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45화 (45/312)

45화. 일어날 수 있겠나?

팽도웅은 언짢은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눈앞에 보이는 교룡관이라는 현판.

고작 사촌 조카 놈 때문에 자신이 폐관수련을 깨고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팽도웅.

그는 현 팽가제일도였다.

보름 전쯤 교룡관주인 팽도율이 보낸 서신이 팽가에 도착했다.

그 서신을 확인한 소가주 팽도원이 자신의 폐관수련실 문을 거의 부수듯이 열고 들어왔다.

아직 수련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그의 간곡한 부탁에 팽도웅이 마지못해 폐관을 마쳤다.

애초에 마음에 들지 않는 당질(堂姪)녀석이었다.

그런 놈 때문에 자신의 수련이 중단된다는 것이 몹시 짜증이 났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팽군호. 그 자식은 어쨌든 팽가의 장손이었으며, 팽가의 가주이자 자신의 백부(伯父)인 팽무량까지 나섰음에야.

그러게 왜 그딴 사고뭉치를 교룡관에 보내놨단 말인가.

어쨌든 자신의 임무는 교룡관 내에서의 팽군호에 대한 신변 보호였다.

이것도 편법을 사용한 것이다.

애초에 생도의 신변 보호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교룡관 생도로 있는 명문거파의 제자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개인 수신호위가 허용된다면 그들 모두 호위무사를 대동하고 올 것이고, 그러다가는 생도보다 호위무사들이 더 많아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생도 개인에 대한 수신호위는 엄격히 금지된 사항이다.

지금 백부는 그 규칙을 어기려 하는 것이다.

편법을 통해서.

팽도율이 교룡관주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현재 팽도웅은 팽군호의 수신호위로 교룡관에 온 것이 아니다.

팽도웅은 교룡관 내의 안전을 담당하는 임시직 호법으로 잠시 교룡관에 파견을 온 것이다. 그것도 교룡관주의 직접 요청에 의해서.

어디까지나 명목상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주구장창 팽군호 주변을 맴돌아야 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짜증 나는군.”

막 수문위사에게 신분 확인을 마치고 정문을 넘어선 참에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그때. 그의 기감에 잡히는 기운이 있었다.

제법 거리가 있어서 긴가민가했지만, 이 정도의 자극이라면 보통 강한 기운이 아니었다.

팽도웅 정도의 고수가 되니까 느낄 수 있는 기운이었다.

“호오? 이런 기운이라니? 무슨 일이지?”

교룡관은 그도 한창 혈기왕성하던 시절 잠시간 머물렀던 경험이 있었다.

이 방향은 분명 연무장 쪽이다.

“그것도 맹룡대가 주로 쓰는 곳인데…….”

그런 곳에서 이런 강한 기운이 느껴질 이유가 없었다.

호기심이 동했고, 팽도웅의 걸음은 관주실이 아닌, 기운의 근원지를 향했다. 명목상 그의 직책으로서도 반드시 확인해봐야 할 일이다.

어쨌든 교룡관의 안전을 책임지는 호법이었으니.

그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

시간이 멈췄다.

그런 걸로만 보였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움직임과 사고가 정지해 있었으니.

오직 팽군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성만이 실제로 시간이 멈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니, 그보다 무시무시한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내고 있는 저 노인의 모습이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명백히 알려주고 있는지도 몰랐다.

“허…….”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과 함께 들리는 탄식성.

언제 나타난 것일까?

누구도 그의 접근과 등장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어느새 하무백이 나타나 있었다.

그의 등장과 함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하무백의 물음에 위 노인이 돌아보았다.

“왔느냐?”

그리 말하는 위 노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살기가 조금 잦아들었다.

칠 조와 이십 조의 생도들의 눈에는 의구심이 어렸다.

저 두 사람은 알고 있던 사이인가? 무슨 관계이지?

후반기 시작 이후 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 생도들이었다.

“이 개잡놈이 지껄인 소리를 네가 들었다면 당장 저 빌어먹을 쓰레기 새끼의 목부터 베었을 게다.”

분노가 가득한 목소리다.

사부의 말에 하무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예상은 한 치도 빗나가지 않는다.

아니, 하나 빗나갔다.

설마 오늘 이런 일을 저지를 거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 했으니.

그래도 팽도율에게 물었던 대로 저 놈을 죽여야 할까 생각할 만한 일을 저지른 게다.

[저 개잡놈이 말이다.]

생도들을 의식해서인가?

위지군은 전음으로 조금 전의 일을 하무백에게 알려 주었다.

“으억.”

당진산이 깜짝 놀라 경악성을 흘렸다.

조금 전까지는 위 노인만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면 이제는 하 교관까지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더욱 진하고 농밀하며 광폭한 살기였다.

“여긴 제가 알아서 정리하겠습니다. 사부께선 일단 자리를 옮기시지요.”

하무백이 나직이 말했다. 허나 그 말을 일곱 생도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하설란을 제외한 여섯 생도는 대경했다.

사부라니.

그저 교룡관의 잡일을 하는 특이한 노인이라 생각했던 이가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하 교관의 사부라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무백의 말에 위지군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는 아직 저 아이들이 전부다. 물론 눈치 빠른 녀석들이 제법 이곳으로 몰려오는 것이 느껴지기는 했다.

괜히 이곳 사람들과 드잡이질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제자 녀석도 왔으니 저 개잡놈은 제자에게 맡기면 될 일이다.

“알았다. 네게 맡기마.”

그 말과 함께 위 노인은 바람과 같이 사라졌다.

그가 어찌 움직였는지 알아차린 생도는 아무도 없었다.

그 모습이 주우명에게는 너무도 큰 충격이었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다른 생도들과 다르게 주우명은 절대고수의 위력과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

그의 사부가 전대 무당제일검이었으니.

사부와 함께한 경험으로 조금이나 알고있는 것이다.

‘저 두 분은… 모르겠다. 가늠이 안 돼.’

그런데 사부와 비교해도 도무지 얼마나 강한 이들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려 전대 무당제일검과 비교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맹룡대의 생도들이 남궁지후를 잡았다 했을 때 무언가 있겠다는 호승심에 이곳으로 왔다.

하지만 저런 괴물들이 웅크리고 있었을 줄이야.

절로 주우명의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으윽. 끄응. 빌어먹을…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고…….”

위 노인이 떠나고 하무백이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사이, 팽군호가 조금은 정신을 차렸다.

고통 어린 신음만 흘리던 놈이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그는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워낙 창졸지간에 일어났던 일이었기에.

“일어날 수 있겠나?”

팽군호에게 집중된 하무백의 음성.

“끄응. 교관인가? 어서… 어서 나 좀 일으켜……. 윽.”

그 와중에 하무백의 목소리를 알아듣기는 했다.

“지랄도 가관이군.”

차가운 하무백의 음성.

“뭐, 뭐야? 크윽. 지, 지금 나보고…….”

고통이 몸을 지배하는 가운데도 팽군호는 제 성깔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팽군호가 온몸을 부들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피칠갑을 한 얼굴 사이로 분노와 고통에 차 번들거리는 두 눈이 보였다.

하무백은 무심한 눈으로 그런 팽군호를 바라보았다.

그가 몸을 다 일으켰다 싶은 순간.

슥.

순식간에 그의 바로 앞으로 다가가 오른손 손바닥을 들어 올려서는.

짝!

그대로 팽군호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 위력에 팽군호가 피를 흩뿌리며 왼쪽으로 날아가려 했지만 하무백이 왼손으로 그런 팽군호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짝! 짝! 짝! 짝!

마치 박수 소리가 울리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이건 명백하게 하무백이 팽군호의 얼굴을 후려치는 소리였다.

그때마다 팽군호는 피를 뿜었다.

일곱 생도는 두 눈을 질끈 감고는 고개를 돌렸다.

생기 하나 없어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기계적으로 손바닥을 휘둘렀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잔혹하고 공포스러웠다.

차마 팽군호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그때 한설빙이 당도했다.

“교, 교관님…….”

등 뒤에 다급히 도착한 한설빙을 돌아보며 하설란이 울먹거렸다.

그 부름에는 오빠를 말려달라는 간절한 부탁이 서려 있었다.

한설빙을 단번에 그것을 알아들었다.

다시 시선을 돌려 하무백을 바라본 한설빙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런 모습의 하무백은 절대 말릴 수가 없었다.

“단주가 저리되어버리면 아무도 못 말려…….”

너무도 오랜만에 보는 저 모습에 한설빙은 하무백을 단주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전쟁 중 피로 절여진 악귀 같은 모습을 보였던, 그 시절의 단주와 다름없는 모습이었으니.

“허…….”

두 번째로 당도한 이는 팽도웅이었다.

가까워질수록 심각하게 느껴지는 살기에 전력을 다해 경공을 펼친 덕이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팽도웅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피칠갑을 하고 보고 있는 것만도 끔찍하게 두드려맞고 있는 이는 분명 자신의 당질일 게다.

자신이 이곳에 오게 만든 원흉.

그런데 벌써 저런 꼴로 두드려맞고 있다니.

저놈 성깔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팽가의 장손이다.

팽가의 장손을 저리 무식하게 두들겨 팰 인물이 교룡관에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백부님과 형님은 아셨던 거로군…….’

그러니 편법까지 써서 자신을 이곳에 보낸 게다.

헌데 그때가 조금 늦은 듯했다.

벌써 저 꼴을 당했으니.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쨌든 저놈은 팽가의 장손이다.

“멈춰라!”

내공을 잔뜩 담은 웅혼한 외침이 팽도웅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한설빙과 일곱 생도의 시선은 그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하무백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기계적으로 오른손을 휘두를 뿐이다.

그 모습에 팽도웅은 살짝 놀랐다. 설마 자신의 내력을 담은 사자후가 아무런 영향도 못 미칠 줄이다.

그렇다고 다시 외칠 수는 없었다.

한시를 지체할수록, 당질은 더 처참히 당할 테니.

이미 정신을 잃었다.

아니 모르는 이가 본다면 시체라 여길 모습이다.

머리칼을 움켜진 왼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네 이놈!!”

노호성을 터트리며 팽도웅은 도를 뽑고 몸을 날렸다.

철혈벽력도(鐵血奪魄刀).

팽가삼대도법 중 하나이자, 팽가에서 가장 패도적인, 아니 천하에서 패도적이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도법이 팽도웅의 손에서 펼쳐졌다.

그제야 하무백의 오른손이 멈췄다.

힐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도를 바라보는 듯하더니,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콰콰쾅!

하무백이 사라진 바닥을 때린 도격은 커다란 굉음을 울리며 사방으로 흙먼지를 피워올렸다.

팽도웅은 즉시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의 끝에 하무백이 있었다.

이번 일격은 일부러 쉬이 피할 수 있게끔 펼친 것이다.

일단 저놈의 손을 멈춰 세우는 게 목적이었으니.

아직 저놈 손에 당질이 들려있는 채였다. 당질까지 도격에 휩쓸려 버리면 오히려 난감한 것은 팽도웅이었다.

“감히 팽가의 장손을 그 꼴로 만들다니 뭐 하는 놈인지 모르겠지만, 죽고 싶은 게냐?”

분명 저놈이 맞을 짓을 했을 게다. 팽군호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고 있는 팽도웅이었기에, 전후 사정을 듣지 않아도 그리 생각했다.

그래도 어쨌든 가문의 장손이다.

그 신분이 가지는 의미는 적지 않았다.

적어도 팽가의 체면이 달린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랬기에 팽도웅은 도첨을 하무백에게로 향하며 말했다.

“당장 그 아이를 놓아주고 무릎을 꿇지 못할까!”

웅혼하면서도 패도적이 기운이 실린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제법 칼 좀 휘두를 줄 아는군.”

하무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적어도 자신의 기억에는 없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때 낭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금 늦게 감지한 기운의 폭풍에 쓰던 서찰을 내팽개치고 전력을 다해 달려온 팽도율이다.

그가 아는 한 교룡관 내에서 저런 기운을 뿜어낼 이는 바로 저 하무백 하나였으니.

초비상 사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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