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50화 (50/312)

50화. 이번에는 또 어떤 놈이려나

팽무량이 심각한 얼굴로 정천맹 내의 길을 걷고 있었다.

지금 가는 곳은 맹주전.

맹주와 담판을 짓기 위해서다.

해서 하북에서 이곳 낙양까지 전력을 다해 달려오지 않았던가.

군호의 몰골을 떠올리면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았고,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았다.

“소금에 절여 잘근잘근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 뿌드득.”

맹주와의 담판을 대비해 놈을 떠올리자 절로 이가 갈렸다.

맹주전에 도착하고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팽가에서 출발할 때 전서응을 통해 기별을 했고, 면담 일정이 잡힌 것이다.

오대세가 중 한 곳의 가주였기에, 급하게 면담을 요청했어도 날짜를 맞출 수 있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팽 가주.”

정천맹주 소휘웅.

그가 빙그레 웃으며 팽무량을 맞아 다탁으로 안내했다.

이곳은 맹주전에서 손님을 맞을 때 쓰는 접객당이었다.

이미 자리에는 적당한 다과와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가문의 일이 공사다망하여 본맹에 자주 들리지 못함을 이해해주시지요.”

“허허. 당연한 일이지요. 대신 팽 장로가 맹의 일에 성심을 다해 주고 있습니다. 바쁘신 가주께서 어쩐 일로 이 멀리 걸음을 하셨습니까?”

바쁘기로 치면 정천맹의 맹주만 할까.

아마 전 무림에서 가장 바쁜 이가 그일 것이다.

“전서를 보내며 간단히 설명을 했습니다만, 제 손자 때문입니다.”

“흐음. 그렇지 않아도 전서를 받고 교룡관에 사실 여부에 대한 조사관을 파견했습니다. 어제 결과를 받았고요.”

“그렇다면 이야기는 간단하겠군요. 하무백.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의 목을 원합니다.”

냉랭한 팽무량의 음성.

그 말에 소휘웅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불가합니다.”

“맹주!”

“하 교관이 잘못한 게 있을지언정, 그 징계는 맹과 교룡관에서 정할 일입니다. 사사로운 원한으로 목을 달라니, 어불성설이지요.”

“그가 맹주의 최측근이라 그런 건 아니고요?”

소휘웅의 말에 팽무량이 도발을 감행했다.

하무백이 그의 호위집단인 호천단의 단주였기에 제 식구 봐주기 아니냐는 문제 제기였다.

그 물음에 소휘웅은 그저 지그시 미소를 지을 뿐이다.

“아니면 다른 의도일 수도 있겠지요.”

소휘웅이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그저 미소만 짓고 있자 팽무량의 얼굴은 조금씩 사나워지고 있었다.

“맹주를 지지하는 신진팔대문파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세력을 죽이려 하무백을 교룡관에 보낸 게 맹주의 의도가 아닌가 여쭙는 겁니다.”

소휘웅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그리고 미소가 진해지는 만큼 그의 표정은 냉랭해졌다.

팽무율 역시 분위기가 급변한 걸 느꼈지만, 지지 않고 소휘웅을 마주 보았다.

“하 교관…….”

소휘웅이 느릿하니 입을 뗐다.

“참… 입에 안 붙는 호칭입니다. 저에게는 늘 하 단주였던 친구인지라…….”

팽무량을 마주하는 소휘웅의 두 눈에서 북풍한설이 몰아쳤다.

“그런 그 친구를 교룡관의 맹룡대 교관으로 좌천시킨 건, 장로원이지요.”

어느새 소휘웅의 입가에 맺힌 웃음이 사라졌다.

하무백에 대한 처분을 장로원주가 알려왔던 그 날이 생각난 것이다.

아직도 그날의 분노와 무력감을 잊을 수가 없었다. 맹주였음에도, 누명을 씌우는 장로원으로부터 자기 사람 하나 지키지 못했으니.

협상이었다.

다른 것을 얻기 위해, 하무백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자신에게 힘이 있었다면, 그런 협상 따위는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천맹의 맹주는 자신이었지만, 아직 정천맹을 움직이는 6할의 힘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였다.

장로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장악하고 있고, 실제로도 정천맹을 움직이다시피 하는 집단이다.

하무백을 교룡관 맹룡대 교관으로 발령낸 곳이 장로원이라는 말에 팽무량이 입을 꾹 닫았다.

팽가 역시 오대세가의 일원이니.

“정녕 하무백 교관에 대한 처벌을 원한다면, 용조단에게 조사를 맡기도록 하지요.”

그 말에 팽무량은 인상을 찡그렸다.

용조단은 정천맹의 규율을 관장하는 집법원 산하의 무력 집단이자, 조사단이다.

문제는 집법원이 어느 세력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맹주의 사문인 도림이 속해있는 신진팔대문파는 물론이거니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입김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집법원을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에 두기 위한 암투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연합세력인 백도회와 신진팔대문파의 세력 사이에서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지금 맹주는 그런 곳에 조사를 맡기겠다고 하는 것이다.

맹주가 보냈다는 조사관은 맹주전 소속일 터. 그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물론 자신의 손자인 팽군호가 떳떳하다면야 아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런 일이 벌어졌을 리는 없는 일이다.

“하무백과 팽가 사이의 일에 집법원까지 나선다는 것은 좀 과한 일인 것 같습니다만.”

“그런 일에 맹주전에 와서 하 교관의 목을 내놓으라는 요구는 과하지 않고요?”

날이 선 맹주의 반격에 팽무량은 입을 꾹 다물었다.

다탁 아래 꽉 쥔 그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일단 장로원에 정식 안건으로 요청하겠습니다.”

“뭘 말입니까?”

“당연히 하무백에 대한 처분이지요.”

“마음대로 하시지요.”

장로원에게 하무백을 맡기겠다는 말에 소휘웅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하 단주. 그를 가장 두려워한 이들이 누구인지 모르는군. 평생을 가문에만 틀어박혀 있던 노괴가 무얼 알까. 쯧.’

소휘웅은 팽무량의 헛된 몸부림에 속으로 혀를 찼다.

맹주전을 나온 팽무량은 곧장 장로원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자신의 이복동생인 팽무린이 있었다. 첩의 소생이었기에 자신의 항렬의 돌림자인 ‘량’자를 받지 못한 동생.

그럼에도 그 능력이 출중해서 본맹에 보내놓은 터다.

더군다나, 비록 이복동생이라 하나, 현재 팽가에서 가장 믿을만한 이였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충복으로 자라온 녀석이었으니.

“형님. 오셨습니까?”

장로원에 마련된 팽무린의 집무실에 들어가자 그가 몸을 일으켜 허리를 숙였다.

“소식은 들었겠지?”

“네. 군호가 몹쓸 꼴을 당했다고요.”

“얼굴 절반이 완전 무너져 내렸다.”

“…….”

팽무량의 말에 팽무린은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맹주는 뭐라 합니까?”

“정 놈의 처벌을 원하면 용조단을 보내겠다는군.”

그 말에 팽무린이 인상을 찡그렸다. 안 될 일이다.

“허면, 장로원에 안건으로 올리기 위해 절 찾으신 게로군요.”

팽무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반드시 놈의 목을 따야 한다.”

그리 말하는 팽무량의 두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일단,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최선은 부족해. 결과를 가져와라.”

그리 말하고 팽무량은 몸을 일으켰다.

장로원의 주축이 백도회라고는 하나, 다른 방파의 인물들도 있었다.

아무리 팽가의 가주라 하더라도 정천맹의 장로가 아닌 팽무율은 장로원의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허리를 숙여 팽무량을 배웅한 팽무린은 집무실의 자신의 자리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형님. 너무 늙으셨소. 가문에 틀어박혀 지내시니, 눈과 귀가 멀어버린 것 아니오. 그가 어떤 인물인지나 알고 그의 목을 따야 한다 하시오.”

팽무린.

그도 당연히 지난 전쟁에 참여했다. 그때의 공이 정천맹 장로원에 오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랬기에 그도 하무백에 대해서 잘 알았다.

그의 활약에 대해 팽무량에게도 수없이 말했다.

그런데 지금 팽무량이 저리 폭주하고 있다.

장로원에서 그의 죽음을 결정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게 그리 쉬운 일이었으면 놈을 왜 교룡관으로 좌천시켰겠는가.

그냥 죽였지.

맹주의 가장 큰 날개인 그를 교룡관으로 보내는 것만으로도 장로원은 제법 큰 대가를 치렀다.

맹주는 속으로 자신의 형을 얼마나 비웃었을까.

팽무린은 답답했다.

어릴 때, 총기가 넘치던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던 형님은 이제는 없는 듯했다.

“그 자리에 너무 오래 계신 듯하오.”

고개를 작게 흔들며, 팽무린이 낮게 중얼거렸다.

***

3일 후.

장로원의 결정은 빠르게 났다.

결과는 당연히 불가(不可).

정, 하무백에 대한 복수를 원한다면 팽가 단독으로 수행하는 것을 막지는 않겠다는 첨언이 달려 있었다.

결국 팽가에서 알아서 하라는 소리였다.

“이 빌어먹을 것들이… 이래 놓고 백도회라고?”

팽무량은 이를 악물고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무린, 네 놈은 대체 뭘 한 게냐! 고작 이런 결과를 보여주려고 그동안 본맹에 있었던 게냐!”

분노의 화살이 팽무린에게로 향했다.

“형님.”

그런 형을 향해 팽무린이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무백.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외다. 그 이름마저 치가 떨리기에, 그냥 그, 그자라고 호칭할 정도요. 다른 곳도 아닌 장로원과 백도회의 회합에서 말입니다.”

“그게 뭐 어쨌단 말이냐?”

“그가 왜 교룡관으로 갔는지 아시오? 장로원에서 전력을 다해 없는 죄를 가져다 붙여 좌천시킨 거요. 그러기 위해 장로원에서 치른 대가가 적지 않습니다. 그를 그리 간단히 죽일 수 있다면야 왜 그랬겠습니까? 맹주의 가장 강한 날개이자 칼인 놈이오. 그놈이 본맹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두 다리를 뻗고 자게 된 장로가 한둘이 아닙니다.”

폭풍 같이 몰아친 팽무린의 말.

그제야 팽무량은 마지막에 맹주가 자신에게 지어 보인 웃음의 진면목을 알 수 있었다.

조소.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그걸 깨닫고 몸을 부들부들 떠는 팽무량에게 팽무린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형님. 그놈은 그냥 재난이나 재해 같은 놈이요. 태풍에 휩쓸려 집이 망가진 거 같은 거라 생각하십시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게냐? 놈은 우리 팽가의 미래를 박살을 냈어!”

“고작 얼굴이 무너진 것뿐이잖습니까! 단전도 멀쩡하고, 사지도 멀쩡하면 무공을 익히고 펼치는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팽무량의 분노에 찬 고함에, 팽무린은 답답함이 가득한 외침으로 응수했다.

“군호는 팽가의 장손이자 네 질손이다.”

“팽가의 장손보다 제게 더 중한 건 팽가 그 자체입니다.”

그 말에 팽무량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동생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 말은 그놈 때문에 팽가가 위태로워지기라도 한단 말이냐?”

“다른 가주님들도 만나보시지요. 그리고 직접 그에 대해 물어보십시오. 팽가와 그가 싸우면 어찌될 지.”

팽무린의 조언에 팽무량은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되었다. 팽가의 가주는 나다. 그리고 팽가의 힘은 약하지 않다. 그깟 놈 하나 때문에 위태로워진다니, 개가 웃을 소리다. 네 놈은 당분간 본가에 오지 마라. 꼴도 보기 싫다.”

팽무량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팽가로 돌아갔다. 원하던 결과는 하나도 얻지 못한 채로.

팽가로 돌아가는 그의 얼굴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일을 벌이시려는 겐가…….”

팽무린은 팽무량의 결심을 알 수 있었다. 이미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없었다.

아마도 하무백을 치려 하겠지. 그 결과가 너무 선명히 보였다.

“흐음?”

하무백은 칠 조 생도들의 수련을 지켜보다가 귓구멍을 긁적였다.

이렇게 귀가 가려운 것도 오랜만이다.

예전에는 종종 그랬었는데.

전쟁이 끝난 후로는 그럴 일도 별로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랬던 게 아마도.

“교룡관으로 가라는 통보를 들었던 날인가?”

그날을 떠올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당최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 귀가 간지럽고 나면 꼭 누군가 자신을 노렸다.

신기한 노릇이다.

“이번에는 또 어떤 놈이려나…….”

맑디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무백이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 일도 없길 바라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 무슨 일이 있긴 할 게다.

다만 그 일의 여파가 자신의 동생에게 미치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랬다가는 자신이 어찌 변할지 알 수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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