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42화 (42/312)

42화. 그럼 저분은?

“아, 그리고 이쪽은 팽군호. 팽가 가주님의 장손자예요.”

이어진 한설빙의 소개에 팽군호가 떨떠름한 얼굴로 까딱 고개만 숙였다.

“팽군호다.”

팽가주의 장손.

그 신분이면, 이곳에 모인 버러지들의 우러름을 한 눈에 받을 거라 여겼건만.

전대 무당제일검의 제자이자, 현 무당 장문인의 사제라니.

그런 엄청난 신분 뒤에 자신의 소개가 이어지니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주우명과 비교하면 무례하기 그지없는 인사였으나, 누구도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아직 주우명의 신분이 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우와, 그러면 배분이…….”

당진산이 무언가 셈해 보려 하자, 어느새 여동생과 함께 다가온 하무백이 말했다.

“너와 평이에게는 사조 뻘이긴 하다만, 그깟 배분 따위가 뭐라고.”

뒷말에는 같잖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하무백이 그러거나 말거나.

“우, 우, 우와! 엄청난 분이 맹룡대에 들어오셨네! 처음 뵙겠습니다. 사조님. 당가의 당진산이라 합니다.”

감탄에 이어진 장난스러움이 가득한 인사다.

“어, 음, 그… 너무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그냥 같은 생도로 편히 대해 주십시오.”

그 인사에 주우명이 당황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칠 조의 조원들은 웃음 지었다.

그들은 당진산이 어떤 인물인지 알기에, 사조님 운운한 것이 그저 장난임을 아는 것이다.

“푸하하! 그래. 알았어. 몇 살이지?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난 스물둘. 나보다 어리면 형님이라 부르고, 저보다 많으시면, 죄송합니다.”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당진산의 모습에 주우명은 다시 한번 당황했으나, 이내 입을 열었다.

“열아홉입니다, 형님.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주우명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려요. 단목운뢰라고 합니다. 열여덟이구요.”

“백리평이…야. 열아홉.”

같은 구파일방 중 하나인 종남 출신인 백리평은 자신의 사조뻘인 주우명에게 말을 편히 해도 되는가란 생각 때문에 잠시간 망설였다.

그러나 칠 조에서 보낸 다섯 달은 그를 조금은 유연하게 만들어 주었다.

“연하민. 열여덟.”

“낙우진이야. 열아홉이고.”

“아, 모두들 잘 부탁드립니다.”

주우명이 다시 한번 칠 조의 모두와 인사를 나눌 때, 당진산이 어느새 다가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에이. 편히 대해달라면서, 정작 본인이 이러면 어떻게 해. 나머지는 친구고 동생인데.”

싱긋 웃는 당진산의 친화력에 주우명의 눈이 잘게 떨렸다.

그 모습을 못 마땅하게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팽군호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 것인지, 지금 칠 조는 자신을 무시하고 있었다.

칠 조의 다섯도 첫 눈에 알아보았다.

팽군호 저 놈은 당추 그 놈 이상 가는 개자식일 거라고.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은 팽군호가 기어코 한 마디 하려고 입을 때려했다.

“이것봐…….”

그러나 그 말을 잇지 못 했다. 당진산이 더 빠른 탓이다.

“그런데 교관님. 그럼 저 분은?”

당진산이 가리킨 곳에는 하설란이 있었다.

“아, 맞다. 하설란. 그 곁에 계산 하무백 교관님의 여동생이라네? 이렇게 세 명이 이십 조야. 앞으로 잘 부탁해. 근처에 있으니 오며 가며 자주 부딪힐 텐데.”

한설빙의 말에 당진산이 묘한 눈으로 하설란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교룡관 맹룡대의 생도시라는 거죠?”

“응.”

당진산은 한설빙을 오늘 처음 봤음에도 제법 친근하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하설란을 향해 있던 당진산의 시선이 하무백에게로 향했다.

“뭐?”

하무백의 물음에.

“집에 가. 그럼, 이걸로 끝.”

언젠가 자신들이 들었던 말을 그대로 하며 당진산이 짧게 대꾸했다.

“응?”

“기억 안 나십니까? 저희 처음 봤을 때, 첫 번째 지시라고 하신 말씀인데?”

한설빙이 재미있다는 얼굴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운뢰에게는 이 년 뒤에 어머니랑 여동생 눈에 피눈물 나게 하기 싫으면 집으로 가라고 하셨죠.”

이어진 당진산의 말.

그리곤 그의 시선이 하무백의 곁에 있는 하설란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그런 곳에 여동생을 데리고 오셨습니까?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뭔가 섭섭함이 가득한 당진산의 물음이 나오자, 칠 조의 다른 네 사람의 표정도 묘하게 변했다.

말은 안 했지만, 사실 그때 얼마나 서러웠던가.

저마다의 사정을 가지고 이곳에 올 수밖에 없어서 왔던 자신들이다.

그런 자신들을 처음 보자마자 여기서 나가라고 내치려 하지 않았던가.

물론 이곳이 그만큼 위험한 곳이라,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해서 그런 것은 알지만.

자신들 역시 맹룡대의 위험함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왔었다. 그래서 다들 가슴 한 곳에 두려움을 안고 억지로 참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 자신들을 보자마자 집으로 가라 했던 교관이다.

그!

교관이!

하계 휴관기를 보내더니, 여동생을 맹룡대에 데려왔다.

정말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당진산의 물음과 나머지 조원 네 명의 시선에 하무백이 일순 당황했다.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었으니.

“그… 그…….”

하무백이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킥. 킥킥. 키키킥.”

그저 한설빙의 웃음소리만 귀에 들릴 뿐.

“자, 그럼 이제 인사도 마쳤으니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칠 조 내부 일도 있는 거 같고.”

그렇게 한 마디를 남기고 한설빙은 생도들을 데리고 바람 같이 사라졌다.

정녕 바람이었다.

칠 조에 커다란 태풍을 남긴.

***

“교관님? 말씀 좀 해주시죠?”

당진산의 목소리가 서늘하다.

연하민의 눈빛이 시리도록 차갑다.

백리평이 묵묵히 무거운 눈빛을 던진다.

단목운뢰는 어딘가 배신당한 표정이다.

낙우진은… 당최 알 수 없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후우. 내 가족 간의 사정일 뿐이다.”

“그래서 그 지옥 같은 마림에서 고기 방패로 소모되는 맹룡대에 어여쁜 여동생을 입관시키셨습니까?”

당진산이 추궁한다.

그 서늘한 목소리에는 어느새 장난기가 깃들어 있었다.

그것을 읽지 못할 하무백이 아니다.

지금 자신이 이놈들에게 말린 것이다.

“후아. 휴관기 두 달 동안 네 놈들은 대체 뭘 한 거냐?”

“교관님. 말 돌리지 마시죠~.”

목소리에 어린 장난기가 더욱 진해졌다.

“됐고. 이거나 받아라.”

하무백이 지금까지 어깨에 매고 있던 길쭉한 혁낭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검집에 잘 갈무리된 검이다.

그것을 한 명, 한 명에게 집어 던졌다.

“어?”

“어어…….”

다섯 사람은 황급히 날아오는 검을 잡아챘다.

“이게 뭡니까?”

단목운뢰가 물었다.

“너희들 검. 뭐, 필요 없다면 돌려주고.”

그 말에 단목운뢰가 가장 먼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에게는 자신만의 병기가 없었으니.

그건 연하민과 낙우진도 마찬가지였다.

백리평과 당진산만이 각기 검과 채찍이라는 자신만의 병기를 가지고 있었다.

“참고로 내가 직접 만든 거다. 그거.”

“아!”

“오??”

하무백은 일단 이렇게 저놈들의 장난 어린 추궁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이것.”

그리고 날아가는 목함 다섯 개.

목함을 받아든 다섯 사람의 얼굴에 묘한 두려움이 어렸다.

꼭 단환 하나 들어있기에 적당한 크기와 형태의 목함이다.

지난번에는 종이에 아무렇게나 싸인 것을 건네긴 했지만.

한 번의 경험은 그들에게 깊은 정신적 외상을 남겼다. 단환이 떠오르는 목함에 절로 불안함이 엄습했다.

“서, 설마…….”

“이거…….”

목소리도 떨렸고, 눈도 떨렸다.

“왜들 그래? 그거 몸에 굉장히 좋은 건데. 지난번에 한 번 경험해 봤잖아. 두 달 정도면 슬슬 약발 떨어질 때 됐으니까 한 번 더 먹어야지.”

하무백이 쐐기를 박았다.

설마 했던 그게 사실이라도.

다섯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안 먹을 수도 먹을 수도 없었다.

한 번 한 것, 두 번을 못 할까 싶지만.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먹으라니 먹은 거다. 어떤 건지 알고 있으니 더 두려웠다.

“뭐, 강요는 안 한다. 강해지고 싶으면 먹는 거고, 아님 말고. 다른 사람 주려면 줘도 되고.”

하무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슬며시 몸을 돌렸다.

“어디 가십니까?”

“응? 오늘은 여기서 끝. 첫날인데, 뭘 그리 열심히 해. 본격적인 수업은 내일부터다.”

하무백이 새삼스레 뭘 그러냐는 얼굴로 말했다.

“아, 그리고 참고로 내 여동생은 보름 전에 그거 먹었다.”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하무백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남겨진 자들.

다섯은 둥그렇게 모여 앉아 각자의 앞에 놓인 목함을 복잡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자신들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제 여동생에게도 먹인 인간이다.

아니, 제대로 따진다면 이런 영약을 준 것이니 몇 번을 감사해도 모자를 지경이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젠장. 맛이나 좀 좋게 만들던지. 아니 많은 걸 바라지도 않아. 그냥 쓰기만 해도 얼마든지 먹겠어.”

당진산이 진심을 담아 투덜거렸다.

“그게 고삼(苦蔘) 정도라도?”

문득 궁금한지 낙우진이 물었다. 그는 가끔 이런 엉뚱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당진산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너라면 이거랑 같은 효과인데 맛은 고삼인 단환이 있고, 이게 있으면 뭘 먹을 건데?”

“아.”

낙우진은 작은 탄성을 흘렸다.

우문이었다.

자신이라도 고삼맛을 먹을 거다.

그게 훨씬 낫다.

말로 표현조차 불가능한 빌어먹을 맛.

딸깍.

그때 목함을 여는 소리가 났다.

연하민이다.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환을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망설이면 더 괴롭다는 것은 아는 것이다.

태어난 이래 무언가를 이리 빨리 씹어본 적이 없을 정도의 속도였다.

이어서 단목운뢰가 두 눈을 질끈 감고 단환을 입에 넣었다. 그는 강해져야만 하는 절박함이 있었다.

사실 강해지는 길을 두고 이렇게 망설였다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그 다음은 백리평이었다.

그리고 낙우진과 당진산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씨발.”

“젠장.”

욕설이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흘러나오고 이내 단환을 입에 넣고 빨리 씹었다.

단환을 삼킨 다섯은 곧장 운공에 들어갔다.

지난 두 달 동안 엄청나게 늘어난 내공이 기맥을 힘차게 내달린다.

다섯은 동시에 체감했다. 내공이 쌓이는 양이 제법 더 늘었다.

두 번째는 처음과 달랐다. 처음에는 복용 직후에는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했었으니.

그렇잖아도 최근에 내공이 쌓이는 양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끼던 차였다.

하무백이 말한 대로 약발이 떨어지는 것을 체감한 것이다.

그런데 처음 복용했을 때보다 더 많은 양이라니.

이러니 강해지고 싶으면 먹으라고 한 게다.

정말이지 미치도록 밉지만, 또 밉지 않은 교관이다.

다섯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수업이 없는 이유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칠 조 조원 모두 운공 삼매경에 빠져 있었으니.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어느새 해가 중천이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어 연무장 곳곳이 작게나마 소란스러워졌다.

다들 식사를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칠 조 다섯 사람도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향했다.

그러던 길에 이십 조의 사람들을 마주쳤다.

한설빙 교관이 직접 데리고 움직이고 있었다.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지나려던 찰나.

당진산이 우뚝 멈춰서더니, 이십 조를 향해 몸을 돌렸다.

“저, 실례합니다만, 하 소저?”

갑작스런 부름에 이십 조 전원이 멈춰 섰다. 특히나 한설빙의 눈이 살짝 매서워졌다. 자신이 있는데 개수작 부리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경계는 하는 모습이다.

“네? 무슨 일이세요?”

하설란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저, 무례한 물음일 수 있습니다만… 교관님께 듣기로, 그 저, 소저께서도 그 단환을…….”

“아!”

당진산이 무얼 이야기하는지 깨달은 하설란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네. 보름쯤 전에 복용을 했어요.”

“그, 저, 괜찮으셨나요? 그 괴롭지는 않으셨는지…….”

돌아온 물음에 하설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전 잘 모르겠어요. 사부님께서 미각이랑 후각을 마비시키는 혈을 점하고 복용을 시키셔서…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뒤에서 기다리는 교관과 조원 때문인지, 당진산이 원하는 답을 주고는 꾸벅 인사를 하고는 조원들에게 빠른 걸음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대답에 칠 조 다섯은 그대로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간단한 방법이…….

자신들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아니, 애초에 교관은 왜 그 방법을 알려 주지 않았을까.

“젠장! 역시 빌어먹게도 미울 수밖에 없는 교관이야!”

당진산이 울분을 담아 씹어 뱉듯 중얼거렸다.

이번만은 나머지 네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끌끌. 재미나게 지내고 있었구만 그래.”

멀리서 비질을 하던 건장한 체구의 노인이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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