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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46화 (46/312)

46화. 그건 내 마음이고

팽도율은 낭패한 얼굴로 지금 현 상황을 살폈다.

도를 곧추세우고 기운을 잔뜩 끌어올리고 있는 사촌 동생, 팽도웅.

누가 뭐라 해도 현 팽가제일도인 그다.

물론 전대고수들까지 헤아린다면, 그렇지는 않지만 적어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팽가의 무인들 중에서는 가장 강하다.

심지어 그는 팽가주의 경지조차 이 년 전에 뛰어넘었다.

조만간 그가 교룡관에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설마 오늘 이곳에서 하무백과 대치하고 있을 줄이야.

그리고 그 이유는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고깃덩어리처럼 얼굴이 다져져서는 하무백의 왼손에 붙들린 자신의 조카놈이 그 원인이리라.

“칼을 좀 휘두를 줄 안다라… 적어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이는 없었다. 본가의 가주님조차도 말이지.”

팽도웅의 음성에는 은은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팽군호와는 별개의 분노였다.

자신의 도를 무시한 듯한 하무백의 발언이 일으킨 분노다.

스윽.

하무백의 시선이 팽도율에게로 향했다.

“관주. 저 친구 어느 정도 되는 녀석이오?”

“현 팽가제일도일세.”

돌아온 팽도율의 대답에 하무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제법이긴 한데… 그 정도는…….”

미심쩍다는 듯한 하무백의 반응에 팽도웅이 인상을 와락 찡그렸다.

그 사이 하나둘 사람이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터진 커다란 폭음이 더욱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이다.

“것보다 이제 적당히 하는 게 어떻겠나? 하 교관.”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살피며 팽도율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 말에 하무백이 피식 웃었다.

“이놈 목은 내가 가지고 말이오?”

하무백이 팽군호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이번에는 팽도율이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적어도 사람들의 이목은 피한 후에 시시비비를 가려줬으면 고맙겠군.]

이미 모여든 사람을 의식해 팽도율은 전음으로 말했다.

“흐음…….”

하무백이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빨리 끝낼 생각이었는데, 불청객의 난입으로 시간이 지연되었다. 그리고 주변의 이목을 더 끌어버렸다.

‘철혈벽력도였지? 아마.’

하무백은 조금 전 팽도웅이 펼친 도법을 알고 있었다.

전장에서 직접 보기도 했으니.

그 도격이 터트린 굉음이 교룡관에 울려 퍼졌을 테니, 사람이 앞으로 또 얼마나 더 모여들지 몰랐다.

하무백 자신 혼자라면 딱히 신경 쓰지 않을 일이지만, 설란이 있었다.

자신의 여동생까지 함께 있었기에 팽도율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설빙.”

하무백이 짧게 한설빙을 불렀다.

“에효.”

한설빙은 짧은 한숨을 흘렸다. 저 부름의 의미를 알고 있는 탓이다.

이미 지난 전쟁에서 수없이 호흡을 맞춰본 사이 아니던가.

한설빙은 품에서 은빛 막대 꾸러미를 꺼내더니 곧바로 허공으로 던졌다.

그러자 의지를 가지기라도 한 듯 막대들이 일정한 방위를 향해 날아가 바닥에 꽂혔다.

그와 동시에 한설빙의 몸에서 새하얀 서리와도 같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개진(開陳).”

그녀의 나지막한 말과 동시에 주변을 새하얀 서리안개가 뒤덮었다.

“어? 어어?”

“이게 뭐지?”

일곱 명의 생도는 순간 당황했다.

“별거 아니니까, 그대로 있으렴.”

한설빙은 처음 겪는 현상에 우왕좌왕하는 생도들을 진정시켰다.

“흐음…….”

팽도율은 침음을 삼켰다.

이 공간에 남은 이들은 자신과 팽도웅, 팽군호와 하무백, 그리고 한설빙과 일곱 생도가 전부였다.

주변에 슬금슬금 모여들어 힐끔거리던 이들은 완벽하게 배제되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팽도율도 수없이 말로는 들었다. 그러나 직접 본 적은 없었다.

팽도율의 중얼거림에, 팽도웅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설마, 이건…….”

“그 설마가 맞다. 아마도 빙혼문쇄진(氷魂門鎖陳)일 게다.”

팽도율이 나직히 말했다.

“말도 안 됩니다. 형님… 어찌 그 진법이…….”

당황한 듯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말이 된다. 이 진법을 펼친 이가 저기 있는 한설빙 전 부단주이니.”

팽도율의 말에 팽도웅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맹주의 수신호위인 호천단의 부단주 한설빙.

그녀의 절기 중 하나가 바로 이 빙혼문쇄진임을.

“자, 이목은 가렸으니. 이제 시시비비를 가려 보자고.”

하무백이 차갑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목은 완벽하게 가려졌다.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 이 빙혼문쇄진의 내부다.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다.

진법의 고수가 진법을 파훼하든지, 절대 고수가 압도적인 힘으로 진법 자체를 파괴하든지, 아니면 이 진법을 펼친 한설빙, 그녀가 허락하든지.

적어도 교룡관에는 이 진법을 파훼할 능력을 지닌 이는 없었다.

그리고 이 진법을 부술만한 힘을 가진 이는…….

아마도 지금 팽도율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정도이리라.

뿌드득.

이를 악물며 이가 갈리는 소리가 울렸다.

팽도웅이었다.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말에 다시 하무백에게로 시선을 옮긴 것이다.

그의 몸에서 다시금 넘실거리며 기운이 흘러나왔다.

“비겁하게 조카를 방패막이로 삼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나서라.”

그의 말에 하무백이 피식 웃었다.

“일의 전후 관계를 헷갈려하는 모양이군. 내가 이딴 쓰레기를 방패로 사용할 이유도 없거니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너와 정정당당하게 맞설 이유도 없지.”

휙.

그리 말하며 하무백은 팽군호를 한쪽으로 던졌다. 한설빙은 가볍게 그를 받아들었다.

“잘 지켜. 그놈.”

하무백이 팽도율을 서늘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허튼짓 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팽도웅을 향해 한 걸음 움직이는 하무백.

“자, 이게 네 놈이 말하는 정정당당이라는 건가?”

하무백이 피식 웃으며 양팔을 벌려 보였다.

“검을 들어라.”

팽도웅이 하무백의 허리에 있는 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내 마음이고.”

“자, 잠깐. 둘 모두 진정하게.”

팽도율이 다급히 나섰다. 하무백은 그를 보고 다시 한번 팽도웅을 힐끗 본 다음 어깨를 으쓱했다.

“도웅아. 잠시 진정해라.”

팽도율은 어떻게든 이 사태를 최소한의 피해로 수습하기 위해 애를 썼다.

“형님. 우리 팽가의 명예가 걸린 일입니다. 전 절대 저자를 그냥 둘 수 없습니다.”

팽도웅이 애써 노기를 다스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저자는 네가 감당하기 어렵다.”

팽도율이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 말에 팽도웅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적어도 팽가에서 가장 강하다고 자부하는 자신이다. 은퇴한 전대고수들을 제외하고서였지만.

그런 자신이 자신보다 연배가 아래로 보이는 눈앞의 교관을 감당하기 어렵다니.

수긍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형님…….”

팽도웅의 음성에는 자신을 무시한 듯한 발언에 대한 분노도 실렸다.

“이 진법을 누가 펼쳤지?”

“한설빙 부단주라고…….”

그녀가 이곳의 교관으로 있다는 사실은 가문에서 이미 언질을 받았었다.

“넌 그녀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맞붙어봐야 알겠지요.”

“허면, 그런 그녀를 수하 대하듯 하는 저자는?”

팽도율의 말에 그제야 팽도웅은 그 사실을 인식했다.

진법을 펼칠 때도. 그리고 조금 전 자신의 당질을 맡길 때도.

너무나 자연스러웠기에 미처 인식하지 못했지만, 정말로 저놈은 그녀를 수하 대하듯 하고 있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오.”

“대보지 않고 아는 것도 있는 법이다.”

“형님. 저자가 대체 누구길래 그러는 것이오!”

팽도웅이 답답하다는 얼굴로 성질을 내며 물었다.

팽도율 역시 답답하다는 시선으로 그런 팽도웅을 바라보았다.

한쪽에 선 하무백은 그런 둘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팽도웅은 팽가 도법의 미래였다.

그랬기에 지난 전쟁 때, 참전하지 않았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가문의 미래를 위한 집안 어른들의 안배였다.

그래서 그는 하무백을 모른다.

그래서 하무백도 그를 모른다.

그래서 이 사달이 난 게다.

“관주. 그냥 난 내 볼일 보면 되는 것이오?”

하무백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저 둘의 다툼에 어울려줄 이유가 없었다. 자신은 동생을 모욕한 놈을 처리하면 될 뿐이다.

하무백이 몸을 돌렸다. 한설빙에게 맡겼던 팽군호를 돌려받기 위함이다.

“네 이놈! 멈춰라!!”

그때 팽도웅이 자신을 막는 팽도율을 무시하고 몸을 날렸다.

다시 그의 손에서 펼쳐진 철혈벽력도!

사납고 패도적인 도기가 하무백을 향해 덮쳐들었다.

하무백은 가볍게 검을 뽑아 휘두르는 것만으로 그 사나운 도기의 파도를 소멸시켰다.

“원해서 검을 뽑아줬는데? 다음은?”

도를 멈춘 팽도웅은 순간 멍한 얼굴로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십성의 성취를 이룬 철혈벽력도다.

비록 전력을 다하진 않았다지만, 이리 쉽게 무력화 시킨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미 일어난 일. 부정한다고 사라질 일이 아니다.

‘대보지 않고 아는 것도 있다 했던가?’

팽도웅은 자신의 사촌형이 저자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기에 더해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백부와 사촌형 역시.

그랬기에 자신을 보낸 것이다.

저자의 존재 때문에.

팽가제일도인 자신을 고작 당질 놈 신변 보호를 위해 보낸다고 불만에 가득 차 있었으나 직접 겪으니 그럴 만했다.

저런 괴물이 교룡관에 웅크리고 있을 줄이야.

아니 그것보다 대체 백부와 사촌형은 무슨 생각으로 저 망나니를 이곳에 보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그 망나니 놈을 그냥 가문에 묶어 두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을.

팽도웅의 등이 축축하게 젖었다.

식은땀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배어 나온 것이다.

이번에는 신중하게 도를 움직였다.

그 모습에 하무백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조금 전과 전혀 다른 도법이었던 탓이다.

강호에 팽가삼도(彭家三刀)라는 말이 있다. 팽가 사람들은 팽가삼대도법이라 부르는 것이다.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철혈벽력도(鐵血奪魄刀), 혼원탈백도(混元奪魄刀).

이 세 가지다.

오호단문도는 팽가의 일대제자들이 익히는 도법이고, 혼원탈백도는 팽가의 가주만이 익히는 도법이다.

철혈벽력도는 팽가 내에서도 도법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이들이 익히는 패도의 극을 달리는 도법이었다.

‘거기에다 하나가 더 있지.’

하무백은 자신이 지난 전쟁에서 보고 감탄했던 도법 하나를 떠올렸다.

팽가 하면 패도(覇刀)를 자연스레 떠올리기에 강호의 무인들은 미처 모르는 도법이다.

능운팔영도(凌雲八影刀).

아마 팽가에서도 아는 이가 몇 없는 도법일 것이다.

팽가의 도법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부드러움의 극을 추구하는 도법.

정말로 하무백을 감탄케 했던 도법이다.

물론 도법만이 아니라 그 도법을 펼치는 무인의 실력에도 감탄을 한 것이다. 도법이 아무리 훌륭하면 뭐 하나, 그것을 익힌 이가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인 것을.

그랬기에, 적어도 하무백에게는 그가 팽가제일도였다.

팽도율이 현 팽가제일도라 칭한 저 천둥벌거숭이 말고.

그런데, 지금 저 천둥벌거숭이가 취한 기수식은 바로 능운팔영도의 그것이었다.

“너. 팽거량에게 도를 배운 거냐?”

하무백의 물음에 팽도웅의 움직임이 우뚝 멈춰 섰다.

“네 놈이 어찌 이(二) 사부님을…….”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사사로이 그에게 당숙이기도 했지만, 도를 가르쳐준 또 한 사람의 스승이기에 늘 이 사부라 불렀다.

애초에 무림에서는 그 존재를 아는 이가 거의 없는 이 사부다.

그의 도법이 널리 알려진 팽가의 것과는 그 궤를 달리한 탓이다.

그런데 저놈은 그 존함을 정확히 말했다.

“이 사부라… 그럼 다른 사부도 있다는 게고, 그래서 철혈벽력도와 능운팔영도 두 가지를 익힌 것인가?”

그 말에 팽도웅은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자신의 무공을 정확히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어, 어찌, 네, 네 놈이…….”

팽도웅의 목소리가 세차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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