야 했다.

다른 부단주가 하나 더 있었지만, 그녀 기준에서는 그놈도 일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단의 일보다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린.

그 힘든 고난의 길을 끝내고, 드디어 전출 명령서를 가지고 이곳 교룡관에 온 것이다.

“방년 서른의 여인이 한을 품으면 어찌 되는지 내가 똑똑히 보여주겠어.”

방년(芳年) 서른?

방년과는 전혀 맞지 않는 나이를 당당히 중얼거린 여인이 교룡관의 정문을 지나쳐 들어갔다.

교룡관주 팽도율은 난감한 얼굴로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여인을 바라보았다.

‘이거 자꾸 거물들이 찾아오는구만……. 난감하게.’

눈앞이 여인은 비록 연배는 자신보다 한참 아래일지라도 그 능력은 그렇지 않았다.

여인의 몸으로, 불과 서른의 나이에 맹주의 호위를 담당하는 호천단의 두 부단주 중 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은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방증이었다.

사실 거기에 더해 배경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 두 번의 전쟁으로 새로이 주요 신세력으로 떠오른 신진팔문, 그 중에서 빙천궁 출신이었으니.

‘오히려 아무런 배경도 없이 호천단의 단주를 차지한 그 친구가 진정 괴물인 거지.’

차를 한 모금 넘기며 팽도율은 이 자리에는 없는 이번 사태의 원흉을 떠올렸다.

“관주님?”

여인이 아무런 말도 없는 팽도율을 불렀다.

“허, 한 부단주 같은 거물을 맞이하다 보니, 내 생각할 것이 많아 잠시 실수를 했네. 이해해 주시게.”

“어머? 이미 전 단주님도 만나셨을 텐데, 제까짓 게 거물이라니요. 게다가 더 이상 부단주 같은 것도 아니고, 이제 관주님 휘하의 교관일 뿐인걸요.”

한 부단주라 불린 여인, 한설빙(寒雪氷)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분명 밝게 웃고 있는데, 왜 팽도율은 오한을 느끼는 것일까.

“뭐, 알겠네. 그럼 한 교관이라 칭하도록 하지. 원하는 곳은 당연히 맹룡대겠지?”

“감사합니다.”

팽도율의 물음에 바로 감사의 인사를 건네며 웃는 그녀.

이번 웃음에서는 다행히 아무런 한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

팽도율은 당당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자신의 조카를 난감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제 겨우 점심을 먹고 노곤한 몸을 기분 좋은 낮잠으로 추스르려던 참이다.

그때, 아버지와 형님의 서찰을 가지고 들이닥친 조카다.

가문의 장손이자, 골칫덩이인 팽군호.

그래서 형님이 밖으로 돌리지 않던 아이였는데, 이렇게 교룡관에 나타나다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침 댓바람부터 엄청난 인물의 방문을 받았기에 심적으로 피곤하던 차에, 이번에는 폭탄이 하나 굴러 들어왔다.

“끄응. 그러니까 교룡관에 입관하고 싶다고? 그것도 맹룡대에?”

“네. 숙부.”

팽군호의 대답에 팽도율은 인상을 찡그렸다.

“관주님.”

“네? 에이, 숙부. 저희 사이에 그런 딱딱한 호칭은 좀…….”

“네가 교룡관에 들어오기 싫은 게로구나. 내가 네 숙부인 것은 팽가에서나 그런 것이고 이곳은 교룡관이다.”

“할아버지가 보낸 서찰부터 확인해 주세요. 이숙(二叔).”

팽도율은 다시 한번 인상을 썼다. 익히 알고 있던 터였지만, 저놈은 참 한결같이 싸가지가 없었다.

'이게 다 아버지 때문이지…….'

가문의 장손이라고 팽군호를 항상 싸고돌던 자신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덕분에 아버지인 큰 형님마저 저놈을 어찌하지 못했으니.

여전히 느긋한 자세로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조카놈.

가주의 절대적인 비호를 받고 있으니 저리된 게다.

팽도율은 애써 무시하고 아버지의 서찰을 펼쳤다.

그리고 다시 소가주인 형님의 서찰을 펼쳤다.

‘흐음.’

팽도율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주제도 모르고 남궁지후에게 경쟁의식을 느끼던 저놈이, 지난 하투제에서 그가 패했다는 소식에 맹룡대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러니 혹여나 맹룡대에 있는 ‘그’의 심기를 건드려 험한 꼴을 당하지 않게 신경을 써 달라는 것이다.

‘형님도 결국은 아버지라는 거지.’

가주인 아버지와, 소가주인 형님의 서찰이 대동소이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차이라면 아버지는 놈이 하고 싶어 하는 대로 최대한 지원해주라는 말이 절반이었다면, 형님은 그저 놈이 ‘그’에게 험한 꼴 당하지 않게 잘 좀 봐달라는 게 전부였다.

눈살을 찡그리는 팽도율.

이 두 사람은 자신이 ‘그’를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지금까지야 조용히 지내고 있다지만, ‘그’가 진심으로 분노한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가정이다.

그리고 지금 팽도율의 눈앞에 있는 저놈이라면 아마 ‘그’를 진심으로 분노케 하는 것도 가능할지 몰랐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아니, 차라리 그렇게라도 정신을 차리는 게 좀 나으려나?’

팽도율이 복잡한 눈으로 팽군호를 바라보았다.

“왜 그리시죠? 숙부?”

다시 한번 튀어나온 숙부라는 호칭. 정말이지 지랄맞게도 말을 안 들어 처먹는 놈이다.

“후반기 일정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정해지면 전갈을 보내마.”

냉랭한 목소리가 팽도율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 네. 뭐, 그럼.”

자리에서 일어난 팽군호가 고개만 까딱하고 관주실을 나섰다. 정말이지 버릇없는 모습이다.

“후우.”

팽도율은 깊은 한숨으로 애써 끓어오르는 화를 삭혔다.

노을이 지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하루가 이렇게 마무리되려 한다는 생각에 절로 피곤함이 몰려옴을 느끼는 팽도율.

그때 관주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저, 관주님. 이런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수하가 추천장 하나를 공손히 내밀었다.

겉면에 쓰인 추천인의 이름이 심상치 않았다. 보자마자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름이다.

“무당 장문인이라…….”

절로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수하를 의식해 애써 참았다.

무당 장문인의 이름을 보고 한숨을 쉬는 교룡관주의 모습을 수하에게 보여 봐야, 뒤에서 구설수에만 오르내릴 뿐이다.

‘오늘 일진이 도대체…….’

솟구쳐 오르는 짜증을 애써 억눌렀다.

“이걸 가져온 이는?”

“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았다.”

팽도율은 편안하게 기대앉았던 다탁의 의자에서 일어나 집무를 보는 책상의 의자에 앉아 추천서를 펼쳐 보았다.

그의 눈은 빠르게 글자들을 훑었다.

‘컥……. 뭐, 이딴!!!’

이번에도 엄청난 인물이 교룡관을 찾았다.

대체 오늘이 무슨 날이란 말인가…….

“밖에 계신 분 모시고 와라.”

팽도율의 명령에 수하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나갔다.

가져온 ‘이’라 칭했던 사람은 이번에는 ‘분’이라 칭하고 있으니.

향긋한 차를 두고 팽도율은 다탁에서 주우명을 마주했다.

“늦은 시간에 이리 찾아뵙는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주우명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아닙니다. 주 공자. 장문인의 추천서를 가지고 오셨는데, 교룡관의 관주로 응당 환영해야 할 일이지요.”

팽도율은 속에 있는 것과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새파랗게 젊은 눈앞의 사내는 현 무당 장문인의 사제다.

즉, 배분만 따지면 비록 다른 문파라 하나, 팽가의 가주인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배분이었다.

즉, 팽도율 자신보다 한 배분 높다는 것이다.

“관주님의 과례가 절 부끄럽게 합니다. 부디 편하게 대해 주십시오.”

“어찌 그러겠습니까? 무릇 강호의 법도라는 것이 있고, 주 공자께서는 무연 진인 어르신의 제자분이 아니십니까.”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이십니다. 소생은 교룡관의 관도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고, 팽 대협께서는 교룡관의 관주이시지 않습니까. 그냥 편히 관도처럼 대해 주십시오.”

“관도가 되신다면 그때부터 그리하면 될 일입니다.”

팽도율의 대답에 주우명은 흠칫했다. 어조가 마치 관도가 안 될 수도 있다는 듯하지 않은가.

“그 말씀은…….”

“아, 어찌 제가 감히 무당의 주 공자를 거부하겠습니까. 다만, 맹룡대를 희망하신다 하여 그 부분에 대한 조율이 좀 있어야 하기에 그렇습니다.”

팽도율의 설명에 그제야 주우명은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원하시는 조에는 배정이 어려울 겁니다.”

“그 부분은 괘념치 마십시오. 가능하다면 하고 싶다는 것이었지, 불가능한 것을 교룡관의 규칙까지 무시하면서 억지로 하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팽도율은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앉아 있는 자세하며, 말하는 예절, 게다가 경우를 제대로 알고 있는 모습까지.

과연 명가의 명사에게 사사받은 인재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빌어먹을 놈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로군.’

오늘 낮에 다녀간 조카 녀석을 떠올린 팽도율은 두 사람을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러운 말씀이군요. 전반기를 마친 후 맹룡대에 결원이 생기기는 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정리를 마쳐야, 추가로 대원들을 모집할 텐데. 그런 절차적인 문제가 마무리되는 대로 사람을 보내 알려 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면 입관 시험은 언제쯤일까요?”

순간, 팽도율은 이 친구는 대체 뭐지 하는 얼굴로 주우명을 바라보았다.

입관 시험이라니?

무당 장문인의 추천서를 가지고 와서, 교룡관주를 독대하고 있는 사람이, 와룡대나 잠룡대도 아니고 고작 맹룡대에 들어가려 입관하는데 그 시험 여부를 묻고 있다니.

경우가 바른 것을 넘어서 순수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맹룡대는 그 특성상 따로 시험이 없습니다. 매년 정원을 채우기도 버겁기에 어지간한 지원자들은 다 받아 주고 있습니다. 물론 정원 이상의 지원자가 있을 경우야, 신체조건 등을 따져서 선발하겠지만 주 공자께서 거기서 떨어지실 리는 없죠.”

“아…….”

“심지어 무공이라고는 익혀본 적이 없는 이들도 들어가는 곳이 맹룡대입니다.”

덧붙인 팽도율의 설명에 오히려 주우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몹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곳이라 들었는데……. 그런 이들까지 받아야 할 정도로 상황이 열악하다니…….”

그의 두 눈이 붉어지기까지 했다.

“허…….”

그런 주우명의 모습에 팽도율은 복잡한 심사를 느꼈다.

명문정파의 제자다운 모습에 감탄을, 그런 이들을 마림으로 보내게 교육하고 있는 교룡관의 관주가 자신이라는 것에 수오지심을.

“그럼 기별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늘은 정말 큰 폐를 끼쳤습니다. 그럼에도 반겨주셔 정말 감사합니다.”

마음이 진정된 것인지, 주우명이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를 하고 떠났다.

팽도율은 덩그러니 혼자 남은 관주실의 의자에 깊게 몸을 묻었다.

노을 졌던 하늘에는 어느새 짙은 어둠이 깔렸다.

“정신없고 힘든 하루였어…….”

진이 빠진 목소리로 팽도율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허나 그는 아직 몰랐다.

진짜 큰 건 아직 오지 않았음을.

그 시각, 하무백 일행이 무창에 들어서고 있었다.

“우와. 오라버니. 이곳이 교룡관이 있는 무창이라는 거죠?”

어둠이 내려앉은 무창에 들어서며 하설란이 잔뜩 들뜬 얼굴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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