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어디 있어?
살벌한 기세를 풍기며 하무백이 대해루의 정문으로 다가가자, 그 입구를 지키고 있던 덩치 큰 무사 둘이 움찔했다.
그냥 봐도 시정잡배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양아치들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 세워둔 딱 그 정도.
“머, 멈추시오.”
둘 중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그도 이곳에서 기루 밥을 먹은 지가 몇 년이다. 그냥 보기만 해도 상대방이 무림인, 그것도 고수임을 알 수 있었다.
“루주를 좀 만나고 싶은데.”
하무백이 짧게 용건을 말했다.
당연히 그들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덩치 중 하나가 안으로 들어가 윗사람을 불러오려 할 때.
“전 이곳의 총관입니다만, 어디서 오신 고인이신지요.”
마침 때를 딱 맞춘 것처럼 대해루의 총관이 나타났다.
“하는 짓이 영 좀스럽군.”
하무백이 무심하게 툭 내뱉었다.
그럼에도 총관의 신색은 평온했다.
“루주에게 안내해.”
하무백이 짧게 말했다.
입구를 막아선 총관은 여전히 그 내심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있었다.
평온한 신색을 유지했지만, 그의 심사는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저 자가 팽가로 향해 온다는 정보는 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대해루에 쳐들어올 것이란 예상은 못했었다.
아니, 올 줄은 알았다.
그 망나니 놈이 이곳에 있으니, 그런데 이렇게 순식간일 줄이야.
“쓸데없이 머리 굴리지 말고 안내해. 다 알고 있으니.”
같은 말을 세 번째 했다.
그와 동시에 하무백의 기운이 사납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후우. 따라오시지요.”
총관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그는 하무백을 알고 있었고, 그가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리 순순히 안내를 자처한 것이다.
그 모습에 철담개의 눈빛이 변했다.
‘설마…….’
총관이 하무백을 알아보는 기루라니. 그런 곳은 한 곳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자신이 알기로는 그곳이 아니었다.
[알아봐라.]
철담개가 수하에게 전음을 보내자 거지 하나가 빠르게 사라졌다.
이곳 개방 분타의 분타주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리고 태연한 얼굴로 철담개는 하무백의 곁에서 함께 움직였다.
총관이 곁눈질로 그런 그를 보고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루주님은 고인 혼자서만 뵐 수 있을 듯합니다만…….”
하무백의 뒤를 따르는 이가 철담개 하나가 아니었다. 팽도원과 팽거율이 어느새 도착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무백이 힐끔 뒤를 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 혼자 보도록 하지.”
“자네.”
그 말에 놀라서 팽거율이 입을 열었으나, 이내 닫았다.
하무백의 단호한 눈을 본 탓이다.
이미 철담개에게서 이곳에 팽군호가 없다는 사실은 전해 들었다.
결국 믿을 것은 하무백뿐이었기에,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계속 대해루의 층을 올랐다.
여전히 따라오는 일행들에게 총관은 여전히 불편한 기색을 보였지만, 루주는 하무백 혼자 만나겠다 했기에, 딱히 그들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
하나같이 만만찮은 인물이기도 했거니와.
대해루 최상층은 단 하나의 방만이 있었다.
루주의 방이었다.
계단을 모두 오른 후 총관이 살짝 옆으로 비켜섰다.
“고인께서만 들어가시지요.”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하무백이 들어가자 총관은 다시 문을 막았다.
다른 이들은 그곳에서 그저 기다릴 뿐.
***
문을 열고 들어서니, 눈이 번쩍 뜨일 미인이 다소곳한 자세로 하무백을 맞았다.
“하 대협. 어서 오시지요. 소녀 미천하나마 이곳의 루주를 맡고 있는 영소혜라 합니다.”
하무백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대협은 무슨.”
하무백의 그런 반응에도 대해루의 루주 영소혜는 살풋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한잔하시겠어요?”
주안상이 거하게 차려져 있었다. 영소혜는 술병을 곱게 들고는 하무백을 바라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같잖은 수작은 하지 말고.”
하무백이 퉁명스레 말했다.
“그래도 한 잔 받으시지요. 소녀의 손이 부끄럽습니다.”
더욱 진한 눈웃음을 지으며 영소혜가 재차 권했다. 그녀의 웃음에는 색기마저 어리고 있었다.
“같잖은 수작 하지 말라고.”
하무백의 음성이 음산하게 울리는 순간.
퍽.
술병이 터져 나가며 그녀의 두 손은 쏟아진 술에 축축히 젖었다.
“아이, 이거 쉽게 구하지 못하는 명주인데…….”
살짝 아양을 떠는 목소리를 흘렸지만, 그녀의 눈 속 깊은 곳에는 낭패한 기색이 자리했다.
“이번에는 뭘 터트려 줄까?”
하무백이 그런 그녀를 직시하며 차갑게 물었다.
잠시 하무백의 눈을 마주한 영소혜.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뚜벅뚜벅 걸어 하무백의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곁에 있는 술병을 들어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카아. 아이씨. 재수가 없으려니. 걸려도 어찌 너 같은 인간에게 걸리냐.”
돌변했다.
방금 전, 그 단아하고 청순하며 묘한 색기까지 풍겼던 여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돌변했다.
숫제 어느 산채의 산적 같은 괄괄함이다.
“어디로 갔어?”
“뭘?”
하무백의 물음에 영소혜가 짧게 답했다.
“팽군호.”
“몰라.”
다시 짧게 돌아온 대답.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은가?”
하무백의 물음에 다시 한번 술병을 들이킨 영소혜가 답했다.
“모른다고. 몰라. 배 째!”
“네가 분명 루주는 맞는 것 같은데…….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도 아는 것 같고…….”
하무백의 목소리가 점점 가라앉았다.
“뭐, 정 원한다면야.”
하무백은 자리에서 일어나 검병으로 손을 가지고 갔다.
그 모습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거침이 없었다. 순식간에 검을 뽑은 하무백은 그대로 휘둘렀다.
서걱.
섬뜩한 절삭음과 함께 그 자리에 있던 상이 반으로 갈라졌고, 영소혜의 옷자락 역시 갈라졌다.
그리고 그녀의 복북에 가는 혈선이 생기며 피가 배어 나왔다.
영소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미, 미친…….”
그녀가 덜덜 떨며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새하얀 복부의 피부의 한줄기 붉은 선.
그녀는 양손으로 배를 감싸 쥐었다.
“제법 재빠르군.”
살짝 스쳤다.
그녀가 잽싸게 피한 덕이다.
“주, 죽을 뻔했잖아!”
그녀가 전력으로 몸을 뺐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대로 두 동강이 날 뻔했다.
“호들갑 떨지 마라. 정말 딱 배만 쨀 정도로 휘둘렀으니까.”
그랬기에 그녀가 스치는 정도로 피할 수 있었다.
반으로 쪼갤 생각으로 하무백이 검을 휘둘렀다면, 그녀는 이미 절명했으리라.
“미친놈. 배를 째란다고 진짜 째려고 해!”
영소혜가 악을 쓰며 외쳤다.
“예초아에게 아무것도 듣지 못했나? 나를 알고 있는 거 같던데……. 그렇다면 예초아가 아무 말도 안 했을 리 없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하무백.
그 모습에 영소혜는 등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들은 게 없기는. 상종 못할 미친놈이니, 절대 건들지 말라고 하셨지. 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영소혜의 얼굴을 가만히 지켜보던 하무백은 피식 웃었다.
“들었군. 그런데도 그랬다? 문주가 문도들에게 영 신뢰를 얻지 못하는 모양이야?”
그 말에도 영소혜는 입술을 깨물고는 하무백을 노려볼 뿐이다.
“이제, 말해봐. 어디로 갔지? 팽군호.”
“모른다니까!”
하무백의 이어진 물음에 영소혜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그 말을 믿을 거라 생각하나? 너희 하오문이 설마 팽가의 장손을 순순히 보내줄 리가 있나.”
하오문(下汚門).
정보를 다루는 데 있어서 정파의 개방과 쌍벽을 이루는 사파의 문파였다.
기루, 도박장, 주루, 소매치기 등 가장 낮은 계층에서 하류 인생을 산다는 이들로 구성된 문파.
개방만큼이나 그 규모가 큰 문파였다.
거지가 없는 마을이 없듯, 기루나 주루 도박장이 없는 마을 또한 없으니.
그랬기에 하오문은 하무백에 대한 정보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아무 몸서리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무백이 아주 쉽게, 루주인 영소혜를 만날 수 있었던 거다.
“우린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 얼마 안 됐어. 그래서 일단 이곳에 적응하는 게 먼저야. 그런 상황에서 팽가의 장손 같은 거물을 감시할 수 있을 리 없잖아.”
이제 지혈이 된 것일까? 복부의 상처에서 손을 뗀 영소혜가 퉁명스레 말했다.
“핑계는 그럴듯하군.”
“사실이야.”
“그러고 보니 예초아의 남편의 성이 영씨였지.”
그 말에 영소혜가 두 눈을 부릅떴다.
하무백이 다시금 검을 움직였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영소혜는 다급히 몸을 움직였다. 하무백의 검은 그런 그녀를 집요하게 쫓았고, 영소혜는 전력을 다해 검을 피했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차이였다.
“그 보법은 역시나 유유미종보(幽幽迷終步)로군.”
어느새 검을 거둔 하무백이 영소혜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오문주의 보법이자, 예초아의 장기지.”
예초아.
그녀가 바로 하오문주였다.
“예초아가 딸을 루주로 내보내면서, 그냥 내던지지는 않았을 텐데?”
영소혜가 이를 악물었다.
하무백은 대해루에서 팽군호를 찾기 위해 기감을 퍼트렸을 때, 이미 그녀가 하오문주의 직전 제자임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기감에서 하오문주의 독문무공인 유유환영공(幽幽幻影功)의 흔적을 읽은 덕이다. 그녀의 이름을 듣는 순간, 예초아의 딸임을 확신했다.
“어디있지? 팽군호?”
“모른다고!!”
다시 한번 영소혜가 악을 쓰듯 외쳤다.
이번에는 하무백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모른다고 하다니.
어쩌면…….
…….
“너 정말 예초아에게 나에 대해 못 들은 거냐?”
아직 영소혜가 자신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팽군호의 행방을 모를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그간 하무백이 겪은 하오문은 강호 유력 인사들의 정보에 대해 철두철미했으니.
“상종 못할 미친놈이니, 절대 건드리지 마라.”
영소혜가 작게 중얼거렸다.
“응?”
물론 하무백은 그 말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어! 이 미친놈아!”
“쯧. 역시 제대로 말 안 해줬군.”
혀를 찬 하무백의 신형이 사라졌다 싶은 순간.
퍽!
그의 주먹이 그대로 영소혜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컥. 무, 무슨…….”
숨이 턱 막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영소혜.
불신 가득한 눈으로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그 눈은 말하고 있었다.
어찌 자신 같은 미녀에게 그런 무지막지한 주먹질을 할 수 있냐고.
싱긋.
눈이 마주치자 하무백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쾅!
그대로 영소혜의 얼굴을 후려쳤고, 그녀는 그대로 벽에 날아가 처박혔다.
손을 가볍게 턴 하무백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튀어나오려면 지금 튀어나와.”
“…….”
고요했다.
“안 튀어나오면 내가 간다?”
그 말과 동시에 네 명이 순식간에 나타나 영소혜 주변을 둘러쌌다.
“오랜만이네?”
하무백이 다시 한번 싱긋 웃었다. 넷 중 둘이 안면이 있었다.
“별로 반가운 만남은 아니외다.”
“어어?”
갑자기 등장한 네 명의 모습에 영소혜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녀도 저들의 존재는 몰랐음이다.
“어디 있어? 팽군호.”
“어젯밤에 떠났소. 자신의 수신호위 둘을 죽이고.”
“그래서 어디 있어?”
“그들의 시체는 우리가 은밀히 처리했소이다.”
“호, 호법님.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요?”
영소혜가 어느 정도 정신을 수습하자 물었다.
그들은 하오문의 호법들이었다. 모두 열두 명으로 구성된.
그중 넷이나 이곳에 있다니, 그녀로서는 도통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디 있어? 이번이 세 번째다.”
영소혜의 물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하무백이 다시 물었다. 그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본 호법 중 하나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하무백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랬군. 그런 거야. 네 놈들. 괜히 이곳에 자리 잡은 게 아니야. 철담개 영감도 이곳에 하오문이 있는 줄 모르고 있던데……. 개방에서도 파악 못한 분타가 팽가 지척에 있다라. 큭큭. 애초에 네 놈들 목표가 그거였군. 혼원류하.”
하무백의 두 눈이 사납게 빛났다.