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53화 (53/312)

53화. 왔군

하무백이 향한 곳은 대별산이었다.

지난 하투제에서 생도들에게 산속에서의 유격전을 괜히 가르쳤던 게 아니었다.

자신의 경험인 탓이다.

절대다수의 적을 효율적으로 상대하기에 굉장히 좋은 수단이었다.

자신이 충분히 강하다면 말이다.

하무백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한 자리에서 삼백에 이르는 적을 상대하는 것은, 체력이나 내공의 측면에서 분명 힘겨운 일이다.

‘못 할 것도 없지만. 변수는 최대한 제거해야지.’

그렇다면 팽가의 무사들을 상대할 곳은 뻔했다.

팽도율이 알려온 그들의 이동 경로에 깊은 산으로는 대별산이 딱 적당했다.

더 좋은 것은 자신이 팽가보다 먼저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것이다.

미리 이런저런 준비를 할 시간도 있었기에 더욱 좋았다.

하무백은 대별산 곳곳을 누볐다. 그리고 모든 준비를 마친 후, 팽가의 무사들이 나타날 산 초입 부근의 마을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냈다.

몸을 전투에 최적인 상태로 다듬으면서.

그렇게 객잔에 머물며 며칠을 보냈을까.

하무백의 기감에 무수한 사람들의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왔군.”

하무백은 방을 나섰다. 객잔의 점소이에게 셈을 치르고는 그대로 대별산으로 향했다.

이미 주변이 어둑어둑해지는 것이 팽가의 무인들은 아마도 오늘은 저 마을에서 보낼 것이다.

“가주님. 마을입니다. 대별산에 진입하기 전 마지막 마을인 듯하니, 오늘은 이곳에서 쉬어가심이 어떠십니까?”

가솔의 말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팽무량.

이미 어둑어둑했다.

하루 묵으며 쉬어갈 때가 맞았다.

‘대별산…….’

그러나 팽무량의 머리에 울리는 철담개의 목소리.

‘산을 조심하라고?’

그간의 경로에는 산 같은 산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들이 지나가야 하는 대별산은 깊고 커다란 산이다.

철담개가 조심하라고 조언을 한, 바로 그런 산.

팽무량의 가슴 속에서 작은 불꽃이 일었다.

‘감히 나를 뭘로 보고.’

산에서 하무백을 만나게 되면 큰 낭패를 겪을 거라는 아니, 전멸할 거라는 듯한 철담개의 말.

그 말에 반발이 일었다.

감히 자신을 뭘로 보고.

”이대로 대별산에 진입한다.”

팽무량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순간 그의 주변에 있는 무사들의 얼굴에는 당혹이 어렸다.

여기까지도 엄청난 강행군이었다. 이제 해가 지고 있는데, 이 상태로 산행이라니.

개봉을 지난 이후로 진군 속도가 빨라져서 하나둘 지치기 시작한 상태였다.

“가주님. 이미 다들 많이 지쳐 있습니다. 일단 하룻밤은 쉬어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수하의 간언에도 팽무량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여유가 없다. 하무백 그놈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으려면 한시라도 빨리 무창에 도착해야 한다.”

고집 어린 팽무량의 얼굴에 수하는 더 이상 말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저 무사들에게 결정된 사실을 알리고 다독일 뿐이다.

그렇게 사위에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았을 때, 팽무량을 비롯한 팽가 무사 삼백이 대별산에 진입했다.

‘이렇게 험한 산에서 말을 타고 간다라…….’

하무백은 어두운 산길을 두 줄로 길게 걸어가는 팽가의 무사들을 보며 제 눈을 의심했다.

이런 밤에 산길로 진입이라니.

상대를 기습하기 위함도, 계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무창으로 가는 길일 뿐이다.

밤에 쉬지 않고 험한 길로 저리 가는 것은 지휘관이라면 응당 지양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가주라는 팽무량은 아무렇지도 않게 선두에서 말을 타고 가고 있었다.

‘돌대가린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자신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길길이 날뛴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무언가 이상했다.

오대세가의 일원인 팽가의 가주라기에는 판단력이 너무 흐린 것 같아서다.

지금 보니, 흐린 정도가 아니다.

대체 어찌 가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나야 좋지.’

하무백이 피식 웃었다.

오늘은 삭(朔)이다.

달빛조차 한 점 없는 완전한 어둠이 내린 밤.

이런 산속으로 직접 들어와 준다니.

그들이 되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산속 깊이 들어갈 때를 기다렸다.

밤은 더욱 깊어졌고, 적당한 때가 되었다.

하무백은 천천히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팽팽히 당겨진 활.

피잉.

낮은 파공성과 함께 화살이 날아갔다.

“으악!”

중간쯤의 행렬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뭐? 뭐냐?”

“화, 화살이……. 으윽…….”

배를 감싸 쥐고 주저앉은 무사.

십인대장이 황급히 주저앉은 부하를 살폈다.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모를 화살이, 정확히 그의 단전을 꿰뚫고 있었다.

“내공, 내공은 괜찮나? 움직일 수 있어?”

다급히 물었다.

그러나 부하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한 발의 화살이 한 명의 단전을 깔끔하게 부쉈다.

“대체 누가…….”

두 줄로 길게 늘어선 행렬이다. 그 중간에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가장 선두에 선 팽무량에게 소식을 전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이미 이동은 멈춰 있는 상태.

“뭐라?”

그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두 눈에 내공을 집중해 안력을 올려야 주변을 식별할 정도로 어두운 상태다.

이런 어둠 속에서 정확히 단전을 노리고 화살을 쏘았다?

고수였다.

대체 어떤 놈이 자신들을 노린단 말인가.

“저, 가주님…….”

질풍대를 책임지고 있는 대주, 팽도잠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뭐냐?”

“혹, 그가 아닐까요?”

“뭐?”

팽도잠.

그도 지난 전쟁의 참전자였고, 자신들의 목표인 하무백이 융중혈투의 주인공임을 아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이번 출진에 나선, 각 백 명으로 구성된 질풍대, 폭풍대, 태풍대의 대주들 중 유일하게 그만이 알고 있었다.

아니, 이 자리에 모인 삼백의 무사들 중, 팽무량을 제외하면 그만이 유일하게 알고 있었다.

“그……. 그가 융중에서도 활을 즐겨 사용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조심스레 말하는 팽도잠.

“네 말은 그놈이 지금 이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다가 기습했다는 게냐?”

팽도잠은 시선을 내리깔고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쯧. 놈을 처리하고 나면 가문의 배신자들을 반드시 처단해야겠다.”

팽무량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은 팽거량과 팽도원이었다.

아들놈마저 자신을 배신했을지 모른다고 의심해야 하는 이 상황이 짜증이 났다.

‘그깟 놈이 뭐라고.’

피잉.

그때 다시 한번 작디작은 활시위가 울리는 소리.

“으악!”

어김없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비명에 팽무량은 입술을 깨물었다.

“상황을 확인해라.”

그의 명령에 한 무사가 재빨리 후미로 달렸다.

이윽고 돌아와서 보고를 했다.

“단전을 꿰뚫렸다고 합니다.”

팽무량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벌써 두 번째.

고작 일 각 사이에 두 명을 잃었다. 목숨은 붙어있고 사지 멀쩡했지만, 단전을 잃었으니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아니 오히려 짐덩어리가 생겨 버렸다.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이. 전원 산개한다. 나무 사이로 은폐해서 천천히 전진한다!”

팽무량이 큰 소리로 외쳤다. 본인도 말에서 내렸다.

그 명령과 함께 무사들은 산길을 벗어나 길이 없는 나무 사이로 숨어들어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피잉.

피잉.

어김없이 활시위는 울렸고,

“으악!”

“아악!”

비명도 울렸다.

그럼에도 무사들은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화살은 그들에게는 공포였고, 그 공포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들은 열심히 움직였다.

피잉.

마지막 화살을 쏜 소리가 밤공기를 갈랐다.

“억!”

어김없이 한 명의 비명이 울렸다.

“후우.”

하무백은 낮은 한숨을 쉬었다. 대장간에서 챙겨온 화살은 육십 개.

이것으로 육십 명의 단전을 뚫었다.

남은 인원은 이백사십에 가주 하나.

“될까?”

하무백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빈 활을 당겼다. 활시위까지 전체가 은은한 묵빛으로 물들었다.

하무백이 일으킨 강기다.

강기를 뒤집어쓴 활은 부러질 듯 팽팽히 당겨지고, 활 손잡이 곁으로 활을 둘러싼 강기가 모여들었다.

이윽고 묵빛 강기로 이루어진 화살이 나타났다.

화허시강(化虛矢罡).

화살에 강기를 입히는 것이 아닌 아무것도 없는 활대에 순수한 강기만으로 만든 화살.

하무백은 아무렇지도 않게 최절정의 무공을 선보이고 있었다.

검은 강기의 화살이 완벽이 형성된다 싶은 순간.

파스슥.

활이 가루로 부서져 사라졌다.

“역시 안 되는군.”

시강을 얹기에는 활이 너무 약했다.

무창을 떠나는 길에 대장간에서 대강 골라 산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쓸만한 활을 구해둬야겠어. 언제 또 이런 일이 생길지 모르니.”

하무백은 깜깜한 전면을 응시했다.

코앞도 보이지 않을 어둠이 내린 산속이지만, 하무백에게는 대낮처럼 모든 것이 보였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동료들을 두고 열심히 움직이는 팽가의 무사들.

지금까지 하무백이 날린 화살이 단순히 단전만 꿰뚫었기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안 이후로 보이는 행동이다.

조금이라도 멀리 달아나 한 명의 희생이라도 줄이려는 몸부림이다.

부상을 입은 무사들은 날만 밝으면 자력으로 움직일 수 있을 터이니.

다만, 더 이상 무림인이 아니게 되겠지만 말이다.

하무백은 품에서 검지손가락 두 개 길이만 한 비수를 꺼냈다. 따로 자루가 없이 통으로 된 비수다. 이것도 활과 화살을 사던 대장간에서 대강 집어온 것들이다.

서른 개.

이것마저 모두 사용하면 본격적인 사냥이 시작될 것이다.

하무백의 신형이 움직였다.

아무런 소리도 기척도 없는 유령 같은 움직임이다.

무극여의보법.

사문의 보법이자 경공이다.

지극히 신묘하게 움직이며 그 어떤 기척도 남기지 않았기에, 살수의 그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는 보법이었다.

그렇게 하무백은 유령처럼 움직이며 비수를 흩뿌렸다.

“으악!”

“악!”

“크헉!”

조금 전과 다르게 동시다발적으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팽가 무사들의 움직임이 더욱 부산스러워졌다.

이제는 그냥 달리고 보았다.

그저 자신에게 놈의 공격이 날아오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공포에 지배당한 채, 어떻게든 그것으로부터 달아나려는 몸부림을 칠 뿐이다.

하무백은 무심한 얼굴로 손에 든 비수를 모두 던진 이후에는 직접 한 명, 한 명 처리해 나갔다.

검을 뽑을 것도 없었다.

그저 주먹 한 번이면 충분했다.

하무백의 주먹이 단전을 한 번 두드리면 그 단전을 그대로 깨졌다.

“크헉……. 괴, 괴물…….”

검은 그림자가 슥 지나가는 듯하더니 단전에 둔중한 충격과 극심한 격통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리고 곧 혼절했다.

도처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아무리 달려도 어느샌가 유령 같이 나타나 단전을 두드리고 사라졌다.

그야말로 귀신에게 당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이. 괴물 새끼! 어디 나한테 나타나 봐라!”

사방에서 동료들이 쓰러지는 소리에 결국 걸음을 멈추고 도를 뽑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이도 나타났다.

공포에 질려 반사적으로 하는 행동이었기에, 도법도 뭐도 아닌 그저 단순 무식한 칼질이었다.

그런 것에 하무백이 당할 리 없었다.

간단히 단전을 부수고 다음 사람을 향해 움직였다.

팽무량은 지금 자신의 귀에 들리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었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팽가 무사들의 비명과 악쓰는 소리뿐이었다.

어디에도 놈의 목소리나 움직이는 소리는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라면, 마치 팽가의 무사들 혼자서 악을 쓰고 비명을 지르며 픽픽 쓰러지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네 이놈! 어디 나 팽도충에게도 그리해 보거라! 태풍대주의 도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마!”

세 명의 대주 중 한 명의 외침마저 울렸다.

“컥.”

호기로운 외침과는 달리 그 역시 단말마를 남기고 쓰러졌다.

팽무량이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의 기감에 느껴지는 주변의 움직임이 현저히 줄었기 때문이다.

‘스물 아니 열다섯이 채 안 된다.’

그럼 나머지는 어떻게…….

생각하기 싫었다.

그즈음 동녘 하늘이 붉게 물들며 지긋지긋한 검은 어둠을 조금씩 몰아내고 있었다.

그때부터 비명이 사라졌다.

들리는 소리는 오직 바삐 움직이는 팽가 무사들의 발소리뿐.

얼마나 더 달렸을까.

이제 완연히 밝아진 하늘 아래, 평평한 분지가 나타났다.

그곳에 도착하고서야 팽가 무사들은 서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떻게…….”

팽무량은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이곳에 멀쩡히 도착한 이는 모두 열셋. 자신까지 열넷이었다.

그리고 정면의 커다란 바위에 한 사내가 무심히 앉아 있었다.

“하. 무. 백…….”

팽무량은 놈의 이름을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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