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44화 (44/312)

44화. 하찮은 놈들이

“내가 이 버러지 새끼들을 진짜…….”

울분에 차서 중얼거리는 팽군호의 말.

그와 같은 식탁에 앉은 이들은 그것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들 모두 팽씨 성을 가진 팽가의 인물들.

그런 그들에게 팽군호는 감히 어찌할 수 없는 존재였다.

적어도 이곳 교룡관에서 팽씨 성을 가진 사람들 중 팽군호에게 마음 가는대로 대할 수 있는 이는 관주뿐일 것이다.

점심 식사가 시작될 무렵 갑자기 나타난 팽군호다. 눈치 빠른 몇몇 녀석은 멀리서 그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재빨리 담룡서각을 그냥 지나쳤지만, 이미 식탁에 앉은 자신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접시에 담긴 음식이 그대로 있었으니. 결국 팽군호가 그들이 앉은 자리에 털썩 앉아서 일 각 내내 욕을 하는 것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음식을 한 젓가락도 먹지 못했음은 당연했고.

더해서 이곳에 자리한 잠룡대 생도들의 못마땅한 시선도 감수해야 했다.

마치 이곳이 제 것이라도 되는 양 떠드는 팽군호 때문이다.

‘이런 새끼가 차기 소가주라니…….’

팽씨 생도 세 사람은 똑같은 생각을 가슴 속에 묻었다.

팽가에 있을 때도 익히 소문을 들었지만, 이곳에서 실제로 겪은 녀석은 소문보다 더했다.

다른 문파는 자의로 나갈 수라도 있지. 물론 그것도 굉장히 힘들 일이지만.

자신들은 태어날 때부터 팽씨였기에, 가문을 벗어날 수도 없다.

이곳에서 이 놈을 보고 있자면, 지금 당장 보다는 자신들이 훗날 몸 담고 강호행을 해야 할, 팽가라는 자신들의 가문에 대한 걱정이 절로 생겼다.

남궁세가의 후계자인 남궁지후가 잠룡대다. 비록 그와 같은 조는 아닐지라도, 먼발치서나마 그의 언행을 지켜봐 왔던 그들이다.

그와 절로 비교가 되니 팽가의 미래가 암울하게 다가올 뿐이다.

탁.

그때 누군가 젓가락을 식탁에 세차게 내려치듯 놓는 소리가 울렸다.

“정말. 조용히 밥도 못 먹게. 꿍얼꿍얼. 사내가 쪼잔하게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 거지?”

면사를 썼으나, 그걸로는 그녀가 가진 아름다움을 모두 가릴 수가 없는, 연난화 남궁지유였다.

평소 이런 일로 나서거나 하는 것을 꺼려하는 그녀다.

항시 냉철하고 이지적인 모습을 유지했다.

그런데 팽군호가 그 신경을 거슬린 것이다. 아마 그 내용이 맹룡대 칠 조에 관한 것이라서 일 게다.

“응? 이건 또 뭐야?”

본래 잠룡대가 모여 있는 담룡서각에서는 그래도 선을 넘지 않는 언행을 보였던 팽군호다.

하지만 지금은 맹룡대 칠 조에 대한 욕을 하며 흥분하고 있던 탓인가.

대번에 상대를 향해 무례한 언사가 터져 나왔다.

그 모습에 함께 있던 세 사람이 기함했다.

그들이야 상대가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봤으니까.

아무튼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지금 밖에서는 아주 콸콸 새고 있었다.

“대공자. 잠시…….”

셋 중 하나가 다급히 팽군호의 소매를 잡았다.

“시끄러!”

그런 상대를 향해 버럭 노성을 터트리는 팽군호.

“그나저나 생긴 게 제법 반반한 모양인데? 면사로 가렸는데도 미색이 제법이야?”

그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함께 있는 세 사람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담룡서각에도 일순 침묵이 내려앉았다.

순식간에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고요함.

그 분위기에 그제야 팽군호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찰나.

“네 놈.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가만히 앉아있는 그녀를 대신해 곁에 있던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남궁지후였다.

그의 두 눈이 분노로 가득했다.

“하. 네 놈은 뭐냐?”

분위기가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이미 내지른 참이었기에 팽군호는 억지로라도 강한 모습을 보이려 했다.

“남궁지후.”

돌아온 짤막한 대답에 팽군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마치 천년빙굴에 들어온 듯한 공기가 담룡서각 일 층을 지배했다.

“방금 전 네 놈의 그 발언은 우리 남궁가에 대한 팽가의 공식적인 입장이라 봐도 되겠는가?”

“그, 그, 그게… 나, 나는…….”

서릿발 같은 남궁지후의 기세에 팽군호는 말을 제대로 잇지를 못했다.

지난 하투제가 끝난 후, 휴관기를 보내고 온 남궁지후의 기세가 이전에 비해 패도적으로 변하기도 했다.

“쯧.”

그때 어디선가 혀 차는 소리가 들리며, 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던 한기를 몰아냈다. 당연히 사람들의 시선이 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교룡관주 팽도율, 그리고 맹룡대 칠 조 교관 하무백이었다.

팽도율은 지난 담룡각 사건 이후 이렇게 불시에 교룡관 내 담룡각을 불규칙적으로 방문하고 있었다.

오늘은 식사나 함께 하자며 하무백과 함께 걸음한 것이고.

그러던 중 이 상황을 보게 된 것이다.

정말이지 한 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심한 놈이다.

“내가 저놈의 불손한 언행을 사과하겠네. 남궁 공자와 남궁 소저는 부디 노여움을 거둬주시게.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가문의 어른인 내 잘못이네.”

팽도율이 포권을 하며 살짝 허리를 숙였다.

교룡관주의 직접적인 사과에 남궁지후도 더는 무어라 할 수가 없었다.

“아닙니다. 관주님. 과례를 거둬 주십시오.”

남궁지후가 마주 포권을 하며 허리를 숙였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남궁지유도 함께였다.

“고맙네.”

인사를 하며 팽도율이 허리를 세웠다. 그리고 분노에 가득찬 그의 시선이 팽군호에게로 향했다.

지은 죄가 있던 지라 움찔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만 처먹고 네 놈 연무장으로 가서 찌그러져 있어라.”

사납게 울부짖는 듯한 팽도율의 말에 팽군호는 이번만큼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담룡서각을 벗어났다.

“쯧.”

다시 한번 혀를 차는 팽도율.

“미안하네. 같이 식사나 하자고 하고선 못난 모습을 보였구만.”

“뭐, 괜찮습니다만… 저 놈…….”

“왜 그러나?”

심상치 않은 하무백의 목소리에 팽도율이 걱정 어린 기색으로 물었다.

“죽여도 됩니까?”

훅 들어온 물음에 팽도율은 대경했다.

“그 무슨 끔찍한 소리인가?”

“지금 저놈 하는 꼴을 보니 조만간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아서 그럽니다. 저런 놈 목숨이라도 소중하다 싶으시면 그냥 팽가로 돌려보내시지요.”

음식을 그릇에 담으며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하무백이었다.

“끄응.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있으면 자네 팽가와 전쟁을 벌여야 하네.”

피식.

그 말에 하무백은 작은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소리에 팽도율은 등이 땀으로 축축 젖어드는 걸 느꼈다.

“그러면 더더욱 교룡관에서 내보내야겠군요.”

스산한 음성이다.

그 목소리에 팽도율은 무참히 박살난 팽가의 현판 보고 있는 듯한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저 빌어먹을 놈이 더는 사고를 치지 말아야 할 텐데… 안 되겠어.’

팽도율은 식사를 하는 와중에, 오늘 있었던 일을 최대한 부풀려 본가에 급보로 보내야겠다 마음먹었다.

남궁세가와 분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아무리 아버지시라 하더라도 저 빌어먹을 녀석을 다시 불러들이시겠지.

기실 저놈이 뜬금없이 이곳에 이러고 있는 것도 아버님이 너무 오냐오냐한 탓이었으니.

***

담룡서각에서 무참한 꼴을 당한 팽군호와 달리 담룡동각에서 즐거운 식사를 마친 칠 조의 조원들과 주우명, 그리고 하설란이었다.

곧 있을 오후 수련을 위해 연무장으로 가던 중,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연무장 한쪽에 걸터앉아 있는 팽군호를 발견했다.

현재 그의 심사는 잔뜩 뒤틀려 있었다.

이곳에서 칠 조와 주우명 때문에 언짢았던 심사가, 담룡서각에서 남궁지후, 남궁지유 덕분에 더욱 타올랐다.

마지막으로 팽도율의 호통이 그 베베꼬인 심사를 폭발 직전으로 몰고 갔다.

지금.

이곳에서 기분 좋게 웃으며 걸어오는 연놈들을 보자 마침내, 그것이 폭발했다.

“씨발 좆같네. 진짜.”

일곱 사람 모두 명백히 자신들을 향한 욕설임을 알 수 있었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뭘 그렇게 꼬라봐? 하찮은 놈들이.”

지금 팽군호는 완전히 눈이 돌아버렸다.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제멋대로 굴든 팽가에서와 달리, 이곳에서는 자신을 속박하고 얽매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 속에서 한 달을 버텼다.

애초에 글러먹은 그의 인성이 임계점을 향해서 서서히 차오르고 있던 차.

오늘 결국 이 사달이 나버린 것이다.

“헹. 무당제일검의 제자?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면 뭐하나. 부모 새끼가 누구였는지도 모르는 거렁뱅이 고아였던 하찮은 놈 주제에.”

주우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다른 이들이 대경한 얼굴로 팽군호와 주우명을 번갈아 보았다.

그런 반응에 피식 웃는 팽군호.

“근본도 없는 하찮은 것들이 한데 모여서는 무슨 그딴 얼굴들을 하고 있는 게냐? 응? 그리고 계집 너. 얼굴만 반반하면 다냐? 훗. 어디서 굴러먹다 온 것인지도 모를 년이 웃음이나 실실 흘리고.”

이번엔 화살이 하설란을 향해 날아갔다.

그의 시선이 명백히 하설란을 향해 있었다. 그 순간 하설란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녀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모욕이었다.

막, 팽도율이 서둘러 본가에 급보를 보내려 자신의 집무실로 향하던 차에 벌어진 일이다.

팽군호가 시선을 옮기며 찬찬히 눈앞의 일곱 사람을 살폈다.

“흥. 그나마 근본 있는 놈은 딱 한 놈뿐이군.”

그의 시선이 당진산에게 머물러 있었다.

“근본 없는 것들 치고는 제법 미모가 괜찮은데. 어떠냐? 이 공자님을 모셔볼 생각은 없느냐?”

그리고는 킬킬거리며 웃는 팽군호.

하설란과 연하민의 얼굴이 수치심에 새빨갛게 물들었다.

연하민은 전반기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대체 명문가라는 곳의 남자 새끼들은 왜 저런 놈들이 이리도 많을까.

이를 악물고 한 발 나서려던 찰나.

“네 이놈!!!”

어디선가 커다란 노호성이 들린다 싶은 순간.

휭~

세찬 바람이 불었고.

퍽.

둔탁한 격타음과 함께 팽군호가 땅에 처박혔다.

갑작스레 일이 벌어진 상황.

일곱 사람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눈을 꿈뻑거리는데.

눈앞에 거대한 등짝이 보였다.

그 위로는 새하얀 백발이.

어디선가 본 듯한 뒷모습이다.

“아…….”

가장 먼저 알아본 이는 하설란이다.

당연한 일이다. 어찌 사부의 뒷모습을 못 알아볼 수 있으랴.

“하는 행동마다 개차반 같더니,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그게 입이더냐, 아니면 똥통이더냐.”

분노에 가득 찬 호통이다.

갑작스런 그의 난입에 여섯 사람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 위 어르신???”

주우명이 깜짝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냥 위(慰) 노인이라 불러달라던 덩치 큰 노인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를 보라.

어마어마한 기세가 그의 몸 주변에서 폭풍같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가 줄기줄기 뿜어내는 기운은 기감에 민감한 이라면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는 느낄 수 있을 만큼 강맹한 것이었다.

가장 먼저 이를 느낀 것은 당연히 하무백이었다.

“사부?”

우연히 만난 팽도율에게 붙들려 담룡서각까지 다녀온 하무백이, 이제 자신의 숙소에서 느긋이 쉬려던 찰나 그 기세를 느꼈다.

느꼈다 싶은 순간, 바람 같이 움직였다.

사부가 이토록 강맹한 기세를 뿜어낼 일이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설란.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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