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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48화 (48/312)

48화. 얼마나 잘 아느냐?

하무백의 시선이 한설빙 뒤에 널브러져 있는 팽군호에게로 향했다.

축 늘어진 고깃덩어리나 다름없는 상태.

오라버니의 그런 시선을 느낀 하설란은 간절한 눈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쯤에서 멈춰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눈빛이다.

“흐음.”

하무백이 고민이 가득한 침음을 흘렸다.

놈이 동생에게 한 언행을 생각하면 목숨은 취하지 못하더라도 한쪽 팔은 잘라야 마음이 풀릴 것 같았다.

그쯤은 해둬야 다시는 동생에게 허튼 소리를 하지 못할 테니.

그런데 당사자인 동생이 막아서고 있었다.

[설란이 바라니 그쯤 해두거라. 내 앞으로 더 신경 써서 지켜보마.]

그때 들려온 사부의 전음.

역시 사부다.

진을 펼친 한설빙도 눈치채지 못하게 이 진법 속에 스며들어 이 상황을 지켜보고 계셨다.

하무백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하설란을 향해 물었다.

“정녕 괜찮은 것이냐?”

“전 괜찮아요.”

하설란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급하게 답했다. 혹시라도 하무백의 생각이 바뀔까 봐.

“그럼 이 정도만 하지.”

하무백의 말에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중 가장 크게 안도한 이는 팽도율과 한설빙이었다.

아니, 한설빙이다.

하무백의 진정한 실력의 한 조각이라도 본 이는 이곳에서는 그녀가 유일했다.

그랬기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기세 좋게 나서긴 했지만, 하무백이 정말 제대로 마음먹으면 자신은 삼초지적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럼 난 이만 가지. 오늘 분위기가 이래서 오후 수업은 힘들 거 같으니…….”

“넵. 자율 학습하겠습니다.”

당진산이 재빨리 답했다.

워낙 자주하던 자율 학습인지라, 이번에도 당연히 그럴 거란 걸 알아차린 것이다.

그런 당진산의 반응에 하무백이 피식 웃었다.

하무백의 시선이 팽도웅에게로 향했다.

새하얗게 질렸던 얼굴에 어느 정도 혈색이 돌아온 상태다.

“한 길만 파는 게 좋을 거야. 능운팔영도의 진정한 가치를 팽가에서는 모르고 있겠지만.”

팽거량과의 인연 때문에 내키지 않는 조언을 남기고는 그대로 몸을 훌쩍 날렸다.

“어, 아직 진법이…….”

그 모습에 단목운뢰가 놀라서 소리쳤다.

주변에 진법이 여전히 펼쳐진 상태라는 것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던 탓이다.

그런 단목운뢰의 걱정이 무색하게 하무백은 그대로 사라졌다.

한설빙이 진법 밖을 살피더니 시선을 팽도율에게도 돌렸다.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몰려들었는데요? 관주님이 먼저 좀 정리하시는 게 좋을 듯해요.”

그녀가 팽군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런 몰골을 한 이를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곳에서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알겠네. 길을 열어 주게.”

한설빙이 품에서 작은 막대를 하나 꺼내 팽도율에게 건넸다.

“이거 꼭 돌려주셔야 해요. 없어지면 저 큰일 나요. 이걸 가지고 곧장 한쪽으로 걸어가시면 돼요.”

“내 명심하지. 오늘 바로 꼭 돌려주겠네.”

팽도율은 한설빙이 시키는 대로 했고, 금세 진법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관주의 권위로 호기심에 모인 이들을 해산시켰다.

그렇게 팽군호가 기폭제가 되어 일어난 소동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

“누가 누굴 데리고 왔다고?”

하북성 북경.

하북팽가의 본가가 있는 곳이다.

하북팽가의 가주전에서 가주인 팽무량의 목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그 음성에는 노기가 가득했다.

“그, 도웅이가 군호를 데리고 왔습니다.”

“군호 꼴이 말이 아니라지?”

아버지의 물음에 소가주인 팽도원은 그저 고개를 숙였다.

이미 아버지는 모든 소식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저리 분노한 상태인 게다.

“그, 다행이랄까… 그래도 단전과 사지는 멀쩡합니다.”

“허. 네 놈은 아비라는 놈이 그딴 말을 하느냐? 애 얼굴이 병신이 됐는데?”

그랬다.

하무백은 정말 진심으로 손바닥을 휘둘렀고, 그 덕에 팽군호의 왼쪽 얼굴은 윗턱, 아래턱, 광대, 관자놀이 부분의 뼈가 그야말로 바스라져 있었다.

어떻게 뼈를 맞춰서 원래의 외모로 고칠 수 없는 지경이었다.

팽무량의 말대로 팽군호는 얼굴의 절반이 그야말로 병신이 되었다. 아래턱이 바스라지면서, 턱관절까지 망가져 왼쪽으로는 입도 제대로 벌리지 못하고 비대칭으로 오른쪽만 벌어지는 모습이 흉측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괴물 같은 외모가 되었다고 했다.

팽무량도 비선에게 전해 듣기만 했지, 실제로 보지는 않았다.

차마 볼 자신도 없었다.

“그의 분노를 사고, 사지 멀쩡히 목숨 붙어 온 것만도 저는 그저 다행일 뿐입니다.”

“쯧. 못난 놈.”

팽무율은 아들의 유약한 모습에 혀를 찼다. 그의 눈에는 아들을 향한 실망을 넘어서 경멸까지 스며있었다.

‘아버님. 아버님은 그의 진면목을 모르십니다.’

지난 전쟁.

소가주임에도 팽도원은 참전했고, 멀찍이서 분노한 그의 진면목을 보았다.

가주로서 가문을 지켰던 아버지는 그저 전해 들은 이야기로만 그를 평가했기에, 그의 진정한 모습을 모르고 있었다.

그게 못내 답답했으나,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어쨌든 팽가의 가주는 아버지였으니.

“도웅이. 그놈은 뭘 했다냐?”

“그나마 도웅이 늦지 않게 달려가 그 정도였습니다.”

“그런 놈이 도를 부러뜨려 먹고, 내상을 입고 와? 팽가제일도라는 놈이?”

팽군호의 심각한 부상은 팽무율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애지중지하던 장손의 얼굴이 망가진 것이 그를 그리 만든 것이다.

팽도웅이 전력을 다한다면, 가주인 아버지도 겨우 감당을 할까 말까한 실력이다.

아니 냉정히 말하면 아버지보다 팽도웅이 한 수 위다.

가주비전 무공인 혼원탈백도를 펼치더라도 말이다.

‘아버님께서 그 자리에 계셨어도 결과는 같았을 거란 말입니다.’

팽도원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외침을 애써 억누르며 머릿속에만 떠올렸다.

“도웅의 사부가 누구였지?”

“호량 숙부와 거량 숙부입니다.”

지금은 은퇴해서 원로원에 들어선 두 사람이다.

량자를 돌림자로 쓰는 배분에서 현역으로 있는 이는 가주인 팽무량이 유일했다.

권력에 대한 노욕이 아직도 가주 자리에 있게 한 것이다.

“두 녀석도 불러와라.”

“예.”

팽도원이 짧게 대답하고 가주전을 나섰다.

지금 팽도웅과 팽군호는 의각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지금 몰골로 가주전으로 올 수 없기에 급한 대로 치료를 하고 있는 것이다.

팽도웅은 몰라도, 팽군호는 과연 얼마나 치료가 될까 의문이지만.

그 사이 원로원의 두 사람을 데려오라는 거다.

잠시 후 가주전에 당도할 팽도웅과 팽군호를 함께 맞자는 거다.

그 이유는 아마도 질책이겠지.

팽군호의 잘못은 무시한 채, 팽도웅이 팽군호를 지키지 못했음을, 팽도웅이 그리한 데는 사부의 책임이 있음을.

‘점점 독선적으로 변해 가신다.’

대체 무엇이 아버지를 저리 만든 것일까.

팽도원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하나 예감할 수 있는 것은 가주인 아버지가 팽가를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도웅이가 형편없이 깨져서 왔다고?”

팽도원이 찾아오자, 이미 원로원에도 소식이 전해졌는지 팽거량이 그를 맞았다.

“네.”

“그래서 형님이 나를 찾으신 게고?”

“호량 숙부도 함께 찾으셨습니다.”

“그럴 거 같았다.”

소식이 들어왔을 때 채비를 한 것인지, 팽호량도 나왔다.

“너는 괜찮은 게냐? 군호가 아주 망가졌다 하던데.”

“사지 멀쩡히 목숨 붙여 온 게 다행입니다.”

팽도원의 대답에 두 사람의 눈에 의외라는 빛이 떠올랐다.

그 둘은 아직 팽도웅과 팽군호가 누구에게 당한 것인지 모르는 탓이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교룡관에 간 것이 아니더냐?”

은퇴한 두 사람이다.

해서 가문의 일 깊게 관여하지 않았기에 알고 있는 정보가 적었다.

“맞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그가 있었습니다.”

“그?”

팽호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그?”

반면 팽거량은 깜짝 놀란 얼굴로 반문했다.

단번에 알아들은 것이다.

“네.”

팽도원이 짧게 대답했다.

“대체 그가 왜 교룡관에 있느냐?”

팽거량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팽도원에게 물었다.

“일단 가주전으로 가시지요. 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팽도원의 말에 두 사람은 걸음을 옮겼다. 그 사이 팽도원은 저간의 일을 짤막하게 요약해서 말했다.

가주전에 도착할 즈음 설명이 끝났다.

“왔느냐?”

두 사람을 맞이하는 팽무량이 목소리는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두 사람은 동시에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팽무량은 그런 인사를 받는 듯 마는 듯했다.

“곧 도웅이와 군호가 올 게다.”

“…….”

냉랭한 그 말에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팽도원 역시 잠자코 있었다.

그때 밖에서 가주전 수문위사의 안내를 받은 팽도웅과 팽군호가 도착했다.

“군호야!”

팽무량은 태사의에서 번쩍 일어나 단번에 몸을 날려 팽군호의 앞에 도착했다.

듣던 것보다 상태가 더욱 심각했다.

그야말로 얼굴 반은 녹아내리다시피 한 상태였다.

붕대로 칭칭 감아놔서 그 흉함이 덜했지만, 그 붕대 정도는 꿰뚫어 볼 안력을 지닌 팽무량이었으니.

“네, 네가 어찌 이런 꼴이… 크윽.”

아끼는 장손의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팽무량의 두 눈이 붉게 변했다.

슬픔과 분노가 혼재한 눈동자다.

그의 고개가 팽도웅을 향해 획 돌아갔다.

그의 눈에 남은 것은 오직 분노 뿐.

“네 놈은 군호 지키라고 보내놨더니, 이 꼴이 되도록 뭘 했더냐!”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팽도웅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가 도착했을 때, 팽군호는 이미 저 상태였다. 그리고 흉수와 대결해 패배했다.

도는 부러졌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아니 할 말은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해봐야 팽무량의 분노만 더 키울 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쯧. 팽가제일도라고 사람들이 추켜세워주니, 하늘 높은 줄 모르겠더냐. 도법 두 개를 익힐 때 알아보았다. 철혈벽력도 하나만 파도 모자랄 판에. 능운팔영도 따위를 익히고 있으니.”

이번에는 그 시선이 팽호량과 팽거량에게로 향했다.

“거량. 입이 있으면 말을 해보거라. 우리 팽가의 장손이 저런 꼴로 돌아왔다. 그 알량한 도법 따위 굳이 도웅이에게 전수했어야 했느냐? 그리고 호량. 네 놈은 어찌 가르쳤기에 팽가제일도란 녀석이 저 꼴이냐!”

팽무량의 분노가 사방으로 쏟아져 나갔다.

고개를 숙인 팽도웅의 꽉 쥔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자신이 모자라 두 사부를 욕보인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의문이 일었다.

교룡관에 있던 도율 형님은 분명 그 자의 정체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

그를 무척이나 두려워했으며, 그의 분노를 식히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런데 가주는 그의 진면목을 잘 모르는 듯했다.

“가주님. 아니 형님.”

팽거량이 입을 열었다.

“먼저 내가 아닌 내 사부님의 명예를 위해 한마디는 분명히 해야겠소. 능운팔영도는 알량한 도법 따위가 아니외다.”

“뭐라?”

“적어도 전대 팽가제일도라는 명예를 내게 준 도법이오.”

“이이익.”

팽무량의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열등감의 한 줄기였다.

대대로 팽가제일도는 가주의 자리였다. 당연한 일이다. 팽가의 도법 중 가장 강하다는 혼원탈백도를 가주가 익혔으니.

허나 팽무량의 대에서 그 전통이 깨졌다.

혼원탈백도를 능운팔영도라는 듣도 보도 못한 보잘 것 없는 도법으로 꺾은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눈앞의 팽거량이다.

그가 자신의 대의 팽가제일도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의 제자인 팽도웅이다.

소가주인 자신의 아들이 팽가제일도가 아니라.

철혈벽력도만으로 팽도웅은 그 명예를 얻었는데, 거기에 거량이 능운팔영도까지 가르쳤다.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데 이제 소중한 장손인 팽군호 마저 지키지 못했으니.

“그리고 형님은 그자의 진면목을 모르시오. 도원이 말대로요. 그가 분노했는데 군호가 사지 멀쩡히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오.”

“숙조부님!”

그 말에 팽군호가 원망 어린 외침을 쏟아냈다. 저 꼴이 되고도 팽군호는 그 성정을 고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더욱 편협해지고 악독해졌다.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팽도원이 팽군호를 나무랐다.

“그건 너 또한 마찬가지다. 조용히 있어라.”

그런 팽도원을 향해 팽무량의 질책이 뒤따랐다.

팽도원은 이제 포기한 듯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팽무량의 시선이 다시 팽거량을 향했다.

“그럼 네 놈은. 하무백이라는 그 놈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아느냐?”

살기 등등한 시선이 팽거량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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